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리더십] [13]
武를 추구하되 文을 겸비하다
넉넉한 가정에서 자라 부잣집 외동딸과 결혼
무과 시험 응시할 땐 인문학 지식도 활용해
종 9품으로 시작한 관직 4년 만에 종4품까지 올라
이순신에게 전라좌수사 임명은 생애 가장 큰 전기였다.
흡사 물이 부족한 좁고 얕은 구렁에서 헐떡이던 큰 물고기가
돌연 너르고 깊은 강 큰물 속으로 들어간 듯했다.
그는 자신이 가진 능력과 힘과 열정과 소망을 모두 동원해
전라좌수사 직책 수행에 뛰어들었고, 결국 나라를 구한 역사적 대인물이 되었다.
전라좌수사가 되기까지 그는 어떤 삶을 살아서 거기 도달했던 것인가?
여기서 그가 살았던 그때까지의 인생 역정을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그는 인종 원년(1545년) 3월 8일(양력 4월 28일) 서울 건천동에서 출생했다.
'행록'에는 그가 태어났을 때 어머니의 꿈에 돌아가신 참판공(그의 조부)이 나타나
"이 아이가 반드시 귀하게 될 것이니 이름을
'순신(舜臣)'이라 하라"고 지시했다고 기록돼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순신이 청청하게 빛나는 국민 영웅이 된 후세에
소급해서 만들어진 이야기로 보인다.
그의 형들과 동생 이름까지 모두 중국 전설상 뛰어난 통치자였던
삼황오제(三皇五帝)의 이름과 직결되어 있다.
자식을 두고 가진 꿈의 크기로 말하자면 이순신의 아버지 이정을 덮을 자가 별로 없다.
아들 넷을 둔 그는 장남은 삼황 중 첫째인 복희씨(伏羲氏)의 이름을 따서 희신(羲臣),
차남은 오제 중 한 사람인 요(堯) 임금에서 따서 요신(堯臣),
삼남도 오제 중 한 사람인 순(舜) 임금에서 따서 순신(舜臣),
사남은 순 임금의 뒤를 이은 통치자 우(禹) 임금에서 따서 '우신(禹臣)'이라 지었다.
그러나 이순신의 형들은 일찍 죽고 동생은 출세하지 못했다.
네 형제 중 오직 이순신만 이름에 걸맞은 위대한 영웅이 됐다.
이순신에 관해 잘못 알려진 것 중 하나가 그의 집안이 가난했다는 것이다.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현재 남아 있는 이순신의 모친 초계 변씨가 작성한
별급문기(재산을 증여할 때 쓰는 문서)를 보면 재산이 상당했음이 확인된다.
게다가 처가도 매우 부유했다.
장인인 전 보성군수 방진은 무술이 뛰어난 사람인데 재산도 많았다.
그래서 재산을 강탈하려는 떼강도가 사전에 모의하고 그의 집에 침입했다가
방진이 쏘는 화살을 맞고 도망갔을 정도였다.
방진은 슬하에 딸 하나만 두었는데 그 외동딸이 이순신과 결혼했다.
그래서 처가의 많은 재산도 이순신 가정에 상속됐다.
이순신은 처음에는 문과 공부를 했으나 만 21세 때 무과로 바꾸었고,
만 31세이던 선조 9년(1576년) 병자년 식년 무과 과거에 급제했다.
그런데 과거시험 과정에 특기할 일이 있었다.
시험 과목의 하나인 무경(武經) 강독에서 '황석공' 대목을 강(講)하게 되었는데,
시험관이 "장량(張良·한 고조의 천하 평정을 도운 책사)이;
적송자를 따라가 놀았다고 하니 장량이 과연 죽지 않았을까요?" 하고 물으니,
이순신은 "나면 반드시 죽는 것이 정한 이치요.
또 강목에 임자년에 유후 장량이 죽었다고 쓰여 있으니
어찌 신선을 따라가 죽지 않을 리가 있으리오!"라고 대답했다.
그 말에 시험관들이 놀라서 서로 돌아보며
"이것은 보통 무사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고 크게 탄복했다('행록').
이 일화는 이순신이 강목(綱目·사마광이 쓴 '자치통감'을
주자가 공자의 '춘추' 식으로 다시 정리한 역사서)을
명확하게 외우고 있을 정도로 인문학적 소양이
대단했고 기억력이 뛰어났음을 보여준다.
당대의 사회 풍속으로 그처럼 대견한 일화는
사대부 사회에 빠르게 전파됐으니, 이 일 역시 그러했을 것이다.
이때의 이순신 모습은 아주 화려하다.
