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화암사 (고성 화암사) 등산
10월 27일 1시간 거리밖에 안 되는 설악산의 단풍을 보고자, 계획과는 달리 1시간 늦은 9시쯤 출발했다. 놀랍게도 설악동에 들어서자 정체가 시작되었다. 보행자보다 느린 속도를 30여 분 견디다 주차장입구에서 차를 획 돌렸다. 자동차 유리창에 비친 오가는 인파에 질렸던 것이다. 코로나19의 무증상감염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대신 남편이 귀동냥에서 얻은 화암사 단풍을 찾아나섰다. 11시가 지나서 포기하려던 차, 다행히 내비 덕으로 쉽게 위치를 파악했다.
화암사((禾岩寺)는 설악산 자락이 아니라 금강산의 남쪽 마지막 능선에 위치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일주문 현판이 금강산화암사였다. 통일신라(769) 때 창건된 절이다. 입구에 울창한 숲길의 단풍이 아름다웠다. 이정표를 따라 수바위를 지났다. 수바위는 기우제를 지낸 곳이고 쌀이 나왔다는 전설이 있다. 그만큼 민가와 멀리 떨어져 있어 스님들이 시주 구하기가 어려웠다는 의미겠다. 가파르고 뽀송뽀송한 산길이 관악산 같았다, 미끄러지기 딱이었다.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덥고 땀이 나고 무척 괴로웠다. 여러번 쉬었다. 등산도 졸업할 때가 되었나 보다.
넓적하고 두꺼운 네모 바위 위에 비숫한 모양의 바위가 서너 켜 쌓여 있었다. 이름하여 시루떡바위였다. 거북 형상의 바위군을 지나 갈림길에서 사람들을 따라갔다. 엉성한 출입금지 표시에 잠시 주저하다 나아가니 고원처럼 평평한 바위벌판이 펼쳐지는 게 아닌가. 360도 위로 뻥 뚫린 공간에서 사람들이 삼삼오오 흩어져 있었다. 도시락을 펴놓고 먹는 사람들, 사진 찍기에 바쁜 사람들이 시끄러웠다. 바위들이 병풍처럼 붙어있는 울산바위, 미시령 고속도로, 무심한 첩첩 산들을 죽 따라가니 평원과 마을이 보였다. 그 너머가 동해라는데 뿌연 공기로 안 보였다. 앉지 않으면 현기증이 날지도 모를 파노라마였다.
자리를 잡은 후 먹은 초코파이, 바나나, 귤 등 간식이 허기를 채워주지 못했다. 속초가서 잘 먹을 점심계획이어서 가볍게 왔기 때문이다. 김밥이랑 충족히 맛있게 먹고 있는 등산객들에게 손을 내밀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여전히 범접할 수 없는 위용의 울산바위를 찍었으나 직사광선이라 선명치 않았다. 울산바위는 밑에서 올려다보던 때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작아보였다. 둘러싸고 있는 겹겹 산들이 비슷한 높이라 그럴 것이다. 생텍쥐페리(1900~1944) 『어린왕자』 첫부분에 나오는 모자 그림, 코끼리가 들어가 있는 모자와 닮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름다운 단풍나무 숲길이 많았으나 절정이 지난 듯 나목이 꽤 많았다. 하산은 등산보다는 덜 어려웠으나 쉽지는 않았다. 거의 3시간 걸린 힘든 여정이었다.
아주 늦은 점심 매운탕을 맛있게 먹었다. 포만감에 취해 나른한 몸이 잦아들었다. 지고의 행복 순간이었다. 지구상 어떤 누구에게도 굶주림은 없어야겠다. 그 해결책이 무엇인지 물음표만 찍을 뿐이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5분 거리의 등대해수욕장으로 갔다. 짧은 해변의 잔잔하고 푸른 바다를 보았다. 수직의 세계에서 수평의 세계로 이동해 있는 사실이 신기했다. 두 세계는 너무나 달랐다. 산에서 살래 물에서 살래 물으면 아무래도 걸을 수 있는 산을 선택할 것 같다.
“子曰: 知者樂水, 仁者樂山. 知者動, 仁者靜. 知者樂, 仁者壽.
공자왈: “지자요수, 인자요산, 지자동, 인자정, 지자락, 인자수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동적이고 어진 사람은 정적이며, 지혜로운 사람은 즐겁게 살고 어진 사람은 장수한다.”
