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혈압이 어떻게 되시죠?”
흰색 가운을 입은 여자가 그에게 의자를 가리키며 물었다. 차체의 외관을 하얗게 칠한 버스는 밖에서 볼 때 보다 내부가 넓어 보였다. 오른쪽에는 간이침대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매트리스를 싸고 있는 흰색의 시트는 청결했다. 그가 질문에 답을 하기도 전에 여자는 그의 소매를 걷어 올리고 팔 위로 주크제의 맥압계를 감더니 공기를 송입하기 시작했다.
“139에 90이시네요. 좀 높은 편입니다만 정상이에요. 누우세요.”
여자가 뒤쪽을 향해 손짓했다. 그는 구김 없는 시트 위로 누웠다. 알코올 솜의 찬 기운이 팔 안쪽을 요란하게 휘젖고 다녔다. 노란색 고무줄로 위팔을 조이게 감더니, 조금 따끔합니다, 동시에 주사침이 몸속으로 들어왔다. 혈액은 순식간에 몸 밖으로 빠져나와 가는 관 속으로 흘렀다. 여자의 손놀림은 매우 능숙했다. 스스로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한번 끄덕거리고 고무줄을 풀더니 혈액이 흐르는 속도를 조절하고 바늘침의 각도를 조정하여 그 위로 반창고를 붙여 주었다. 투명한 수혈백은 그의 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반복하세요.”
일을 마친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버스는 뒷문이 없다. 입구가 유일한 출구였다. 헌혈하고 가세요, 여자들의 외침 소리가 짧게 열린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머리 위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버스 안은 다시 고요해졌다. 그는 혼자 왼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몇 번 눈을 깜박이더니 이내 감아버렸다.
여자의 이름은 양춘희라 했다. 그것이 본명인지 가명인지는 알 도리가 없다. 가명일 것이다. 그런 것이 중요하진 않았다. 기다림.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막연하나마 일상을 흘려보내는 힘이 된다. 때로는 그 막연함이 불안함에 자리를 내주어 불면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하지만.
“오래 기다리셨어요?”
양춘희는 고음의 발랄한 음성을 지니고 있었다. 몇 번의 전화 통화에서도 상대의 키가 클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상상해 보지 않았다. 백육십칠 센티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훌쩍한 키에 뽀얀 피부, 싱긋 웃을 때 보이는 좌우의 덧니가 인상적이었다.
그는 대답대신 미소를 지어 보이려 했다.
이호선 왕십리 역에서 내리셔서요, 사번 출구로 나와 직진하면 사 오십 미터 가량 앞에 유명한 커피숍이 있어요. 이름은 까먹어서 지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보시면 금방 아실 거에요. 그곳 이층에서는 맞은편 미니스탑이 보이구요. 거기서 기다리고 있을께요. 이틀 전 그녀는 수화기 저편에서 그에게 말했다. 그가 찾은 커피숍은 녹색의 유명한 로고가 둥글게 찍혀 있었다. 그러나 유명하지 않더라도 찾기가 까다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커피숍 이라고 할 만한 곳은 근처에 이 곳 뿐이었으닌깐. 이층에서 내려다보이는 편의점은 미니스탑이 아니라 엘지이십오였다. 맞은편이 아니라 옆 건물이었다. 편의점도 그곳 뿐 이었다. 약속 장소를 잘 못 찾진 않았을까 하는 걱정을 할 필요는 없었다.
“나오려는데 막 일이 생겼어요. 이곳저곳에 전화를 넣느라고 늦었네요.”
그의 빈 잔을 보았던지r그녀는 미안하다는 말 대신 우는 듯 웃는 표정으로 사과를 대신하고 있었다.
“커피 하시겠습니까? 제가 가져오겠습니다.”
여자는 조그마한 목소리로 고맙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여자에게 원하는 커피 이름을 묻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내딛던 걸음을 주춤했다. 이층으로 돌아서려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마저 일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커피를 마시는 동안 어느 곳에 시선을 두어야 할지 몰라 창 밖을 내려다보았다. 옆 건물 일층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엘지 이십오. 그의 고개가 갸웃했다. 기억에 의하면 이곳만이 엘지 이십오였다. 모두 지에스 이십오라고 상호명을 바꾸었는데 바뀌지 않은 것이 신기하게 생각되었다.
“맛있네요.”
여자의 눈이 반달모양이 되었다. 예쁜 미소였다
“모카라떼 입니다.”
아내는 설탕과 크림을 듬뿍 넣은 라떼 종류의 커피를 좋아했다. 단 것은 우울할 때 좋은 처방이야, 여자들은 단 것을 좋아해, 아내의 커피를 한 모금 마셔보고 인상을 찡그리던 그에게 은주가 던진 말이었다. 자기도 우울할 땐 달콤한 걸 먹어봐.
“사진보다 훨씬 잘 생기셨어요.”
여자의 말에 멋쩍어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진짜에요.“
그는 소리없이 웃었다. 칠일 전 양춘희는 정오에 맞추어 문자를 보내왔다. 점심 맛있게 드세요, 친근감을 주는 이모티콘이 하트 문양과 함께 휴대폰의 액정에 둥실 떠올랐다. 해가 기울자, 저녁은요, 물음표와 말줄임표를 적절히 섞으며 그에게 다가왔다. 문자음이 울릴 때마다 혹시 모를 아내의 소식을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번번이 상상으로만 끝이 났다. 아내는 오늘도 연락이 없었다.