무과에 급제할 정도로 무술 훈련이 잘돼 있고,
'장량에 관한 문답 일화'가 증명하듯 문과적 소양도 뛰어났다.
게다가 용모 반듯하고 재산까지 있는 무장이었다.
과거에 급제한 해에 함경도 동구비보 권관(종9품)으로 발령받은 그는
임기 2년을 마친 뒤에 서울의 훈련원 봉사(종8품)로 영전했다.
극지인 북쪽 변경에서 복무한 뒤 서울의 훈련원으로 영전한 것을 보면
그가 함경도 근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음을 알 수 있다.
훈련원 소속 무관으로 복무하던 시기에 '모두 갖춘 무관 이순신'의
평판과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알려주는 일화가 있다.
당시 훈련원 상급기관인 병조의 수장인 병조판서 김귀영이 자신의 서녀(庶女)를
이순신에게 첩으로 주려고 매파를 보냈는데 이순신은 즉각 거절했다.
이유는 "벼슬길에 갓 나온 내가 어찌 권세 있는 집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을까 보냐!"라는 것이었다.
당시 그가 하늘을 찌를 듯한 자긍심까지 갖추었음을 알 수 있다.
병조판서의 심기를 거슬리고도 그의 출세는 빨랐다.
동구비보 권관에 처음 임명되고 3년 뒤 훈련원 봉사(종8품)가 됐고,
같은 해 겨울 충청 병사의 군관(6품 내지 7품 직)으로 승진했다.
이듬해 가을에는 전라도 발포 만호(종4품)로 뛰어올랐다.
과거 급제한 지 불과 4년 만에 종9품 벼슬에서 종4품 벼슬까지 승진한 것이다.
동시에 이때부터 그의 고난이 시작되었다.
[이순신 리더십] [14]
위급할 때 찾는 사람이 되라
충무공 잇단 고속 출세하자 계속된 모함으로 앞길 막던 上官
북방에서 니탕개의 난 발발하자 "전쟁 때 유능한 부하 필요하다" 자신의 군관으로 발탁해 중용
人材는 위기 때 도드라지는 법
생애 첫 벼슬인 함경도 동구비보 권관(종9품)의 임기 2년을 마친 뒤
훈련원 봉사(종8품·훈련원의 가장 말단 직책)로 임명돼 한양에서 근무하기 시작한 이순신은
"모든 벼슬아치는 법에 정해진 임면(任免) 규정을 명확히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그렇게 살고 있었기 때문에 아주 확고한 소신이었다.
그 소신을 관철할 기회가 왔다.
병조 정랑(정5품) 서익이 훈련원에 인사 압력을 가했다.
자기와 친한 훈련원 봉사를 임기가 끝나기도 전에
그 위 계급인 참군(정7품)으로 승진시키라는 것이었다.
이순신은 법의 규정을 들어 단호히 거절했다.
서익은 성품이 사납기로 유명한 데다 상급기관의 상급자였지만
'법'을 내세우며 꿈적 않는 훈련원 말단 관리 이순신에게 가로막혔다.
공교롭게도 그 일이 있은 뒤 이순신에게 고속 출세의 길이 열렸다.
그는 선조 12년(1579년) 봄부터 훈련원 봉사로 근무하다가
임기가 끝나기 전인 그해 겨울 충청병사의 군관(7품 내지 6품)으로 승진했다.
또 그 임기가 끝나기 전인 선조 13년 가을에 다시 승진해 전남 고흥의 발포 만호(종4품)가 됐다.
동구비보 권관직 만기 복무 이후 불과 2년 미만에 무려 10단계를 뛰어오른 고속 승진이었다.
능력이 워낙 뛰어난 인재라서 계속 좋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일은 이순신의 생애에서 가장 두드러진 모순이었고 매우 아픈 약점이었다.
그가 훈련원 봉사일 때 '법'을 내세워 서익의 요구를 즉각 거절했던 단호함을
자신의 삶에도 똑같이 적용했더라면 어떠했을까.
당연히 그처럼 빠른 출세는 불가능했다.
남에게는 엄격하고 나에게는 관대한 것,
그것은 어떤 조직의 구성원이건 간에 치명적인 약점이고 부작용이 따르게 마련이다.
후일 이순신도 그 대가를 치렀다.
고속 출세에 대한 주위의 반감 때문이었을까.
발포 만호 자리는 풍파가 잦았다.
발포 부임 당시 상관인 전라좌수사 성박과 껄끄러운 사이가 됐고,
그의 후임인 이용은 처음부터 작심하고
이순신을 파면하려고 여러 억지 죄목까지 만들어냈다.
그때마다 이순신은 단호하고 기민하게 막아냈다.