[출처] 논어 옹야편 ( 雍也篇 ) 작성자 새싹
봉평 이별의 식사
10월 31일 친구 부부 덕에 특별한 이별의 식사를 했다. 봉평의 일식당에서 일인 주방장의 정식이었다. 식당 옆자리에 친구네의 지인 부부가 있을 줄이야. 친구 부부는 용평의 부부 대사임이 분명하다. 부드러운 표고버섯 한 봉다리도 선물로 받았다. 그간에 다져진 우정이 내년을 기약할 정도였다.
음악치유의 숲
11월 1일 용평의 마지막 발걸음으로 음악치유의 숲을 거닐었다. 사진 추적으로 오늘이 6번째였다. 3일 전에는 특히 하늘을 찌르는 키 큰 삼나무 길이 무척 아름다웠다. 설국의 눈길이 연상되었다. 갈색만이 다를 뿐, 길 양옆에 앙상한 가시잎들이 부서져 수북히 쌓여 있었다. 걸음마다 푹신한 감촉이 느껴졌다. 쓸쓸하나 푸근한 분위기가 낭만적이었다. 봄날의 연·진분홍 벚꽃 길, 만추의 노란 은행잎 길처럼 예쁜 진황토색 길을 걷는 맛이란! 한껏 행복했었다.
그런데 오늘 늦은 오후는 그새 나뭇잎이 거의 다 떨어져 황량하고 어둑어둑한 숲이었다. 어찌나 고요한지 태고적 고독이 천애의 고아를 서서히 옥죄는 느낌이었다. 울음이 곧 터질 것 같았다.
커플조인 골프
11월 2일 4명이 한 팀이 되어 치는 골프는 실제로 4인 구성이 어렵다. 커플조인은 그런 이유로 생긴 제도 같다. 익명의 커플이 예약한 시각에 생판 모르는 커플이 합류하여 치는 것이다. 오늘이 세 번째 커플조인 골프였다.
낯선 사람 대면이 무엇보다 싫은데, 남편의 용기로 3번이나 해낸 것이다. 첫 번째 부부는 우리 존재를 무시하는 듯 별 상관않고 잘 쳤다. 반면 잔뜩 긴장한 우리는 말도 부쳐 보고 하다 어느 때보다 실수가 많았던 것 같다. 오늘 부부도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좀 더 친절한 구석이 엿보였다. 끝난 후 칼날같이 냉정하게 떠나버리는 순간이 제일 매정했다.
3번 경험이 일러준 것은 낯가림하는 나이의 아기들처럼 초면의 수줍음은 보통 현상이고, 어색함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다음부터는 지레짐작하여 주눅들거나, 오해하여 분통을 삭이는 일은 없어야겠다.
그런데 두 번째 팀과는 아주 좋은 인연이 되었다. 남편보다 11년 아래인 김 대표는 처음부터 사분사분 말을 걸며 골프보다는 남편에게 더 관심이 있는 듯하더니 그날 저녁에 자기네 콘도를 구경시켜 주었다. 우리의 관심을 꿰뚫고 그들처럼 콘도를 세컨 하우스로 구입하라는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막내 동생과 동년배 세대라 그런지 인생을 즐길 줄 알고 실천하는 멋쟁이라 하겠다. 그들과의 관계는 저녁초대로 이어졌다. 그런데 그 약속을 기대하고 있지 않았는지 남편이 잊고 있었다. 마침 전화기가 딴 방에 있어서 저녁약속 확인전화를 받지 못하고 만 것이었다. 미안한 마음에 우리가 ‘양떼식당’으로 초대했다.
양떼식당은 9월 중순이후로 자주 간 식당인데 주방장 여주인이 매번 푸짐하게 주어서 남은 음식과 끝내지 않은 식혜 병은 싸가지고 와 저녁으로 먹곤 했다. 미안해서 돈을 더 내면 다음엔 더 비싼 메뉴의 백반을 해주었다. 마치 볏단을 형과 동생에게 밤사이 쌓아 놓는 『의좋은 형제』 동화 같았다. 따뜻한 시골 인심이 너무 좋았고 고마웠다.
김 대표가 음식을 가려 먹는다는 것을 눈치 채고, 능이삼계탕이 괜찮냐는 질문에 다 먹는다고 하여 초대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는 밥과 반찬만을 먹는 게 아닌가. 완전 이솝 우화 『여우와 두루미』였다. 얼마나 미안하지. 부인이 자기가 대신 많이 먹었다며 위로했다. 키가 크고 날씬한 김 대표는 골프도 시원시원히 잘 치는 것 같은데 편식이 이해되지 않았다. 캐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다. 그의 친밀감을 믿고 따졌더니 카톡의 사진을 보면 안다고 직답을 피했다. 아, 놀라운 사실. 그는 몸짱이었다. 60대의 초콜릿 복근. 정말 멋졌다.
