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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규완 신부 |
지난달 28일에는 로마 성 베드로 광장 옆길에 특별한 벽화가 등장했습니다. 주먹을 불끈 쥔 오른손을 앞으로 힘차게 뻗으며 교황 고유의 흰 복장을 휘날리는 마치 슈퍼맨 같은 모습의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그림이었습니다. 왼손으로는 가방 하나를 움켜쥐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발로레스”라는 글이 선명합니다. “가치들”이라는 라틴어입니다.
어떤 신문의 해설이 아니더라도 “세상의 힘없고 가난한 이들, 난민과 노숙인들, 전쟁터의 다치고 떠도는 아이들, 그리고 수많은 소외된 이들의 소중한 ”가치들“을 지키고자 호소하시는 교황님을 극적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그들이 남이 아니라 함께해야 할 형제 · 자매임을 외치고 계십니다.
아시다시피 한국 천주교 사제들도 프란치스코 교황 훨씬 전부터 이 같은 증거의 삶을 살아오고 있습니다. 유신 시절 유신 철폐를 꾸준히 기원해왔고 전두환 정권 때도 광주 희생자들을 위한 기도모임을 바로 이곳 남동성당에서 계속해 왔으며 전두환 정권 말에는 체육관 선거를 철폐하고 새 민주헌법을 촉구하는 전국 연쇄 단식기도를 벌였습니다. 또 박종철 사건을 폭로하여 민주화의 돌파구를 마련하였습니다. 2000년대 이르러 삼성떡값 시비에도 함께했습니다.
이명박 정권 때는 4대강 훼손을 막고자 불자들과 함께 천릿길을 삼보일배로 봉헌하였으며 용산 참사 희생자들과 그 유족들을 위해 기도해왔고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화 저지를 기원하며 평화의 섬 유지를 끊이지 않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쌍용차 해고와 희생자들을 위해 정기 미사를 거행해 왔고 밀양 송전탑 주민들과도 애환을 나누고 있습니다.
교회는 울타리 너머 ‘사회적 봉사’로 초대받고 있다
세상이 우리를 그렇게 불러내고 있습니다. 아직도 사목의 범주를 교회 울타리 안에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계심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는 세례 받은 신자뿐아니라 하느님 모습으로 창조된 세상 모든 사람을 사목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강력한 요청을 받고 있습니다.
성경 창세기는 하느님께서 사람을 하느님 모습 따라 창조하셨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창조된 한정성에도 불구하고 자유의지를 심어 주시어 선을 행하되 자유롭게 실천할 수 있도록 배려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선을 행하고 악은 피하라’는 양심의 소리를 소중히 여겨오고 있습니다. 자유의지에는 필연적으로 책임성이 따르게 되어 욕망 추구에서 오는 한계에 부딪히게 되고 불가피하게 고통과 고뇌에 시달리게 됩니다. 하느님 모습을 닮아가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공동책임의 세계를 터득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당신 친아들을 보내시어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 회개와 용서와 사랑을 새롭게 여겨 주셨습니다.
회개와 용서와 사랑을 실천하는 데는 인종의 구분이나 빈부귀천의 차이도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세상에 퍼져나갔고 이를 두고 우리 그리스도교는 복음화라고 합니다.
복음화는 시대나 장소에도 구애를 받지 않습니다. 바로 이 사실 때문에 교회는 고유한 종교적 봉사에 우선 함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사회적 봉사라는 복음화를 재촉 받고 있습니다. 한없이 함께함을 의미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교회는 자체 틀 안에 안주하지 말고 흙을 묻히고 상처를 입더라도 세상에 투신해야 한다고 강조하시고 몸소 실천해 보이십니다. 함께함의 신비를 보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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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일 오후 광주 남동 5.18기념성당에서 봉헌된 ‘박근혜 사퇴, 이명박 구속 촉구를 위한 시국미사’에 참석한 신자들이 기도하고 있다. ⓒ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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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침묵이 국가기관 선거 개입 소극적 수사로 이어져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제도 중에서 가장 선호하는 제도는 무엇이겠습니까. 민주주의라는 정치제도 아닙니까? 자유로운 논의와 자유로운 선택이 핵심인 민주주의가 하느님의 모습을 닮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친근한 제도로 여겨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충분한 토의 과정이 있고 자유로운 표결 과정을 거쳐서 질서 있게 일들을 처리하고 있지요. 함께 말이지요.
