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이 있는’ 얼굴 모습 묘사
마케도니아 문화적 전통 계승
콤네노스 왕조의 건축 미술은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는 모자이크와 그림들을 통해 엿볼 수 있다. 11세기 중반에 속하는 갑바도기아 동굴 교회에는 매우 작은 십자가를 장식한 그림과 함께 12∼15개의 이콘들이 묘사되고 있다. 이들 교회들은 그림의 중심인물의 배열에 있어서 그리스의 수도원 교회와 차이가 있다. 그리스도는 마리아 대신에 앱스에서 보좌에 앉아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마리아는 측면의 앱스에 묘사된다. 이런 위치 변경은 지역적 전통인 것 같다.
또한 러시아의 키에브에 있는 성 소피아 교회에는 중기 비잔틴 시대의 미술적 특징이 보다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이 교회는 1037년 야로슬라브 황제 때 건축하기 시작하여 1043년 러시아 함대가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할 때에도 공사가 계속됐다. 중앙의 성전에는 모자이크 장식으로 돔에는 창조주 그리스도와 천사들을, 돔 아래의 삼각궁륭에는 복음 전도자들을, 앱스에는 마리아를 묘사하고 있다. 수태고지 장면은 북쪽과 남쪽으로 나눠져서 왼쪽에 천사가 오른쪽에 동정녀가 묘사됐다. 나머지 색칠된 그림 부분에는 수난기사와 동정녀의 생애와 성자와 천사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 교회에는 야로슬라브 황제 가족의 초상화가 나타난다. 그 형식은 9세기 바실 1세와 그의 가족의 초상화를 연상시켜주는 것으로 비잔틴 황실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11세기에 속하는 교회의 장식들 중에 모자이크와 그림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 그 양식에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을 보면 여러 명이 그 작업에 참여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그림의 양식을 언급한다면 절제된 선과 꽉 차인 인물의 모습으로부터, 보다 여유 있는 선과 ‘표정이 있는’ 얼굴 모습을 묘사하는 것까지 범위를 정할 수 있다.
‘표정이 있는’ 형식은 12세기 키프로스 교회의 그림에서 나타난다. 그 당시 키프로스는 콤네노스 왕조에서 성지에 대한 십자군 전쟁을 수행하는 교두보로 사용했기 때문에 콘스탄티노플과 밀접한 연관을 갖게 된다. 표정이 있는 얼굴 묘사는 1105∼6년에 완성된 아시누에 있는 교회에 분명하게 나타난다. 키프로스 라구드라에 있는 아라코스의 파나기아 교회에는 보다 더 발전된 표정의 그림이 발견된다. 그 그림은 1192년에 만들어 졌으며, 주름진 옷을 입고 드라마틱한 표정을 한 늘씬한 인물로 묘사됐다.
12세기의 모자이크 장식들이 시실리 섬에서 발견되는데, 그곳은 12세기 초엽에 노르만 왕국이 세워졌던 곳이다. 어떻게 해서 비잔틴의 미술가들이 그곳에 가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상업적인 접촉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지역에는 이미 서구의 기독교적 건축양식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비잔틴의 모자이크 장인들이 익숙하지 않은 건물 형태에서 작업을 했을 것이다. 오직 팔레르모에 있는 마르토라나 교회가 내접한 십자가 형태로써 비잔틴 장인들에게 친숙한 건물이었다. 이 교회는 1148년에 비잔틴 양식으로 건축됐으며, 돔에 그리스
도와 천사들과 예언자들이, 삼각궁륭에 복음 전파자들이, 돔 주위의 아치에 이콘들이 장식됐다. 비잔틴 양식에 나타나는 기부자들도 묘사됐는데, 한 사람은 동정녀 앞에, 다른 한 사람인 로저 2세는 그리스도 앞에서 왕관을 수여받고 있다. 로저 2세의 왕궁 예배당은 1143년에 건축됐는데, 동쪽의 내접한 십자형과 서쪽의 바실리카 양식이 조합된 것이다. 동쪽에 있는 장식들은 친숙한 비잔틴 양식의 그림들을 보여준다. 팔레르모의 모자이크들은 전형적인 비잔틴 양식이며, 그리스어로 쓰인 명문이 그 밀접한 연관성을 확인해 준다.
또한 몬레알레 교회는 1174∼1183년에 세워졌다. 노르만의 세 번째 왕인 윌리엄 2세에 의해 건축됐으므로 왕궁의 예배당과 같은 양식으로 장식됐다. 그러나 왕궁 예배당보다 훨씬 크며 대부분의 장식은 벽면에 만들어졌는데 그 공간을 채우기 위해 왕궁에 있는 리브가의 여행이 두 편의 이야기로 나눠져 그려졌다.
시실리 섬에 있는 모자이크의 연대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지만, 1140년경에 작업이 시작되어 적어도 45년 동안 계속됐을 것이다. 작업에는 여러 사람이 동원되어 절반쯤 진행하면 비잔틴에서 온 장인들이 손질했을 것이다. 몬레알레 교회에서 마지막 모자이크 작품은 그리스어 명문이 약간만 들어있는 것이다. 그 무렵에는 이미 대부분의 작업이 토착 장인에 의해 이루어져서 그리스어가 많이 사용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여전히 비잔틴 장인의 지시를 받았다는 것을 동시대의 발칸반도와 키프로스에 있는 것과 동일한 양식이 발견되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남아 있는 11∼12세기의 모자이크는 성 소피아 교회의 남쪽 회당에 있는 두개의 패널이다. 이 패널들은 동쪽 벽에 한 쌍으로 만들어져 있지만, 두 작품은 90년 정도 차이가 있다. 보다 일찍 만들어진 왼쪽의 것은 보좌에 앉아 계신 그리스도와 돈 주머니를 들고 있는 콘스탄틴 9세와 두루마리를 든 황후 조에가 묘사됐다. 이 모자이크는 황제 부부가 교회에 돈과 토지를 바치는 연례축제를 묘사한 것이다. 오른쪽에 있는 두 번째 패널은 1118∼22년에 만들어졌으며, 동정녀를 중심으로 콤네노스 왕조의 요한 2세와 황후 에이레네가 역시 돈주머니와 두루마리를 들고 있다.
그 밖에 많은 다른 콤네노스 왕조의 모자이크와 그림들이 황제를 묘사했지만 오늘날 기록으로만 남아 있다. 그 설명된 이미지들을 통해 볼 때, 콤네노스 왕조가 무척 다양한 상황 가운데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장면들은 콤네노스 왕조 시대가 마케도니아 시대의 문화적 전통을 분명히 계승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그것을 통해서 콤네노스 왕조는 이전의 왕조를 합법적으로 계승하고 있음을 보여주려고 했을 것이다.
한상인 목사(순복음동경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