순발력 좋은 그는 2시간 걸려도 맛집을 기꺼이 찾아 먹는다 하더니, 지난 17일 저녁, 분당에 사는 그가 우리를 태우고 고양의 참장어 식당으로 데리고 갔다. 처음 먹어 본 참장어는 장어와 달리 기름지지 않았다. 참장어 샤브샤브는 무척 담백했다. 서글서글하고 통큰 사나이가 평생 지킨 고집이 훌륭하지만 동시에 스스로 얽매는 족쇄임을 잘 아는 것 같았다.
단기간에 스스럼 없는 사이가 되니. 나는 궁금했다. 우릴 좋게 보는 호감이 어디에 있었는지 물었다. 어려운 물리학을 하신 분이고 영업사원 경력으로 알아보았다는 의미였다. 7학년 나이에 무시당하기는 커녕 큰형뻘 대접을 받다니. 감격해 마지않았다. 김 대표처럼 솔직 직선적 표현으로 다가온 성인 남성은 처음이었다. 속이 뻥 뚫리는 기쁨의 맛이었다.
복기 후기
간단할 줄 알았던 복기가 한 달 넘게 걸렸다. 타인과의 미묘하고 부정적인 심리는 건너뛰고, 오로지 특별 행동의 날만 대충 되새김질한 것이었다. 망각 속 순간들이 떠오르니 신기했다. 초장부터 쓸 생각이 전혀 없어 사진도 대충 찍었는데. 모르는 지명, 위치, 역사를 보완해주는 인터넷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평생 그렇게 별 걱정 없이 다닥다닥 쏴다닌 적이 없다. 어찌 이런 행운이!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체적 결론은 매일 아름다운 숲속길을 걸어도 동생, 지인들의 왕래가 그리웠다는 것이다. 역시 사람은 둘로는 충족되지 않는 사회적 동물이다. 진리를 몸으로 배운 100일이었다.
금강산 화암사 등산
시루떡바위
울산바위
수바위
등대해수욕장
음악치유의 숲
10월 4일
10월 13일
10월 29일
11월 1일
첫댓글 어유 "끝" 자가 엄청 크게 보이네 잉 ~
인자탱님이 보통분이 아니셔. 대단하신 분 ~
음악치유의 숲 ? 공연도 한다고 들었어.
울산바위를 저 방향에서 보니 또 다르네
쭉쭉 뻣은 나무들 ~ 참 시원하네
원없이 다녔다. 그치 ?
우리도 덕택에 구경 참 잘했어.
감사합니다 ~
나는 여기에 댓글을 달았던거 같은데...
정말 원없이 다닌거 같아 보이는데...
본인은 그렇지 않게 생각 될지도..ㅎㅎ
우리도 잘 다녀 왔다.. 수고 했어
경위 덕에 구경 잘했다...끝이라니 섭섭하네..
오늘은 사진이 다 안올라와서 몇개밖에 못보네...어떤 때는 용량 때문인지 안올라 올 떄가 있어
다른날 한번 더 들어와서 봐야지...
나도 산에 살래 바다에 살래 하면 산에 산다고 할 거 같아
"100일 용평 체류를 마치고 끝."
아라비아 숫자대신 "끝"자가 보여
서운했네유.
땀도 흘리지 않고 숨도 차지않고
아주 편안하게 방안에서 단풍구경
실컷 하는 재미도 괜챦은디~~~
아무튼 수고했슈. 고맙구먼유. ^^♡♡
경위 덕분에 우리도 용평 일대 여러곳 산과 숲길을 걸으며 참 좋았는데,
우리도 내년을 기약하며 아쉬운 마음으로 기다릴께.
글도 잘쓰고, 사진도 작가이고~
친구들,
재미있게 읽어주고 칭찬해 주니
감사감사~~
또 여행을 갈 것인지 후기를 쓸 수 있을런지
모르지만,
좌우당간 결과물을 발표하고 보니
대단히 만족스럽다.
마침표 확실히 찍은 것 같어. ㅎㅎ
그대들 덕분에~~~ 생큐!
원없이 fully 산다 ~~, 많고 많은 복중에 또 두드러지는 친구 복. 내년 에도 또 갈 거 같으네. 이거 말고도 또 뭔가 생각 못해 본거 안해 본거, 용감하게 과감하게 해 내겠지 ~~~!!
유섭이 말대로 힘 안들이고 용평일대의 자연 풍광을 즐감하게 해 준 경위, 너무 고마웠어.
아름다운 자연 못지않게 좋은 인연들을 만들고 온 것이 큰 보람이 될 것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