그러나 선조 15년 봄에 서익이 군기경차관(軍器敬差官·임금의 특명으로 지방에
파견돼 무기를 검사하던 벼슬)으로 발포에 왔을 때는 달랐다.
발포 포구의 무기는 아주 잘 정비돼 있었으나, 서익은 장계를 올려
"발포의 무기는 제대로 정비되어 있지 않았습니다"라고 모함했다.
이순신은 그것을 알고도 방어하지 않았다.
그는 훈련원 봉사였을 때 서익을 상대로
"규정된 임기를 채우지 않은 관리는 승진시킬 수 없다"고 버텨서 이겼다.
그런데 그 후 자신은 거듭거듭 임기를 채우지 않고 승진한 결과,
종4품 발포 만호가 되어 다시 서익의 얼굴을 대하니 낯이 서지 않았을 것이다.
서익의 악의에 찬 농간에 의해 이순신은 생애 첫 파면을 당해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파면된 지 석 달 만인 그해 여름, 이순신은 다시 훈련원 봉사로 임명됐다.
그런데 이듬해인 선조 16년 1월, 함경도 육진에서 니탕개의 난이 발발했다.
전에 발포 만호 이순신의 상관으로 그를 파면하려 애썼던 이용은
함경남도 병마절도사(종2품·약칭 남병사)로 임명돼
니탕개의 난 진압전에 출전하게 됐다.
그러자 부하를 보는 이용의 시각이 확 변했다.
평화 시에는 온순하고 말 잘 듣는 부하가 좋았지만
전시에는 유능하고 치밀하고 담대한 부하가 필요했다.
직접 겪어서 알지만, 그런 부하로는 이순신을 능가할 자가 없었다.
그는 안전한 후방인 서울의 훈련원에서 근무 잘하고 있는 이순신을
자신의 군관으로 달라고 요청해서 데리고 전쟁터로 갔다.
이순신이 함경도에서 보낸 시기의 모습과 경력에 관해서는 앞에서 살펴보았다.
'우을기내 생포작전'에 성공하고, 포상 대신 처벌받아 종9품 건원보 권관으로 좌천됐다가
부친의 삼년상을 치른 후에 뒤늦은 포상으로
10단계를 뛰어오른 직급인 조산보 만호(종4품)로 임명되었다.
녹둔도 둔전관을 겸임하다가 벌어진 녹둔도 전투 패전으로 백의종군 처분을 받았고,
석 달 뒤인 선조 21년(1588년) 1월 토벌전에 참전해 세운 전공으로
백의종군 처분에서 풀린 뒤 집에 돌아가서 지냈다.
다음 해인 선조 22년 봄에 전라감사 이광의 요청으로 그의 군관이 되어
전라 감영 에서 근무하다가 조방장(3품직)으로 승진했다.
그해 11월에 차사원으로 상경했다가 전날의 의리를 중시해
정여립 역모 사건으로 옥에 갇힌 우의정 정언신을 문안하고
정읍 현감(종6품)으로 좌천당했다.
그리고 선조 24년(1591년) 2월 13일, 선조의 특명으로 전라좌수사(정3품)에 임명되었다.
이상이 무장 이순신이 임란 발발 이전에 밟아온 벼슬길의 전모였다.
"행동하는 결심을 하라"
《바보들은 항상 결심만 한다》라는 책 읽어 보셨나요?
변화 관리 분야의 전문가인 팻 맥라건이 쓴 책입니다.
알고 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우리의 작심삼일 근성을 잘 꼬집고 있습니다.
영어의 '결심하다(decide)'란 단어의 어원을 살펴보면,
de는 '~로부터' 의 뜻을 가진 전치사 from의 의미입니다.
cide는 '자르다' , 즉 'cut'의 의미를 라틴어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결국 '결심하다'라는 단어는 '~로부터 잘라 내다'란 뜻이 됩니다.
다른 선택의 가능성을 잘라 내고, 오직 마음속에 품은
하나의 '결심'에 모든 중력을 집중시킨다,
이런 결심이 아니라면 진정한 '결심'이 아니라는 의미겠지요.
우린 너무나 많은 '결심'들을 남용하며 살아왔습니다.
다른 선택의 가능성은 여전히 남겨 놓은 채 말로만 '결심'을 얘기해 왔습니다.
새해가 되면 통과의례 치르듯 무엇인가 '결심'을 하고,
진행 중인 일이 실패했을 때도 또 한번의 '결심'을 하고,
누군가에게 충고 받았을 때도 '결심'을 합니다.
이렇게 해 온 수많은 '결심'이 실행으로 옮겨졌다면
당신은 이미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 겁니다.
