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2020년 11월 15일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미세 먼지가 상당히 심함
☞산행거리: 들머리 0.5km / 날머리 1.8km, 임도 약 4km+마루금 8.2km / 6시간 40분 소요
☞참석인원: 친구 지인 2명과 함께
☞산행코스: 고산사 주차장(와룡산성)-고산사-북봉-쇠시리재-450.4m봉-안부-무명봉-안부
482m봉-떡갈봉-안부-451.9m봉-안부-안부-449m봉-529m봉-빗댕이골 삼거리
546m봉-안부-등곡산-안부- 무명봉-암봉-무명봉-황학산갈림길-황강리 임도
장자봉-갈림길-안부-안부-159.5m봉-밀양박공 묘-광천/남한강 합수점
황강리 임도
☞소 재 지: 충북 제천시 한수면
지난 4월 15일에 2구간을 마치고 마지막 구간을 왔으니 정확하게 7개월만이다.
사연인즉...지난 4월 15일 2구간 하던날 초딩이 동창 한명이 백두대간과 지맥길을
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우연히 같은날 같은 구간을 걷게 되었는데 그 당시 만나지는
못했지만 블로그에 자료를 검색하다가 알게되어 광천(등곡)지맥 마지막을 같이 하자고
약속을 했는데 서로가 스케줄이 맞질않아 차일피일 미루다가 오늘에서야 떠나게 된다
아침에 일어나 샤워를 마치고 간단하게 베낭을 챙긴 다음 길을 나선다.
이쪽은 대중 교통이 아주 열악하여 각자 차를 가지고가서 날머리에다가 자동차를 세워놓고
또 한대는 고산사로 가서 산행을 시작한 다음에 자동차를 회수하기로 하였다.
9시 30분에 월악나루터 선착장에서 약속을 하였기에 시간적으로 느긋하다
굳이 고속도로를 탈 필요가 없을듯 싶어 집에서 출발하여 성남시청을 지나 3번 국도를 타고
가는데 새로 생긴 신3번 국도는 차량통행도 별로없고 속도도 90km 이상 달릴수 있고 이천~장호원
구간을 빼면 신호등도 거의없어 자주 이용하는 도로인데 자동차도 밀리지 않고 톨비도
안 들어가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곤지암을 지나면서 짙은 안개로 인해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신 도로를 빠져나와 여주시 가남읍 근처 솔모로 C.C 입구에 있는 예전에 가끔 들렸던 해장국집에
들려 아침을 해결하고 국도를 타고 신니, 충주를 지나 월악나루터에 도착하니 08시 50분이다
09시 30분에 친구와 약속한 사이라 조금 여유가 있어 차에서 눈을 좀 부치다가 친구가
도착하여 들머리인 상노리 임도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상노리 임도(06:50)
월악나루터에서 친구 일행들과 조우를 한 다음에 상노리 임도로 가서
내 차를 세워놓고 친구 지인의 자동차를 타고 고산사로 향한다
고산사 주차장(10:05)
고산사 주차장에 도착하여 산행을 준비하는데 친구가 막걸리 한통을 꺼내
한 잔씩 하잔다...막걸리 한통을 마시고나니 친구와 지인 한명은 산행에서 빠지고
또 다른 2분만 맥길에 나서는데 알고보니 친구는 마라톤을 하다가 뼈에 이상이 있어
산행을 영원히 못할정도로 상태가 안좋다...난생 처음 친구와 한번 걸어보려 했는데 아쉽다
인연이 안 되련가 보다... 막걸리 한잔을 하고 화이팅을 외친 다음에 베낭을 짊어진다
고산사(高山寺)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로 879(신라 헌강왕 15)에 도선(道詵)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1920년 유호암이 쓴 《고산사중수기》에 따르면 1096년(고려 숙종 7) 혜소(慧昭) 국사가 중건하였고,
1653년(조선 효종 4) 송계가 중창한 바 있으며 1950년 6.25 전쟁 때 일부가 불에 탄 것을 1956년
중창하였으며, 1990년대에 들어와 대대적인 불사(佛事)가 이루어졌고 1990년에 선원(禪院),
1997년 삼성각, 1998년 응진전을 각각 세우거나 복원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응진전과 삼성각·요사 등이 있으며 응진전에는 본존인 관세음보살을 비롯하여
미륵보살과 나한상이 모셔셔 있는데 이 중 석조나한상은 본래 16구였으나 현존하는 것은 6구뿐이다.
높이 45∼50cm이며, 흔히 나임이라 부른다. 특히 조선초 또는 조선중기부터 정초에 나임기도를 올리는
행사를 해온 것으로 보아 이 사찰이 나한도량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그 밖에 신중과 나한·칠성·산신·독성 등의 탱화가 모셔져 있으며, 1950년대에 주조된 범종이 있다
고산사 담벼락 역할을 하고있는 제천 와룡산성(臥龍山城)
제천시 덕산면 신현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고려 시대의 포곡식 산성인 와룡산성은
해발 527.5m의 능선을 서북벽으로 삼아 남동쪽의 계곡을 둘러싼 형태로, 전체 둘레는 2,750m이다.
