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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Part 1 TV가 사랑한 역사, 사극
학창 시절 역사 공부를 교과서로 했다면 어른이 된 뒤에는 드라마로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역사는 대중매체를 통해 꾸준히 사랑받아온 소재다. TV에서는 끊임없이 사극이 전파를 타고,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모티브로 한 영화들이 전 국민적인 흥행을 기록하는 시대다. 사실과 허구가 버무려진 ‘팩션 사극’은 지루하고 어렵다고 생각되던 역사를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재가공해 눈앞에 펼쳐놓지만, 과연 그것으로 충분할까?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의 상당 부분이 왜곡된 것이라면 어떨까?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잘못 알고 있는 역사. 역사에 대한 오해와 바로 보는 법을 짚어봤다. 어렵다고, 나와 상관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역사는 시대를 밝히는 등불이기도 하지만 어젯밤 당신을 잠 못 들게 했던 고민의 열쇠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모두는 역사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성인을 위한 역사 입문 가이드- 사극, 오해를 풀다 ①
사극은 늘 꾸준히 인기 있는 장르였다. 하지만 정통 사극부터 퓨전 사극에 이르기까지 드라마의 표현 방식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역사적 고증에 무게를 뒀던 과거의 사극과 달리 최근에는 딱딱한 고증의 굴레에서 벗어나 창작자의 상상력이 가미된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1990년대, 주류는 정통 사극
과거에는 궁궐 안팎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암투 혹은 영웅담이 중심인 ‘정통 사극’이 주를 이뤘다. 이는 대체로 「조선왕조실록」 같은 공적 기록물을 토대로 전개됐다. 대부분의 드라마에서 역사적 배경을 설명해주는 자막과 내레이션이 등장했기 때문에 사실과 허구에 대한 혼선이 비교적 적었다. 때때로 학자들에게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는 이유로 비판받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사극 자체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진 않았다. 대표적인 예로 ‘장녹수’(1995), ‘용의 눈물’(1996), ‘왕과비’(1998), ‘태조 왕건’(2000)이 있다.
2000년대 초반, 싹을 틔운 퓨전 사극
2000년을 전후로 ‘허준’(1999), ‘대장금’(2003) 등 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사극들이 안방극장을 찾으면서 TV 드라마는 역사를 주요 소재로 채택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왕과 고위관직들이 아닌 서민들의 이야기를 내세우며 사극의 범위를 확장해나갔다. 2003년 여름 방영된 ‘다모’는 퓨전 사극에 불을 지폈다. 시작부터 ‘퓨전 사극’이란 이름을 내걸었고, 그 결과 수많은 열혈 팬인 ‘다모폐인’을 낳았다. 이후부터 많은 드라마들은 시대와 인물은 역사에서 따오지만 세부적인 일화는 과거와 현대의 것을 과감히 섞었다. 방송뿐만 아니라 영화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005년 개봉한 ‘왕의 남자’를 시작으로 극장가에도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가미한 퓨전 사극들이 여럿 등장했다.
현재, 팩션의 시대
최근 몇 년 사이 퓨전 사극은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의 합성어인 ‘팩션(Faction)’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과거 역사를 온전하게 재현하려는 강박증에서 자유로워진 결과 ‘해를 품은 달’(2012), ‘뿌리 깊은 나무’(2011), ‘성균관 스캔들’(2010), ‘선덕여왕’(2009)과 같은 드라마가 제작됐다. ‘추노’(2010), ‘쾌도 홍길동’(2008)과 같이 서민과 하층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사극들도 종종 등장했다. 사극에 판타지를 덧씌운 ‘밤을 걷는 선비‘(2015), ‘태왕사신기’(2007)와 같은 작품들도 다양하게 제작됐다. ‘정도전’, ‘징비록’ 등 최근에도 정통 사극이 꾸준히 방송되고 있지만 그 인기는 과거에 비해 많이 시든 상태. 지난 9월 개봉한 영화 ‘사도’는 최근의 트렌드에서 살짝 벗어나 ‘정통 사극’을 추구했다. 철저한 고증에 입각해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를 제대로 표현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일부 역사가들은 퓨전 사극을 두고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다고 비판하지만 제작자들은 하나의 창작물로 봐줄 것을 요구한다. 역사 왜곡과 표현의 자유가 부딪치는 지점이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고 받아들이기엔 사극은 다분히 많은 오해의 소지를 갖고 있다. 기댈 수 있는 건 사극을 보는 수용자의 각별한 주의뿐이다. 수없는 논란에도 퓨전 사극은 하나의 인기 장르로 자리 잡았다. 그중에서도 역사적 사료가 많이 남아 있는 조선이 단골 배경으로 쓰인다. 최근의 사극을 살펴보면 TV 드라마의 경우 선조-광해군-인조 시대를, 영화는 영조-정조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많았다.
