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산서원 ( 雲山書院 )
운산서원은 태백산맥의 끝자락인 경북 영덕군 병곡면 원황리(黃竹里)의 뒷산
등운산(騰雲山: 칠보산) 동남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본래 이 터는 집승정(集勝亭)이란 정자가 있었던 곳으로서
퇴계 이황의 문하생인 성헌 백현룡선생이 1567년 건립한 정자이다.
장수강도지소(藏修講道之所)인데 동문인 아계 이산해( 鵝溪 李山海 )가
평해로 귀양와서 이 정자에 올라보고 주변의 경치에 탄복하여
퇴계선생의 집승정 차운시귀인 람수고정천승명( 攬秀高亭擅勝名)에서
람자를 취하여 현판의 이름을 람승정(攬勝亭)이라 고치고 죽근(竹根)을 뽑아
개서하여 상판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 현재의 서원 강당현판 )
이후 순조말엽인 1804년(순조12년)에 대산 이상정의 문인이자 영해부사였던
갈천 김희주( 葛川 金熙周)가 자신의 녹봉을 내어 중건하였고 그 후
정재 유치명의 고제인 구계 백조운선생이 선조 담암 백문보선생과
성헌 백현룡선생을 배향하고자 지방 유림에 통문, 영남유림의 논의주창으로
운산서원을 건립하였는데 당시 규모는 신위 위패를 모신 경덕묘 3칸,
묘우문 3칸, 서원강당 8칸, 유생의 거처인 동재와 서재였던 직방재 3칸,
박약재 3칸, 서원문루 6칸, 서적과 판각을 보관한 장경각은 2칸, 객손의
행랑채는 주사와 함께 12칸으로 모두 40칸의 규모로 지어졌다.
이러한 서원의 규모를 고루 갖춘 서원은 중부동해안 유교문화권에서는
유일하며 약 57년간 봉향하다가 서기1868년 전국서원 철폐령에 의하여
훼철되었고 1900년 서원유지에 다시 운산서당을 건립하여 1950년대까지
사설교육기관의 명맥을 유지하여 오다가 6.25동란으로 폐하였다.
봉안문과 상향축문은 구와 김굉( 龜窩 金 土宏 )이 찬술하였고 묘우인 경덕사의
현판은 하계 이가순( 霞溪 李家淳)이 썼으며 서원의 편액은 산목재 김희순
(山木齋 金羲淳)이 퇴계선생의 필적을 모방하여 썼다고 하는데
경덕사 편액은 소실되었고 운산서원의 편액만이 현존하고 있다.
근래 서원의 강당이 경상북도 문화재로 지정되어 복원작업을 계획하고 있다.
출전및 참고문헌: 예주지사. 영영승람. 영덕군지. 담암일집. 성헌일집. 도산급문록
대흥백씨숭정정축구보. 대산선생문집. 정재집. 구계집. 모산집.
퇴계선생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