와룡산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헌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자세한 내력은 알 수 없다.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에서 지표 조사를 하여 산성에 대한 개략적인 현황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교통로가 내려다보이는 동쪽 성벽은 자연 암반을 이용하여 석축하였는데, 일정한 간격으로 수직의 기둥
홈이 확인되며, 내외의 사면이 급경사로 된 북쪽과 서쪽의 성벽은 대부분 삭토하여 능선 자체를 성벽으로
삼은 특수한 벽면 구성을 보이고 있는데 성안에는 남문지, 동남문지, 북문지, 동남암문지 등을 비롯한 문지와
망대지 4개소, 그리고 건물지 등이 확인되며 고산사(高山寺)가 위치한다.
와룡산성의 평면 형태는 남북으로 긴 부정형의 모습이며, 사방이 높은 산봉우리로 막혀 있고, 성안이
크고 작은 4~5개의 계곡으로 둘러싸인 일종의 고로봉형(栲栳峰形)의 모양을 하고 있는 포곡식 산성이다.
성의 남북 간 직선 길이는 약 850m, 동서 간 너비는 약 400m이다. 성안에는 남북으로 긴 계곡이 있어
충분한 수량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장기간에 걸친 입보와 농성에 유리한 지형이다
주차장에 올라서니 7개월만에 만난 해수관음상이 범여를 반긴다
선 채로 저두삼배의 예를 갖추고 산행을 시작한다(10:15)
나뭇가지에는 좋은 글귀들이 많이 보인다
고산사 요사채
오늘이 음력 10월초하루인데다 일요일날이 되어서 그런지 요사채 주차장엔 차들이 많다
초하루 법회를 하는 모양이다...난 오늘 산행이라 어제 절에 갔다왔다.
산에 미치는 바람에 난 이제 완전히 날라리 불자가 되어 버렸다...부처님께 늘 미안한 생각이다
고산사는 주법당이 응진전이고 응진전 직전에 있는 삼성각, 그리고 요사로 이루어져 있다.
나홀로 산행 같으면 오늘 산행거리도 짧아 초하루 법회에 참석하고 가련만 동행하신 분이 계셔서
입맛만 다시고 능선으로 향한다...하기사 지난 4월에 고산사 스님과의 안좋은 추억도 있고...
삼성각 우측에는 석조관음보살좌상, 나한상 안내문이 있는데 전해 오는 이야기로는,
신라의 마지막 경순왕이 왕건에게 나라를 넘겨 준 후 이 곳에 8년간이나 머물렀다고 한다.
고산사의 주전 역할을 하고 있는 응진전
고산사는 나한도량으로 알려져 왔는데, 이 곳에는 대웅전이나 극락전과 같은 법당이 없고 응진전이
주법당으로 기능하고 있는데, 응진전에 봉안된 나한상은 기도 효험이 높다고 전해온다
응진전은 부처님의 제자인 나한(羅漢, 아라한)을 모신 법당으로 나한전이라고도 부른다.
일반적으로 응진전에는 석가모니불이나 삼존불을 중앙에 모시고 좌우에 아난다와 가섭을 두고
다시 좌우에 십육 나한을 배치하는 것이 항례이다.
그런데, 고산사 응진전에는 특이하게도 관음보살을 본존으로 모시고, 좌우에 각각 세 구씩의
석조 나한상을 두었었으며 이 석조 나한상들은 별도로 유형문화재 195호로 지정되어 있다.
석조 관음보살 좌상은 머리에 잘 꾸며진 보관을 쓰고 있는데, 보관 내부에는 구름 무늬가 표현되어 있다.
살이 오른 동그란 얼굴, 단정한 얼굴 모습으로 친근감을 주는 상호와 몸체의 각 부분도 균형미를 보여주고 있다.
다만, 두 어깨가 움츠러들고 턱이 많이 숙여진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조선 후기 불상의 양식적 특징이다.
법의는 양 어깨를 모두 덮는 통견식이다. 수인은 결가부좌한 다리 가운데에 왼손과 오른손을 포개어 놓은
상태에서 두 손의 엄지를 맞댄 전형적인 선정인(禪定印)을 짓고 있다. 가슴 아래쪽에서 묶은 띠 매듭이
보이며, 옷주름은 몇 개의 선으로 간략하게 처리하였으며, 전체 높이 50cm인 비교적 작은 규모의 불상으로,
전체적으로 호분을 두텁게 발라 세부 표현을 자세히 알 수 없어 아쉽다
고산사 석조관음 보살좌상(石造觀音菩薩坐像:충북 유형문화재 제194호)...