성인을 위한 역사 입문 가이드- 사극, 오해를 풀다 ①
사극,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것들
1 신윤복이 여자라고?
SBS-TV 드라마 ‘바람의 화원’과 영화 ‘미인도’를 보면 ‘정말로 신윤복이 여자였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긴다. 하지만 신윤복이 여자라는 설정은 이정명의 소설 「바람의 화원」의 설정을 그대로 가져온 것일 뿐 사실과는 무관하다. 산수화와 풍속화에 능했던 신윤복이 뛰어난 화가였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 하지만 그에 대한 상세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아 떠도는 이야기가 많다. 특히 기생, 남녀 간의 사랑 등을 묘사하는 섬세하고 유려한 화법 탓에 여자가 아니냐고 오해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조선 최고의 궁중 화가이자 풍속 화가로 이름 날렸던 김홍도와 똑같이 영·정조 시대를 살았던 남자다. MBC-TV 드라마 ‘이산’에서는 의빈 성씨(한지민 분)가 도화서(조선 시대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그림을 그리던 관청) 화원으로 등장한 적이 있다. 이는 도화서를 소재로 하기 위해 설정된 허구다. 정조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후궁 의빈 성씨는 원래 정조의 두 번째 후궁인 화빈 윤씨 처소의 나인이었다. 정조의 눈에 띄어 승은을 입어 후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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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수라간은 여자의 공간이 아니다
왕을 위한 음식이 만들어지는 곳인 수라간은 그동안 여자 요리사들의 공간으로 인식돼왔다. MBC-TV 드라마 ‘대장금’ 속에서 묘사된 수라간에는 대장금, 기미상궁, 수라상궁 등 여자 요리사들만 등장하곤 했다. 하지만 실제 역사 속에서는 남자 요리사인 ‘숙수’들이 활약했다. 왕의 요리사는 철저하게 분업화돼 있었다. 물을 끓이는 탕수색, 밥을 짓는 반공, 생선을 굽는 적색, 술을 빚는 주색 등 한 사람이 평생 한 가지 일에만 종사했다. 왕이 원하면 언제든 요리를 대령할 수 있도록 상시 대기해야 했다. 왕실 요리사의 일은 모두가 기피할 정도로 고된 일이었다. 중종 시대에는 일이 너무 힘든 탓에 무단결근을 하는 요리사들이 늘어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수라간 궁녀들은 체력상의 한계 때문에 숙수들을 보조하는 역할에 그쳤다. 「세종실록」에는 출퇴근을 하는 수라간 사람들에게 출입증을 발급한 기록이 있다. 남자는 388명, 여자는 12명이었다. 「경국대전」 역시 수라간 남녀의 비율은 14 대 1로 명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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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배설 장군은 거북선을 불태웠을까?
영화 ‘명량’에서 배설 장군은 왜적 다음으로 악한 인물로 등장했다. 1597년 명량해전 직전 왜군과 내통하며 이순신 장군 암살을 시도하고 거북선을 불태운 뒤 배를 타고 도망치다 이순신 장군의 수하 안위가 쏜 화살에 숨진 것으로 그려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 속 배설 장군의 행동은 상당 부분 사실이 아니다. 배설 장군의 후손들은 이런 설정이 역사적 사실과 달라 고인의 명예가 훼손됐다며 김한민 감독과 영화 관계자들을 고소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실제 배설 장군은 어떤 인물일까. 1583년 별시무과에 급제한 그는 임진왜란에 참전했다. 「선조실록」에는 그가 명량해전이 있기 며칠 전 병을 치료하겠다며 이순신 장군의 허락을 받고 뭍에 내렸다가 도주한 뒤 붙잡혀 참수당했다는 기록이 있다. 명량해전 이전에 군영을 이탈했던 것은 사실이나 영화에서처럼 반역죄를 저지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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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왕과 신하가 독대를 하다니!