이런 일에 일선에서 수고할 사람들을 선발하는 데는 공동체 일원이 모두 참여하는 비공개 자유투표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어떤 제한이나 강압이 허용되지 않지요. 그런 까닭에 투표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어떤 부당한 개입도 엄하게 다스리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교회는 일찍부터 선거와 투표 행위를 소중히 여겨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투표 행사는 세상과 단절된 듯이 보이는 봉쇄수도원, 관상수도회 수도자들도 세상 투표소에 나와 빠짐없이 수행하도록 강조하고 있습니다. 함께 참여하고자 함입니다.
투표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대선 때 국정원을 비롯하여 중요 국가기관이 부정하게 선거에 개입했음이 밝혀졌고, 이 때문에 작년 한 해를 초긴장 가운데 보내야 했습니다. 공동선이 공공기관에 의해 침해당한 상황은 법적인 절차에 앞서 그 규모와 과정을 여과 없이 단속해야 하거늘 책임 있는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으면서 재판 결과에 따라 추궁하겠다고 하고 있으니 도난당한 주권을 어디에 호소해야 합니까.
공동선이 심대하게 침해당했어도 책임 있는 지도자가 전혀 무관한 것처럼 처신하고 있기에 선을 보호해야 할 교회가 똑같이 침묵으로 동조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함께할 기회를 다시 찾아 나서야 한다는 외침입니다.
위중한 현실 앞에 대통령의 철저한 침묵은 사건 수사의 소극성을 시사하기에 충분하다 할진대 이런 사태를 그냥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 국민은 구경꾼으로 전락해도 되겠습니까. 이것이 정녕 현 정권이 노리는 일입니까. 사람들이 지치고 허탈하여 본의 아니게 망각의 늪에 파묻히면서 자포자기 속에 산화되어 버리기를 바라는 것이 박근혜 정권의 참 모습입니까.
아무리 고달프고 억울해도 사회의 풍토가 신뢰할만하고 성실함에는 끝내 공정함으로 화답 받으리라 확신한다면 살아남을 가치가 있고 참아낼 만하다고 스스로 위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건전한 사회 일원으로 함께할 수 있는 희망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을 어떠합니까.
나라를 운영하는 그 누구도 국민의 여망에 작은 희망의 빛을 비춰주는 자가 없으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국민이 죄다 바보가 되어 버리면 속 시원하겠습니까. 부정을 지적하고 철저한 규명을 요구하는 일도 유행병처럼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 지리라고 가볍게 여기고 있는 듯합니다. 한마디로 우리에게는 행정의 수반인 대통령의 존재감을 전혀 느끼지 못한 지난 한해였고 지금도 진행형입니다. 함께하고 싶어 외쳐대는 소리에 귀 막고 있는 이가 과연 누구입니까.
오늘 우리가 국정원 등을 다시 회고하고 새롭게 고발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들이 미워서가 아닙니다. 불공정과 불신의 늪이 우리를 온통 삼켜버리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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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일 오후 광주 남동 5.18기념성당에서 봉헌된 ‘박근혜 사퇴, 이명박 구속 촉구를 위한 시국미사’에 참석한 사제들이 기도하고 있다. ⓒ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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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직원 댓글 의혹부터 이석기 의원 내란 음모 사건까지
이제 차례차례 짚어봅시다. 선입감을 버리고 들으시기 바랍니다. 제일 먼저 국정원 여직원 사건입니다. 선거 개입 댓글 혐의로 추궁을 받고 있을 때 후보였던 박근혜 씨는 연약한 여인의 인권을 강력한 표현으로 비호하면서 감싸고 있었습니다. 그 바쁜 선거운동 중에 이런 일에까지 마음 쓸 여유를 보이다니 의아스러웠습니다.