그러나 쉽게 한 결심은 쉽게 풀어지기 마련입니다.
"눈물을 흘리지 말고, 눈물을 기억하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슬픔의 진정한 의미를 아는 사람은,
그 슬픔과 눈물의 의미를 똑똑히 기억할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에 똑같은 상황이 오더라도
같은 이유로 두 번 다시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철저히 준비하는 사람이 바로 '눈물을 기억하는 사람' 입니다.
결심은 모름지기 '칼'과 같아야 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어설픈 것들을 과감하게 버리고,
내가 유지해 온 '어정쩡한 습관'들을 아프게 도려내는 과정입니다.
이것도 해야 되고, 저것도 해야 하고, 친구도 만나야 되고,
영화도 봐야 되고, 개인 홈페이지도 관리해야 하고···.
나의 작은 욕심들은 버리지 못하면서 '결심'만 한다면,
그것은 모래성을 쌓는 일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같은 이유로 또 한번 울게되는 뻔한 결과를 가져오겠죠.
《상상력에 엔진을 달아라》,임헌우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서 바로 지금 진정한 '결심'을 해야 합니다.
다른 선택의 가능성들을 과감하게 잘라 버려야 합니다.
말로만 하는 결심이 아닌, 행동으로 그 결심을 보여 주세요.
진정으로 결심한다면, 우리가 하지 못할 것은 없습니다.
"아픔을 치료하는 사랑"
120여 개국에 자신의 영혼이 깃든
'사랑의 선교회'를 남기고 떠난 마더 테레사.
그녀는 평생 낮은 곳에서 사랑을 전하며 봉사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부모님의 영향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녀의 부모님은 늘 어려운 이들에게 나눠주는 삶을 살았다.
특히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 이후 그녀의 어머니는
가정을 훌륭하게 이끌어갔을 뿐 아니라
깊은 신앙심으로 막내딸의 수녀 서원과
인도에서의 선교 활동을 지지해 주었다.
어머니의 깊은 사랑을 기억하는 테레사 수녀에게
어느 날 한 부인이 찾아와 상담을 요청했다.
외동딸이 남편과 자식을 사고로 잃고 큰 충격을 받아서
자신도 만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딸이 얼마나 고통을 받고 있을지 생각하면 애가 탄다는 부인은
딸의 얼굴이라도 한번 봤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마더 테레사가 부인에게 말했다.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딸이 어릴 때 제일 좋아하던 옷과 가장 맛있게 먹던 음식을
그 집에 슬그머니 갖다 놓고 오세요."
부인은 돌아가자마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딸의 어릴 적 옷을 옷장에서 꺼냈다.
그리고 딸이 좋아하는 음식을 정성껏 만들어서 딸의 집으로 가져갔다.
부인은 딸이 여전히 엄마의 위로를 거절하자
말없이 옷과 음식을 딸의 방앞에 두고 돌아왔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튿날 딸이 엄마를 찾아왔다.
"엄마 고마워요.
엄마가 놓고 간 옷을 만지고 음식을 먹으면서
어렸을 때 행복했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죄송해요.
엄마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지 잊고 있었어요."
"소가 뒷걸음질 치다가 쥐를 잡게 된다 "
소는 옛날부터 농사꾼의 듬직한 존재였기에
부와 성실함을 상징하기도 한다.
우리 민족의 좋은 동반자 관계여서 그런지
유난히 소와 관련된 속담도 많은데, 그중에서 아마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속담은 우연히 행운을 얻게 된다는 뜻의
‘소 뒷걸음질치다 쥐잡기’가 아닐까 싶다.
돌이켜보면 과학사에도 이러한 사례는 종종 있다.
실험 과정에서의 사소한 실수가 위대한 발견을 부르기도 한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발견 중 하나로 불리는 기적의 물질 페니실린도
실수가 없었다면 세상에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영국의 미생물학자인 플레밍은 세균을 관찰하는 실험을 하던 중,
세균 배양기 위에 콧물을 떨어뜨렸다.
칠칠치 못한 일이었으니 얼른 치워버렸으면 그만일 텐데,
그는 자신의 실수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관찰했다.
관찰 결과 콧물이 들어 있는 배양기의 세균이 모두 죽어버린 것을 알게 되었다.
콧물 속에 세균을 죽이는 리소자임이라는 물질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로부터 10여 년 뒤 플레밍은 실수를 통해 더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된다.
당시 플레밍은 아이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부스럼의 원인이 되는
포도상구균을 배양하고 있었다.
세균을 배양할 때는 다른 세균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배양기의 뚜껑을 잘 닫고, 다른 세균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실수로 뚜껑이 제대로 닫히지 않은 배양기가 있었고,
거기에 푸른곰팡이가 끼어 못쓰게 된 일이 생겼다.
