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한여름 밤의 모깃불
정종민
마을 문전옥답 가 도랑에선 개구리떼가 목소리시합이라도 하듯 큰 소리로 개골개골 시끄럽다. 내일은 비가 오려나. 동네또래 아이들은 올챙이를 잡기 위해 책가방을 놓고 도랑으로 들어가 올챙이와 미꾸라지를 잡았다. 나는 학교에 다녀와서 얼른 숙제를 하고, 소를 가진 집 아이들과 같이 소꼴을 먹이러 뒷산으로 가야했기에 발걸음이 바빴다. 소를 먹이러 안갈 경우엔 할아버지의 불호령이 무서워 친구들과 같이 놀지 못함이 못내 아쉬웠다.
뒷산에서 소꼴을 먹이던 나는 순천만의 서산마루에 시든 해가 기울 때쯤, 어둠을 맞이하기 전에 집으로 향했다. 그때쯤 어머니와 누님들은 저녁준비에 바빴다. 들 일이 끝나면 소에게 먹이려고 머슴들이 가져온 풀이 마당 한 귀퉁이에 널브러졌다. 그 풀 속에는 온갖 잡초들이 섞였다. 칡넝쿨, 엉겅퀴, 쑥대, 소들이 잘 먹는 풀들로 가득 찼다. 초저녁에 이런 풀 중에서 되도록 연기가 많이 나는 쑥대·바래기(바랭이) 등을 골라 모깃불로 피웠는데, 바로 베어온 생풀로 피우니 연기가 담장을 넘어 온 동네로 퍼졌다. 평상시에 모깃불로만 쓰던 풀을 골라 태우니 모기가 연기에 놀라 멀리 도망가지 않았을까 싶다.
마당 옆 텃밭에는 오이와 고추, 가지가 주렁주렁 열려 밥상엔 오이냉채국과 각종 나물이 놓이겠지. 울타리를 바라보니, 호박덩굴이 울타리를 휘감으며 풍성하게 호박꽃이 피었다. 어둠이 몰려오는 달빛아래 제일 먼저 눈에 띈 호박덩굴이 노란꽃을 뽐내는 듯하다. 드문드문 꽃이 시들면서 탱자 같은 호박열매를 맺은 것도 많았다. 저 많은 꽃이 지면서 탐스런 호박이 주렁주렁 열릴 것을 생각하니 흐뭇해졌다. 누가 호박꽃을 못생겼다 했는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호박나물을 여름 내내 선물로 줄 것이니 꽃 중에서 으뜸이 아니겠는가. 제 눈에 안경이듯이 호박꽃도 정말 아름다운 꽃이다.
가족들은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한 사람 한 사람씩 마당으로 모여든다. 멍석에 둘러앉아 평화롭게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운다. 살림이 옹색하지 않아 넓은 마당에 모깃불이 살살 타오르고 쑥대의 알싸한 냄새를 맡으며, 종아리에 모기가 덤비지 못하도록 부채질을 계속해댔다. 감나무 옆의 멍석과 함께 한여름의 더위도 함께 보냈다. 여름날 저녁마다 가족들이 멍석에 마주앉아 정겨운 식사를 끝내고, 옛 추억과 그날 있었던 일을 서로 이야기하다가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그 사이, 갓 쪄서 김이 모락모락 난 먹음직스러운 후식이 함박그릇에 가득히 담겼다.
조금 전에 저녁을 먹었는데도 누구 할 것 없이 손이 먼저 간다. 옥수수·고구마·수수를 맛있게 먹다가 조금 부족하다 싶으면, 낮에 일꾼들에게 새참으로 주고 남은 개떡도 가져왔다. 개떡은 먹기는 거칠지만 그래도 굵직굵직한 강낭콩이 박혀 있어 사카린단맛과 함께 일품이었다. 그때는 먹어도먹어도 돌아서면 배가 고프던 시절이었으니까.
온 집안에 매캐한 연기가 고루고루 퍼질 때쯤 쑥냄새는 한층 짙어져서 모기들이 맥을 못추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영악스럽던 모기놈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수풀 속으로 숨는다. 모기에 물리면 모기의 침이 피부를 자극하여 발진을 일으키고, 전염병의 매개체역할도 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 당시에는 모기 물린 자리가 부우면 우선 침을 바르거나 된장이나 쑥을 짓이겨 발랐다. 약이 없었으니까. 우리가 어렸을 적에는 모기의 피해에 대하여 전무인 상태였다. 그렇지만 선조들은 모기에 대하여 슬기롭게 대처하였던 셈이다.
여느 어머니도 그랬겠지만, 어릴 적 어머니는 저녁식사가 끝나면 행여 아들이 모기에 몰릴까봐 메케한 연기를 마다 않고 결사적으로 모기를 쫓아주었다. 당신도 모기에 물렸을 텐데 말이다. 그러다가 멍석에서 꿀 같은 잠이 든 경우도 있었다. 전기불이 없던 시절이라 밤하늘의 별은 더욱 더 초롱초롱하게 빛나건만, 마을은 모두 잠에 빠져 가는 밤이다. 개짖는 소리와 닭우는 소리도 이제는 잦아들고, 한여름 밤의 전령사들만 목매이게 울어댔다.
늦은 시각 슬슬 한 사람 한 사람씩 제 방을 찾아간다. 달도 구름 속으로 숨어 달그림자도 없어졌다. 가족 중에서 모깃불에 불쏘시개를 더 집어넣는 사람도 없다. 모깃불의 연기도 힘을 잃어 차츰 사그라들고 고요한 정적이 찾아들 즈음, 헛간 캄캄한 곳에서 마귀할멈이라도 나올 것만 같은 무서움이 몰려왔다. 헛간지붕위로 타고 올라간 박덩굴의 하얀 꽃이 어둠속에서 빛나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먼 산에서 포곡새가 구슬프게 우는 소리와 가끔 개 짖는 소리가 적막을 깨운다. 모두가 잠든 마을의 밤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깊은 밤이 지나고 새벽이 오면, 제일 먼저 닭들의 횃소리가 자명종시계처럼 새벽을 알렸다. 2023.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