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달팽이는 태어날 때부터 집을 등에 짊어지고 다닌다. 그래서 그는 먹이가 풍부한 곳을 옮겨 다니면서 살아간다. 집이 등에 붙어있으니까 적으로부터 안전하게 몸을 지킬 수 있고, 가고 싶은 데서 안락하고 편안하게 살고 있으니까 자신이 축복을 받은 달팽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집이 등에 붙어있으니까 무겁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필요악이라고 생각했다. 집이 없다면 행복을 누리는 것을 불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먹이를 찾아 낯선 곳에 갔다가 경악할만한 사건을 경험한다. 집이 없이 다니는 민달팽이를 만났기 때문이다. “아니, 어떻게 집이 없이 다닐 수 있지? 적으로부터 안전하게 몸을 지킬 수도 없고, 안심하고 잠을 잘 수도 없을 텐데 말이지?” 그래서 그는 민달팽이에게 가서 자신의 궁금증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민달팽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하였다. “야, 움직일 때마다 끙끙거리며 무거운 집을 짊어지고 다니는 바보가 어디 있냐? 나는 집이 없어도 안전하게 살아가는 법을 익혔으니까, 그런 걱정하지마라. 집이 있다고 다른 동물에게 잡아먹히지 않는다고? 지나가던 개가 배꼽을 잡고 웃을 일이다.ㅋㅋ”
당신이 생각하는 집은 바로 교회이다. 교회에 붙어있어야 안심하고 천국에 갈수 있으며, 악한 영으로부터 생명과 영혼을 사냥당하지 않으며 이 땅에서 평안하고 형통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교회를 다니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오홋, 그런가? 그런 말투는 그동안 교회에서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온 얘길 일 것이다. 그래서 교회 바깥에는 구원이 없다는 말이 금과옥조처럼 통용되고, 교회를 떠나면 지옥에 금세 떨어질 것처럼 잔뜩 겁을 주며 말한다. 그래서 주일성수를 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이 기정사실화되어 있다.
물론 필자가 교회중심의 신앙생활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교회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교회가 성경에서 얘기하는 교회인가, 성경을 샅샅이 뒤져가며 살펴보라는 것이다. 필자가 입만 열면 말하듯이, 교회란 십자가가 높이 걸려있으며 현관에 소속교단과 교회이름이 걸려있는 종교건물이 아니다. 그러나 목회자들은 입만 열면 교회에 모이기를 힘쓰라, 교회에서 시행하는 예배의식에 참석하고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해야 한다. 또한 교회봉사를 열심히 해야 온전한 믿음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다. 덧붙여서 목회자는 하나님의 대언자이므로, 목사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러나 목회자들이 말하는 주일은 일요일이 아니라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크고 두려운 날이며, 사도신경으로 시작해서 축도로 마치는 예배의식을 시행하라는 말은 성경에 언급조차 없다. 필자의 주장은, 그러한 신앙행위와 예배의식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명령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신앙행위를 하지 않으면 지옥에라도 떨어질 듯이 말하는 목회자들의 속내는 무엇일까? 그들은 틈만 나면 교인들을 교회에 붙잡아 놓고 갖가지 예배의식에 참석하고 희생적인 신앙행위로 파김치로 만들고 있다. 목회자들이 성경에도 없는 신앙행위를 고집하는 목적이 무엇일까? 목회성공을 이루고자 싶어 하는, 자신들의 탐욕과 명예를 채우고 싶어서가 아니가? 그러나 아무도 필자의 말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인정하기는커녕 이단이라고 몰아세울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는 헬라어 ‘에클레시아’를 번역한 말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말은 기독교인이 모여 있는 종교건물이 아니라, 종교적인 뜻이 가미되지 않는 무리, 공동체라는 뜻일 뿐이다. 그래서 교회라는 단어인 ‘에클레시아’를 성경에서 찾아보았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있는 동안 은으로 아데미의 신상모형을 만드는 은장색인 데메드리오라는 사람으로부터 공격을 받은 사건이 있다. 그는 자신의 직업이 위태로워질 것을 염려하여 사람들을 모아놓고 불법소요사건을 일으켜서, 바울과 동행하던 사람인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서 극장에 잡아놓고 집단린치를 가하였다. 그때 에베소시의 서기장이 이 사건을 마무리하고 불법집회를 해산시키고 있다. 그래서 이 사건을 기록한 헬라어 성경을 옮겨보았다.
에이 데(and if) 티(anything) 페라이테로(further) 에피제테이테(you seek), 엔 (in)테(the) 엔노모(lawful) 에클레시아(assembly) 이피뤼데세타이(it will be settled).(행19:39)
카이(and) 타우타(these things) 에이폰(having said) 아페뤼센(he dismisses) 덴(the) 에클레시안(assembly).(행19:41)
이의 한글번역은, ‘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면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정할지라’(행19:39), ‘이에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니라’(행19:41)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교회라고 알고 있는 헬라어 ‘에클레시아’가 두 번이나 쓰이고 있다. 그러나 한글성경은 교회가 아니라, ‘민회’와 ‘모임’으로 번역되었으며, 영어번역은 죄다 집회라는 뜻인 assembly이다. 그렇다면 왜 여기에서 ‘에클레시아’가 교회라고 번역되지 않았는가? 이들은 기독교인이 아니라 우상을 섬기는 자들의 모임이었기 때문이다. 한글성경에는 헬라어 ‘에클레시아라’는 말이 교회라고 죄다 번역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의심하지 않고, 작금의 우리네 교회를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로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원문성경에는 ‘에클레시아’가 우리가 생각하는 교회라고 말한 적이 없다. 그 말은 단지 종교적인 색체가 전혀 없는 모임, 공동체, 집회라는 말일 뿐이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1:24)
예수님이 말하시는 교회는 종교건물이 아니라, ‘내 교회’이며, 바울이 말하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이룬 교회’이다. 이 말의 뜻은 그냥 교회가 아니라, 예수님의 몸으로 세운 교회, 예수님의 교회라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말하는 공동체는 무엇인가? 예수님이 들어가 있는 자녀들의 모임이고, 예수님의 살과 피를 나눈 무리들이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에클레시아는)는 교회건물소속의 교인들을 예수님과 동일시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승천하셔서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자 성령이시다. 즉 성령이 내주하셔서 성령이 내주하시고 인도하시는 자녀들의 공동체가 바로 성경이 말하는 교회인 셈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들이 입만 열면 말하는, 교회라는 말에 더 이상 속아 넘어가지 말라. 교회가 죄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라면, 왜 수많은 교회가 문을 닫고 있는가? 교회건물이 아니라, 소속교인들에게 성령의 증거와 능력과 열매가 없는 곳은 더 이상 교회가 아니다. 그러므로 거짓 말씀을 앞세우며 탐욕을 채우려는 삯꾼목자들에게 잡혀있다면, 더 이상 천국은 당신의 몫이 아니다.
출처 : 다음카페 크리스천 영성학교, 글쓴이 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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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교회의 진정한 소요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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