배양기 뚜껑이 열린 사이 푸른곰팡이 포자가 날아와 붙었던 것.
그런데 신기하게도 곰팡이가 핀 배양기에는
세균이 모두 죽어 있는 걸 발견하게 되었다.
플레밍은 푸른곰팡이가 세균을 죽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플레밍이 맞았다.
그는 ‘페니실륨 노타튬’이라는 푸른곰팡이가
폐렴균, 탄저균 등의 세균을 죽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플레밍은 이 성분을 추출해 페니실린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최초의 항생제가 탄생한 것이다.
플레밍은 페니실린의 발견으로 1945년 노벨상을 수상했다.
세균도 곰팡이도 수많은 종류가 있다.
플레밍이 뚜껑을 제대로 닫지 않은 배양기에
딱 알맞은 세균과 곰팡이가 만나 반응을 한 것은
정말 로또 당첨에 맞먹는 행운이라 할 수 있다.
플레밍의 페니실린 발견 이후 병리학자인 플로리와 체인이
페니실린을 정제해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페니실린이 상용화되는데도 역시 우연의 힘이 작용했다.
실험 동물로 기니피그가 아니라 생쥐를 썼다는 점이다.
페니실린은 생쥐에게는 독성이 없지만 기니피그에게는 독성이 강하다.
따라서 기니피그를 실험용으로 사용했다면
페니실린을 약으로 쓸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을지 모른다.
현대 의학의 발전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항생제는
이렇게 이어진 우연의 결과로 세상에 선을 보였다.
많은 과학사가들이 20세기 과학의 기점으로 삼는
X선의 발견 역시 행운의 여신이 준 선물이다.
뢴트겐은 음극선에 대해 실험을 하던 중 우연히 X선을 발견하게 되었다.
검은 종이로 둘러싼 크룩스관으로 실험을 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그 근처에 있던 판이 형광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는 진공관에 전류를 흘려보내면 음극선이 금속 벽에 빠른 속도로 충돌하면서
투과력이 강한 새로운 광선이 발생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미지의 빛이라는 뜻에서 이 새로운 광선을 X선이라 명명했다.
뢴트겐은 이 발명으로 1901년 최초의 노벨물리학상 수상자가 되었다.
최근 우연한 발견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남성용 발기부전 치료제인 비아그라다.
발기부전 치료제인 비아그라의 원료 실데나필의 개발은
우연한 기회에 이루어졌다.
원래 연구팀은 심장병 환자를 위해 혈액 공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약제를 개발하던 중이었다.
이 약은 영국에서 심장병 환자들에게 투여되었는데,
심장 기능을 개선하는데 별 도움을 주지 못했다.
하지만 막상 약을 수거하려고 하자 환자들이 거부했다.
환자들은 그 이유를 “심장에는 도움이 안 될지 몰라도
성생활에는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약이 심장 기능을 회복시키는 효과는 미미하지만
부작용으로 음경 발기를 일으킨다는 것이 발견된 것이다.
이후 대대적인 심상 실험을 거쳐 화이자는
1998년 4월 비아그라를 출시했고 막대한 이익을 거두었다.
제품의 부작용이 각광받은 사례는 탈모제에도 있다.
탈모 치료제인 프로페시아와 미녹시딜은
원래 각각 전립선 치료제와 고혈압약으로 개발되었는데
둘 다 머리, 팔, 다리 등에 다모증이 생기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미국 제약회사 MSD는 자사의 전립선비대증 치료제
프로스카를 사용한 사람에게 다모증이 생기는 점에 착안,
제품에 포함된 피나스테리드 용량을 1mg 줄여서 탈모치료제 프로페시아를 내놓았다.
먹는 고혈압 치료제로 혈관확장제였던 미녹시딜은 바르는 탈모 치료제가 되었다.
미녹시딜은 남성호르몬과 무관하게 모발을 자라게 하기 때문에
여성 탈모나 원형 탈모증 등 남성 탈모와
다른 유형의 탈모증에도 널리 쓰이게 되었다.
물론 고혈압 치료제로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다.
이처럼 의약품 중에는 본래 의도와는 다른 효과를 내는 것들이 종종 있다.
우울증 치료제로 개발된 부프로피온(상품명 웰부트린)도 그런 예다.
이 약은 니코틴 성분이 없지만 흡연에 대한 갈망과
니코틴 금단 증상을 완화시킨다.
금연 이후 체중이 느는 것도 막는 효과가 있다.
