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 청지기(4)
창 1;28
하나님은 우리를 놀이터로 보내지 않고 일터로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 밖에서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으로 이끌어 오셨습니다(창 2;15)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8)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쉬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즐기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일하라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아담을 에덴 놀이터로 보내신 것이 아니라 일터로 보내셨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교회를 많이 세운 교회가 있습니다. 로스엔젤레스에 있는 은혜한인 교회입니다. 김 광신목사님이 이름대로 미친 듯이 세웠습니다. 그 교회 집회를 마쳤습니다. 우리 부부와 김 목사님 부부가 같이 식사를 하는 데 그 사모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여보! 집회를 마쳤어요. 당신과 강 목사님은 빅 베어 산에 올라가서 3박 4일 집회를 하고 오실 것이지요. 우리는 팜스프링 온천에 가서 2박 3일 쉬고 오고 싶어요. 휴가 주세요.>
이 말을 듣고 나는 빨리 동의하였습니다.
<사모님! 좋은 생각이십니다. 우리 둘이 4일 다녀오는 동안에 3일만 온천에 다녀 오십시요.>
그 때 김 목사님이 손가락을 위로 가르치면서 말했습니다.
<여보! 저 하늘나라에 가면 영원한 휴가가 있을 텐데 뭘 이 땅에서 놀라고 그래요? 일해요>
나는 참 민망하였었습니다. 이런 정신으로 일하니까 온 세계에 교회를 6,300개나 개척하였습니다. 대단한 목사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놀이터로 보내지 않고 일터로 보내셨습니다. 우리는 일하다가 하나님 앞에 가야 합니다.
그런데 누구에게나 사명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 버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물건은 꼭 한 군데라도 쓸 만한 곳이 있습니다. 일본 호텔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한 아내와 남편의 이야기입니다.
<여보! 이번 겨울에는 코트 한 벌 사주세요.>
<지금 입고 있는 코트는 어떻게 하고?>
<그 코트는 잘 다듬어서 커텐으로 사용하겠어요.>
<그럼 지금 있는 커텐은?>
<베개를 덮겠어요.>
<지금 베개를 덮고 있는 것은?>
<걸레를 만들겠어요.>
<지금 걸레는?>
<봄까지 잘 두었다가 시멘트와 버무려서 쥐구멍을 막겠어요.>
남편이 중얼 거렸습니다.
<쓰레기통이 필요없군!>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버릴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버릴 사람이 없습니다.
다 하나님께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도 다 필요하여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뮤레투스(Muretus)는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가 그 사람을 위하여 죽은 한 어떤 사람도 무가치하다고 부를 수 없다.> 말틴 루터는 말했습니다.
<내가 얼마나 값진 존재인가를 알려면 십자가를 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내 대신 죽은 값진 존재다.>
솔로몬은 이런 의미심장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잠 16;4)
첫 이야기
한 가족이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운전 중이었고 어머니가 옆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아들이 뒤에 앉아 있었습니다. 어린 아들이었습니다. 갑자기 모기가 나타나더니 아들을 물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아빠! 하나님이 모기는 왜 만들었을 가? 이런 모기는 이 세상에 없어도 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질문을 받은 아버지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글쎄...아빠도 하나님이 왜 모기를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모기는 없어도 될 것 같은데 말야....나중에 아빠가 깨닫게 되면 가르쳐 줄게...>
그리고 계속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 고속도로 옆에 모기약 공장이 있었습니다. 마침 퇴근시간이었습니다. 수천 명 직원들이 퇴근하러 몰려나오고 있었습니다. 그 런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아들아! 하나님이 왜 모기를 만들어 놓으셨는지 알겠다. 만일 하나님이 모기를 만들지 않으셨으면 저 사람들이 굶어 죽는다.>
하나님은 모기도 필요하셔서 만드셨습니다. 모든 것에는 쓸 데가 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
양들이 풀을 뜯고 있는 초원을 둘러싸고 있는 울타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울타리 한 쪽에 가시나무가 있었습니다. 한번은 어린 양이 지나가다가 가시나무에 걸려 털이 엉켜 빠져 나오지 못 하고 있었습니다. 목동은 어린양을 잘 꺼냈습니다. 그러나 가시나무에 털들이 많이 걸려 뜯겨져 있었습니다. 목동은 <내일 해가 뜨면 아침에 이 가시나무를 베어 버리리라>고 중얼거렸습니다.
