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 G (럭키, 금성 이니셜) 그룹의 주요 사업 분야는 화학, 전자, 통신·서비스 등이며, 창업자는 구인회 이다. 1947년 락희화학공업(주)으로 시작해 1974년 (주)럭키로 상호를 변경했다. 기초화장품과 칫솔, 치약과 같은 생활용품의 제조에서 출발해 전자제품과 석유화학 등에 이르는 기업 집단으로 발전했다. 1995년 그룹 이름을 LG로 바꾸었으며, 2005년 창업자 간의 동업관계가 청산되면서 LG-Caltex 정유, LG건설, LG유통, LG 스포츠, LG홈쇼핑 등이 (주)GS홀딩스로 법적 분리되었다.창업 회장의 6 형제중 장남인 구자경은 선친의 부름은 받고 교직 생활을 그만두고 L G 에 입사하여 관리 부서가 아닌 제품을 생산 하는 현장에서 일하면서 경영자의 수업을 받은 셈이다 그는 부친의 푸대접 ( ? )에 열악한 생활을 열심히 하면서도 부친의 칭찬을 들어 본적이 없었지만 막상 때가 되어 자연스레 이루어진 부친의 유언에서 부친의 지극한 사랑과 사려 깊은 배려가 있었음을 깨닫게 되어 선친을 더욱 존경 하며 부친이 물려준 기업을 성장 시켜야만 한다는 사명감이 들었지만 그 시기의 기업 환경은 국내 가전 시장 개방의 높은 물결 파고가 이만 저만한 것이 아니였다 특히 일본의 한 가전업체 부장은 " 한국 가전 시장이 개방만 되면 6개월 내에 한국 업체들을 쓰러뜨릴 자신이 있습니다 " 라고 할정도로 대,내외적 으로 취약한 상태에 있었다 소니, 내쇼날, 샤프, 필립스, 제너럴일렉트릭 같은 세계적 브랜드의 가전 재품은 암 시장으로 흘러 들어와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 선호 상품이 되어 있으며 그들 회사 마다 기술력 으로 탄생된 제품의 성능 이나 맵씨는, 풍부한 자본력 으로 공급 판매망의 우세는, 국내 소비자의 물 건너온 외제 상품 선호 사상에 편승하여 모든것이 열악한 금성사 존재는 풍전등화의 위기를 맞고 있는 시기 였다 하지만 위기는 극복 해야만 하는 과제 이고 궁극적 으로 기업이 생존 하기 위해서는 선두 주자를 넘어 서야만 했다 방법은 럭키 금성의 제품이 소비자의 선택에 들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고객은 누구 인가 ?,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가 ? . 우리는 고객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 , 고객이 무엇 인지를 이해 하고 그것을 실천 하는 것을 출발점 으로 고객을 위한 가치 창조, 인간 존중의 경영을 경영 이념으로 세워 혁신에 매진 하였다 1966 년 국내 최초 생산된 금성 T V 는 당시 쌀 27 가마 값에 해당하는 고액 으로서 돈만 있다고 해서 살수 있는게 아니라 추첨을 통해 구매 할수 있었다는 사실, 해방과 6, 25 동란 으로 생산 시설이 없던 시절에 출시된 기초 화장품 동동 구리무. 긱종 생활에 필요 했던 프라스틱 빗 과 각종 그릇, 귀했던 라디오 등은 워낙 물자가 부족하여 필요한 수요자는 많고 생산 시설은 없었기 때문에 발생된 사레이다 물건을 만들고 싶어도 방법을 몰랐고 어렵게 방법을 알아 냈다 하더라도 만들 재료가 없었다 따라서 만들기만 하면 팔렸다 하지만 공급량이 확대 되고 소비자의 욕구 수준이 높아 선택의 폭이 다양해 지고 국적에 상관 없이 개인의 취향과 가격에 맞으면 물건이 팔리기 때문에 고객 중심의 경영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확신을 갖는다 그런점을 강조 하기 위아여 종전의 연구 개발과 개혁 정신을 진일보 시켜 고객을 위한 가치 창조로 하고 인화 단결을 계승 발전 하겠다는 생각으로 인간 존중의 경영으로 새로운 경영 이념으로 제정 하였다 그라면서 고객이 원하는것, 고객이 필요 로 하는 가치는 과연 어떤 것일까 ? 