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세지 2 성막의 중심인 분향단을 체험함
6. 그 단을 증거궤 위 속죄소 맞은편 곧 증거궤 앞에 있는 장 밖에 두라 그 속죄소는 내가 너와 만날 곳이며 7. 아론이 아침마다 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사르되 등불을 정리할 때에 사를찌며 8. 또 저녁때 등불을 켤 때에 사를찌니 이 향은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에 끊지 못할찌며 9. 너희는 그 위에 다른 향을 사르지 말며 번제나 소제를 드리지 말며 전제의 술을 붓지 말며 10. 아론이 일년 일차씩 이 향단 뿔을 위하여 속죄하되 속죄제의 피로 일년 일차씩 대대로 속죄할찌니라 이 단은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하니라 (출 30:6-10)
3.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4.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비석들이 있고 7.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년 일차씩 들어가되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이 피는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라 (히 9:3-4,7)
3.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4.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셀라)(시 84:3-4) | |
분향단과 번제단이 관유와 피와 불로 연결됨
1) 기름바름으로 연결됨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출애굽기 거룩한 관유를 제조하는 법을 언급하시고, 바로 출애굽기 30장26절부터 28절에서 “너는 그것(거룩한 관유)으로 회막과 증거궤에 바르고, 상과 그 모든 기구며 등대와 그 기구며 분향단과 및 번제단과 그 모든 기구와 물두멍과 그 받침에 발라” 라고 말씀하신다. 거룩한 관유를 회막, 증거궤, 진설대, 등대, 분향단과 번제단과 물두멍 차례로 바른다. 그러므로 거룩한 관유의 기름 바름을 통해서 분향단과 번제단이 연결되었다. 기름 바름은 분향단과 번제단, 두 단을 연결하는 성분이다. 요한1서 2장 27절에서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고 말씀하신다. 기름 부음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내주하시는 성령의 움직이심이다. 기름 바름은 우리를 주 그리스도 안으로 이끄시어 그리스도를 누리게 하고 그리스도와 하나되게 한다.
2) 속죄 제물의 피로 연결됨 두 단은 속죄일에 속죄, 화해를 위해 드려진 속죄 제물의 피로 연결되었다. 속죄일 은 일 년에 한 번 있었다 (레 16:29-34). 대제사장이 홀로 일년 일차씩 지성소에 들어가되 피를 가지고 들어갔다 (출 30:10, 히 9:7). 그날에 속죄 제물이 드려졌다 (레 10:16-18). 속죄일에 동물은 죽임당했다. 속죄제물의 피는 먼저 바깥뜰번제단 네 뿔에 바르고(레 16:18) 단 위에 일곱 번 뿌린다(레 16:19). 그런 다음에 그 피는 성소 안으로 가져와져서 분향단의 네 모퉁이에 적용되었다. 피의 일부분은 지성소 안으로 가져와 법궤 덮개위, 속죄소에 뿌려졌고 (레 16:14-15), 나머지 피는 바깥뜰의 번제단의 바닥에 쏟아부어졌다. 이 피는 대제사장과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렸다 (히 9:7).속죄제 수송아지의 피와 염소의 피를 번제단 네 뿔에 바른다는 것은(레16:18) 십자가 위에서 이룬 구속의 효능이 땅의 사방을 향함을 의미한다. 아론이 손가락으로 그 피를 단 위에 일곱 번 뿌리는 것은(레 16:19),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십자가 위에 흘려진 피의 충분한 효력이 죄인으로 그 마음에서 평안하도록 하기 위한 것임을 의미한다. 번제단 위에 뿌려진 피를 볼 때, 우리 죄인들은 우리의 죄와 죄들이 처리되었음을 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었음을 알 때 우리는 마음에 평안을 가진다. 번제단 위에 뿌려진 피가 우리의 평안을 위한 것임에 반하여 지성소 안에 있는 속죄소에 뿌려진 피는 하나님의 만족을 위한 것이다. 피를 번제단 위에 일곱 번 뿌려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에서 단을 성결케 한다는 것은 (레 16:19), 세상의 모든 죄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 모아져서 정결케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속죄제의 피로 말미암아 두 제단이 연결됬다. 이것은 분향단에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기도는 번제단에서의 체험에 근거해야 함을 가리킨다. 우리가 번제단을 체험한다면, 우리는 분향단에 기도하러 갈 수 있는 근거를 가지게 된다. 히브리서 9장 12절은 그리스도의 구속에 대해 분명하게 말한다. “오직 자기 피로”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속죄(구속)를 이루사 단번에 지성소에 들어가셨는지라”. 피는 우리의 죄와 허물들이 모두 처리되었음을 의미한다. 죄가 없어졌으며 허물들이 사라졌다. 피는 우리에게 이것을 확증시켜준다. 이것에 있어서 우리가 해야 할 아무 것도 남겨져 있지 않다. 피는 죄와 허물들의 문제를 해결했다.