“저는 어때요?”
“...... 미인이십니다.”
“사진과 좀 다르죠?”
“...... 예쁘신데요.”
첫 문자에서 여자는, 사진 한 장 만 보내주세요, 뜻밖의 청을 해 왔다. 그가 멈칫하며 답을 주지 못하고 있자 동일한 내용의 문자를 다시 보냈다. 최근에 찍은 사진이 없어서요, 손가락을 더듬거리자 그럼 지금 찍어서 보내주시면 되잖아요, 여자는 냉큼 말을 받았다. 휴대폰을 손에 쥔 채 머뭇거리며 그는 어색하게 정면에서 촬영 버튼을 눌렀다. 플래쉬가 터졌다. 액정속의 남자는 너무 무거워 보였다. 삭제 버튼을 눌렀다. 인상을 풀자, 치아를 드러내며 재 촬영을 했다. 잇몸이 과장되게 보인 이그러진 입이 짝짝이 눈과 함께 피카소의 초상화 같다. 주민등록증의 증명사진도 이보다는 나아보았다. 오빠는 사십오도 각도가 제일 나아, 코가 높잖아, 사진 찍을 때 정면으로 찍지 말어 제발, 다시 그는 오른손으로 휴대폰을 조금 높게 들고 사십오도쯤 되는 각도에서 버튼을 눌렀다. 이목구비 뚜렷한 그의 얼굴선이 액정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아내의 말이 옳았다. 그는 몇 초 동안 사진을 바라보다가 여자에게 사진을 전송했다. 그가 보낸 것은 휴대폰 바탕화면과 동일한 사진이었다. 이전에 아내가 찍어준 사진이다. 조금 전에 찍은 사십오 도 탑 각도의 사진은 아내의 번호로 전송했다. 은주의 휴대폰은 네 달째 전원이 끊겨 있었다.
머리 위로 문소리가 들렸다. 실외 공기가 누워있던 그의 얼굴과 드러난 팔에 함부로 와 닿았다. 주사바늘을 팔에서 빼내는 감촉에 그는 눈을 떴다.
“다 되셨어요.”
흰색의 가운을 입은 여자는 싱긋 웃으며 혈액이 담긴 비닐 팩을 들어보였다. 붉은 기운이 모이니 검은 색이 돌았다. 여자는 카스테라와 우유를 내밀며 적십자 마크가 찍힌 손수건도 한 장 주었다. 오른손으로 받아 들고 문을 향해 일어섰다. 핑, 현기증이 일었다. 표를 내고 싶지 않아 선 채로 정지해 있다가 드시고 가세요, 여자의 말을 뒤로 하고 버스 밖으로 나왔다. 시월의 바람은 선선했다. 차를 향하여 몇 발자국 걷다가 그는 불쑥 걸음을 멈추고 오던 곳을 향하여 되돌아 갔다. 채혈을 하던 여자가 무슨 일이냐고 눈으로 물었다.
“헌혈은 몇 가지 검사결과를 알 수 있죠?”
“각종 세균 바이러스의 감염 여부를 알 수 있어요. 간염 B,C 나 매독, 에이즈 같은 거요. 간 기능 검사도 가능하죠. 콜레스테롤이나 요소질소 검사를 해줍니다. 물론 혈액형 재검사는 기본이구요.” 여자는 싱긋 웃으며 답을 했다. 여자의 얼굴에서는 종내 미소가 가시질 않았다.
양춘희도 그 앞에서 내내 웃는 얼굴이었다. 여자들은 웃도록 만들어진 생물 같다고 그는 문득 생각했다. 여자의 미소는 남자에게 마취제 역할을 하곤 한다. 여자 스스로도 그것을 알고 있으리라. 아침마다 베시시한 웃음으로 현관 앞에서 그를 안아주던 아내의 모습에서 그는 전날의 불안감을 잊곤 했었다.
가게로 돌아가는 길에 핸드폰의 진동음이 가슴께에서 느껴졌다. 아빠 빨리와, 딸아이의 문자였다. 은아는 또래 아이들보다 빨리 크고 있었다. 동무들이 미처 소유하지 못한 휴대폰을 지니고 다녔고, 친구들이 부모의 것을 빌어 뒤에서 오락을 할 때 은아는 제 휴대폰으로 그에게 문자를 보냈다. 한손으로 핸들을 잡고 빈 손으로 휴대폰을 꺼내 단축 번호를 눌러 가게로 전화를 걸었다. 벨소리가 세 번을 넘지 않아 앳된 기집 아이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선 플라워입니다.”
상호 명을 대는 아이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는 잠시 말문이 막히곤 했다.
“아빠다.”
“아빠!”
은아는 그제서야 제 나이를 찾은 듯, 보통의 저학년 아이들이 그렇듯이, 여린 톤을 한 옥타브쯤 더 높여 그를 반기었다.
“손님은?”
그는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으레 묻곤 했다. 손님이 오면 먼저 아빠에게 전화를 걸기로 삼 개월 전부터 둘 사이에 약속이 되어 있었다.
“없었어. 아빤 어디야?”
“차 안이야”
“어디?”