그것은 경제적 이고도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만족감을 가지면서 계속 사용 할수 있도록 하는 가치라고 생각 한것이다 따라서 회사가 출시한 제품은 그것을 사용하는 고객 에게 실질적 으로 이익이 되고 꼭 필요한 것이 되게 해야 하며 그럴때 제품은 고객에게 가치가 있다고 할것 이다 1969당시 출시한 세틱기와 냉장고의 효용성과 단점을 알고자 금성사 영동 써비스 쎈타에 예고 없이 방문 하여 소비자 들과 의견을 나눈바 있었다 그곳을 찿았던 고객은 세탁기의 뚜껑이 약하여 아이들이 옷을 벗어 던지면 자주 파손 된다는 이야기며 냉장고는 크고 무거워 이동하기 불편하니 이동학; 쉽도록 바퀴를 달면 좋겠다, 고무 바킹을 냉장고 뒷면에 붙여 주변 벽이 상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이야기를 들은바 있다 그밖에도 기업 에서 일방적 으로 기술을 개발 하여 떠 안기는 것보다 그 기술에 고객이 필요로 하는 사용 가치를 얼마나 담아 내느냐 가 훨씬 중요 하다는 사실을 일수 있었다 고객이 진정 으로 원하는 것은 사소한 바람 이라도 그것을 충실 하게 반영하는 기술적인 성의 였던 것이다 고객이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 인지를 귀 담아 듣고 그것을 제품에 반영 해야만 그 제품이 팔릴수 있고 이것이 바로 고객에게 참된 가치를 제공 하는 것이다 외국 가전 제품의 성능이 월등 우위에 있다 하더라도 의외로 취약점을 많이 갖고 있음은 소비자가 사용에 있어 불편을 겪음으로 알게 된다 지나치게 크거나 불필요한 기능으로 사용에 어려움이 있으며 국산 제품에 비하여 전력 소모량이 많으며 고장 발생시 수리가 쉽지 않은점 등이다 또한 수리비 역시 무시 못할 돈이 든다 이런 점에서 국내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게 전통 한국형 전자레인지( 조림, 볶음, 찌게, 구이 등) 출시는 미국 일본 제품 에서는 찿아볼수 없는 강점을 가진다 인기 신제품의 아이디어는 외국 제품의 기술에 있는게 아니고 고객을 최상 으로 생각하는 기업 마인드가 반영된, 고객의 아이디어가 반영된 것이다 따라서 고객은 기업의 스승 이며 눈 여겨 봐야할 존재 이다 고객의 값있는 조언을 구하기 위해 임의의 모델 하우스를 지어 놓고 50 여명의 주부를 초청하여 어떠한 구조로 바꾸면 더 마음에 들겠는가 조사히여 ' 베란다 같은 써비스 면적을 넓여 달라 , 평수가 적더라도 부부 전용 화장실을 만들어 달라, 가변벽으로 만들어 필요에 따라 구조를 바꿀수 있게 해달라 ' 는 귀중한 고견을 반영한 분당 시범 아파트는 124 대 1의 경쟁율을 보였다 이렇듯 고객을 위한 가치 창조는 구태 의연한 경영 활동 으로는 불가능 하다 창조라는 말이 혁신의 뜻을 포함 하고 있듯이 혁신을 통하지 않고 진정한 창조는 불가능 하다 경영의 혁신, 기술의 혁신, 품질의 혁신, 서비스의 혁신 등 모든 부분 에서의 혁신이 함께 이루어 져야 하고 그 바탕을 이루는 데는 고객에 대한 인식의 혁신이 있어야 한다 세탁기를 만들때 세정비(세탁물 에서 때가 제거 되는비율)를 만족 시키기 위해 일본의 히다치사의 기준 0. 5 를 무시하고 연령별로 주부 30명을 동원하여 손빨레를 시켜 평균값을 조사하니 0. 66 이었다 0. 5는 세탁 솜씨가 떨어지는 연령층의 결과 였으며 기존의 세탁기는 0. 