3) 제물들을 불사르는 불로 연결됨
두 제단은 또한 불로 연결된다. 번제단 위에서 제물들을 태웠던 불은 성막 안의 분향단에서 향을 태우는 데 사용되었다. 향을 태우는 불로 어떤 다른 불도 용납되지 않음을 나답과 아비후의 예에서 본다(레 10:1-2). 향을 태울 수 있었던 불은 오직 번제단에서 가져온 불이었다 (레 16:12). 그 불은 하늘에서 내려온 불이었다(레 9:24, 대하 7:1). 이것은 하나님께 올려질 수 있는 것은 어느 것이나 먼저 번제단에서 신성한 불, 하나님에게서 온 불로 태워져야 함을 의미한다. 이것으로 우리는 제물들을 불살랐던 불이 이 두 제단들을 연결시키는 요소이다.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시다 (레 9:24, 히 12:29). 번제단의 불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우리의 존재가 하나님의 불로 재가 되도록 타야 함을 가리킨다. 제물을 드리는 자의 손을 희생 제물에 얹음으로 그가 드린 희생 제물과 자신이 동일시된다. 이것은 희생 제물이 그것을 드리는 자도 함께 포함한다는 의미이다.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을 때, 우리도 그분 안에서 죽었다(고후 5:14). 왜냐하면 우리는 그분 안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우리는 그분을 믿었을 때 그리스도 안에 우리의 손을 얹은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우리의 손을 그분께 얹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타서 재가 되셨던 그리스도와 하나 되었기 때문에 우리도 타서 재가 된것이다. 재는 우리가 십자가에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히고, 끝났다는 표시이다. 재가 될 때 우리는 더 이상 천연적인 사람이 아니다. 그 대신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고 끝나고 태워진 사람이다. 분향단은 지성소에 놓여 있다 (히9:4). 분향단에서 중재 기도하는 사람들은 제사장 봉사를 하는 자들이다. 모든 제사장 직분과 봉사는 부활 안에 있어야 한다 (레 9:1, 막 16:9). 천연적인 생명, 옛사람, 육신은 여기에 들어올 자리가 없다. 그러므로 먼저 재가 되어야 한다. 즉 그들은 천연적인 사람이 아니어야 한다는 말이다. 재가 가지는 것은 무엇인가? 재는 아무 것도 갖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회사의 사장, CEO의 명함을 가지고 자신을 가진 자로 간주하는 한 우리는 성막 안에서 봉사하는 것이 아니다. 성막 안에 거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떠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종교적 위치의 제복을 벗어야 한다. 그리고 제사장 옷을 입어야 한다 (레 8:13). 즉 그리스도의 속성들과 미덕으로 옷 입어야 한다( 갈3:27). |
우리는 보잘것없고 가치가 없는 참새이다
두 제단들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시편 84편 3절은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들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라고 말한다. 참새와 제비는 작고 약하고 보잘것없는 사람들인 우리를 가리킨다. 주님은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라고 말씀하신다 (마 10:29). 누가복음 12장 6절에서 “ 참새 다섯이 앗사리온 둘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이것은 참새 두마리가 한 앗사리온이고 참새 다섯이 두 앗사리온이다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참새가 매우 보잘것없고 가치가 없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다음 세대를 양육하는 자유로운 제비들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자유로운 제비와 같다. 제비는 참새와 다르다. 제비는 철새다. 언제 어디로 갈 지 원칙이 있다. 남쪽으로 갈 계절에는 남쪽으로, 북쪽으로 갈 계절에는 북쪽으로 간다. 숲에서 살지 아니면 호수에서 살지 그들 자신이 결정한다. 