백두사랑산악회 산중님의 사진 인용
응진전 내에 조성된 관음보살좌상은 조선시대 중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보관(寶冠)이
정제되고 상호(相好)와 동체(胴體)의 각 부분이 균정하나 양 어깨가 위축되고 턱이 크게
숙여지는 등 조선시대 후대의 양식으로 전해지고 있다
응진전 좌.우로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95호로 지정된 고산사 석조나한상군(石造羅漢像群)이
조성되어 있는데 나한(羅漢)은 소승 불교의 수행자 중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성자(聖者)로
관음보살상을 본존(本尊)으로 하여 응진전에 봉안된 나한상들은 조선 중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조선시대 나한상들은 주로 석고로 만들거나 흙으로 조성하였는데, 이 나한상은
돌로 만들어 매우 드문 예이다.
원래는 16구였을 것이나 지금은 6구만이 남아 있으며 40~50cm 크기의 여섯 나한상들은
각기 다른 표정을 짓고 있고 눈을 반 쯤 감고 골똘히 깊은 명상에 잠겨 있는 나한, 흰 눈썹이
유난히 빛나는 나한, 한쪽 어깨를 비스듬히 세운 나한, 눈을 부릅뜨고 있는 나한 등등,
그 모습이 기괴하면서도 흥미롭다.
관음보살상과 응진전에 모셔진 고산사 나한상은 조선 중기 작품으로 전해지며
조선시대 나한상은 석고(石膏)로 조성하거나 토제(土製)인데 석고 나한상은 작례가
극히 드문 예로 현재 호분(胡粉)을 뚜껍게 입히고 있다.
충청북도 도내에 조선시대 나한신앙의 일부를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관음상과는 종류와 신앙대상이 확연히 구분된다
고산사에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주차장에서 0.5km 걸어서 마루금에 복귀하여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10:24)
북봉으로 오르면서 바라본 제천시 한수면 덕곡리의 산그리메
좌측으로부터 관봉~경심령~매봉 능선이 뚜렸하게 보인다
북봉(北峰:501.9m:10:32)
고산사 뒷쪽에 있는 북봉에 올라서니 지난주와는 달리 바람이 불지않은 탓인지 덥다
좌측(남쪽)으로는 정자가 있는 월형산으로 가는 길이고 맥길은 북서쪽 내리막길로 향한다
오늘의 날씨는 생각보다 덥다.
북봉 정상에서 베낭을 내려 입었던 자켓을 벗어 베낭에 넣는다.
이곳에서10분 거리에 있는 월형산 정자를 갔다오고 싶은데 동행하신 분들은
가실 의향이 없으신 것 같다...나홀로 같으면 당연히 갔다 오겠지만 처음 산행하시는
분들에게 내 주장을 하면 예의에 어긋날 것 같아 포기를 한다
북봉에서 바라본 월형산의 팔각정
저 곳에서는 월악산의 영봉이 잘 보이는 곳인데 오늘 짙은 미세먼지로 인해
전망도 꽝일 것 같아 과감하게 포기한다
월형산(月螢山:526m)은 제천시 한수면 탄지리와 덕산면 신지리 사이에 있는 산으로
동남쪽으로는 제천시 한수면의 성천을 사이에 두고 다량산과 마주하고, 남쪽으로는 광천을
사이에 두고 월악산(1,094m), 쇠사리골을 사이에 두고 등곡산과 마주하는 산이다.
옛 기록을 보면 마주 보이는 월악산이 월형산(月螢山)으로 불리웠다는 자료도 보인다
북봉에서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가야할 등곡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능선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또다른 능선에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우측 아래 능선은 간벌을 하고 잣나무를 식재해놨다
벌목지 아래에 있는 제천시 한수면 덕곡리 골안마을의 모습
덕곡리는 유덕산 밑에 자리 잡았으므로 덕실 또는 덕곡(德谷)이라 하였으며
골안마을은 덕곡리 지소거리 남쪽 골짜기에 위치한 마을이라서 붙혀진 지명이다
벌목지를 지나니 자동차가 다닐만큼 넓은 임도가 나오는데 쇠시리재가 나온다
쇠시리재(400m:10:48)
제천시 한수면 탄지리 상탄지 마을에서 덕곡리 골안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인다
예전에 쇠(鐵)가 났으며 대장간이 있었다고 붙혀진 지명인데 비포장 임도가 지나간다
쇠시리재에는 산불감시요원 RV 차량이 한 대 서있다
다시 낙엽이 수북한 오르막으로 향한다
등로는 오랫동안 비가오지 않은 탓인지 낙엽속의 먼지로 인해 목이 상당히 아프다
계속되는 오르막길
450.4m봉(10:57)
쇠시리재에서 10분정도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서니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450.4m봉에 도착하는데 산불감시요원이 정상을 지키고 있다.
트랭글앱에서는 이곳을 갈미봉이라고 하는데 이곳은 완벽한 오류이다
갈미봉(葛味峰:338.2m)은 이곳에서 한참 떨어져 충주호 근처에 있다
지소거리 동쪽에 있는 갈나무재이 마을의 뒷산으로 갈나무가 많아서 붙혀진 지명이다
이곳은 엄격하게 말하면 갈미봉 갈림길이 정확할 듯 싶다
산불감시요원과 인사를 나눈다.