지명을 대도 모를 터인데 아이는 꼭 한 번 더 자세히 물어왔다. 그는 어디쯤인가 흘끗 지나치며 보았던 지하철 역명을 기억나는 대로 말해 주었다. 이호선 전철 노선표를 은아는 용케도 잘 알고 있었다. 꽃집이 위치해 있는 합정까지 은주는 은아를 데리고 잠실에서부터 가끔씩 드나들곤 했었다.
“학원 갈 시간 까먹지 말고 나가.”
아홉 살 딸 아이는 휴대폰 외에도 소지하는 필수품이 한 가지 더 있었다. 열쇠 꾸러미. 집 열쇠와 가게 열쇠의 보조키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열쇠 고리의 작은 액자 안에는 세 식구의 얼굴도 함께 매달려 있었다. 은아가 학원으로 떠나기 전에 도착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도로의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다섯 시부터 시작 되는 바이얼린 레슨을 위해 가게 맞은 편 빵집 앞에서 정차하는 셔틀 버스를 타려면 네 시 반 에는 가게 문을 잠그고 상가를 벗어나야 했다. 서울은 평일에도 차가 많았고 한 낮에도 그 양은 줄지 않는 모양이었다. 다마스 짐칸에는 파키라, 소철, 고무나무, 홍콩야자, 금전수, 마지나타가 실려 있었다. 행운목과 페페는 옆자리에 놔두고 흔들리지 않게 안전띠로 고정해 두었다. 며칠 동안 오며 가며 눈으로 찾던 적십자 버스를 발견한 것은 다행이었다. 피를 뽑느니라 가늠했던 것보다 시간이 지체 되었다. 도로가 조금 열리자 그의 오른발이 저절로 가속 패달을 깊숙이 밟고 있었다.
“너 정말 왜이러니, 도대체 뭐가 문제야?”
“뭐가 문제냐고? 그걸 몰라서 물어?”
“......”
“도대체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해. 내가 바라는 게 그렇게 큰 거야? 나도 남들처럼 살고 싶다고. 더도 덜도 아니고 딱 남 들처럼만!. ”
“나도 마찬가지야. 다른 여자들처럼 평범한 여자랑 살고 싶어. 니가 평범하다고 생각해?”
“평범? 고지서가 삼 개월치가 쌓여 있는데 어떻게 하면 평범해질 수 있는 건데?”
“내가 놀아? 내가 놀면서 너한테 생활비 안주는 거야? 나야말로 죽고 싶은 심정이야. 니가 내 맘을 알어?”
“오빠 참 말 잘한다. 그러게 내가 뭐랬어? 그거 하지 말라고 그랬지? 안목도 없는 사람이 주식은 무슨 놈의 주식을 한답시고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정일 산업? 그딴 곳에 소쓰랍시고 돈을 박아 박긴! 오빠 바보 아니야, 바보같아 바보오. 바보도 상바보지. 등신같이, 친구들 말만 믿고, 오빠 친구들이 뭔데, 뭔데? 그 밥에 그 나물인걸. 소쓰같은 소리하네. 내가 아주 바보랑 사는 거 같아.”
“너 지금 그게 남편한테 하는 소리야?”
“남편? 애새끼, 마누라 하나 벌어먹여 살리지도 못하는 사람이 남편 같은 소리하고 앉아있네. 또 꼴에 남편 대접은 받고 싶은가 보지. 내가 뭐랬어, 정 그렇게 증권하고 싶으면 우량주에다 하라고 그랬지, 씨제이 봐바, 계속 오르잖아. 내가 뭐랬어, 거기다 넣자고 그랬지. 그렇게 사람 말을 안 들어요. 시덥지 않은 친구 말은 듣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떠드는 마누라 말은 안 들으면서 내가 뭐라 하는 소리는 듣기 싫은가보지? 가아, 가서 친구들하고 살어, 왜 못살어? 그렇게 친구들이 좋으면 친구들하고 살라닌깐!.”
가끔씩 아내와 함께 과천 농원을 다니곤 했다. 아내는 뿌리가 드러나 보이는 인삼팬더를 좋아했다. 인삼을 심어놓은 것 같다며 팬더의 무수한 작은 잎사귀가 마르지 않게 분무기로 틈틈이 물을 뿌려주는 일도 귀찮아하지 않았다. 처음 꽃가게를 시작하던 날, 농원에서 가져온 산세베리아를 내보이며 공기를 맑게 해준데, 아내는 나의 말에 해사하게 웃으며 열 평 남짓한 가게 사방으로 산세베리아를 세 그루씩 배치해 놓았다. 주식으로 적은 살림에 만만치 않은 돈을 잃고 겉돌고 있을 때 꽃가게를 제안한 것은 그의 친구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단짝이었던 친구는 대기업의 과장으로 출장가기를 밥 먹듯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고 몇 달 후엔 또 폴란드 출장을 떠나야 하는 처지였다. 친구의 꿈은 꽃가게 사장이었다. 친구를 알게 된 때부터 그도 들어 알고 있었지만 어쩌면 고등학교가 아니라 훨씬 이전부터 간직해온 것 인지도 모른다. 친구가 자금을 대겠다며 그에게 제안을 했을 때 그는 망설였다. 그는 꽃집을 꿈 꾼적이 꿈에서도 없었다. 그러나 아내는 좋아하였다. 가게라는 단어가 주는, 막연하긴 하나 안정적인 이미지를 아내는 반기는 것 인지도 몰랐다.
