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문학제>, 2021년 5월 22일
광주 · 미얀마 시인들의 민주화운동
맹문재
1.
2021년 3월 14일 『광주일보』는 광주전남작가회의 소속 시인들이 미얀마 민주화 투쟁에 연대하는 시작품을 릴레이 형식으로 발표한다는 기사를 게재했다. 1980년 6월 2일 「아아, 光州여 우리나라의 十字架여!」를 『전남매일신문』(현『광주일보』)에 발표해 광주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렸던 김준태 시인은 이번에도 「미얀마에서 제비가 날아온다!」로 물꼬를 텄다. 고재종, 김희수, 김완, 박관서 시인이 뒤이어 발표했고, 2021년 3월 22일부터는 『광주in』으로 발표 지면을 옮겼다. 나종입, 박남인, 문재식, 김재석, 조성국, 조남록, 박종화, 김정원, 박기복, 황형철, 함진원, 김민휴, 이효복, 강대선, 권정순, 전숙, 김종숙, 장진기, 장민규, 석연경, 이민숙, 백애송, 홍관희, 이미루, 안준철, 이재연, 김인호, 고성만, 이지담 시인 등이 참여했다. 그동안 발표된 작품들은 오월문학제 걸개 시화로 제작해 5월광장과 5․18국립묘역에 설치했다.
미얀마연방공화국에서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 지 40여 일 만에 광주전남작가회 소속 시인들이 미얀마 시민들의 민주화 투쟁에 지속적으로 연대한 것은 의의가 크다. 시인들은 미얀마 시민들이 피를 흘리며 투쟁하는 모습에서 1980년 5월의 광주 투쟁을 다시 보았다. “피바다인/양곤과 만달레이에서/1980년 5월 광주”(김재석, 「미얀마가 나로 하여금 발을 동동 구르게 한다」)를 보았고, “대한민국 광주는/미얀마 양곤이고//쿠데타 주범 전두환은/민아웅흘라잉”(김정원, 「⋂」)으로, 그리고 “미얀마는 오월 광주/총을 든 폭력자는 닮았다”(석연경, 「오월, 미얀마 광장에서」)라고 인식한 것이다.
또한 광주의 시인들은 “저항의 최후가/거리에 쌓”(백애송, 「거짓말의 거짓말」)이는 광경 앞에서 “열정의 순결한 민주주의 미얀마 민중의 함성”(이민숙, 「용선화 꽃이 타오르네」)을 들었다. “내 마음 아프지 않아/아, 아, 저 미얀마/살점이 더 찢어지고 있겠구나!”(안준철, 「반성문」)라고 반성하고, “군부 폭압 어둠을 물리치고 빛의 도시로 살아난 광주의 이름”(김인호, 「미얀마를 위한 기도」)을 부르며, “휘두르는 총칼을 수저나 골프채로 알고” 있는 쿠데타 세력을 “잊지 말고, 용서하지 말”(박관서, 「바라보는 미얀마여, 바라보소서!」)겠다는 것이다. “80년 5월 광주에서/이리 승냥이마냥 미쳐 날뛰어/수많은 생명을 유린하는 만행”(나종입, 「동백꽃 지던 날」)에 서 “무등의 봄”(이효복, 「미얀마의 봄」)을 되찾았듯이 “미얀마의 자유는 기어코 평화의 깃발로/돌아”(함진원, 「울지말아요 미얀마」)오리라고 전망하는 것이다.
2
광주전남작가회의 소속 시인들이 동남아시아 인도차이나반도 서북부에 있는 미얀마로부터 대한민국 광주까지의 공간적 거리를 ‘이곳’으로, 1980년 5월에서부터 2021년 5월까지의 시간적 거리를 ‘지금’으로 인식하는 것은 주목된다. 광주 민중항쟁의 정신으로 아웅산수찌(Aung San Suu Kyi)를 지지하고, 먀뚜에뚜웨카인(Mye Thwe Thwe Khaing)을 추모하고, 세 손가락 시위에 동참하고, 민아웅흘라잉(Min Aung Hlaing)에게 대항하기 때문이다. 미얀마 시민들의 민주화 투쟁을 감정적으로 지지하기보다는 5․18민주화운동의 역사를 토대로 삼고 그들에게 용기를 주는 것은 물론 민주주의 가치를 함께 견지하는 것이다.