커피한잔 얻어먹을 요량으로 한참 작업(?)을 하여 성사단계인데
동행한 두 분이 사양하는 바람에 나 역시 입맛만 다시고 다시 길을 나선다
떡갈봉으로 가는 길
떡갈봉은 보이는데 가는길은 ⊃형태 빙빙 돌아서 간다
안부(11:04)
나뭇가지 사이로 가야할 떡갈봉이 보인다
안부로 내려간 다음에 무명봉으로 올랐다가...
다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등로 우측 아랫쪽에는 충주호가 보인다
무명봉(11:07)
다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충주호 너머로 펼쳐지는 경심령에서 관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인다
475m봉(11:15)
안부(11:16)
넓은 공터에 낙엽이 수북하여 어디가 어딘지 구분이 안된다
482m봉(11:18)
잠시후에 가야할 떡갈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등로 주위에는 산림청에 식물보호자원으로 등록된 꼬리진달래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꼬리 진달래(꽃말:신념, 절제)는 진달래과에 속하는 상록관목. 중국과 한국, 몽골이 원산지이며,
양지바른 산기슭에 서식한다. 크기는 약 1~2m이다. 줄기 마디마디에서 가지가 2~3개씩 나와
나무 모양이 반구형을 이루며, 꽃은 꽃은 6~7월에 피고, 열매는 9월에 익는다.
한국에서는 경상북도·충청도·강원도에서 자생한다
꽃은 6~7월에 피고, 열매는 9월에 익는다. 우리나라에서는 경상북도·충청도·강원도에서만 볼 수
있는데, 양지바른 산지나 반그늘진 곳에서 잘 자라나 생장속도는 느리며, 번식할 때에는 꺾꽂이 등을
이용하며, 때때로 관상용으로 심고 있으나 물이 잘 안 빠지는 곳에서는 잘 자라지 못하며 공해에도 약하다.
약제로 쓸 때는 ‘조산백’이라고 하는데, 이는 잎과 꽃을 말린 것으로 한방에서 기관지염 치료제나 지혈약으로 쓴다.
2018년에는 산림청이 꼬리진달래를 비롯한 산림생물자원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화장품을 제조하는 화장품
산업을 추진한 바 있다.
쬐끄만 무명봉 두어개를 지나서 떡갈봉으로 올라간다
떡갈봉 오름길에서 뒤돌아보니 충주호 너머로 지난해 11월 3일 진권아우와 같이
걸었던 천등지맥 합수점이 보이는구나...젊은것은 잘사는지 궁금하다.
젊은것이 행님이 우째 사는지 궁금하지도 않은 모양이다...연락도 없고...
떡갈봉(543.5m:11:35)
제천시 한수면 서창리와 탄지리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동남쪽으로는 월악산 영봉이
뚜렸하게 보이고 북쪽으로는 충주호 너머로 천등지맥 끝지점과 부대산, 주봉산, 고봉이 보이고
북동쪽 충주호 너머로는 한달반전인 지난 10월 3일에 수헌아우와 마감했던 제천(갑산)지맥
능선은 미세 먼지에 갇혀 버렸다...떡갈나무가 많아서 붙혀진 지명인가?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다.
옛날에 우리의 선조들은 시루에 떡을 찔 때 떡갈나뭇잎을 사이 사이에 넣어 떡이
서로 붙는것을 방지했다고 해서 떡갈나무라는 이름을 붙혔다고 하는데 아마 거기서 지명을
따오지는 안했는지 모르겠다
떡갈나무는 참나뭇과에 속한 낙엽 활엽 교목. 잎은 길둥글고 두꺼우며 가는 톱니 모양으로 되어 있다.
늦봄에 황갈색의 잔꽃이 피고, 가을에는 길이 20센티미터 가량의 열매가 갈색으로 익는다.
