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람
실로암시각장애인야구단 김주성·이경석 씨
- “야구로 일상의 활력과 성취감 얻어요”
야구는 시각장애인들의 최애 스포츠 중 하나이다. 순식간에 공수가 전환되는 축구나 농구 등에 비해 야구는 여백이 있고 상세한 기록 분석이 가능해 눈이 아닌 귀로도 어느 정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는 야구의 ‘보는 재미’와 ‘하는 재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지난 2011년 Beep Ball(시각장애인 야구의 공인구)과 장비를 도입, 시각장애인 야구 교실을 꾸준히 실시해 온 것. 실로암시각장애인야구단에서 활동 중인 김주성, 이경석 씨를 만나보았다.
Q. 안녕하세요?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김주성) 안녕하세요? 저는 웹사이트의 장애인 접근성을 개선·평가하는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에서 웹 환경의 적합 여부를 판단하는 일을 합니다. 수비를 좋아하지만 타격할 때의 성취감에 점점 빠져들고 있어요. 시각장애인 야구 또한 타자가 공을 쳐야 득점이 되거든요. 투수가 소리 나는 공을 던지는데, 짧은 순간 소리를 내며 날아올 때 그리고 배트로 공을 타격했을 때의 촉감은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짜릿합니다. 저는 후천적 시각장애인으로 중증 시각장애인입니다.
A. (이경석) 반갑습니다. 저 또한 수비에 매료되고 있어요. 타자보다 빨리 움직이는 데서 오는 박진감이 대단하거든요. 물론 타자로서 공을 타격했을 때의 손맛도 좋아합니다. 저는 시각장애 1급으로, 평소 국립장애인도서관 대체자료 공유 시스템 애플리케이션 드림의 접근성 매니저로 일합니다.
Q. 야구에 매료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A. (김주성) 1964년 미국에서 고안된 시각장애인 야구는 일반 야구와 다른 점이 있어요. 우선 소리 나는 공과 베이스 기둥을 활용합니다. 공에 심이 박혀 있는데, 그걸 뽑는 순간 삑삑 소리가 납니다. 그때부터 경기가 시작되지요. 시각장애인 야구는 일반 야구보다 규칙이 간단합니다. 타자가 삑 소리가 나는 베이스 기둥에 도착하기 전에 수비가 먼저 공을 잡아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면 아웃이에요. 수비가 공을 잡기 전 타자의 손이나 발, 몸 등 신체가 먼저 베이스 기둥에 닿으면 득점이 인정돼요. 타자는 공의 움직임과 타이밍을 탐색하기 위해 첫 번째 투구를 거를 수 있어요. 시각장애인 야구는 소리가 중요해요. 그러므로 경기 시 관중들은 환호와 응원을 자제해야 합니다.
A. (이경석) 시각장애인 야구와 일반 야구의 가장 큰 차이는 투수와 포수에 있어요. 일반 야구에서 투수와 포수는 상대 팀 타자를 견제하잖아요? 그런데 시각장애인 야구에서 투수는 시각장애인 타자가 공을 잘 칠 수 있게 투구해요. 포수는 시각장애인 타자가 타석 위치를 잘 잡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요. 투수와 포수는 안대를 착용하지 않은 비시각장애인이 맡습니다. 나머지 선수들은 공정한 경기를 위해 안대를 착용합니다.
Q. 어떻게 야구를 처음 시작하게 되었나요?
A. (이경석) 맹학교 재학 시절 친구의 권유로 야구를 접했어요. 도저히 이길 수 없을 만큼 열세에 놓인 팀이 어느 순간 홈런을 치고 승기를 잡더니 역전까지 했어요. 시각장애로 인해 “어렵다”, “안 된다” 등의 말을 듣곤 했는데, 9회 말 2아웃 같은 상황에서도 역전이 가능하다는 점에 끌렸어요. TV로 프로야구를 시청할 뿐 아니라 종종 야구장을 방문할 정도로 야구를 즐겼어요. 야구를 직접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배울 곳이 마땅치 않았는데, 올해 초 실로암시각장애인야구단 모집 공고를 보게 됐어요. 나이 제한이 있을까 걱정했는데, 만 60세 이하의 성인 시각장애인이 대상이라 바로 신청했죠. 야구단 멤버를 상시 모집하고 있어요.