세상에! 21세기 대명천지에!
국민을 지켜야 할 군경이 총부리 거꾸로 돌려 국민을 학살하다니!
미얀마여 미얀마여 슬픈 미얀마여
‘혹여 싸우다 죽으면 제 장기를 기증합니다’
오늘은 또 누가 유서를 감추고 거리에 나서는가
동아시아 북쪽 반도 땅 광주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목청껏 부르는
그대들의 아우성을 다시 듣나니
억울한 주검과 피투성이들을 보나니
쓰러져도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분투하라 건투하라 외마디 비명을 보태나니
얼마나 끔찍한 기억이면 오금부터 저리는가
얼마나 징그러운 봄날이면 뼛속 징징 아리는가
꽃들은 일제히 떨며 움츠렸지
진압봉에 으깨어진 두개골에 선혈이 흘렀고
최루의 흐린 시야 속에서 민주를 그렸지
대검에 찔린 자유를 울며 껴안고
겁탈 구금 고문 능욕의 아수라 속에서도
참세상의 씨알들을 목숨으로 심었지
야만은 또 다른 야만을 부르고
총칼은 총칼로 반드시 망한다는 진리를 새겼지
아아, 미얀마여 양곤이여
그대들의 투쟁은 백번 정당하고 정당하여
그날의 어머니들이 일어서고 빛고을 꽃넋들도 음우하고
그날의 뜨거운 피 그날의 눈물을 보내나니
세계인의 부릅뜬 눈빛들과 천지신명이
기필코 그대들을 굽어살피실 것이다
그리하여 그대들은 마침내 이길 것이다
미얀마 만세! 아웅산 만세!
― 김희수, 「만 리 밖의 함성은 무등에 걸려」 전문
위의 작품의 화자는 “세상에! 21세기 대명천지에!/국민을 지켜야 할 군경이 총부리 거꾸로 돌려 국민을 학살하다니!”라고 놀란다. 2021년 2월 1일 아침 미얀마의 육군 장군인 민아웅흘라잉이 쿠데타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군부는 아웅산수찌 국가 고문과 윈민(Win Myint) 대통령을 가택 연금하고, 정부 내각의 요인들을 체포하였다. 그리고 1년간의 국가 비상상태를 선포하고, 국경 폐쇄 등의 조치로 권력을 장악했다.
태권도 챔피언으로 알려진 열아홉 살 치알신(Kyal Sin)을 비롯해 미얀마의 시민들은 군부의 쿠데타에 목숨을 걸고 대항했다. 2021년 3월 3일 ‘수요일의 학살’이라고 불리는 군부의 총격으로 38명 이상의 시민이 사망했는데, 치알신도 운명을 같이했다. 지난해 11월 처음 투표한 그녀는 선거 결과를 부정하고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를 용서할 수 없어 시위에 나섰다. 군부의 총격이 시작되자 현수막 뒤에 몸을 가린 채 사람들에게 총에 맞을 수 있다고 앉기를 권했을 정도로 다른 사람을 챙기다가 희생되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자신의 혈액형, 비상 연락처, 만약 총을 는다면 각막과 장기를 기증해달라는 메시지를 유서로 남겨 놓았고, “Everything will be OK(다 잘 될 거야)”라는 글귀를 새긴 윗옷을 입고 있었다.
작품의 화자는 “동아시아 북쪽 반도 땅 광주에서/임을 위한 행진곡을 목청껏 부르는/그대들의 아우성을 다시 듣”는다. “억울한 주검과 피투성이들”을 다시 본다. 그리고 “쓰러져도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분투하라 건투하라 외마디 비명을 보”탠다.
