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조들은 한식(寒食)을 설날·단오·추석과 함께 사절일(四節日)로 중시했다. 신라인 최치원의 『계원필경(桂苑筆耕)』에는 전사한 장사(將士)들을 한식 때 위로하는 제문(祭文)이 남아 있어 유래가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속담은 동지(冬至) 후 105일째가 한식(寒食)이고, 106일째가 청명(淸明)이기에 나왔는데 올해처럼 청명이 하루 먼저 오기도 하니 별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한식은 불을 금하는 금화일(禁火日)로서 찬밥을 먹는데 여러 고사가 있다. 『사기(史記)』 『진세가(晉世家)』 에는 진 문공(晉文公)과 19년간 망명생활의 고초를 겪은 개자추가 문공 즉위 후 소외되자 면산(綿山)으로 들어갔다고 전한다. 뒤늦게 문공이 나오게 하려고 산에 불을 질렀지만 거부하고 타 죽었기 때문에 이날에는 화식(火食)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진(晉)의 육홰(陸翽)가 편찬한 『업중기(鄴中記)에는 “병주(幷州) 풍속에 불에 타 죽은 개자추를 애도해 3일 동안 불 때기를 금한다”고 적고 있다.
국가에서 계절에 맞춰 새 불씨를 내려주기 전까지 불을 금하는 개화(改化) 때문이란 설도 있다. 『주례(周禮)』에 ‘사철마다 나라의 불[國火]을 바꿔서 계절 질병[時疾]을 구제한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불씨를 오래 쓰면 양기(陽氣)가 강해져 전염병[厲疾]이 돌기 때문에 주(周)나라 때는 계절마다 나라에서 바꾸어 주었다. 새 불씨를 받기 전까지 불을 금지했다는 것이다. 이때 나무를 문질러 불을 일으키는 것을 찬수(鑽燧)라고 하는데, 그 철의 방위색에 맞는 나무로 불을 일으켰다. 예컨대 겨울의 방위색은 검은색이다. 『태종실록』 6년 3월 24일자는 ‘푸른 느릅(楡)·버드나무(柳)는 봄에 사용하고, 붉은 살구(杏)·대추나무(棗)는 여름에 사용하고, 한여름에는 황색의 뽕(桑)·산뽕(柘)나무를 사용하고, 가을에는 흰 조롱(柞)·줄참(楢)나무를 사용하고, 겨울에는 검은 회화(槐)·박달(檀)나무를 사용했다’고 전하고 있다.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는 ‘한식에는 바람이 급하기 때문에 3일 동안 불을 금했다’고 화재 방지의 목적도 있다고 전하는데, 세종도 재위 13년(1431) 이날 불이 났다는 보고를 듣고 앞으로는 아침에 저녁밥까지 짓고 오후에는 불을 쓰지 말라고 명했다. 한식 성묘 때가 1년 중 가장 산불이 많다고 한다. 올해 한식 전후 성묘는 선조들처럼 불을 사용하지 말아야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