A. (김주성) 저 역시 시각장애인 야구단 모집 공고를 보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요. 학창 시절 테니스 체육 특기생으로 활동할 만큼 운동을 좋아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망막색소변성증 진단을 받아 어쩔 수 없이 스포츠 선수의 꿈을 접었지요. 시각장애인 야구가 다소 생소했지만 직접 공을 던지고 배트로 타격할 수 있다는 데서 오는 기대가 매우 컸어요. 도전하길 참 잘했어요. 훈련하는 날을 기다리며 일하다 보니 일하는 것도 즐겁습니다.
Q. 시각장애인 야구단 활동이 궁금해요.
A. (이경석) 현재 실로암시각장애인야구단 멤버는 총 8명입니다. 2주에 한 번씩 일반 야구장을 대관해 단체로 훈련하는데, 타격과 주루, 수비 방법 익히기 위주로 훈련이 진행돼요. 팀을 나눠 경기하면서 실전 감각도 키우는 중입니다. 야구는 도전의 연속이자 포기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시간입니다. 청각에 의지해 날아오는 공을 배트로 타격하거나, 바닥을 훑으며 공을 찾는 것, 경기장 구조를 머리에 그리며 혼자 베이스 기둥으로 달려가기 위한 걸음을 떼는 게 수월한 일은 아니거든요. 처음에는 번번이 수비에 실패하고 엉뚱한 곳에 배트를 휘두르곤 했어요. 인내를 가지고 노력한 끝에 지금은 배트로 공을 치고 베이스 기둥을 향해 주저 없이 달립니다. 바닥에서 공을 찾아 높이 들어 올려 수비도 하고요. 인내하고 노력한 만큼 큰 성취감이 있어요. 건강 유지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Q. 아쉽거나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요.
A. (김주성) 국내 유일의 시각장애인 야구단으로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운영하고 서울특별시장애인체육회와 관악구장애인체육회 등에서 지원을 받고 있어요. 야구를 경험하고 즐길 수 있는 동호회 활동이 매우 중요한데, 기량을 겨루며 성장할 수 있는 다른 야구단이 없다는 점, 국내 대회나 행사가 부재하다는 게 아쉬워요. 한편으로는 우리가 유의미한 성과를 낸다면 제2의 시각장애인 야구단이 생길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습니다. 향후 훈련 횟수가 늘어나고 경기 또한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경기장 이동 등 매번 야구단을 지원해 주시는 자원봉사자분들과 야구단 운영을 위해 늘 애써주시는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스포츠여가지원팀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Q.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A. (이경석) 미국 NBBA(National Beep Baseball Association) 산하 26개 팀이 있고, 1976년부터 매년 미국 도시를 돌면서 시각장애인 야구 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시각장애인 야구의 대중화가 차츰 이루어지고 있구나 싶어 설레는 한편, 외국의 시각장애인 야구단과 교류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실로암시각장애인야구단 목표는 그 대회에 출전하는 겁니다. 분발하다 보면 언젠가 그 기회가 올 거라고 믿어요.
A. (김주성) 시각장애인이 야구를 한다고 하면 고개를 갸웃하는 분들이 많아요. 시력의 부재로 훈련이나 경기가 불가능하지 않을까 염려하기도 하죠. 건강과 자기만족을 위해 야구를 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시각장애인의 잠재력을 더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해소되고 인식이 변화하길 바랍니다.
<박스>
실로암시각장애인야구단은 2011년 시각장애인 야구 교실을 개설하고 이듬해 정식 멤버를 모으면서 창설됐다. 훈련 및 경기 참여에 따른 별도의 회비는 없으며, 60세 이하 서울에 거주하는 시각장애인으로 꾸준히 동호회 활동이 가능하다면 언제나 참여가 가능하다.
문의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스포츠여가지원팀(02-880-0830)
김수정·신혜령 기자
* <손끝으로 읽는 국정> 7월 201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