“진압봉에 으깨어진 두개골에 선혈이 흘렀고/최루의 흐린 시야 속에서” 민주주의를 지킨 역사가 1980년 광주 항쟁이다. “대검에 찔린 자유를 울며 껴안고/겁탈 구금 고문 능욕의 아수라 속에서도/참세상의 씨알들을 목숨으로 심”었고, “야만은 또 다른 야만을 부르고/총칼은 총칼로 반드시 망한다는 진리를 새”긴 것이다.
화자는 그 항쟁의 의식으로 “아아, 미얀마여 양곤이여/그대들의 투쟁은 백번 정당하고 정당하”다고 지지한다. “그날의 어머니들이 일어서고 빛고을 꽃넋들도 음우하”기에 “그날의 뜨거운 피 그날의 눈물”도 보탠다. “세계인의 부릅뜬 눈빛들과 천지신명이/기필코 그대들을 굽어살피실 것이”므로 “그대들은 마침내 이길 것”이라고, 그리하여 “미얀마 만세! 아웅산 만세!”라고 외친다.
이와 같은 화자의 항전 의식은 “미소 짓는 ‘치알신’의 티셔츠에/선홍빛 꽃물이 스며”(이미루, 「Imagine, 미얀마를 위하여」)드는 것을 추모하는 데서도, “카인…… 너는 거기 다시 살아라/봄은 설움이며 뜨거운 포옹이니/어여쁜 네가 나를 꽃 피워내는/광주가 너의 꽃 피는 5월일 테니”(조남록, 「카인의 봄―마스크/얼굴/패선」)라고 추모하는 데서도 볼 수 있다.
스무 살 여성인 먀뚜웨뚜웨카인은 2021년 2월 9일 군부에 항의하는 시위에 동참했다가 경찰이 쏜 총에 머리를 맞고 2월 19일 사망했다. 시민 항전의 첫 희생자여서 사회관계망서비스에는 “내가 카인이다” 등 그녀를 기리는 수많은 글이 게시되었다. 미얀마의 최대 도시인 양곤의 한 법원 앞에 놓인 그녀의 사진에 많은 시민이 헌화했고 추모의 글을 남겼다. 아웅산수찌 국가 고문이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깃발도 그녀의 사진 옆에 놓였다.
3.
그녀는 1989년부터 2010년까지 몇 번의 휴지기를 거쳐
15년간을 가택 연금 상태로 지내야 했습니다
그녀에게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묻지 마세요
첫째도 국민 둘째도 국민 셋째도 국민입니다
53년간 이어온 군부독재가 막을 내리는가 하는 순간
아무런 명분도 없이 다시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절대 권력은 절대 썩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미얀마에 민주주의를! 미얀마의 전생은 광주입니다
인간의 존엄과 문명을 파괴하는 야만의 군부여
시민을 살상하는 무기사용, 폭력과 탄압을 당장 멈추어라.
― 김완, 「미얀마의 봄」 부분
위의 작품의 화자가 “그녀는 1989년부터 2010년까지 몇 번의 휴지기를 거쳐/15년간을 가택 연금 상태로 지내야 했”다거나 “그녀에게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묻지 마세요/첫째도 국민 둘째도 국민 셋째도 국민”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인물은 아웅산수찌이다.
미얀마(버마)는 영국과의 전쟁에서 패해 1886년 이후 인도의 한 주(州)로 편입되었다. 영국은 미얀마의 독립을 막기 위해 다수 종족인 버마족을 견제하고 소수족을 우대하는 분리 정책을 펼쳤다. 이 시기 양곤대학에서 공부하던 미얀마의 학생들은 민족운동에 힘썼는데, 마웅아웅산(Maung Aung San)과 마웅누(Maung Nu)가 중심인물이었다. 1947년 1월 영국은 아웅산의 내각을 인정하고 미얀마의 독립을 약속했다. 그렇지만 우쏘(U Saw) 등 아웅산에 반대하는 정치 세력도 만만하지 않았다. 제헌 의회 구성을 위한 선거에서 아웅산이 압승하자 우쏘는 1947년 7월 완전무장한 저격수를 각료 회의실에 침투시켜 아웅산과 각료 전원을 살해했다. 그 후 제헌 의회 의장을 맡고 있던 우누(U Nu)가 내각의 수반이 되었다.