아침이 되었습니다. 목동은 낫을 가지고 가시나무로 갔습니다. 새들이 수없이 날아와 가시나무에 걸린 양털을 뜯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보금자리에 깔고 있었습니다. 새 새끼들을 포근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본 목동은 중얼거렸습니다.
<가시나무도 필요하구나.>
그리고 베려다가 다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가시나무에도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가시나무도 필요하여 만드셨습니다.
세 번째 이야기
회교 창설자 모하멧이 환상을 보았습니다. 큰 천사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머리가 1000개이고, 혀도 1000개였습니다. 혀는 1000가지 말을 하였고 머리는 1000개를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혀가 무슨 말을 하든지, 머리가 무슨 생각을 하든지 오직 하나님 찬양이었습니다.
이것이 받은 은사대로 자기 사명을 청지기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말하고 있습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 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
목공은 교회 건물 수리를 맡으면 됩니다.
난방공은 난방 고장 나면 수리하면 됩니다.
꽃꽂이 하는 분은 그렇게 하면 됩니다.
노래 잘 하는 이는 예배시간에 하나님께 노래로 영광을 돌리면 됩니다.
노래할 재주가 없는 이는 교회 앞에서 예배드리러 오는 교인들에게 100만 불짜리 웃음으로 환한 기분을 선물하면 됩니다.
바울은 <지체 신학>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몸은 한 지체뿐 아니요 여럿이니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뇨.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뇨.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고전 12;13-21)
만일 집을 지을 때 기둥만 있으면 어떻게 집이 되겠습니까? 기와만 있는 집을 우리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유리만 있으면 집이 이루어 질 수가 없습니다. 집을 지으려면 모든 재료가 다 필요하듯이 교회 안에는 모든 사람들이 다 필요합니다.
<너는 내게 필요하고 나는 네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미국에 가서 보면 얼굴색들이 다 다릅니다. 차가 다 다릅니다. 머리 모양이 다 다릅니다. 한 명 한 명이 모두 귀한 존재들입니다.
일본에 자동차 회사 중에 니폰과 도요따 두 회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니폰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도요따는 지금 세계 굴지의 회사가 되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니폰은 80%가 동경대를 졸업한 이들로 동질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생각이 같았고 주장이 같았습니다.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도요따는 반대였습니다. 잡탕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주장이 다르고 의견이 달랐습니다. 격렬한 토론으로 언제나 좋은 것을 찾아 나갔습니다. 다르다는 것은 귀하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에서 야당도 귀한 것입니다. 공산주의에는 야당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망하고 말았습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 역할과 어머니 역할이 달라야 합니다. 둘 다 직장인이 되어 돈만 벌면 문제가 생깁니다.
교회에서도 서로 모든 사람이 다른 일들을 하여야 합니다. 같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지체신학을 말했습니다.
그런데 사명에는 다음과 같은 사명이 있습니다.
1. 하나님이 직접 주신 사명
하나님이 직접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를 통하지 않고 직접 사명을 주시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소위 지원병이 아니라 차출병입니다.
모세
모세가 그렇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급에서 가나안으로 인도할 마음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양을 치는 데 하나님이 갑자가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모세는 못 한다고 4번이나 거절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절하는 모세를 거절하셨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배성들을 인도하는 사명은 모세 마음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어떤 사람이아이디어를 준 것도 아니고 전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것이었습니다.
바울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은 한 번도 예수님을 전하는 선교사가 되겠다고 기도한 적이 없었습니다. 꿈에도 그런 생각을 하여 본 적이 없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을 보면 이를 갈며 죽이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날도 예수님을 믿다가 핍박을 받고 도망간 이들을 다메섹까지 따라가서 죽이려고 가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바울은 그 이야기를 늘 하고 다녔습니다. 바울이 다메섹 근처까지 갔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비추었습니다. 바울은 땅에 엎어졌습니다. 그 때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행 9;4)
<주여 뉘시오니이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었습니다.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섰습니다. 바울도 일어나서 보니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더듬더듬 사람들 손에 이끌려서 다메섹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3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바울을 부르셔서 이방인의 사도 사명을 주셨습니다.
100%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베드로
베드로도 그렇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였습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아 생계를 근근히 이어가던 어부였습니다. 단 한 번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고기 한 마리 잡지 못 하던 날 새벽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오셨습니다. 그리고 깊은 곳에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게 하셨습니다. 기적으로 두 배 가득 잡았습니다. 놀란 베드로는 예수님이 무서워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뜻밖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나를 따르라>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수제자가 되었습니다.