38 이었다 또한 고객들로 부터 " 빨래가 엉켜 손상되기 쉽다, 소음과 진동이 크다, 일일히 세제의 양, 물, 시간을 조작하기가 번거롭다 " 는 의견을 반영하여, 개선한 버튼 하나만 누르면 빨레감의 성질 이나 양에 따라 작동하는 인공지능 세탁기가 출시 되었을때 5개월 만에 20 만대가 팔려나가 종전의 월 1만대 판매 기준을 큰 격차로 뛰어 넘는 기록을 세웠다 이는 고객의 욕구를 충족 시키기 위한 고민과 노력의 산물 이자 기술력이 아닌 고객 조언이 만들어준 최초의 제품이 되었다 아룰러 내부적으로도 제품을 만드는 종업원의 의견을 반영한 제품이 질을 높이고 생산 원가를 줄이며 종업원의 수고를 덜고 시간을 벌수 있었다 고객은 사내는 물론 사외, 국내는 물론 국외 어느곳에도 존재 한다 고객의 눈 높이가 높아 지면 회사도 따라야 하기 때문에 회사도 발전 하지 않을수 없다 한번 고객이 영원한 고객이 되도록 우리를 선택한 고마운 고객 들에게 계속적 으로 혜택이 돌아 가도록 하여 고객과 함께 발전해 나가려는 정신이 고객을 위한 진정한 가치 창조의 길이된다 우리나라 대기업 집단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별로 긍적적 이지 못하다 기술 개발 이나 서비스 투자는 하지 않고 부동산 투기 등으로 쉽게 돈을 벌려 한다고 생각한다 문어발 식 사업 확장 으로 경제력 편중을 심화 시킨다, 정치권과 유착하여 부정으로 돈을 벌려 하고 노조의 활동을 탄압 한다 등등의 부정적 이미지다 따라서 기업 윤리를 바로 새우고 지켜 나가는 경영이 단기적 으로는 작은 이익을 놓치게 할지도 모르지만 장기적 으로는 큰 이익을 가져다 준다 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기업은 고객과 사회 라는 토양 속에 굳건히 뿌리를 내려서 어떡 악천후 에도 흔들림 없이 고객과 사회와 더불어 영원히 성장, 발전해 나갈수 있어야 한다 럭키금성 이라는 부랜드는 고객 에게 절대적 신뢰요, 무조건의 믿음 으로 받아 들일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물론 기업이 이익을 내야 하지만 그 이익이 고객을 배신해 가면서 얻어서는 결코 안된다 진정한 고객의 만족을 토대로 해서 꾸준 하고도 변함 없이 보장 되는 그런 이익을 추구 해야 하는것 이다 기업의 옳바른 자세는 여러 초우량 기업에서 볼수 있다 하나의 얘를 발하자면 죤스 앤 죤스사는 1982년 누군가가 타이레놀 캡슬에 극약을 넣어 5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사건으로 충격속에 매출은 뚝 떨어지고 회사의 존폐마저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제임스 버크 회장은 오염된 약품을 회수 하기 위해 모든 조직력을 동원하였고 미디어에 직접 나와 회사가 이번 일에 책임을 지고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회사가 아닌 경찰의 일을 떠 맡아 엄청난 인원, 비용, 노력을 들여 취한 행동은 전 세계 소비자의 신뢰를 얻음 으로서 86년 부터는 진통제 시장의 35 %를 석권 하기에 이르렀다 세게 2차 대전후 호황을 누렸던 미국 기업들은 매출이나 수익등에 집착한 나머지 기업 경영의 근본인 고객 만족을 소홀한 반면 일본 기업들은 고객 만족 이라는 기업 이념을 명확히 하고 그 바탕 위에서 조직 전체가 움직였다 그 결과 일본과 미국미국기업의
명암이 극명하게 뒤바뀌고 있다 또한 이러한 생각은 회장, 사장, 임원 특정 부류의 사원에 한정되어 있는게 아니라 모든 임직원 각자가 주인이된 의식으로 임해야 한다 이것이 소위 자율 경영 이라는것 이다 자기의 고객이 누구 인지 ? 그들에게 적합한 가치가 무엇 인지 ? 알아서 그들에게 최대의 만족을 줄수 있는 써비스를 직접 창출 할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장인 내가 모든 계열사 경영에 관여 하는 길은 자율 경영에 장애 요소가 될것으로 판단해 14명의 계열사 사장 에게 경영의 전권을 위임 하였다 그런데도 불구 하고 노사 분규에서 조합원 들이 회장과의 단판 면담을 요구 했었지만 인내심을 지켜 사장이