1948년 1월 4일 미얀마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지만 여러 정당의 난립으로 혼란스러웠다. 영국이 식민지 지배를 할 때 분할 통치의 전략으로 소수민족에게 자치권을 주기로 합의한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다. 우누 수상은 정치적 혼란을 막고 국민을 단합하기 위해 불교 정신에 바탕을 둔 사회주의 국가를 추구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1962년 3월 네윈(Ne Win)을 중심으로 한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 네윈 정부는 독재 정치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학살했고, 버마식 사회주의를 추구해 경제 상황을 악화시켰다. 네윈 정부 이후 군부의 이해관계를 강경하게 대변하는 세인르윈(Sein Lwin), 민간인 마웅마웅(Maung Maung), 붕괴한 군사정부를 구출한 소마웅(Saw Maung) 등으로 정권이 이어졌지만, 미얀마의 민주주의는 나아지지 않았다. 소마웅은 국가의 명칭을 버마사회주의연방공화국에서 미얀마연방공화국으로 바꾸기도 했다.
1990년 5월 총선에서 아웅산 장군의 딸인 아웅산수찌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이 예상외로 압승을 거두었다. 군부는 총선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아웅산수찌를 가택 연금했다. 1991년 아웅산수찌가 미얀마의 민주화에 공헌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되었으나 군부는 출국 금지했다. 이후 많은 국가와 국제 인권단체의 압력으로 1995년 7월 아웅산수찌는 가택 연금에서 해제되었지만, 반정부 운동을 이유로 2000년 또다시 연금되었다.
2010년 새롭게 제정된 헌법으로 총선이 실시되어 군부의 지원을 받은 통합단결발전당(USDP)이 승리를 거두었다. 그렇지만 국내외에서는 군부의 부정선거를 문제 삼고 재선거를 요구했다. 군부는 받아들이지 않고, 그 대신 2011년 3월 통합단결발전당에 권력을 넘겨주었다. 또한 아웅산수찌를 가택 연금에서 풀어주는 등 민주주의의 과정을 조금씩 밟아나가기 시작하였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신설하였고, 노동법을 신설하여 노동조합과 파업의 권리를 인정하였으며, 언론 검열을 완화했다. 미얀마가 민주화의 진전을 보이자 국제 관계도 달라졌고, 선거제도에도 변화가 있었다.
2015년 11월 총선에서 아웅산수찌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이 대승을 거두었다. 2016년 2월 새로운 의원들로 구성된 의회가 출범하였고, 3월 틴쪼(Htin Kyaw)가 비군부 출신으로 처음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4월에는 아웅산수찌가 특별히 신설된 ‘국가 고문’직에 취임하였다.
2020년에 치러진 총선에서 집권 여당인 민주주의민족동맹이 군부 정당인 통합단결발전당 등 야당을 물리치고 압승했다. 미얀마 국민들이 아웅 산 수 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잘 보여주는 선거였다. “네 번의 굴곡과 역동적인 투쟁은/누구를 위하는 것이라는 것을/어머니도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띳낫꼬, 「아웅 산 수 치께 마음으로 바치는 시」)라고 했듯이 아웅산수찌는 민주주의 토대를 마련한 점을 인정받은 것이다.
2020년 총선에서 군부는 전체 476석 가운데 33석이라는 초라한 결과를 얻었다. 2015년의 총선에서 패한 것보다 참담한 것이었다. 군부는 선거 결과를 수용하지 않고 새로운 선거를 요구했다. 선거위원회는 특별히 문제점이 없으므로 재선거나 재검표는 없다고 밝혔다. 2021년 2월 1일 민아웅흘라잉은 “53년간 이어온 군부독재가 막을 내리는가 하는 순간/아무런 명분도 없이 다시 쿠데타”를 일으켰다. 화자는 “인간의 존엄과 문명을 파괴하는 야만의 군부여/시민을 살상하는 무기사용, 폭력과 탄압을 당장 멈추”라고 요구하고 있다.
미얀마 총잡이 민아웅흘라잉 씨?