선 플라워는 비어 있었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배달 중입니다 연락 주십시오, 010 으로 시작하는 열한 개의 숫자가 적힌 푯말이 잠긴 유리문 위로 걸려 있었다. 열쇠 꾸러미를 가지고 다니는 것은 그도 마찬가지였다. 집의 열쇠와 보조키, 가게의 열쇠와 보조키, 조금 크기가 작은 가게의 중요 서랍 열쇠, 그리고 차키. 일상 속에서 잠궈야 할 것은 늘기만 했다.
가게 문을 활짝 열고 갇힌 공기를 환기 시키며 농원에서 가져온 화분을 끌차로 밀어 안으로 날랐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더라, 벽에 걸린 달력을 흘끔 쳐다보고 화장실로 향했다. 양동이와 물뿌리개로 물을 받아 출입구 왼편에 놓인 화분부터 물을 주기 시작했다. 파키라, 소철, 알로카리아, 폴리아시스, 고무나무나 만년금 클로톤 등의 대부분의 식물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뿌리를 흠뻑 적셔주면 되고, 산소를 뿜어내는 산세베리아나 돈을 불러들인다는 금전수는 물을 싫어하는 식물이므로 한 달에 한 번 정도면 충분하다. 반대로 물을 좋아하는 행운목이라든가 인삼팬더는 일 주일에 두어 번 정도 시원하게 주어야 하고, 숯분재는 숯 사이에 끼어있는 이끼가 마르지 않게 하루에도 몇 번씩 분무기로 이끼와 들어난 뿌리를 적셔주어야 했다.
“오빠, 이거 봐. 산세베리아가 색깔이 누래 지는 거 같어.”
“너 그거 또 물 줬구나. 그건 일주일에 한 번씩 주는 거 아니래두. 너 먹을 거 계속 먹이면 좋아? 배불러 죽겠는데 자꾸 먹이면 죽는다구. 왜 자꾸 까먹어어.”
아내는 화분에 물 주는 것을 좋아했다. 가끔씩은 혼자서도 들려 꽃집이 건조하면 쓰겠냐며 버석거리는 화분의 흙을 손가락으로 문질러보곤 모든 관상식물에 물을 흠뻑 주곤 했다. 아내의 배려에 누렇게 뜨다 죽어버린 산세베리아만 해도 몇 뿌리가 될 것이었다. 그가 치워버리기 전에 어쩌다가 먼저 보게 될 때면 아내는 눈가와 입가를 아래로 일 쎈티미터는 내려뜨리며 죽어가는 산세베리아의 명복을 빌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농원에 다녀 올 때마다 어김없이 또 가져오곤 했다. 은주가 가게에 오지 않게 되자 산세베리아가 죽는 일은 없었고 아내의 부지런한 광고와 권유로 이전처럼 그것을 찾는 사람들이 많지도 않았다.
꽃집을 흠뻑 적시고 바닥에 흘린 물을 대걸레로 치우고 나니 시간이 금방 지났다. 바이얼린이 담긴 하드 케이스를 폼 나게 든 딸아이가 나타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문가에서 아이의 벙글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가게와 가까이 위치한 당산동 할머니네 집으로 거주를 옮기면서 은아는 집안에 있을 때보다 집밖에 있을 때 기분이 더 좋아 보였다.
“아빠아, 안아줘.”
아이가 크고 있구나, 은아를 들어올릴 때마다 그는 생각했다.
“아빠품은 너무 좋아. 따뜻해.”
유독 안아달라는 말을 많이 하는 아이는 그가 안아줄 때마다 두 손으로 그의 목을 감싸며 떨어질 줄 몰랐다.
“은아야, 무거워.”
아이를 내려놓으려고 그는 조금 과장해서 아픈 시늉을 하며 사정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이 바이얼린 다른거 없녜, 봐 바”
은아가 케이스에서 낡은 바이얼린을 꺼내 들었다.
“이 줄이 라 줄이거든, 근데 조금 켜다보면 음이 자꾸 틀려져. 이상하게 자꾸 풀려서 계속 조이는게 힘들데. 다른거 없녜”
아이가 몇 주 전부터 그에게 들려주던 이야기였다. 바이얼린은 일찍 결혼한 아내의 친구에게서 얻은 것이다. 아들이 쓰던 것이라며 이제는 커서 필요 없게 되었다고 원하면 가져다 쓰라던 이분의 일 싸이즈였다. 이 바이얼린을 바꾸어야 하는 날이 연아가 바이얼린을 그만 배우는 날일 것이다. 레슨도 도보거리에 있는 근처 사설 학원이 아닌 시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교통 시간만 왕복 한시간이 넘게 다니고 있었다.
“그래에? 아빠도 몰랐는데? 나중에 아빠가 함 봐 볼께.”
그는 바이얼린을 케이스에 도로 넣고 지퍼를 올렸다.
“어, 아빠, 여기 있던 변기 어디 갔어? 팔렸어?”
창가의 작은 화분들이 모여 있는 곳을 바라보던 은아는 빈 자리를 발견하곤 조그맣게 외쳤다.
“어, 팔렸어.”
변기모양의 화분은 팔린 것이 아니었다. 그가 여자를 처음만난 날 선물로 여자에게 준 것이었다.
“어머어, 귀여워라. 이런 화분도 있네요. 변기속에 심어놓은 이건 뭐에요?”