그러나 그가 국정원 직원이고 재판 중에 국정원으로부터 변호사 비용까지 지원을 받았다는 소식 앞에서는 아무런 관심 표명도 없었습니다. 국정원은 구차하게 개인적인 일탈이라고 말을 돌리면서도 그 여인의 신분 노출은 지나칠 정도로 막고 있었습니다. 시키지도 않은 짓을 자기 마음대로 하여 국정원에 큰 상처를 입혔으면 그 즉시 파면하고 내치면 될 일일 텐데 그처럼 감싸고 도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의혹은 더 커질 따름입니다. 그 여인의 인권에 민감하게 개입했던 때와는 너무도 다르게 대통령의 존재감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어떤 표현이라도 있어야 하는 게 아닙니까.
다음으로는 서해안 북방한계선 관련의 대화록 사건입니다. 선거운동 때 마음껏 이용하고 나서 나중에는 길거리에 날아다니는 광고지 수준으로 폐기해 버리는 집단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박근혜 후보도 NLL 발언을 하면서 야당 후보를 신랄하게 공격하였는데 광고지 내용에 그렇게 자신감을 가졌단 말입니까.
국정원장에 오른 남재준은 국정원 선거부정 개입 혐의가 점점 짙어지자 엉뚱한 짓을 저지릅니다. 일급 비밀문서로 보존하고 있던 대화록을 만천하에 공개하고 맙니다. 당장 파면, 구속감이지요. 그는 뻔뻔스럽게 이렇게 변명했습니다.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내용이 공개된 마당에 더 이상 비밀문서로서의 가치가 상실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전 국정원장과 혐의를 나누어 갖겠다는 감동할만한 선행으로 상을 줄까요.
나중에 밝혀진 일이지만 국가기록원에 등재되지 않았을 뿐이지 그것이 중대한 사초일수도 있다는 판단을 대통령과 국정원장은 하지 못했단 말입니까. 목적 달성을 위해서 이미 다 써먹었으니 그것이 소중하게 보일 리가 없었겠지요.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못된 짓도 불사한다는 속셈을 스스로 폭로한 셈이지요.
그들의 속셈을 따로 있었습니다. 공개된 대화록을 보고 국민들이 크게 분노하며 일시에 분위기를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전환시킬 수 있다고 계산했을 테지만 어쩌면 좋습니까. 반대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숨김없는 모습에 국민은 오히려 공감하는 국면이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박 대통령이 알았든 몰랐든 최종 책임은 대통령에게 돌아가게 되어 있고 납득할만한 언급이 당연히 나와야 함에도 함구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만 했습니다. “나는 선거에서 국정원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은 일이 없다.”
이 말은 한 인간의 본능적, 자기방어적 구차한 표명일 수는 있어도 행정 수반으로서의 책임 있는 언급이 될 수 없음을 진정 모른단 말입니까. 우리는 여기서도 국민의 심정을 달래주는 대통령의 존재감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침착하면서도 가련한 국민입니다. 말썽의 중심인 대화록을 광고지 찌라시 수준으로 폐기해버리면 모든 성가신 문제가 사라지리라고 믿었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또 하나의 사기극을 확인할 뿐입니다.
다음으로 넘어 갑시다. 작년 5·18 기념 때에 일어난 일입니다. 이른바 ‘일베’라고 하는 소식통을 이용하여 난무한 5·18 훼손과 부정 발언들입니다. 입에 담지 못할 욕된 발언은 놔두고라도 북한 군인이 개입했다고 종편까지도 노골적으로 거론하고 있어도 나라를 책임진 기관이나 어떤 사람도 반박, 해명하는 것을 우리는 듣지 못했습니다. 시민들이 아픔을 함께 나누고 있을 때 나라에서는 폭도로 몰았는데 지금도 그렇습니까.
선거 부정 의혹 때문에 속상한 마당에 광주와 5·18이 상처받고 분노하는 모습을 즐기겠다는 심사가 아니라면 그렇듯이 침묵으로 일관할 수 없는 일이지요. 광주와 5·18이 대한민국 땅에서 완전히 소외되고 욕먹어도 아무도 마음 써주는 사람 없는 것이 이 나라의 현주소입니다. 광주와 호남은 이중의 소외를 감수해야 합니다. 여기서도 대통령의 존재감마저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한심한 일이지요.
작년 삼복더위 때로 넘어갑시다. 8월에 가까스로 국정원 국정조사가 열렸지요. 우리는 하나의 쇼를 구경하는 것 같았습니다. 국정원과 경찰에 대한 옹호와 감싸기 장소가 되어 버렸지요. 야당의 역부족을 나무랄 수만도 없었습니다. 허탈한 가운데서도 국정원과 경찰에 면죄부를 줄 어떤 명분도 찾지 못한 것으로 우리는 만족해야 했습니다.