어쩜 하나부터 열까지
대한민국 총잡이 전두환 닮았니.
평화는 강을 건넜고 남은 건 복수다.
용서는 하되 잊지 말자는 경전을 경계하라.
뱀의 혓바닥과 사탄의 미소에 동요하지 마라.
복수만이 진정한 자유다. 평화다. 승리다. 치유다.
― 박기복, 「미얀마 총잡이 민아웅흘라잉」 부분
쿠데타를 주도한 “미얀마 총잡이 민아웅흘라잉”은 최고의 실권자가 되었다. 비상사태로 입법․사법․행정의 전권을 장악해 견제 세력이 없다. 그는 2007년 미얀마 내 무슬림 소수민족인 로힝야족 학살의 주범으로 알려져 있다. 로힝야족 마을을 초토화하고, 수천 명의 주민을 학살했으며, 74만 명 이상을 국경 밖으로 내쫓았다. “하나부터 열까지/대한민국 총잡이 전두환 닮았”다. 아웅산수찌가 군부의 로힝야족 학살을 적극적으로 막지 못한 것은 비판받아야 하지만, 반세기 넘게 미얀마를 지배해온 “민아웅흘라잉”의 군부 세력이 워낙 막강했기 때문에 한계가 있었다.
민아웅흘라잉은 군부 최고사령관을 은퇴한 뒤 대통령 자리를 꿈꾸었지만, 2020년 총선에서 군부와 연계된 통합단결발전당이 참패하자 위기감이 높아졌다. 그리하여 아웅산수찌 정부에서는 선거로 권력을 유지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그는 로힝야족 학살에 더해 미얀마의 봄을 짓밟았기에 책임을 져야 한다.
위의 작품의 화자는 “평화는 강을 건넜고 남은 건 복수다”라는 자세로 “민아웅흘라잉”에게 대항한다. “용서는 하되 잊지 말자는 경전을 경계하”고, “뱀의 혓바닥과 사탄의 미소에 동요하지” 않고, “복수만이 진정한 자유다. 평화다. 승리다. 치유다”라고 단언하는 것이다. 화자가 이와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은 1980년 5월에 일어난 신군부의 광주 만행이 “아직도 아”프기 때문이다. “송두리째 청산하지 못한 적폐의 음산한 악취를 씻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4.
오늘도 한 소녀가
군부가 쏜 실탄에 붉은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어요
미얀마에서 나의 누이가, 나의 형제가
세 손가락을 치켜들며 죽어가고 있어요
독재에 저항하고 대의를 위해 희생한다는 세 손가락으로
무자비한 총과 칼에 맞서고 있어요
군부의 총칼이 수백 수천수만의
손가락을 노릴지라도
미얀마, 민주주의의 강은 멈출 수 없어요
찢기고 부서지고 도굴되더라도
들끓는 정의의 열망을 막을 수 없어요
우리 함께 세 손가락을 치켜들어요
― 강대선, 「세 손가락을 치켜들어요」 부분
위의 작품에서 소개되는 “세 손가락” 경례는 2012년 게리 로스(Gary Ross) 감독이 만든 영화 <헝거 게임 : 판엠의 불꽃>에 등장한다. 영화의 내용은 가상의 독재 국가인 판엠의 수도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12개에 구역에서 2명씩 추첨해 최후의 승자가 남을 때까지 싸우는 것이다. 영화의 주인공 캣니스 에버딘(제니퍼 로렌스 역)은 자신의 동생이 대결자로 추첨되자 대신 출전한다. 자원자로 나선 그녀를 향해 판엠의 사람들은 사랑, 감사, 존중을 표시로 세 손가락 경례를 한다. 그 후 세 손가락 경례는 자유, 민주주의, 평등 등을 나타내는 행동으로 인식되어 미얀마, 태국 등에서 민주화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한 소녀가/군부가 쏜 실탄에 붉은 피를 흘리며 죽어가”면서 “세 손가락” 경례를 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결연한 행동이다. “독재에 저항하고 대의를 위해” 목숨을 건 투쟁인 것이다. 화자는 미얀마의 시민들이 “세 손가락으로/무자비한 총과 칼에 맞서고 있”기에 “군부의 총칼이 수백 수천 수만의/손가락을 노릴지라도/미얀마, 민주주의의 강은 멈출 수 없”다고 확신한다.