도파민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해 안락감을 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지만
정확하게 어떤 기전으로 금연을 돕는지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빨강, 노랑, 분홍, 복숭아색 등
여러 가지 색의 장미꽃이 있지만, 파란색 장미는 없었다.
파란색 장미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도 우연히 찾아왔다.
미국 밴더빌트대학의 생화학자 2명은 암과
알츠하이머 치료제를 연구하던 중
박테리아가 파랗게 변하는 모습을 발견했고,
이 박테아의 유전자를 장미에 옮겨 넣으면
파란색 장미가 될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실현 여부를 떠나 작은 현상이라도 놓치지 않는 관찰력과,
하나의 생각을 다른 분야에 적용해보는 열린 마음이 낳은 결과다.
이 밖에도 우연이 만들어낸 과학적인 성과는 셀 수 없이 많다.
3M은 강력 접착제를 연구하다가
의도와는 전혀 다른 물건인, 붙였다 뗐다 하는
접착물질을 이용해 포스트잇을 만들어냈다.
듀폰사의 플룬케트는 우주선을 열로부터
보호하는 물질을 연구하다가 테플론을 발명했다.
이러한 의외의 발명품들은 획기적인 과학 발달의 계기가 되기도 했고,
막대한 상업적인 이익을 낳기도 했다.
본래의 의도대로라면 실패한 결과지만
연구자들이 그 사건이나 현상이 주는 중요함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만일 플레밍이 곰팡이가 낀 접시를 그냥 내다 버렸다면,
뢴트겐이 실험실을 주의 깊게 살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콜럼버스는 인도를 향해 가다가 아메리카 대륙에 닿았다.
하지만 인도를 향해 그 길고 험난한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면
결코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과학사의 우연이라는 것도 끈질긴 연구의 결과로 얻어지는 결과이다.
과학적인 지식과 어떤 현상에 숨겨진 비밀을 캐기 위한 열정이야말로
세기의 과학적 발견과 발명을 이끌어내는 로또다.
부디 여러분에게도 이런 행운이 오길 바란다.
매사에는 양면이 있다.
가장 좋고 유리한 것도 그 칼날 쪽을 붙들면 고통이 되고,
반대로 불리한 것이라도 그 손잡이를 잡으면 방패가 된다.
매사를 불리하다 생각하며 근심하지 말고 유리한 쪽을 바라보라....그라시안
"신명나게 일하라!"
사람들은 자신이 열심히 일한 데 대한 보상을 놓고 끊임없이 얘기한다.
나는 그들이 일한 덕분에 놀라운 결과가 발생했다는 사실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그들이 이룬 소기의 성과와 열심히 일하기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성공한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기'라고 부르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일이 아니다.
'열심히'라는 말 역시 그 의미가 전혀 다르다.
운동선수들이 열심히 노력한 결과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고
말하는 것을 들을 때면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농구 선수가 완벽한 점프 슛을 익히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고 말하다니,
이 무슨 잠꼬대란 말인가!
코트를 떠날 수 없도록 그들을 붙잡은 것은
바로 게임에 대한 불같은 '열정' 아니었을까?
농구 게임에서 그들은 단 1초도 일을 하지 않았다.
단지 게임을 즐겼을 뿐이다.
나는 심판이
"작업 시작!"이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지 않는 이상
결코 그들의 이야기를 수긍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어떤 골프 선수도 게임을 뛰면서
자신이 열심히 일을 한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하루에 16시간 일한다고 주장하는 기업가는 어떤가?
기업가들은 그 정도 일을 한다.
그러나 진정한 기업가라면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사업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 가장 흥분된 경험 중 하나라고 말 할 것이다.
그와 같이 기업 활동은 너무도 신명나는 일로, 약간의 중독성마저 있다.
조금씩 발전할 때마다 도취감에 사로잡혀
다음 단계를 이루고자 하는 유혹에 빠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기업가들은 노예처럼 일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와 돈을 즐거운 마음으로 투자한다.
그 결과
성공할 경우 그가 투자한 사업은 그의 자산이 되며,
다른 사람보다 짧은 시간 안에 거의 힘들이지 않은 상태에서 더 많은 목표를 성취하게 된다.
나아가 출근부에 도장 찍고 일한 시간만큼
보수를 받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이익이 돌아온다.
누구라도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한다면,
결코 그 일을 잘할 수 없다.
일과 관련된 요소 (고통,긴장,노력)가 줄어들고
일과 무관한 요소(재미,애정,수고하지 않음)가
늘어날 때만이 더 큰 성공을 기약할 수 있다.
성공을 가져다주는 것은 힘든 노동,공통,긴장, 그리고 노력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열정과 애정이다.