제비가 자유롭지만 번식을 위해서 하나님의 제단에 기꺼이 거한다. “제단들에서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에서 보금자리는 다음 세대를 키우기 위한 장소이다. 시편기자는 마치 “나는 제비처럼 자유롭다. 하지만 나의 헌신과 하나님과의 교통을 통해서 다음 세대를 키우기 위해서 제단들에 머물기를 갈망한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시편기자가 두 제단을 언급하는 것은 우리의 헌신과 교통과 중재의 기도 생활이 분리될 수 없음을 말한다. 번제단은 우리가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함을 의미한다. 분향단은 하나님과 우리의 신성한 교통과 중재의 기도를 의미한다. 이 두 제단은 우리가 하나님께 헌신하는 사람이며 교통하며 기도하는 사람임을 보여준다. 우리는 하나님과 교통하며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하는 사람이다. 두 제단의 체험은 반복적이며 더욱 깊어 가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께 자신을 헌신한다. 주님은 우리를 만지시고 우리는 다시 자신을 헌신한다. 그분이 다시 오시고 우리는 다시 헌신한다. 제단에 있는 제물들은 매일 새로워야 한다. 우리는 계속해서 새롭게 주님께 헌신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주님과 교통하고 계속해서 더 깊은 중보 기도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하나님의 만족을 위한 향이신 그리스도를 태움
향이 무엇인가? 향은 그리스도이다. 향을 태우는 것은 그리스도를 기도하는 것이다. 계시록 8장 3-4절은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Incense)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향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Smoke of the incense)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고 말한다. 이 천사는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그리스도는 성도들의 기도와 합하여 그분의 향을 더하는 분이다. 연기(향연)가 올라가는 것은 성도들의 기도와 함께한 향이다. 우리의 기도 속에는 연기를 올라가게 하는 향이신 그리스도가 있어야 한다. 향을 태우는 것이 실제로는 그리스도를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분향단에서 중재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향이신 그리스도를 가진다. 그 사람은 그의 천연적인 미덕이 십자가에 의해서 처리를 받고 재가 되고 그리스도의 모든 속성이 그 사람의 미덕이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 올라가는 달콤한 향기이신 그리스도가 그의 미덕이 되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분향단에서 중재 기도를 할 수 있다.
우리의 천연적인 존재 대 그리스도
우리가 지성소 안에 있는 언약궤에 이를 때 우리는 무엇을 체험하는가? 휘장으로 상징되는 우리의 천연적인 존재(히 10:20)와 하나님의 간증이신 그리스도로 상징되는 언약궤의 대비가 됨을 본다. 우리는 휘장이 우리의 천연적인 존재이며 언약궤와 대비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분향단은 매우 깊고 중요한 예표이다. 우리가 분향단을 체험하기 위해서, 우리의 존재가 재가 되어야 함을 가리켜 준다. 우리는 네 가지 천연적인 행위, 시야, 미덕과 존재를 가지고 태어났다. 우리는 우리의 선한 행실, 좋은 시야, 좋은 미덕이 그리스도를 가리는 휘장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천연적인 선한 행위는 우리의 생명 공급이신 그리스도를 대치한다. 우리의 천연적인 좋은 시야는 우리의 빛이신 그리스도를 대치한다. 우리의 천연적인 미덕은 우리의 향이신 그리스도를 대치한다. 이것은 우리가 더 이상 천연적인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휘장 대신에 우리는 하나님의 간증이신 그리스도, 언약궤를 가져야 한다. 그 결과 우리는 분향단에서 중재 기도할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될 것이다.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