콧소리를 섞으며 양춘희는 야단스레 물어보았다.
“아이비라고 해요. 아이가 좋아하는 거에요. ”
은아는 귀여운 아이비가 어서 제 주인을 찾기 바랬다.
“딸이라고 하셨나요?”
“네.. 초등학교 이학년 입니다.”
“쯪쯪. 그 어린 것을 두고 어떻게 그렇게 감쪽같이 사라질 수가 있어요? 아직도 연락이 없나요?”
아내가 소리없이 집을 나갔을때 그는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처음 일 주일은 연락이 닿지 않는 아내에게 화가 났다. 버젓이 자식이 있는 사람이 귀가 하지 않는 다는 것은 제 정신으로 할 짓이 아니었다.
“오빠, 나 살기가 싫다.”
자취를 감추기 몇일 전 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열 시에 가게 문을 닫고 집에 도착 하니 열 한 시쯤 되었을 것이다. 은주는 불 꺼진 거실 한 가운데에서 조는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초인종을 누르지 않고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오는 기척에 은주는 고개를 들었다. 은아는 작은방에서 자고 있었고 거실 마루에는 바다색의 소주병이 뒹굴고 있었다. 알코올이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실내의 공기가 훅 하고 그는 얼굴을 덮쳤다. 손을 내밀어 벽의 스위치를 더듬거리자 불 켜지마, 은주는 어둠 속에서 벌겋게 타는 듯 목마른 눈동자로 그를 쳐다보며 씩 웃어보였다.
“내가 죽는다면 그 모습을 꼭 오빠에게 보여주고 싶어. 은아는 안돼. 은아가 봐서는 안돼. 꼭 오빠가 제일 먼저 보아야해.”
술에 절어 나를 앉혀놓고 횡설 수설 하던 은주는 비틀거리며 일어나더니 주방으로 걸어갔다.
“잘 봐, 똑똑히 날 봐.”
창백한 팔을 내밀던 은주는 생생히 날이 선 과도칼을 어느 틈엔가 오른 손으로 돌려 잡고 있었다. 호흡이 멎는 것 같았다. 정신없이 달려들어 아내의 오른손을 있는 힘껏 비틀었다. 둔탁한 소리를 내며 카펫트 위로 칼이 떨어졌다. 다음 순간 체중을 모두 한손에 실어 아내의 따귀를 때렸다.
“술 먹고 뭐하는 짓이야.”
그 순간 그렇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아내의 정신을 깨우고 싶었다. 은주는 아무 말 없이 한참을 목 놓아 엉엉 울었다. 울음소리가 너무 깊어 세상의 어둠을 흔들어 놓을 것 같았다.
“미안해, 미안해. ......”
흐느끼는 소리에 묻혀 아내의 미안해는 가늘게 거실을 울리고 있었다.
술에 취한게야, 니가 뭐가 그렇게 서러워, 취한게야, 니가 뭐가 그렇게 힘드니, 온몸의 진을 모두 쏟아내려는 듯 길고 질긴 울음 끝에 은주는 침대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일주일 후 아내는 아무 흔적 없이, 소지품 하나 지니지 않은 채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 사 개월 전의 일이다.
양춘희가 아내의 흉을 보는 동안 그는 가끔씩 고개를 주억거리거나 의미도 없는 미소를 띄운 채 여자를 바라보았다. 아내가 집을 나가고 난 후 막연한 기다림이 일상으로 자리하게 될 무렵에 그는 인터넷의 가족상담 카페에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여자는 그것을 보고 먼저 메일을 보내왔다. 처지가 비슷해 이해할 수 있다며 스스럼없이 그에게 다가왔다. 그는 여자의 처지를 묻지는 않았다. 여자는 두 번째 메일에서 그의 전화번호를 물었다. 그는 선선히 가르쳐 주었다. 그 다음날부터 였다. 양춘희는 식사 때마다 문자를 보내왔다. 잠이 들 무렵에는 휴대폰의 벨이 울렸다. 여자의 목소리는 다정했다. 귓가에서 소근거리며 좋은 꿈꾸라는 친절한 말에 혼자서 눈물이 맺힐 때도 있었다. 여자와 인사를 하고 자리에 누우며 그는 아내를 생각했다. 아내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내의 목소리는 가늘었다. 한 걸음 떨어져 있어도 귀 기울여야 들릴 만큼 작은 소리로 투정을 부렸고 또 그 만큼 잘 웃었다. 은주는 음악을 좋아했다. 은아가 뱃속에 있을 때 부터 베토벤이나 모차르트를 들었다. 바하도 들었으며 차이코프스키도 들었다. 때로는 하이든을 들었고 쇼팽에 심취하기도 했다. 선율을 타고 꿈꾸는 듯한 모습이 은주에게는 퍽 잘 어울렸다. 아내가 가요를 들은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 곡을 끝도 없이 반복해서 들었다. 한 시간, 세 시간, 다섯 시간. 아내는 슬퍼보였다. 은주가 그 곡을 듣는 순간, 시간은 저 홀로 흘렀다. 질리지도 않어?, ...... 너무 슬퍼, 아내는 젖은 눈으로 대답했다. 은주가 떠났다. 몇 번을 그와 독하게 싸우고 떠나버린 아내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집에 먼저 들어가라는 그의 말에 은아는 함께 가겠다며 고집을 피웠다. 선 플라워 클로징 시간을 생각하니 무리였다. 쑥쑥 크려면 저녁도 때 맞춰 먹어야 한다. 결국 할머니가 가게로 나와 아이의 손을 붙잡고 나란히 집으로 향했다. 한 쪽 손을 할머니에게 내어준 아이는 걸어가면서도 고개를 돌려 유리 넘어 손을 흔들며 아빠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농원에 들리게 되면 잊지 말고 미니 변기에 심은 아이비를 가져와야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여자에게 주어버린 아이비를 생각하니 스스로가 몹시 한심하게 느껴졌다.