"어느 감동 어린 모습"
소리칠 겨를도 없었다.
재빠른 동작으로 그는 우리 집에 침입을 했고 나를 두꺼운 끈으로 묶어 놓았다.
내 집에 도둑이 들 거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전날 밤 딸 네 집에 간 아내에게 자고 오라 말한 것이 천만다행이다.
"가진 돈… 돈있는 대로 다 내…놔! 안 그러면… 죽여 버리겠어."
20대 젊은이로 보이는 사내는 내게 칼을 들이댔다.
소름이 돋았다.
환갑이 넘었으니 죽음을 한 번쯤 생각해보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는 아니었다.
"내가 돈을 주면 날 죽이지 않을 거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순간 도둑의 눈빛이 흔들리더니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푸른 색 마스크 위로 보이는 그의 눈빛이
왜 그리 선량해 보였는지….
어디 가서 이렇게 말하면 미쳤다고 하겠지만
내가 보기에 그는 도둑질할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걸 어찌할까.
"젊은이, 언제부터 이랬나."
"늙은이가 말이 많아. 이상한 소리 말고 돈이나 꺼내!"
그는 칼을 내 얼굴에 거의 닿을 정도로 들이댔다.
눈앞에 보이는 칼 뒤 쪽으로 그의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나는 죽음이 안 무서워.
자식들도 다 키워 놨고 내 손자도 자네 나이쯤 됐을걸."
"이 영감이… 빨리 돈 내놔!"
그의 목소리는 더 격양돼 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돈 줄게. 자네가 원하는 것을 다 줄 테니 우리 타협하세." "……."
"도둑질이 아니라 내가 빌려 주는 것이면 어떻겠나?"
그의 동공이 커지는 것으로 보아 내 말에 적잖이 놀란 모양이었다.
"내가 잔머리 굴리는 것으로 보이나?
환갑이 넘은 내가 젊은 자네만큼 똑똑하겠나."
나는 침을 한번 꼴깍 삼키며 말을 다시 이었다.
"만약 이번이 처음이라면 자네 인생에 오점을 남기면 안 되잖아.
잡혀 가지 않아도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나는 살 만큼 살았으니 지금 죽어도 별 후회가 없지만
자네는 너무 아까워. 내가 양보할 테니 빌려 주는 것으로 하세."
순간 내가 잘못 본 것인 줄 알았다.
그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주르륵….
마스크가 움씰 움씰 움직이는 것이 그는 분명 울먹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간이 부었지,
칼을 쥔 그의 손을 덥 썩 잡았다.
순전히 내 마음에서 우러나온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내 생각처럼 그는 선량한 사람임에 틀림 없었다.
"에이 씨 못해 먹겠네."
그는 마스크를 벗더니
내 앞에 털썩 주저앉아 어린애처럼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할아버지, 죄송합니다."
나도 목이 메여 그의 등을 다독거렸다.
"도둑 체면이 말이 아니 구만,
이런 마음으로 어떻게 도둑질을 하려고....
그는 제 손으로 묶었던 끈을 다시 풀어 주었다.
"무슨 사연이 있는 거야. 그렇지?"
"…제 어머니가 혈액투석 중이신데 병원비가 너무 밀려 있어서요.
한 달 후엔 저도 결혼을 해야 하는데 돈에 너무 쪼들려서…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나는 장롱 문을 열어 깊은 곳에서 금반지와 목걸이를 꺼냈다.
그리고 손자 등록금에 보태 주려고 찾아 두었던 돈을 그의 무릎 앞에 내밀었다.
"할아버지! 이러시면…"
"내가 약속하지 않았나. 빌려 주겠다고"
"됐습니다. 그냥 나가겠습니다."
나는 그의 손을 붙들었다.
"그냥 나가면 도둑이 되는 거야.
나는 도둑에게 이 돈을 빼앗긴 게 아니라 앞길 창창한 청년에게 빌려 주는 것이라네.
나중에 갚으면 되고."
그 시간. 청년도 울고 나도 울었다.
그는 돈과 패물을 받아 들고 내 집을 얌전히 걸어나갔다.
나는 그를 문밖까지 배웅해 주었고. 그는
"성실하게 벌어 반드시 이 빚을 갚겠다"는 말을 남기고 가로등 불빛 사이로 사라져 갔다.
1.맞장구를 쳐주자.
아무리 신나는 장구도 맞장구만 못하다.
상대방을 인정하고 높여주는
맞장구는 멋진 인간관계를 만들어준다.
2.분위기에 맞는 말을 하자.
때와 장소와 분위기에 맞는 말을 해야한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라고 하였다.