잎은 마른 뒤에도 겨우내 붙어 있다가 다음해 봄에 새싹이 나올 때 떨어지는데 재목은 침목,
선박재나 기구재 또는 숯을 만드는 데 쓰인다. 우리나라,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 널리 분포한다
떡갈봉 정상은 뾰족한 능선위에 아무것도 없고 준.희 선생의 산패와 선답자 시그널 하나만
있는 볼 품없는 산이다...산을 사랑하는(?) 제천시는 이곳보다 더 후진곳에도 정상석을
잘도 놓더니만 엄연히 족보있는 산을 홀대하는 이유가 뭔 지 모르겠다
협소한 떡갈봉 정상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탄지리 방향은 등로가 뚜렷하나
등곡산으로 이어지는 지맥길은 등로가 아예없고 내려다보니 아찔할 정도의 급경사다
바닥은 상당히 미끄럽고 낙엽에다가 곧추선 내리막길은 다리에 힘을 줬더니 엄청나게 힘이든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에서 남동쪽을 바라보니 월악산의 영봉은 미세먼지에 갇혀 버렸다
월악산(月岳山:1,097m)은 역사와 애환이 깃든 천애(天涯)의 요새로 충북 제천시 덕산면과
한수면에 걸쳐있는 산으로 정상 주변의 산세가 무척이나 험하여 ‘5대 악산’중의 하나로 꼽힌다
충주호반과 어우러져 사계절 관광지로 각광받는 월악산은 1984년 12월 31일 국립공원에 지정됐다
달모양으로 생긴 험한 산세와는 달리 골짜기마다 넓은 암반위로 송계천의 옥류가 흐르고
희귀종인 청송과 생강나무, 녹나무, 등이 우거져 있어 아늑함을 느끼게 한다
천애의 요새답게 수 많은 애환이 깃들어 덕주사 입구 성터에는 명성황후가 한때 피신 샹활을
했던 별궁을 비롯하여 마의태자의 누이인 덕주공주가 언제 올지 모르는 올아비를 기다리며
망국의 한을 달랬다는 미륵사지 등, 많은 문화재가 산재해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 5대 악산(岳山)은
☞ 1.설악산 2.치악산 3.월악산 4.운악산 5.삼악산
급경사의 내리막길에서 바라본 한수면 서창리(西倉里)쪽에 있는 충주호의 모습
충주댐의 건설로 거대한 충주호가 생기면서 많은 수몰 마을이 생겼다
제천의 청풍과 한수면은 수몰지역이 많아 정들었던 고향을 등지고 새로운 터전을 잡아 집단이주를 한
마을들이 많다. 이곳 마을 회관에 가면 새로 이주한 동네의 이야기보다는 오히려 수몰되어 지금은
갈 수도 없는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되어 마음이 숙연해진다.
제천시 한수면의 서창리 역시 수몰 마을 중 하나인데 충주댐의 건설 이전 서창리는 꽤 번성했던 마을이었다.
마을 뒤로는 명산이 병풍처럼 둘러섰고 마을 앞으로는 황강의 맑은 물이 도도히 흘러 산자수명(山紫水明)의
경승지(景勝地)를 만들고 있었다. 또한 서창이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큰 창고가 위치해 있던
교통의 요지였었다. 육로(陸路)로는 제천과 단양의 갈림길이 바로 이곳이었고, 남한강이 수로와
연계되어 이 근처 모든 물자의 집산지(集散地)로 자리 잡았던 곳이기도 하다.
서창리는 청풍현에 속해 있던 서창이 있었으므로 붙은 명칭이지만 그 이전에는 원리라 불리었다.
이 원리라는 이름도 이곳에 원집인 논양원(論陽院)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므로 이곳의 역사와
위상이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급경사를 거의 다 내려온 듯 싶다...등로가 미끄러워 너무 힘이 들었다
드디어 다 내려왔다
안부(11:55)
다시 완만한 오르막길로 향한다
능선을 지나...
무명봉 아래로 내려간다
칼날 능선을 따라서 등곡산으로 향한다
다시 오르막길...올말졸망한 봉우리를 몇개 지나야만 등곡산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다
뒤돌아 본 떡갈봉의 모습...경사가 적어도 75도는 될듯한 까칠한 급경사였다
451.9m봉(12:05)
등곡산 가기전에 만나는 봉우리인데 정상에는 망가진 이정표에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주렁주렁 달려있고 바닥에는 3등 삼각점이 있다
망가진 이정표와 삼각점
451.9m봉 정상 삼각점(△덕산 303 / 2003재설)
안면이 있는 표지기들이 많이 보인다
다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12:08)
안부를 지나니 가야할 등곡산이 보이고 산불로 인해 고사목이 되어버린 소나무들이 많다
가야할 등곡산의 모습
이곳은 한수면 상노리 무당골 뒷산인데 2015년 5월 14일 약초를 캐는
약초꾼들의 부주의로 인해 0.34hr의 임야가 소실되었다고 한다
충주호 너머로 지난해 마감했던 천등지맥과 한달반전에 마감한 제천(갑산)지맥 합수점이 보인다
충주호를 제천 사람들은 청풍호라고 부른다...내륙의 바다라고 불리는 충주호는 충주댐 건설로 인한
인공호수로 공식명칭은 충주호이지만 청풍면이 수몰되어 호수면적의 50%이상이 제천시 행정구역에
속한다는 이유로 청풍호라 부르며 주변의 지명들도 ‘청풍’이 들어간 게 많다
등곡산 가는 길에서 바라본 월악산 영봉의 모습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긴 해도 마치 여인이 뭇남성을 유혹하듯 요염한 자태로
누워있는 형태가 마치 10여년전 수도지맥에서 만난 거창의 미인봉과 흡사하다.
아쉽다면 오늘은 미세먼지로 인해 요염한 자태(?)의 여인을 자세히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월악산 영봉(1,097m)은 영봉(靈峰)이라는 이름 자체에서 묻어나듯 신령스런 산으로 여겨왔다.
그리고 영봉은 국사봉이라고도 불리었는데 기록을 보면 예로부터 영봉아래 송계계곡
수경대에서 월악신사를 세우고 월악산신께 제를 올리며 국태민안을 빌었다 한다.