결정 하도록 하였다 분규의 여파로 제품 생산 중단, 시장 점유율 하락, 수출 거래선 중단 등으로 회사 경영에 상처를 내고 2 년 사이에 기술 개발이나 생산성의 보장 없이 두배 가까운 임금 상승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사장의 자율 경영을 믿어 보자는신념으로 불안한 마음을 달랠수 있었다 반도 패션에서 있었던 일화의 한토막 이야기다 고액을 들여 일류 디자이너를 영입하고 해외 연수 까지 시켰는데 만든 옷이 무대복도 아니고 누가 입을 가능성이 없는 천박한 옷을 왜 만드냐고 했을때 " 회장님, 그래도 그 옷이 제일 잘 팔립니다 " 라고 했었고 화장품 사업에 엄청난 모델료를 주고 프랑스 여배우 소피 마르소를 쓴 이유가 도대체 뭐냐 ? 내국인을 쓰면 안 되었느냐 ? 라고 하자 " 회장님, 그래도 그 광고가 제일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 라고 하는 소리에 자율 경영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회장이 고집을 부려 패션은 정장 스타일 이어야 하고 화장품 선전에는 반드시 국내 모댈로 해야 한다는 의사를 보였다면 ? 경영의 혼란은 분명 있기 마련 이었을 것이다 과도기의 경영은 그랜드 캐니언 협곡에서 벌어지는 고무 보트 경기와 같다 리더가 한가로이 구령을 붙아고 일일히 지시할 여유가 없다 골인 지점을 향한다는 목표만 공유할뿐 각자가 제 위치에서 순간 순간 닦아오는 난관을 극복 하기 위해 노를 젓다가, 때로는 노를 내밀어 장애물을 피해 가야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요구되는 리더의 역할은 코스를 철저히 파악하여 위험을 예측하고 조직원 각자의 최대 능력이 발휘 될수 있도록 평상시 준비 하는 자세로 솔선수범 해야 할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 하지만 자울경영 이야 말로 고객을 위한 가치 창조를 하는 지름길 임은 물론 이것 만이 우리 경제의 위기를 극복하고 초우량 기업이 될수 있는 유일한 선택 이라는 믿음 때문에 내 인생을 걸고 사운을 걸고 어떻게든 성공 시키고자 하는것 이다 자울 경영의 요지는 C U ( cultuler unit ) 즉 사업 문화 단위에 의한 경영 이다 그것은 특성을 같이 하는 분야 끼리 묶어 그 분야의 전문 경영인 에게 맡기는 것이다 그룹내 회사 간에는 가능하는 한 우선 혜택을 주고 받을수 있지만 이 역시 철저히 사장의 자율 경영이 될수 있도록 하기위하여 간섭을 하지 않았다 사장의 객관적 평가를 위하여 사장 평가 위원회에 회장단 뿐만 아니라 중진급 사장을 포함 시겼고 경영 실적 이외에 사업 과제 달성과 회사의 지속적인 발전 을 위해 비전을 얼마나 잘 수립하여 추진 하는가 , 권한 위양을 정착 시켜 인재 육성과 사장 후계자 양성에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는가 ? 바람직한 노사 관계를 위해 얼마나 헌신적 으로 노력하고 대처 했는가 ?, 리더십과 사업에 대한 식견은 어떠한가 ? . 