사극에서는 왕이 신하와 독대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이는 보기보다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조선 시대에는 사관을 두어 최고 권력자인 국왕의 말과 행동을 빠짐없이 기록했다. 「왕조실록」을 쓰는 사서나 승정원 일기를 쓰는 주서, 이 두 사람 가운데 적어도 한 사람이 곁에 있지 않으면 왕은 누구와도 대화할 수 없었다. 왕의 언동은 낱낱이 기록으로 남았다. 그런데 정작 왕 자신은 그 기록을 절대 볼 수 없었다. 따라서 사관의 객관성이나 공정성이 유지됐다. 임금과 신하가 사관 없이 단둘이 만나는 독대가 금기시됐지만 전혀 없지는 않았다. 조선의 왕들은 종종 독대를 시도했다. 효종과 송시열의 ‘기해독대’와 숙종과 이이명의 ‘정유독대’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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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조선판 로미오와 줄리엣은 없다
정치적 숙적이었던 수양대군과 김종서의 두 자녀, 이세령과 김승유의 사랑을 다룬 KBS-2TV ‘공주의 남자’는 ‘조선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 불리며 시청자들의 가슴을 절절하게 만들었다. 이는 설화집 「금계필담」에 등장하는 내용을 토대로 각색한 작품이다. 「금계필담」에 따르면 수양대군에게는 계유정난에 반발하다 쫓겨난 공주가 있다고 전해진다. 공주는 쫓겨난 뒤 지리산 자락에서 한 남자를 만나 혼례를 치르고 살았는데, 이 남자가 김종서의 친손자라는 것. 당연히 허구다. 조선시대 왕실 족보인 「선원계보기략」에 세조의 딸은 ’의숙공주’ 한 명으로 기록돼 있다. 즉 세령의 존재는 나오지 않는다. 김종서는 실제로 5남(서자 2명)을 두었으며 이 중에 셋째의 이름이 김승유다. 하지만 계유정난 당시 김승유는 이미 혼인을 한 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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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육룡이 나르샤’, 반은 진실 반은 허구
SBS-TV ‘육룡이 나르샤’는 태조 이성계와 정도전, 이방원 등 조선을 건국하는 데 앞장섰던 인물들을 그린다. 독특한 드라마 제목은 세종 때 편찬된 서사시인 ‘용비어천가’에서 따왔다. 목조에서 태종에 이르는 여섯 대의 행적을 노래한 작품으로, 여기서 말하는 ‘육룡’은 목조(이안사), 익조(이행리), 도조(이춘), 환조(이자춘), 태조(이성계), 태종(이방원)을 뜻한다. 드라마에서는 조선 건국에 영향을 미친 ‘육룡’에 해당하는 인물을 이성계, 정도전, 이방원, 무휼, 이방지, 분이로 그리고 있다. 이 중 무휼, 이방지, 분이는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탄생한 가상의 인물이다. 또 고려 말의 권력자로 알려진 이인임의 이름은 ‘이인겸’으로 바뀌었다. 제작진은 상상력을 극대화시켜 창작의 자유를 최대한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밝혔다. 후손들에 의해 종종 제기되는 명예훼손 등의 송사에 휘말리지 않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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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정명공주는 노예였다?
지난 9월 막을 내린 MBC-TV ‘화정’은 고귀한 신분인 공주로 태어났으나 권력 투쟁 속에서 죽은 사람으로 위장한 채 살아가는 정명공주의 삶을 다뤘다. 극 초반에는 노예로 신분이 전락해 일본 유황광산에서 재투성이가 된 공주의 모습이 등장했다. 배경은 이러하다. 유일한 적통이었던 정명공주는 서자 출신 광해군을 왕위에 두려는 대북파의 계략으로 인해 정쟁에 휘말린다. 목숨이 위험해지자 가까스로 궁 밖으로 도망쳐 배에 오른 그녀는 일본의 노예로 끌려가 악착같이 생을 이어간다. 그러나 실제 역사 속 정명공주는 일본에서 노예로 산 적이 없다. 정명공주는 1603년 선조와 인목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딸로, 배다른 오빠인 광해군이 왕위에 오른 뒤 어머니인 인목대비와 함께 폐서인(신분과 지위를 잃고 서인으로 강등된 사람)이 됐지만 나라 밖을 떠난 적은 없다. 그녀는 서궁에 유폐된 동안 ‘화정’을 비롯한 많은 서예 작품을 썼다. 하지만 인조반정 후 공주의 자리를 되찾고 호사를 누리며 83세까지 장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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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유의태는 허준의 스승이 아니다!