이와 관련돤 전설로는 고려때 몽고군이 충주 피난민을 좇아 이 곳까지 왔지만 갑작스러운 천둥번개가
치자 이는 모두가 월악대왕의 신조(神助)라 여기고 추적을 포기하고 돌아 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신라때까지만 해도 월악산은 월형산이라고 불렸는데 월형산이 월악산으로 바뀐 정확한 이유는 알려
지진 않았지만 이 산을 중심으로 서울 도읍지가 들어서려다가 와락 미끄러져서 '와락산'이 되었고
후에 와락이 월악으로 바뀌어 월악산이 되었다고하는 재미난 이야기가 전해진다
안부(12:20~50)
산행 초반에 불지 않았던 바람이 좀 차갑다
안부를 지나 바람을 피해 능선에서 처음 산행을 한 친구 지인 2분과 함께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고 후식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다시 길을 나선다
식사후에 등곡산으로 향한다
가야할 등곡산...보기는 까칠해 보이나 막상 가보니 그런대로 걸을만했다
능선에 올랐다가...
안부로 내려간다
안부에서 다시 오르막으로 향한다
449m봉(13:05)
등곡산을 오르면서 바라본 천등지맥 끄트머리의 모습
다시 날등을 타고 오르는데 조금전까지 불었던 바람이 잠잠해지니 걸을만하다
529m봉(13:12)
다시 내리막 능선으로 내려간다
빗댕이골 삼거리에 있는 이정표
빗댕이골 삼거리(13:17)
제천시 한수면 상노리에서 서창리로 넘어가는 골짜기인데 ←등곡산 0.5km, →떡갈봉 2.6km
이정표가 있고, 충주호가 있는 서창리쪽 우측으로는 급경사의 천길 낭떠러지이다
충주호가 수몰되기 이전에는 민초들이 다니던 길이었는지 좌측 상노리쪽으로는 희미한
등로가 보인다...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으나 ‘비스듬한 골짜기’라서 그렇게 불렀나?
(범여의 생각中에서)
다시 오르막길로 오른다
546m봉(13:24)
등곡산의 전위봉인 셈이다
다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13:25)
다시 빡세게 오르막을 치고 오르니 오늘 산행중 가장 높은 등곡산 정상이 나온다
등곡산(嶝谷山:589.0m:13:35)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상노리, 북노리에 위치하고 있는 산으로 충주에서 충주호반을 거쳐
신단양으로 가는 길에 월악산과 마주보고 있으며, 발 아래로 중부권 제1의 명소인 충주호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으로 전망대 바위에서 안골 쪽으로 높은 단애(斷崖)가 형성되어 있고,
충주호와 월악산 및 이 일대의 준수한 봉우리들을 함께 조망할 수 있다.
충주에서 월악나루를 거쳐 제천 수산, 청풍으로 가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동쪽을 제외한 삼면이
청풍호(충주호)에 둘러싸여 있으며, 남동쪽에서는 월악산이 이웃해 영봉의 조망이 탁월하다.
월악산과 충주호의 전망대로 산의 등선이 큰 곡(谷)을 그리는 산으로 산행코스가 청풍호(충주호)와
가장 가까이 있으나 정상에 서면 양옆으로 충주호가 발아래 펼쳐진다고 하나 조망은 마뭇가지에 가려
온전치 못하다.
그러나 나무가지 사이로 언뜻 언뜻 보이는 산과 봉우리가 마치 다도해의 올망졸망 모여 있는
섬의 모습을 연상시키는데 월악영봉(1095m) 뒤로 주흘산(1106m)과 조령산(1026m)이 버티고 있다.
조망은 정상보다 전위봉(前衛峰)이 훨씬 더 뛰어나다.
산 자체에 있는 능선과 소나무 숲 등 운치 있는 경관이 좋다. 그
러나 충주호와 월악산과 월악산 일대의 준수한 봉우리들을 무더기로 조망할 수는 있으나
마치 수줍은 여인의 치마단 속에 있는 속살마냥 쉽게 내어주지 않는다.
인증샷
등곡산 정상 이정표
장자봉이 있는 합수점으로 향하는데 암릉구간의 날등은 낙엽으로 인해 생각보다 상당히 미끄럽다
조심스럽게 좌측으로 우회하면서 내려간다
늦은 가을철에는 상당히 조심해야할 듯 싶다
안부(13:50)
무명봉(13:57)
등로는 무쟈게 좋다
암릉길 우측 아랫쪽은 충주호(청풍호)가 보인다
암봉(13:59)
편안한 등로를 걷다보니 습관처럼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안부를 지나 완만한 오름길로 향한다
무명봉(14:08)
능선에서 내리막길로 내려가니...