“물은 몇 일에 한 번 정도 주면 되요?”
양춘희는 활짝 웃으며 손가락으로 아이비 잎사귀들을 문지르고 있었다.
“생각날 때 한 번씩 주세요.”
여자는 그를 만나고 싶어했다. 연락을 취한 지 채 열 흘이 넘지 않았는데 여자는 조급해 보였다. 여자의 적극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망설였다. 아내가 사라진 후 사적으로는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 내키지가 않아 승낙하기가 어려웠다. 여자는 눈치도 빨랐다. 밖으로 나오기 곤란하면 그녀가 집으로 놀러 가면 안되겠냐며 태연하게 물었다. 당황한 쪽은 그였다. 상대가 정하는 대로 약속 장소와 시간을 메모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날 저녁, 자리에 누워 뒤척거리다가 몇 번인가 깨었다. 새벽의 한기가 그의 얕은 수면을 방해했고 소변이 마려워 일어나기도 했다. 화장실에서 나오다가 문이 조금 열려 있는 아이의 방에 눈길이 닿았다. 요즘 딸아이는 낮게 코를 골며 잠을 잔다. 발밑으로 돌돌 말려 밀려져 있는 이불 뭉치를 풀어 턱 밑까지 덮어 주었다. 아내는 잠을 자고 있을까.
“가게는 잘 되세요?”
근처 고깃집으로 자리를 옮긴 후 화장실을 다녀온 양춘희의 입 안에서 플로랄 향이 났다. 꽃향기였지만 꽃향기는 아니었다.
“그럭저럭이요.”
“비싼 동네에 가게를 내셨네요.”
친구의 가게라고 굳이 말하지 않았다. 대신 잔을 들어 입 안 깊이 털어 넣었다. 여자는 방긋 웃으며 얼른 술병을 들고 그의 잔을 가득 채웠다.
“자, 우리 건배해요. 오늘은 마셔도 괜찮아. 속에 있는 거 다 푸세요.”
빈 속으로 술을 밀어 넣었다. 여자는 젓가락으로 낙지 볶음을 집어 그의 입에 가져다 주며 먹으라는 시늉을 했다. 그가 머뭇거리자 양춘희는 토라지는 기색을 보이며
“먹어요. 받아 먹어도 되요. 뭐 어때요, 외로운 사람끼리. 술잔 기울이면서 푸는 거지. 인생 뭐 있어요, 나 기분 나뻐. 한 잔 더 드세요.”
젓가락 위에 놓인 낙지를 입술로 대고 받아 먹었다. 그는 외로왔다. 통통한 낙지는 마치 살아있는 것 같았다. 입안 구석을 염탐하더니 혀의 미뢰를 놀리고는 동굴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아내도 외로왔을까. 여자와 술잔을 부딫히며 아내의 일기를 생각했다.
양춘희는 밤이 깊어져도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여자의 손을 잡고 모텔로 향했다. 양춘희는 그가 보는 앞에서 하나씩 옷을 벗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태연히 그를 내려다 보았다. 벌거벗은 몸뚱이에 눈이 부셨다. 왜소한 아내의 몸이 생각났다. 여자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왔다. 그의 셔츠를 풀고 허리띠로 성큼 손을 가져 갔다. 붉은 입술이 그의 입에 닿았다. 아내도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겼을 때 그를 생각했을까. 그날 밤 그는 여자를 안았다.
버릇처럼 새벽녘에 깼을 때 여자는 침대에 없었다. 화장실의 탁한 불빛이 문 옆에서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는 요의를 느껴 자리에 일어나 앉았다. 모텔 안은 어둡고 고요했다. 물소리가 나지 않았다. 화장실에서는 옷감이 마찰하는 소리가 났다. 여자는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딸깍 소리를 내며 보조등을 켰다. 침대주위에 벗어놓은 그의 바지와 쟈켓이 보이지 않았다. 욕실로 향하던 그는 불현듯 그 자리에서 멈췄다. 욕실의 움직임도 순간 정지했다. 정적과 침묵. 딸깍, 취침등을 껐다. 그는 요의를 참고 다시 누웠다. 곧 욕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눈을 감았다. 여자의 걸음이 느껴졌다. 그는 눈을 떳다. 말없이 일어나 어둠속에서 욕실로 향했다. 욕실 문을 닫았다. 바닥에는 그의 옷가지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그는 오줌을 누웠다. 복도를 향해 모텔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오줌을 길게 누웠다. 멀어지는 여자의 구두소리가 따각따각 들리는 것 같았다.
