가수 운명은 노래대로 된다.
한 박사학위 논문에서
한국 노랫말 연구회는 가수 100명을 대상으로, 노래가 운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조사했더니, 놀랍게도 91명의 가수가 자신의 히트곡과 같은 운명의 길을 걸었다.
고통 이별 죽음 등 슬픈 노래를 부른 가수는 단명했고, 요절한 가수들은 죽음과 관련된 노래를 불렀다.
슬픈 노래를 부른 가수는 일찍 죽고, 즐거운 노래를 부른 가수는 오래 살았다는 것이다.
사례
왜 가야만 하니, 왜 가니, 그건 너 바로 너 때문이야. 울고 싶어라. 울고 싶어라. 이 마음
벙거지 이남이가 암으로 죽으면서 한 말이다.
윤심덕은 사의 찬미를 부르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산장의 여인을 부른 권혜경은, 자궁암과 위장암으로 고통 받다가, 재생의 길을 걸으며, 산장에서 비구니처럼 쓸쓸히 살았다.
수덕사의 여승을 부른 가수 송춘희는, 결혼하지 않은 채 불교 포교사로 일했다.
가수 이난영은 목포의 눈물을 부르고, 화병으로 49세에 생을 마감했다.
가수 양미란은 흑점을 부르고, 골수암으로 역시 생을 마감했다.
가수 박경애는 곡예사의 첫사랑에서, 죽음을 암시하는 ‘울어 봐도 소용 없고 후회해도 소용 없다.’를 부르고 폐암으로 사망했다.
가수 박경희는 머무는 곳이 어딘지 몰라도를 부르고 별세했다
가수 장 덕은 예정된 시간을 위하여를 부르고 사망했다.
남인수는 눈을 감아들이지요를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났다.
0시의 이별을 부른 가수 배호는 0시에 떠났다. 그리고 돌아가는 삼각지를 부르고 돌아오지 못했다.
간다 간다 나는 간다. 너를 두고 나는 간다. 이름 모를 소녀를 열창하던 가수 김정호는 20대 중반에 암으로 사망했다.
이별의 종착역, 내 사랑 내 곁에를 부른 가수 김현식은 아쉽게도 떠나버렸다.
우울한 편지를 부른 가수 유재하는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하수영은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를 부르고 세상을 떠났다.
김광석은 서른 즈음에를 부르고 그 즈음에 세상을 떠났다.
이별을 불렀던 가수 패티김은 길옥윤 씨와 이별했다.
조미미는 바다가 육지라면을 부르고, 재일 교포와 결혼했다.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부른 차중락은 낙엽처럼 저 세상으로 갔다.
최헌은 오동잎을 부르며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노사연은 오랫동안 노처녀로 지내다가, 만남을 부르고 결혼했다.
신신애는 세상은 요지경을 부르고 사기를 당하자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라고 했다.
송대관은 한동안 뜸했다가,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왔다.
엘레지(悲歌)의 여왕, 이미자
열아홉 순정을 부를 때는, 열아홉 살이었다.
동백아가씨를 부를 때는, 동백꽃이 떨어진 것처럼 금지곡이 되었다.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외롭게 살았다.
섬마을 선생을 부를 때는, 소박맞고 혼자 살았다.
여성이 기러기 아빠라니? 과부 시절에 작곡가 박춘석을 사랑했다.
아씨를 히트시키고, KBS 방송 위원 김창수와 결혼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