황학산 갈림길(14:10)
이곳에서 우측으로 황학산이 있는데 선답자의 산행기를 보고
내 걸음을 계산하면 왕복 35분정도는 족히 걸리겠다
오늘은 내 차를 가져왔기에 갔다 오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같이가신 2분은 전혀 가실 의향이 없어 보인다...그냥 입맛만 다신다
지맥길에서 우측으로 떨어져 있는 황학산(黃鶴山:449.7m)이 보인다
제천시 한수면 황강리에 있는 황학산...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으나
학(鶴)과 관련된 산이 아닐까?...오늘 걷는 떡갈봉, 등곡산, 황학산의 자료는
충주호(청풍호)의 수몰과 함께 자료도 다 없어진 모양이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엄청나게 미끄럽다
황강리 임도(330m:14:20)
제천시 한수면 상노리에서 한천리, 황강리로 이어지는 도로로 좌측은 장자봉,
우측에는 황학산이 있고 예전에는 비포장 도로였으나 지금은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다
황강리(黃江里)는 황강이 마을을 흐르므로 붙혀진 마을 이름이며, 조선 말 충주군 원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제천군 한수면 황강리가 되었고, 1980년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됨에 따라 제원군 한수면 황강리가 되었다. 1991년 제원군의 명칭이 제천군으로 환원되면서
제천군 한수면 황강리가 되었고, 1995년 시·군 통합으로 제천시 한수면 황강리가 되었다
1985년 충주댐 건설로 대부분 지역이 수몰된 마을로 한수면 북서부에 자리 잡고 있다.
2011년 4월 30일 현재 면적은 3.48㎢이며 총 3가구에 6명[남자 3명, 여자 3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수몰되기 전에는 관터·구황강·서운말·황강나루 등의 자연 마을이 있었으며 한수면 소재지로서
한수면사무소, 경찰지서, 우체국, 농협, 초중학교 등이 있었고 오일장인 한수장이 2일과 7일에 열렸다.
수몰 이후 관공서는 송계리로 이주하였고, 마을 앞에 청풍호가 있고 뒤에는 황학산이 솟아 있어
경치가 아름답다
테스형! 내가 요즘 왜 이래
이곳에 있어야 할 내 愛馬가 보이지 않는구나
혼자 다니면 절대 하지 않을 실수를 여럿이 오다가보니 공부를 하지않고 왔다
이곳에 차를 세워놓고 고산사로 가야 했는데 이야기하다가 보니 상노리 임도에다
주차를 하고 왔구나...고민은 산행을 끝내고 하기로 하고 일단 장자봉으로 향한다
움푹한 곳에 낙엽은 수북하고 뫳돼지의 체력 단련장이 보인다
장자봉으로 향하는 빡센 오르막...서서히 체력이 소진되기 시작한다
급경사의 오르막을 지나 능선으로 오른다
성터인가?
장자봉(長者峰:420.1m:14:40)
제천시 한수면 북노리와 역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옛날에 長者(덕망있고 노성한 사람)가
살았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이다...황강리 임도에서 빡세게 올라서 만나는 산인데
이름에 비해서는 그저 밋밋한 산이다
인증샷
광천(등곡)지맥 마지막쪽의 지도
장자봉을 지나면서 합수점으로 가는 길은 두갈래이다
1번은 거리가 좀 긴 능선으로 가기 위해서는 장자봉을 지나자마자 우측으로 내려가는 길이고,
2번은 좋은길로 쭉 내려가다가 우측의 급경사로 내려가서 삼각점이 있는 159.5m봉으로 가는 길인데
어느게 맞고 어느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으니 그건 각자 산꾼의 판단에 맡길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좌측에서 흘러 들어오는 광천이 남한강으로 입수를 하면서 맥길이 끝나는데 충주댐이
생기면서 뚜렸한 물길이 거대한 호수로 변해버려 산줄기의 끝이 어디라고 말할 수가 없다
예전에는 산줄기가 가장 긴쪽으로 가는 산꾼들이 많았으나 최근에는 광천이 흘러들어 오는 곳이
가장 가까운 좌측의 삼각점이 있는 산줄기로 가는 산꾼들이 많아졌다...그건 개인적인 판단이다
범여 일행은 최근의 추세에 맞춰 삼각점이 있는 곳으로 가기위해 조금을 더 내려간다
뚜렸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갈림길(14:50)
이곳에서 독도에 아주 주의해 할 구간이다
뚜렸한 직진 등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꺽어져 사면길을 따라야 하는데 길이 전혀없다
희미한 사면길로 가다가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따른다
이곳도 지나온 떡갈봉같은 능선으로 엄청난 급경사라 굉장히 조심해서 내려간다
그러다가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곳을 내려가면서 낙엽 아래에 있는 썩은 나무 뿌리를 밟았다가 꺼꾸로 쳐박였지만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했다... 다시 조심스럽게 내려가다가 또 한번 쳐박힌다
급경사의 좌측 아랫쪽에는 광천이 보인다
암릉구간을 조심스럽게 지나고...
계속되는 내리막길
이제 힘든구간은 거의 다 내려온 듯 싶다
안부(15:10)
안부를 지나자마자 조그만 봉우리가 나오고 이곳에 등로가 보이지 않는 좌측으로 내려간다
등로는 보이지 않고 쓰러진 나무들이 상당히 성가시다
안부(15:17)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광천을 바라보면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암릉구간이 나오고 우회하여 안부로 내려선다
다시 안부를 만나고...