세 손가락 치켜들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요
주먹밥 김밥을 나누었던 사람들이 있었듯이
냄비를 두드리며 앞으로 나아가요
총칼이 어찌 두렵지 않겠어요
목숨이 어찌 아깝지 않겠어요
내 뒤에 올 푸르름을 위하여
총을 녹여 냄비를 만들어 주세요
군복을 벗어 풀잎으로 흔들려 주세요
떠오르는 태양은 우리 편이에요
혼자가 아니에요
오늘의 상처는 씨앗이 되어
진주가 되어 갑니다
서로 손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요
세 손가락 치켜들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요
군부의 총부리가 부끄러울 때까지
오늘의 시련이 진주가 될 때까지
― 이지담, 「진주가 되는 그 날」 전문
위의 작품의 화자는 “군부의 총부리가 부끄러울 때까지/오늘의 시련이 진주가 될 때까지” “세 손가락 치켜들고/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자고 호소한다. 총칼이 두렵고 목숨이 아깝지만 “혼자가 아니”기에 “서로 손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떠오르는 태양은 우리 편”이라는 화자의 전망은 역사성을 띤다.
“주먹밥이 눈물을 뭉친 오월의 밥이듯이 세 손가락 경례는 눈물을 연결하는 민주의 끈”(전숙, 「주먹밥이 세 손가락 경례에게」)이고, “민주주의 민주주의 데모크라시 데모크라시를 외치”(김종숙, 「민주의 나무」)는 촛불이다. 세 손가락 경례의 꽃은 “어둠도 지우고 쇳소리도 삼키며/그곳이 어디든 끝내 피”(황형철, 「세 개의 손가락」)어날 것이다. 따라서 “민주가 아이의 피를 먹고/자유가 어미의 피를 먹고/선택이 누이의 피를 먹고 자라는” “미얀마의 손가락을”(박종화, 「세 손가락 in Myanmar」) 직시하고, “엄지를 새끼손톱 등에 가만 올려 대고/팔을 쭉 뻗어/하늘 높이 올”(조성국, 「미얀마!」)리는 연대가 필요하다.
5.
숲속 나뭇가지들이 서로 부딪힌다
불꽃이 일어나면 정말 두렵습니까?
선량한 동지여! 그러나 두려워 마오
날개를 펴고 저 바람이 이끄는 대로 날아가면
우리의 목적지에 분명히 다가갈 수 있어요.
전진합시다!
두렵다고 함께 가지 못하면
당신의 생명을 잃는 것이 되오.
저기 보세요.
무성한 잎들과
시원한 계곡물이 보여요.
날개를 펴고 힘차게 날아갑시다.
승리의 깃발이 보이는 저 평화의 땅으로
우리는 모두 아름다운 공작새이므로……
―네이뚜카(Nay Thu Kha), 「투쟁」 전문
작품 화자의 항전 의식은 “선량한 동지여! 그러나 두려워 마오”라고 한 데서 보듯이 확고하고, “날개를 펴고 저 바람이 이끄는 대로 날아가면/우리의 목적지에 분명히 다가갈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리하여 “전진합시다!”라거나 “날개를 펴고 힘차게 날아갑시다”라는 외침에는 주저함이 없다.
“형제자매 동지들이여!/죽고 싶지 않으면 우리는 쇳물을 녹여야 한다/저 불의한 무리들을 처단하지 않으면/우리가 차가운 쇳조각이 되고 만다”(모쩌테이(Moe Kyaw Htay), 「혁명․1」)라는 절박함으로 “당신은 어떻게 실패한 게임을 했는지/뼈저린 심정으로 배우게 될 것”(제야만들레(Zayar Mdy), 「침몰하는 배의 선장」)이라고 민아웅흘라잉에게 맞서는 것이다.