3.자존심 상하는 말을 쓰지 말자
자존심 상하는 말을 들으면 적개심이 생긴다.
생각 없이 불쑥 나온 말이 상대방의 가슴에 상처로 남을 수 있다.
4.정감 있게 말하라.
말을 할 때에 한 음정 낮추어서 말을 하게 되면
정감 있게 들릴 것이다.
정감 어린 말의 습관은 분위기를 만든다.
5.상대방에게 말할 기회를 주어라.
대화는 주고받는 것이지 혼자 떠드는 것이 아니다.
말을 잘 하는 것은 혼자 떠드는 것이 아니라 들어주는 것이다.
6.같은 소리를 두 번 이상 반복하지 말자.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계속 반복하게 되면
신경질이 나고 기분이 상하게 된다.
한 두 번이면 족하다.
7.칭찬의 말을 세 번 이상 하자.
바보 온달도
평강공주의 칭찬이 없었더라면 바보로 끝났을 것이다.
좋은 칭찬은 마음에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
8.좋은 말만 골라서 사용하자.
말이 씨가 된다고 한다.
어떤 말을 쓰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장래가 어떻게 될까 가히 짐작할 수 있다.
9.유머의 소재를 스스로 개발하자.
유머로 남을 웃길 줄 아는 사람은 재벌,
자기가 웃을 줄 아는 사람은 부자다.
웃음꽃보다 값지고 아름다운 꽃은 없다.
10.알아주는 말을 해 보자.
아무리 나를 몰라주어도 아내(남편)만큼은 알아주기를 원한다.
알아주는 말에 힘이 생기고 몰라주는 말에 가슴이 미어진다.
"아름다운 두 여인"
누나와 저는 일찍 부모님을 여위고
거친 세상을 힘겹게 살아왔습니다.
중학교 중퇴가 고작인 누나는
취업이 쉽지 않았습니다.
어렵게 택시기사로 취업한 누나...
승차 거부를 한 적도 없으며,
밤에는 노인이나 장애우가 차에서 내리면
전조등으로 어두운 길을 밝혀주기도 하였습니다.
짐을 들고 택시를 타는 노인이나 병자들에게는
내려서 짐을 들어주기도 하였습니다.
누나는 파스칼이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다른 사람이 모르는 선행이 가장 영예롭다."는
파스칼의 말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동생 공부 뒷바라지를 위해 시집도 가지 못한 누나가
중앙선을 넘어온 음주 운전 덤프트럭과 충돌,
두 다리를 못 쓰게 되었습니다.
나와 결혼을 약속했던 여자는
생활의 불편함과 어려움을 극복할 자신이 없다며
누나와 자신 중 하나를 택하라는
최후의 통첩을 하고 돌아섰습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지만,
그녀에게는 나와 누나가 기쁨이 아니라,
힘든 짐이고 고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녀를 포기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실연의 아픔에서 벗어날 때쯤의 어느 날 오후,
누나가 후원하는 고아원을 방문하기 위해
외출하게 되었습니다.
한 시간이 넘도록 택시를 잡으려고 하였지만
휠체어에 앉은 누나를 보고 그대로 도망치듯 지나갔습니다.
어둠이 깔리는 저녁때가 되자 분노가 솟구쳤습니다.
슬프고 힘들게 살아가는 주위 사람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미웠습니다.
누나는 손등으로 눈물을 흠치고 있었습니다.
내가 불평을 말하자,
누나는 그들을 미워하지 말고
용서하라고 나를 위로 하였습니다.
그 때 택시 한 대가 우리 옆에 멈추더니
갑자기 트렁크가 열렸습니다.
기사는 여자였습니다.
마음씨가 곱고 아름다운 여자 기사의 도움으로
고아원에 도착한 시간은 캄캄한 밤.
휠체어를 밀고 어두운 길을 올라가는 동안
전조등으로 길도 환하게 밝혀주었습니다.
자동차의 전조등 불빛은 세상의 어느 빛보다 밝고 고마웠습니다.
나는 지금
이 아름다운 두 여자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 여자 기사와 결혼하여
누나와 함께 한 집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서로를 위로하고
한 달에 두 번씩 고아원을 찾아가는
작은 선행을 하며 즐거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약간 어려움이 있지만,
마음만은 풍요롭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극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아름다운 마음과 아름다운 손과 발을 가진
두 여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두 여인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두 여인이 나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두 여인과 함께 하는
당신 또한 아름답습니다.
감정에 휩쓸려 사랑만 선택했다면
지금의 행복을 함께 할 수 없었겠죠.
아름다운 선택을 한
당신에게도 찬사의 박수를 보냅니다.
- 여러분의 아름다운 선택은 무엇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