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교. 동명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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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우리들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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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관내 지도.
아래 글은 제천 시청 홈페이지에서 가져왔습니다.
그시절 그추억을 회상하여 봅시다.
한 자 : 義林池
전 화 : 043-642-2486
관리소 : 농업기반공사 충주제천지부 제천지소
주 소 : 충북 제천시 모산동 241
연간이용객 : 500천명정도
충청북도 지방기념물 제11호인
의림지는 삼한시대에 축조된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함께
우리나라 최고의 저수지로 본래 "임지"라 하였습니다.
고려 성종 11년(992)에 군현의 명칭을 개정할 때
제천을 '의원현' 또는 '의천'이라 하였는데
그 후에 제천의 옛 이름인 '의'자를 붙여 "의림지" 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축조된 명확한 연대는 알수 없으나
구전에는 신라 진흥왕 (540∼575)때 악성 우륵이 용두산(871m)에서 흘러 내리는 개울물을 막아 둑을 만든 것이
이못의 시초라고도 하며, 그후 700년이 지나 현감 "박의림"이 4개 군민을 동원하여
연못 주위를 3층으로 석축을 해서 물이 새는 것을 막는 한편
배수구 밑바닥 수문은 수백관이 넘을 정도의 큰돌을 네모로 다듬어
여러층으로 쌓아 올려 수문기둥을 삼았고 돌바닥에는 "박의림"현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합니다.
호반둘레 약 2㎞, 호수면 158,677㎡, 저수량 6,611,891㎥,
수심 8∼13m의 대수원지로 몽리면적은 289.4 정보이며,
보수당시 수구를 옹기로 축조한 흔적이 발견되어
삼한시대 농업기술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합니다.
현재는 수리시설 보다는 유원지로서 그 명성을 더해가고 있는데
경승지로 호수 주변에 순조 7년(1807)에 세워진 '영호정'과
1948년에 건립된 '경호루' 그리고 수백년을 자란 소나무와 수양버들,
30m의 자연폭포 등이 어우러져 풍치를 더하고 있습니다.
특히, 겨울철 및 해빙기에 잡히는 공어(빙어)는 담백한 맛의 회어로 각광받고 있는 명물이며,
순채는 임금의 수라상에 올릴만큼 유명했지만
1914년 의림지 보수이후 멸종되어
제천시 농업기술센타에서 복원코자 연구·시험재배하여 2001. 5월에 이식하였습니다.
우리나라 3대 악성의 한분이며 가야금의 대가인 "우륵(于勒)"선생이 노후에 여생을 보낸 곳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가야금을 타던 바위 우륵대(일명 제비바위, 연암, 용바위)와 마시던 물인 "우륵정"이 남아 있습니다.
문화재
영호정(순조7년 1807년 건립), 경호루(1948년 건립), 홍사구묘 (의병장:1896년 전사)
특산물
공어(겨울철 및 해빙기에만 잡힘)가 명물이며, 순채는 임금의 수라상에 올릴만큼 유명
공어축제
매년 정월대보름날 문화관광축제로 공어축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놀이시설
의림랜드, 활터, 수영장, 국궁장, 골프연습장, 유선장 등.
주변 등산로
- 까치산(473m) 1개코스 1시간 ∼ 2시간
- 용두산(871m) 3개코스 1시간 30분 ∼ 4시간
호반둘레 약 2㎞, 호수면 158,677㎡, 저수량 6,611,891㎥, 수심 8∼13m의 대수원지로
몽리면적은 289.4 정보
제천역에서 제천시를 중앙으로 관통하는 대로인 의림로를 따라 북쪽으로 4km에 위치
주 차 시 설 - 3,300평방m (버스150대주차)
* 야사 - 관련설화
옛날 의림지가 생기기 전에 이곳에 부자집이 있었다.
하루는 이집에 스님이 찾아와 시주할 것을 청하였다.
그런데 이집 주인은 탐욕스러울 뿐 아니라 심술도 또한 사나왔다.
한동안 아무 대꾸도 없으면 스님이 가버리려니 했는데 탁발스님은 가지않고 목탁만 두드리고 있는 것이었다.
심술이난 집주인은 거름 두엄에 가서 거름을 한 삽 퍼다가 스님에게 주었다.
스님은 그것을 바랑에 받아 넣고 머리를 한 번 조아리더니 발길을 돌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을 집안에서 보고 있던 며느리는 얼른 쌀독에 가서 쌀을 한바가지 퍼다가
스님을 뒤쫓아가 스님에게 주며 시아버지의 잘못을 빌었다.
스님은 그것을 받더니 며느리에게 이르는 것이었다.
조금 있으면 천둥과 비바람이 칠터이니 그러면 빨리 산속으로 피하되
절대로 뒤돌아 보면 안된다고 하였다.
이 소리를 듣고 며느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랬더니 집안에서는 집주인이 하인을 불러 놓고
쌀독의 쌀이 축이 났으니 누구의 소행인지 대라고 호통을 치고 있는 것이었다.
며느리는 시아버지에게 자기가 스님이 하도 딱해 퍼다 주었다고 아뢰었다.
시아버지는 크게 노하여 며느리를 뒷방에 가두더니
문에 자물쇠를 채워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해 버렸다.
그런데 갑자기 번개와 천둥이 울리고 세찬 바람과 함께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며느리는 광속에서 안절부절 못하는데
더 요란하게 번개가 번쩍하고 천둥이 치더니 잠겼던 광문이 덜컹 열리는 것이었다.
며느리는 탁발승의 말이 생각나 얼른 광속을 빠져나와 동북쪽 산골짜기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얼마쯤 달려가던 며느리는 집에 남아 있는 아이들이 생각이 나서
뒤돌아 보지 말라던 스님의 말을 잊고 집이 있는 쪽을 뒤돌아 보았다.
그순간 천지가 무너지는 듯한 굉음이 울리더니 며느리의 몸은 돌로 변해갔으며
집이 있던 자리는 땅속으로 꺼져내려 온통 물이 괴고 말았다.
물이 고인 집터가 의림지이며 며느리가 변해서 돌이 된 바위는
우륵이 가야금을 타던 제비바위(연자암)근처 어디엔가 서 있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