아내에게는 남자가 있었다. 은주도 다른 남자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예전엔 왜 몰랐을까. 부부라는 이름으로 함께 지내는 것에 너무도 익숙해져 버린 탓인지도 모르겠다. 아내가 사라지고 난 후 일주일을 막연히 기다렸지만 아내는 돌아오지 않았다. 모든 것은 제자리였다. 은주만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칠일 후 아내의 물건들을 뒤지면서 그는 삼 년 전부터 써온 낡은 일기장을 발견했다. 아내는 왜 좀 더 일찍 떠나지 않았을까. 그는 흐느끼던 아내의 긴 울음을 생각했다.
“이거 얼마에요?”
조금 전부터 가게를 둘러보던 젊은 남자가 숯 분재를 가리키며 물었다.
“앞의 작은 것은 삼 만원, 가운데 줄은 오 만원, 뒤에 있는 큰 것은 십 만원 입니다.”
남자는 십 만원 짜리 숯분재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기암절벽을 연상하게 하는 디자인에 짧게 감탄하고는 가격이 맞지 않는지 돌아서서 다른 식물들을 보기 시작했다. 홍콩야자와 마지나타 앞에 있는 남자를 보고 그가 물었다.
“선물하시게요?“
“아닙니다. 집에 두려고요.”
“그럼 이런 건 어떠세요, 돈을 불러드린다는 뜻이 있는 건데.”
그는 금전수를 가리키며 권했다.
“아내가 가끔씩 머리가 어지럽다고 해서요. 숯이 공기를 정화한다고 하길래 하나 사려고 왔는데 좀 비싸네요.”
“아, 그럼, 이쪽으로 와보세요.”
그는 산세베리아 앞에 서서 남자에게 권했다.
“공기 청정 효과가 탁월해요. 뉴스에 나오고부터 많이 사가세요. 끝나는 시간이니 싸게 드릴께요. 제 아내도 좋아하는 식물이에요.”
산세베리아를 들고 가게를 나서던 젊은 남자는 몇 걸음 걷지 않고 다시 돌아왔다.
“저, 이거 물은 어떻게 주면되죠?”
“잊을 만 하면 한 번 씩 주세요. 자주는 말고요. 한, 한 달에 한 번 정도만요.”
손님이 돌아간 후 그는 실내등을 내리고 클로즈 표지판을 문 위로 걸었다. 건널목 앞에서 녹색등을 기다리며 겉옷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낮에 받은 헌혈증이 손가락으로 만져졌다. 혈액형 검사, 간염 검사, 에이즈 검사, 매독 검사, 간 기능 검사. 신호등이 켜지고 이편의 사람들이 저편으로 저편의 사람들이 이편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도 집으로 가기 위해 무리속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가을바람은 건조했고 그리고 스산했다. (끝)
첫댓글 아...올리면서도 참.. 부끄럽네요. 다음에는 좀 더 나은 글을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모두 건필하세요.
잘 읽었습니다. 안정적이고, 잘 읽히는군요. ^^ 구름 솜 이불 이래로 기네비아님의 이야기에는 님만의 분위기와 공통적으로 이야기들을 관통하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작가가 이야기에 거리를 두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작가가 이야기를 보는 거리가 확실하고, 그와는 별개로 화자의 시선도 분명히 존재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기네비아 님께서 이야기를 신중히 쓰셨다는 걸 잘 느낄 수 있었어요.^^ 하지만 몇몇개의 소재는 좀 더 심화되어 다루어져야 할 것 같군요. 이야기 안의 소재들이 전체적으로는 조화를 이루는데 각각의 빛은 흐릿한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구조와 내용을 더 뜯어보고 싶지만 숙제와 출근 때문에 이만...^^;;
제가 삽화를 다루는 능력이 약하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첫 작품 [구름솜 이불] 이후로 저의 작품을 놓치지 않고 읽고 계신 님의 지적은 참으로 옳습니다. 소설속의 삽화가 흐릿하다는 지적은 이전 작품[그해 여름]에서도 동일한 지적을 받았던 것으로 저는 뚜렷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 이 말씀은 참 바윗돌 처럼 다가오는 군요. 음...흐릿한 삽화의 각각의 빛을 살리는데 저는 분명 더 고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프님, 언제나 고맙습니다. 건강 조심하십시오. ... ^^
글 잘 읽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묻고 싶은 점은 소설의 문장을 쓸때 목적어가 앞으로 오는 문장을 의도적으로 계획했는지 입니다. 아마 계획하지 않았다면 문장을 쓸때 목적어가 자기의 자리에 가도록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또 한가지 소설을 쓸 때 주의할 점은 소설을 쓰는 작가 자신과 소설속의 주인공과의 거리입니다. 작가가 나라는 인물을 내세워 1인칭 소설을 쓸 때도 소설속의 나란 인물을 작가가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 뜻은 작가는 글 전체를 연출하는 연출가일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행동을 지시하는 감독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소설을 쓸 때 내 자신이 소설속의 일부가 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송동월님, 님의 말씀을 읽고 제 소설을 다시 한 번 읽어보았습니다. 목적어가 앞으로 위치해 있던지를 살피면서요, 님의 아마, 라는 추측처럼 계획했던 것이 아니라서요... 예문을 실어주셨더라면 좋았을 터인데, 찾아보았습니다만 그리 눈에 띄지가 않더군요. 저의 추측으로는 앞문장과 주어가 동일하여 반복을 피하기 위한 생략으로 목적어가 앞으로 나오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도 해보고요.