허준이 나오는 드라마에는 스승 유의태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는 허준에게 의술을 가르쳐 어의에 이르게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는 실존 인물이 아니다. 허준이 유의태로부터 의술을 배웠다는 사실은 어느 문헌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유의태’란 인물은 어떻게 등장하게 된 것일까? 바로 이은성 작가의 「동의보감」 때문이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가 큰 인기를 얻자 가공의 인물 유의태가 진주 유씨 가문의 족보에 오르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유의태는 숙종 때 어의를 지낸 의원인 유이태 선생에서 파생한 이름이다. 하지만 허준보다 100여 년 후에 태어난 인물로 둘은 동시대를 살지 않았다.
Tip 주목할 역사 속 숨은 인물들
요즘 영화 ‘사도’로 인해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도 덩달아 주목받고 있습니다. 정조가 왕이 된 직후 시골 유생들이 상소를 합니다.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원수를 갚아야 하지 않겠냐고요. 그런데 정조는 상소를 올린 사람들을 사형시켜버립니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 건 곧 할아버지(영조)와 대립해야 하는 것이었고, 왕조의 정통성 문제와도 연결되기 때문이었죠. 그는 개인의 사적인 복수보다 국가의 정당성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이는 현재 국정교과서와 관련한 현 정부의 태도와도 연결해볼 수 있습니다. 근대 인물이었던 최선익도 조명해봤으면 합니다. 부잣집 양자로 큰 재산을 물려받은 그는 19세 때 조선중앙일보를 사들이는 데 거액을 냈고, 실질적 사주로 활동했습니다. 한국 근대 언론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입니다.
-전우용(사학자)
14세 때 남장을 하고 조선 시대 여성들에게는 금기시된 여행을 단행한 김금원에 대해 한번 찾아보세요. 금강산, 관동팔경 등을 유람하고 여행 기록서 「호동서락기」를 남겼습니다. 그녀는 또 당대의 내로라하는 시인이나 학자들의 작품과 겨룰 만큼 시를 잘 짓기로 유명한 기생이었습니다. 같은 처지의 여성들끼리 ‘삼오정시사’라는 문단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여성 항일 독립운동가인 남자현도 주목해볼 만합니다. 영화 ‘암살’에서 배우 전지현이 맡았던 역할이기도 하죠. 그녀는 “독립은 정신으로 이루어진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아직 어떤 면에서 독립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쌀을 수탈당한 것을 ‘수출’이라고 하고, 위안부들이 돈 때문에 자발적으로 일했다고 하고,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말한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임해리 작가(「사임당」, 「우리 역사 속 못 말리는 여자들」 등 집필)
태종 시대의 사관인 민인생은 끈질기게 따라붙으며 잘잘못을 기록해대는 사관이었습니다. 401년 태종이 ‘사관 금족령’을 내렸을 때도 그는 “정사를 논하는 편전에 사관이 들어오지 못하면 어찌 기록한단 말입니까”라고 대꾸했습니다. 특정 인물보다는 ‘사관’을 조명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국정교과서 논란과 관련해 수많은 이야기가 나오는 요즘, 새삼 역사가의 자세라는 점을 되새기게 됩니다. 당연히 과거의 역사가 좋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죠. 바람직하지 않은 역사도 배워서 미래에 다시 반복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이것은 가학사관이 아니라 ‘반면교사’입니다. 그래서 역사가, 즉 사관들이 목숨을 걸고 사필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기환 경향신문 논설위원(팟캐스트 ‘흔적의 역사’ 진행)
■글 / 노도현 기자 ■사진 제공 / 시네마서비스, CJ엔터테인먼트, KBS, MBC,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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