숨을 돌릴 겨를도 없이 마치 복병에 기습을 당하는 듯한 사태가 이어졌습니다. 이석기 의원과 통합진보당의 음모 사건이지요. 지금 재판이 진행되고 있으나 지난 8월의 수사과정은 너무 뜻밖이었고 황당하기도 했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사건의 내용보다 그 과정이 석연치 않아 보입니다.
국정원 발표에 따르면 사건의 발단이 작년 6월 통진당 집회 때의 대화 내용이었고 소란을 피우면서 압수수색을 감행하던 8월까지 별다른 위급상황이 발생한 것도 아닌데 국정조사가 싱겁게 끝날 무렵 난데없이 강압수사를 펼친 겁니다. 상식적으로 볼 때 6월 집회 내용을 들고 나와 하필 8월 그 시점을 택했느냐는 것이 심히 궁금할 뿐입니다. 수구 종편들이 때를 만난 듯이 수선을 피우는 일 말고는 대부분의 시민들은 차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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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일 오후 광주 남동 5.18기념성당에서 ‘박근혜 사퇴, 이명박 구속 촉구를 위한 시국미사’가 봉헌됐다. ⓒ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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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는 ‘개인 일탈 정권’인가 넘치고 상습적인 개인 일탈.. 집단 일탈로 봐야
이런 가운데도 채동욱 검찰 팀은 국정원 수사에 비교적 동요 없이 임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선거 부정 개입의 수사를 약화시키고 방해하려던 온갖 시도에도 별 성과를 얻지 못했다고 결론지었던지 초조해진 박근혜 정권은 초강수를 들이대고 맙니다. 채동욱 검찰총장과 관련된 수사팀에 작전이 시작된 것입니다.
얼마나 속이 탔으면 사상 처음으로 법무부 감찰권까지 발동하여 채동욱 수사팀을 박살냈겠습니까. 다시 거론하기에도 민망한 사생활을 온갖 묘수를 동원하여 들춰내고 찍어내는 과정에는 마침내 청와대까지 관여된 사실이 드러났지만 이번에도 개인 일탈 운운하고 있지 않습니까. 웬 일탈이 이리도 많습니까. 우리 모두가 일탈의 무리에 섞여버린 착각이 듭니다. 개인 일탈이 국정원으로부터 시작하여 국방부, 보훈처까지 번져가더니 결국 청와대까지 뚫고 들어오고 말았습니다. 청와대, 국정원 등 국가 중추기관들이 몽땅 개인 일탈로 유린당한 꼴이 되었으니 박근혜 정권을 개인 일탈 정권으로 명칭을 바꾸어야 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개인 일탈이 넘치면 상습화되고 더 나아가 통상화되었다는 말일 터이니 아무리 부정해도 집단 일탈로 귀결됩니다. 정부 집단이 조직적으로 일탈했다고 해도 할 말이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나라가 이 지경에 이르렀어도 대통령을 비롯하여 지도자들한테서 아무런 사과도 들을 수 없으니 도대체 국민은 당신들의 장난감입니까. 당신들이 마음대로 놀려대도 좋은 노리갯감입니까.
‘나는 아무런 도움도 받은 일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대통령으로서의 책임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는 현실을 국민이 더 이상 참아내기에는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함께 잘 살아 보고자 하는 의욕에 찬물을 끼얹어 버린 꼴입니다. 전교조와 노동조합 문제도 심각하기는 마찬가지 지만 오늘 여기서는 생략하겠습니다.
그러나 역사 교과서에 대해서는 그냥 넘어갈 수가 없네요. 이명박 정권이 국토의 4대강을 망쳐놓더니 박근혜 정권은 역사의 강을 함부로 손보려 합니다. 여러분은 강과 역사가 닮아 있다고 생각해 본 일이 있습니까. 다양한 강의 흐름과 주변 환경이 장구한 세월의 작품이듯이 역사의 강도 인간과 관계된 사연들이 복잡하게 얽힌 결과물입니다. 획일적인 접근은 강이나 역사 모두를 일정한 틀에 가두려는 위험한 시도임을 우리 모두 인지해야 합니다.