글중 대화가 끝나고 부연설명하는 문구들을 다시 한 번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소설에서 작가와 주인공과의 관계가 알맞을수록 글이 생동감이 있습니다. 작가는 글을 쓰지만 글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로버트처럼 조종하려 들면 안 됩니다. 그렇다고 거리가 너무 멀어 남의 이야기 하듯 해서도 안 됩니다. 작가는 이 거리를 유기적으로 조정하며 독자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입니다. 저는 아직도 이 거리를 찾고 있습니다.
소설속 화자와 작가와의 거리를 말씀하셨는데 거리찾기의 중요성에 대한 님의 의견은 물론 동의 합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제 소설속에서의 지적이 없으셔서 거리가 가깝다는 건지 멀다는 건지 직접화법외에는 잘 이해를 못하는 저로서는 조금 난감합니다. 님의 이 말씀은 [작가는 글을 쓰지만 글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로버트처럼 조종하려 들면 안 됩니다] 무척 공감이 가는 말씀입니다. 저는 이부분을 사실 고민한 적이 있고 지금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어려운 부분임은 틀림없습니다. 말씀감사합니다. 좋은 날 되십시오.
헌혈하는 설정에서 "주먹을 쥐었다 폈다 반복하세요." 일을 마친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버스는 뒷문이 없다. 입구가 유일한 출구였다. 헌혈하고 가세요. (중략) 윗 글에서 버스는 뒷문이 없다. 입구가 유일한 출구였다는 누가 한 말일까요? 극중 주인공이 한 말일까요? 아님 작가가 글의 복선을 위해 인위적으로 넣은 문장일까요? 설령 작가가 극중 복선으로 이런 문장을 쓰려했다면 지금처럼 직설적으로 문장을 쓸 것이 아니라 주인공의 눈을 통해 버스 뒷문이 없음을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또한 버스에 뒷문이 없다는 설정은 더이상 물러 설 곳이 없는 주인공의 심리를 대신하는 모티브가
되었다면 글을 읽는 독자는 주인공의 심정을 더욱 생동감있게 받아 들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작가가 글을 쓸때 배경도 중요하지만 그 배경을 독자에게 보여주기 위한 설명보다 헌혈차 내부 처럼 뒷 문이 없는 배경을 독자들에게 보여줌으로써 배경이 주인공의 심리를 대신 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작가의 능력입니다. 미천한 지식으로 몇자 적어 봤습니다. 오해 없길 바라겠습니다. 건필.
잘 읽었습니다. 차분하게 잘 이어져 나가긴 하는데요. 너무 차분하다는 느낌이 드네요. 느슨하다고 할까요. 물론 의도적으로 그렇게 쓰신 것 같긴 한데요. 아내가 집을 떠난 동기를 좀 더 극적으로 그린다거나 아내에 대한 배신감을 더욱 날카롭게 그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드네요. 물론 단편이 요구하는 것이 서사적 긴장감은 아닐 테지만 그래도 뭔가 강렬함이 녹아 있다면 독자인 제 입장에서는 몰입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인물의 심리 변화를 좀 더 세밀하게 그린다면 좋을 것 같네요.
근데요, 왜 제목이 길이죠? 제가 파악을 잘 못하고 읽어서 그런지 선뜻 와 닿지가 않네요. 마지막 건널목 앞에서 주인공이 길을 가는 사람들을 보고 자신도 길을 가지 않습니까? 그 부분에서 어떤 의도를 찾아도 되는 건가요? 이를테면 그저 길이 있으니 가는 것이다. 누군가 곁을 떠났어도 삶은 계속된다. 뭐 이런 비슷한 여운이 느껴져서 물어보았습니다.
몰입이 약하다는 지적으로 님의 말씀이 이해됩니다. 표현을 '극적으로' 나 '날카롭게'를 사용하셨던데, 사실 제가 이런 것에 좀 약하지요. 쩝, 강렬함이 부족하다는 말씀(이부분은 결국 이프님의 삽화 지적과 맥이 같습니다만) 옳으십니다. 그래서 담 작품을 좀 강렬한 것으로 구상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 저것, 을 써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다양성의 시도로 노력을 좀 해보려고 생각을 해보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
헌혈, 가명의 여자, 아내, 아내의 남자, 딸,..... 작중 화자가 삶이란 길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나열같다라는 인상입니다. 글 속의 중요 소재들이 왜 나왔는지,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하지 못한 듯 합니다. 특히 헌혈의 장면은 전혀 불필요한 장면으로 여겨지는대도 작중 처음에 나오더군요. // 전의 작품들에서 제가 느낀 것을 이번에서도 또 느끼게 된 셈이네요... 보면 기네비아님은 이야기거리를 만들어내는 능력은 많으신것 같은데 그 이야기들을 하나의 주제로 묶어내는 것에 좀 약하신듯합니다. 아내와 낯선여자의 대비는 흥미는 유발시키지만 그 이상의 왜 둘이 대비를 시키는건지 이유를 알 수 없게 만드네요.
어쩌면 작가만 아는 이야기라는 함정에 빠진 것일 수도 있겠구요. 아니면 실제 체험과 상상의 결합에서 불거진 오류일수도 있겠지요. 아무튼 소설은 그대로 현실이 될 수도 있으나. 현실은 그대로 소설이 될 수는 없다라는 의미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잘 읽었습니다.
문체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줄일 수 있는 문장, 분위기와 하등 관계상 빼도 될 문장이 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