모세나 바울이나 베드로는 모두 하나님 100, 자기 뜻 0 의 사명자였습니다. 이같이 하나님이 직접 사명을 주시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2. 하나님이 사람을 통하여 주신 사명
하나님이 사람을 통하여 사명을 주시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통하여 사명을 받았습니다.
엘리사가 선지자로 부름 받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엘리야가 길을 가고 있는 데 엘리사가 소 24마리로 밭을 갈고 있었습니다(왕상 19;19) 엘리야가 엘리사를 불렀습니다. 엘리사는 소를 버렸습니다. 그리고 엘리야에게 말했습니다.
<청컨대 나로 내 부모와 입 맞추게 하소서. 그 후에 내가 당신을 따르리이다.>(왕상 19;20)
엘리야가 허락하였습니다. 엘리사는 집으로 돌아가서 소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이웃과 석별의 정을 나누는 잔치를 하고 엘리야를 따라가서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사람을 따라가서 사명을 받았습니다.
엘리사 이야기입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무엘이 기름을 부어서 왕으로 삼았습니다. 사람을 통하여 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3. 부모가 준 사명
부모가 사명을 주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사무엘입니다. 한나가 오랫동안 아이를 낳지 못 할 때 하나님께 서원기도를 하였습니다.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께 일군을 바치겠다는 서원이었습니다. 이런 서원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한나의 태를 열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한나는 사무엘이 젖이 떨어지자 말자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가 되었습니다.
첫 왕 사울을 기름붓는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삼손도 그랬습니다. 삼손이 태어나자 말자 부모는 나실인으로 길렀습니다. 머리를 깍지 않았습니다. 독주를 마시지 못 하게 하였습니다. 엄격하게 길러서 사사로 내보냈습니다. 부모가 사명을 주었습니다.
우리 교회에 토요일마다 와서 기도하는 김 한식 목사님은 목사로서 대통령의 꿈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자기를 기르면서 늘 말했습니다.
<너는 대통령이 되거라>
그래서 어머니 음성을 잊지 못 하고 있습니다.
부모가 준 사명입니다.
4. 내가 자원한 사명
하나님이 사명을 주신 것도 아니고, 사람을 통하여 받은 사명도 아니고, 부모가 준 사명도 아니라 스스로 하나님 앞에 사명자로 나설 때가 있습니다. 이를 지원병 사명자라고 이름을 붙여도 좋을 것입니다.
루디아입니다.
바울이 빌립보로 전도하러 갔을 때 루디아라는 여자를 만났습니다. 그 곳에서 자주 장사를 하는 여자였습니다. 바울을 만나 설교를 들었습니다. 루디아는 바울을 돕기로 마음에 작정하였습니다. 그리고 바울을 맞아 드렸습니다. 그리고 자기 집에서 바울과 함께 빌립보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이같이 스스로 하나님의 일을 하기로 작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스스로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감동을 받는 경우입니다. 물론 배후에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성막을 지을 때도 그랬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부른 일군입니다. 그리고 브살렐도 하나님이 지명하여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오홀리압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성막을 짓는 데 공헌한 사명자입니다.
한국 인물연구회가 있습니다.
2006년도 인물을 이동묵 목사님으로 뽑았습니다. 그는 화성군 백미리 감리교회 장로였습니다. 어느 날 고명균 목사님이 오셔서 부흥회를 하는 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외로운 섬 형도에 교회가 있는 데 갈 사람이 없어서 문을 오랫동안 닫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장로님이 내가 가서 교회를 지키고 싶어 자원하였습니다. 그 교회로 들어가자니까 아내와 5 자녀가 반대하였습니다. 그러나 혼자 들어갔습니다. 형도에 가보니 5년 동안 목회자가 없어 교회는 폐허가 되어 있었습니다. 섬 전체 인구는 30 가구 100여명이었습니다. 교인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6개월 동안 혼자 전도하며 살았습니다. 한 명도 예수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6개월 만에 교인이 6명이 왔습니다. 바로 자기 식구들입니다. 가족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계속 전도하였습니다. 너무 고생을 하다가 아내는 반신불수가 되었습니다. 딸 하나가 파도에 휩쓸려 죽었습니다.
이제는 그 마을 거의 전체가 예수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같이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자원한 사명자가 있습니다.