자기 개발 노력은 얼마나 기울이고 있느가를 평가했다 물론 회사내 인재 개발 에도 힘써야 하며 외부의 훌륭한 인재도 영입해서 함께 하면 큰 효과를 거둘수 있다 기획조정실은 잘하면 내 의지가 반영되지만 자칫 회장인 나를 내세워 각사를 관리 하거나 통제 하기 쉽다 따라서 관리가 아닌 지원 부서가 되도록 노력하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관리는 지시 하고 통제 하는 일이 되며 지원은 일선에 접하고 있는 영업 써비스가 원활 하도록 도와 준다거나 부서와 부서간 소통이 잘 이루어 지도록 중간 역활을 하는 것이다 각 계열사 사징괴 그룹사 회장 간에는 야유회 성격이 아닌 등산 행사 성격의 컨센서스 미팅과 각서 조인식을 갖는다 켄센시스 미팅은 회사의 사장과 그룹 회장이 회사가 나야야할 방향을 공유하기 위한 만남으로 사장은 사업 비전 수립에서 부터 실천방안을 설명하여 회장의 이해를 구하도록 하는것 이다 각서 조인식은 먼저 사장이 C U 의 장기 발전 구상인 비젼과 그 비젼의 실천을 위해 전략 과제를 제시하고 전 사원의 합의로 실천의지를 밝힌다 그룹회장은 사장에게 모든 권한을 위양하고 사장이 제시한 일이 달성 되도록 적극지원 할것을 약속 한다 는 이미지를 사장과 회장은 모든 임직원 에게 , 회사는 사회를 상대로 하는 약속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 을 갖자는 것이다 그룹 계열사 간 거래에도 원칙 대로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고 공개 경쟁. 시장 가격에 의해 결정 되도록 하고 있지만 간혹 분쟁으로 회장의 개입을 요구(지원)하는 사장이 있지만 신념을 갖고 스스로 해결 하도록 한다 애정이 깊을수록 치열한 경쟁의 우리 속으로 밀어 넣어야 한다는 것이 신념 이기 때문이다 어정쩡한 도움은 받는쪽, 주는쪽 모두를 도태 시키고 말것이다 도움 없이 스스로 필사적인 노력에 의해서만 경쟁력은 생기는 것이고 성공도 얻을수 있다는게 역시 신념 이다 그룹의 회장 으로서 필요에 따라서는 미국 대통령 (25대 매킨리) 이 되어 1898년 쿠바 독립운동 관련 미국과 스페인 간 일어났던 미서전쟁 당시 게릴라 부대 지휘관 가르시아 장군을 에게 밀서를 보내야만 할때도 있다 당시 가르시아의 소재는 오리무중 이었다 하지만 보좌관의 건의로 르완 중위에게 밀서를 전달 하도록 하였고 일은 성공리에 마무리 할수 있었다 이처럼 소재가 불투명한 수 많은 가르시아가 많다 하지만 가르시아 에게 전해줄 만족 이라는 밀서는 사업과 고객에 따라 수없이 구비 되어 있다 전달자 르완 중위는 무수한 사원중에 있는것 이다 원가 절감과 작업환경 개선과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 채택되는 자동화 시설 도입에 미국 이나 유럽은 이해 득실을 우선하여 무리하게 시행 했지만 일본은 작업 환경 개선을 내세워 근로자를 설득 하였다 럭키 금성 역시 창업 이후 현재 까지 인본주의 를 중시 하고 있다 국가로 부터 소총을 민들어 보라는 권유에 나름 믿음을 긍정적 으로 평가 해주고 방위 산업이 안정적 유망한 사업 이라고 생각 되었지만 인명을 살상하는 무기 만드는 것은 하고 싶지 않아 완곡하게 거절한 창업 회장의 유지는 지금도 .미래도 이어 나갈것 으로 생각한다 인화를 위해 포기한 사업도 있었다 럭키금성은 60년대에 한국 최초의 민간 상업 방송국을 개국 한바 있었다 물론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제안을 받아 들인것 으로 1964년 5월 9일 ' 라디오 서울 ' 개국 테이프를 끊었고 같은해 동양 T V를 건설하여 12월 7일 채널 7, 호출번호 HLCE 였다 이회장과 선친은 같은 연배의 지역 출신 으로서 양가는 사돈 지간이 되어 있었으며 서로의 손주가 2명 이나 있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독 사업이 아닌 합자 형태의 미디어 사업으로 이견이 충돌 되다 보니 경제적 이익 보다는 양가의 불신이 문제가 된것이다 이에 선친 께서는 모든걸 삼성측에 맡기고 사업에서 손을 땐것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