건전한 견제가 있는 다양한 역사 서술이 소수자의 독선적 획일화보다 자연스러우며 덜 위험하고 시민 정서에 유화적입니다. 국정교과서는 항상 독재자들을 유혹해 왔고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는 불필요한 보와 똑같습니다.
‘선거 무효 소송인단’, 거대한 증거자로 나타날 것
선거와 관련해서 박근혜 씨가 대통령으로서의 존재감에 자신을 잃고 있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선거 무효 소송인단이 작성한 <제18대 대통령 부정선거 백서>에 따르면 선관위가 투개표 과정에 부정하게 개입한 단서가 수없이 발견되어 선거 소송인단은 2013년 1월 4일자로 박근혜 씨에 대한 ‘대통령 직무정지 집행 가처분’ 신청과 함께 대법원에 소를 제기해 놓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백서’ 내용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우선 수개표를 소홀히 한 전자개표는 선거법에 결정적으로 저촉된다는 사실과, 다음으로 지난 대선 때 불법적인 투개표가 있었음을 밝히고 있고, 가장 놀라운 일은 지난 대선 하루 전인 12월 18일에 이미 개표 결과 조작이 선관위 전산 서버에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선관위가 자발적으로 그리 했을까요.
선거에 관한 소송은 우선하여 신속히 재판해야 하고 180일 내에 처리해야 하는 엄격한 규정이 있음에도 400일이 넘도록 손을 놓고 있어 법조항을 사문화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법대로’를 외치고 있는 박근혜 씨는 속수무책으로 엎드려 있을 수밖에 없는 모양입니다. 선거법대로 재판을 했다면 이미 어떤 결판이 나왔을 텐데 대법원은 재판 진행을 뭉개고 있으니 과연 이 나라가 그들이 그처럼 강조하는 법치국가가 맞는지 한숨이 절로 납니다. 선거 소송인단은 오직 법대로 소송을 집행하기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선거 무효 소송인단’이 지금은 ‘작은 거인’처럼 느껴지지만 얼마 안 있으면 ‘거대한 증거자’로 등장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들과 함께하는 보람을 놓치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시급을 요하는 법 집행이 이유 없이 방치되고 있는 사태를 언제까지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지 관계 당국은 분명히 답해야 합니다.
시민의 의지 모아 대통령 ‘해임’하는 일만 남아
이제 우리는 숨죽이고 엎드려 있는 대통령을 기대하지 말고 당당히 국민 주권을 행사할 엄중한 책임을 통감해야 합니다. 특검만이 유일한 돌파구인 양 소란을 피우지만 이제부터는 구차하게 특검도 구걸하지 맙시다. 이 긴박한 시기에 온 국민이 뜻을 모아 역사적인 선택을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모두가 나서서 가짜 대통령을 국민의 이름으로 ‘해임’하자는 말입니다. 기회를 잃어버린 ‘자진하여 퇴진’하는 일도 이제는 사치스러운 상황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깨어있는 시민의 불같은 의지를 모아 ‘해임’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서글프고 몹시 마음이 아프지만 더 이상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기에 하느님께 용기를 청하면서 굳세게 나아갑시다. 하느님을 닮아 가려는 사람은 성실하고 정직합니다.
“주께서는 우리가 꾸준히 구하고 청하면 산도 옮길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느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당신 뜻대로 하소서. 아멘.”
정규완 신부 (토마스 아퀴나스) 광주대교구 원로사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첫댓글 국민이 불안해 하는 정권퇴진 운동 할께 아니라 인간의 생명을
파리목숨 만도 못하게 여기는 김정은 물러가라고나 하세요
천주교의 정치 참여로 신자가 급감하고 있어요 신자없는 교회
어떻게 할껏인가 대책이나 강구하세요
어쩌면 그렇게도 닮았는지...
민주당과 진보당의 주장과.........
주로 이런 한쪽 편향된 글만 골고루 모아들여서 펌하는 분별력이란???
다솜이님, 하느님께서 님에게 참 좋은 몫을 주셨다고 믿습니다.
골리앗과 싸우는 다윗처럼, 부정선거라는 골리앗과 맞서 싸울수 있는 용기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