5. 마귀가 준 사명
이같이 다양한 사명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사명자가 있습니다. 마귀가 준 사명을 따르는 경계하여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마귀가 사명을 준 것을 목숨을 걸고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가룟 유다입니다.
가룟 유다는 마귀의 종이 되어 마귀가 준 사명을 행한 사람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요 13;2)
사실은 예수님을 가룟 유다가 판 것이 아닙니다. 마귀가 팔았습니다. 유다는 마귀의 종노릇만 하였습니다.
마귀가 사명을 주었습니다. 유다는 목숨 걸고 그렇게 하였습니다. 나중에 비극적인 종말을 가지고 오게 되었습니다.
자살하였습니다.
마귀 노릇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도 모릅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사명자가 되었든지 가져야 할 자세가 있습니다.
1. 충성하여야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 4;1-2)
사람이 준 사명도 충성하여야 하는 데 하물며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게을리 하면 안 됩니다. 충성하여야 합니다.
요한은 말했습니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
2.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계속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사용하지 않으면 죄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두 눈을 같이 사용하다가는 두 눈이 다 나빠질 것 같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한 눈만 사용하다가 사용한 눈이 나빠지면 다른 눈을 사용하자.>
그래서 한 눈을 아끼느라고 가리고 살았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사용하던 눈이 나빠졌습니다. 그래서 때가 왔다고 생각하고 아끼며 사용하지 않던 눈을 감았던 붕대를 풀렀습니다. 그는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 눈을 사용하지 않았더니 못 쓰게 되고 말았습니다.
사용하지 않으면 버리게 됩니다.
우리 수양관 옆에 사용하지 않는 집이 있습니다. 문짝은 떨어지고, 기둥은 썩고, 마당은 그야 말로 쑥밭이 되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용하지 않으면 버리게 됩니다.
마태복음 25장은 유명한 비유입니다.
한 주인이 떠나면서 타국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세 종을 불러 한 종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한 종에게는 두 달란트를, 그리고 다른 종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습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과 두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이 떠나지 말자 나가서 장사를 하여 두 배를 남겼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습니다.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하였습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았던 종들은 주신 것을 가지고 두 배로 남겼다고 말했습니다.
그 주인이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라고 칭찬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이 와서 말했습니다.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였습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 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파묻어 두면 악한 사람입니다. 사용하지 않으면 악하고 게으른 종입니다.
성경에 유명한 사사인 삼손이 나옵니다. 그에게는 태어 날 때부터 하나님께서 탁월한 재능,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얼마나 힘이 센 지 숲속의 왕자 사자를 맨 손을 찢어 죽일 정도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상상도 못 할 힘센 재능이었습니다.
<삼손이 그 부모와 함께 딤나에 내려가서 딤나의 포도원에 이른즉 어린 사자가 그를 맞아 소리 지르는지라. 삼손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어 손에 아무것도 없어도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음 같이 찢었으나 그는 그 행한 일을 부모에게도 고하지 아니하였고 그가 내려가서 그 여자와 말하며 그를 기뻐하였더라>(삿 14;5-7)
사자를 찢어 죽였다는 것이 대단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태연하게 말도 안 하고 지나갈 정도로 힘이 센 장수였습니다. 그리고 또 한 번은 나귀 턱뼈 하나로 블레셋 적군을 1,000명이나 죽인 적이 있습니다. 총으로 혼자 1,000명을 죽였다고 하여도 대단한 것입니다. 그런데 뼈 조각 하나로 그렇게 하였다는 것은 대단한 재능이었습니다.
<삼손이 나귀의 새 턱뼈를 보고 손을 내밀어 취하고 그것으로 일천 명을 죽이고 가로되 나귀의 턱뼈로 한 더미 두 더미를 쌓았음이여 나귀의 턱뼈로 내가 일천 명을 죽였도다. 말을 마치고 턱뼈를 그 손에서 내어던지고 그곳을 라맛 레히라 이름하였더라>(삿15;15-17)
그런데 삼손은 기생 드릴라에 빠져서 이 재능을 파묻어 두고 살았습니다. 결국은 두 눈이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연자맷돌이나 돌리다가 비참한 인생의 최후를 맞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비유를 통하여 달란트 재능을 파묻어 두고 살아가는 사람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두운 곳에 가서 이를 갈며 슬피 울 수밖에 없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삼손을 두고 하신 말씀같이 일치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충성하는 자에게 면류관으로 축복합니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