위와 같이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가 쏜 총에 맞아 피를 흘리면서도 물러서지 않는 미얀마 시민들의 결사항전은 눈물겹다. 2021년 5월 9일 켓띠(Khet Thi) 시인이 군부에 체포된 지 하루 만에 장기가 제거된 채 가족의 품에 돌아온 충격적인 사건이 그 한 예이다. 켓띠는 “군부는 머리를 겨냥하지만 우리의 혁명은 심장에 깃든다는 걸 알지 못한다” 등으로 시를 쓰며 군부에 저항해왔다.
2021년 2월 22일 오후 2시에 모인 “2222항쟁”도 미얀마 시민들의 민주화 열망을 여실히 보여준다. 네윈의 독재정권에 대항해 1988년 8월 8일에 일어난 ‘8888항쟁’을 거울로 삼은 시위로 미얀마의 민주화 투쟁이 역사적으로 계승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미얀마의 민주화 투쟁에서 여성들의 활약 또한 눈길을 끈다. 여성들이 빨랫줄에 미얀마의 전통 치마인 타메인(Htamain)을 걸고 대항하는 것이 그 한 모습이다. 미얀마에서는 줄에 걸린 타메인 아래를 지나가면 행운이나 권력이 잃는다는 미신이 지배해 군경이 마을에 진입할 때 그 앞에서 주저하게 된다. 그 사이 시위대가 피하는 것이다.
미얀마의 시민들에게 가하는 군부의 학살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자 반 군부 진영의 임시정부인 국민통합정부(NUG)는 시민방어군을 창설했다. 그렇지만 “버마 사람들은 필요할 때만 소수민족을 찾는다. 1948년 독립 때도, 1988년 민주항쟁 때도, 2015년 총선 때도 늘 그랬다. 지고 나면 그뿐이었다. 아웅산수찌도 민아웅흘라잉도 우리한테는 다 버마 사람일 뿐이다.”라는 한 소수민족 사령관의 말은 시민방어군의 결성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려준다. 소수민족의 문제가 매우 복잡해 통합을 이루기가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미얀마 시민들의 민주화 투쟁에는 전 세계인들의 동참이 필요하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미얀마 사태를 여러 차례 논의하고 있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로 한계를 보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국제 사회가 미얀마 사태에 대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광주전남작가회 소속 시인들이 미얀마의 시민들과 연대하는 시작품을 발표한 것은 의의가 크다. 2021년 3월 5일 한국작가회의 국제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김수영연구회, 민족문학연구회, 버마를사랑하는작가들의모임, 버마민족민주동맹-협력위원회(한국), 사회대개혁지식네트워크, 신동엽학회, 재한 미얀마 외대(양곤, 만달레이) 한국어과 학생연합회, 창작21작가회, Myanmar Youth Organization in Korea, SARAM Working Group for Myanma 등과 함께 미얀마 쿠데타 군부의 학살을 멈추고, 아웅산쑤찌 등 정부 지도자와 구속자를 석방하고, 2020년 11월 총선 결과를 인정하고 민간정부로 정권을 이양할 것 등을 요구한 성명서를 발표하고 후원금을 마련해 전달한 것도 주목된다. 5월 29일 경기민예총 문학위원회에서도 미얀마의 민주화를 응원하는 시 낭독회를 마련한다. 미얀마의 쿠데타 군부가 자국의 국민을 학살하는 상황을 1980년 5월 신군부가 광주 시민을 학살한 상황으로 인식하고 맞서는 것이다. 결국 광주전남작가회의 소속 시인들을 비롯해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려는 사람들은 “먼 남쪽나라 Myanmar에서 날아온/죽은 제비들을 광주 ‘망월동묘지’에/묻어주”(김준태, 「미얀마에서 제비가 날아온다!」)는 연대로 5․18민주화운동을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맹문재
시론 및 비평집으로 『한국 민중시 문학사』 『패스카드 시대의 휴머니즘 시』 『지식인 시의 대상애』 『현대시의 성숙과 지향』 『시학의 변주』 『만인보의 시학』 『여성시의 대문자』『여성성의 시론』 『시와 정치』 등이 있다. 현재 안양대 국문과 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