조금을 지나니 광천(등곡)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159.5m봉에 도착한다
159.5m봉(15:28)
159.5m봉 정상 삼각점(△404복구/건설부 74.10)
159.5m봉 정상에서 내려서니...
묘지가 보인다
처사 밀양박공 &배유인 수원백씨 묘(15:30)
광천/남한강 합수점(15:32)
밀양박공 묘에서 내려서 광천이 남한강에 입수하면서 범여도 산행을 종료한다
광천과 남한강이 만나는 합수점이 거대한 호수로 변해버려 어디가 언딘지 구분이 안된다
백두대간 대미산 아래에 있는 1.049.9m봉에서 출발하여 3번에 걸쳐 힘들게 도착했다.
지맥이란 어느 한구간도 쉬운게 없는 듯 하다
인증샷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광천(廣川)은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월악리에 있는 만수봉 동사면에서
발원하여 수산면 수산리를 거쳐 한수면 탄지리에서 청풍호(충주호)로 흘러드는 하천으로
어래산[815m] 서쪽에 있는 너부내[넓은내] 지명에서 유래되었다. 그 뜻은 어래산에서 흐르는
물줄기가 북서류하여 합류하는데 그 지점이 다른 지역보다 넓어서 붙여진 것이다.
어래산[815m] 서쪽에 있는 너부내[넓은내] 지명에서 유래되었는데 그 뜻은 어래산에서
흐르는 물줄기가 북서류하여 합류하는데 그 지점이 다른 지역보다 넓어서 붙여진 것이다.
왔던길을 되돌아 간다...충주호로 입수되는 맥길은 모두 다 왔던 길을 되돌아 가야한다
제천(갑산)지맥도 그랬고, 천등지맥도 그랬지만 되돌아 가는길이 이곳만큼 험하지 않았다.
되돌아 가는 길에 누군가가 종을 달아놨다...인증(認證)을 하는 종을 흔들고 되돌아 간다
되돌아 가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쓰러진 나무들과 전쟁을 치러야 하고...
급경사의 오르막길에는 가슴이 터질듯한 고통이 몰려온다
천신만고 끝에 능선으로 올라서니...
해는 서서히 서산으로 기울고 있다.
편안한 능선을 오르다가...
장자봉으로 오르지 않고 우측의 사면길이 있어 가까운줄 알고 갔다가 개고생을 한다
저 윗쪽이 장자봉 정상인데...잔머리 굴리다가 더 힘이 들었다
다시 마루금에 복귀하여 황강리 임도로 내려간다
황강리 임도(16:55)
합수점에 이곳까지 되돌아 오는데 1.8km의 거리를 1시간 15분이나 걸렸다
내 愛馬가 있는 상노리 임도쪽으로 걸어간다
이곳에서 차를 세워놔야 하는데 착각을 한 것이다
만나려는 심사
김소월
저녁 해는 지고서 어스름의 길
저 먼 산엔 어두워 잃어진 구름
만나려는 심사는 웬 셈일까요
그 사람이야 올 길 바이 없는데
발길은 뉘 마중을 가잔 말이냐
하늘엔 달 오느며 우는 기러기
가도가도 내 애마는 보이지 않는다
1.5km를 지났는데도 내 애마는 보이지 않는다
황강리쪽에서 트럭한대가 오는 것이 아닌가
무조건 차를 세워서 타고 오는데 4km 가까이 와서야 애마가 있다
앵벌이(히치)를 안했으면 개고생할 뻔 했다
트럭 쥔장님! 오늘의 이 공덕 세세생생 복받을깁니다
차에 도착하여 새옷을 갈아입고 친구가 기다리고 있는 월악나루터로 향한다
나루터에서 친구와 조우하여 충주시 중앙탑면으로 가서 유명하다는 막국수집에서
저녁을 먹고 서울로 향하는데 도로가 엄청나게 막힌다
친구와 오랫만에 같이 걷고 싶었는데 참으로 아쉬웠다
이보시게 몸뚱아리 잘 관리하소... 아파보니 마누라고 자식이고
다 필요없소이더이다... 내만 서러울뿐이요.
그날 그대가 한턱 쏘는 바람에 저녁 잘 먹었소...복받을기요
첫댓글 멋져부려.ㅎㅎ.형님.
젊은것이...행님이 우째사는지 공금하지도 않나
니는 맨날 젊은줄 아나...ㄴ ㅃ ㄴ
또 한 지맥 체크.
작지만 굳건한 발걸음 뉘가 그를 막을소냐!
다리 힘 떨어지면 그만 두겠죠 ㅋㅋㅋ
한달에 2~3개 정도 미결 지맥을 마무리 하시네요. 등곡지맥 완주를 축하드리며 수고하셨습니다. :)
이번달에는 이삭줍기?...3개는 마무리 하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