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번을 다녀간 길도 모르는데 아침에 잠시 지나 온 바닷길을 어찌 알겠는가?
왔던 길 되돌아간다는 것만 알지,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고 배를 타고 육지로 나왔다.
그리고 다시 버스를 타고 꼬부랑산길을 꼬부랑꼬부랑 돌아서 통영 중앙시장으로 왔다.
(통영 중앙시장)
미리 생각해둔 대로 횟거리를 사려고 바로 활어시장으로 향했다.
마음이 급하다. 시간은 충분한데 왜 이렇게 마음이 급해지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뛰다시피 바쁘게 걸어서 통영 중앙시장 활어시장 앞에 오니 무엇이 척 걸린다.
아이구 무시라, 무슨 차가 이리도 많노, 차 때문에 사람 죽겠다.
교통순경이 나와서 교통정리를 하고 있는데도 차는 차대로 대가리 쏙쏙 내밀고 나오고,
사람은 사람대로 앞도 보지 않고 마구 퍽퍽 뛰어드니 간 작은 나는 길을 못 건너서 못 가겠다.
통영 중앙시장의 명물은 값싸고 신선한 활어 즉, 생선회 인데, 언제부터 멍게빵이 떴는지 몰라,
작년 봄에 와보니 활어시장 입구에 '멍게빵' 하고 멍게를 한 마리 턱 붙여 놓았더라.
맞다, 통영에는 활어도 유명하고 멍게도 유명하지, 그런데 멍게빵에 멍게가 얼마나 들어갔을까?
(잊혀지지 않는 음식 문어,은행,번데기)
길을 건너 시장 안으로 들어가는데 절대 잊혀지지 않는 먹거리가 보인다. 문어, 은행, 번데기.
문어는 오래 전 사량도에서 처음 먹었는데, 짭조롬한 갯내와 부드러운 살맛을 잊을 수가 없고,
번데기도 오래 전 주흘산 갔다가 내려오면서 문경새재 제1관문에서 처음으로 먹어보았다.
그때 머리가 아파서 눈을 못 떴는데 번데기 한 컵 먹고 머리가 나았다. 그것을 잊을 수가 없고,
은행은, 직장동료가 학부모한테 선물을 받았는데, 하루에 몇 알씩 먹어야 되냐고 나에게 물었다.
속으로 "받은 사람한테 물어보던가, 지 먹고 싶은 대로 먹으면 되지,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봐" 라며,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이 바쁜 사람 불러내어 기분이 안 좋았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오동통한 문어다리, 두통에 좋은 구수하고 맛있는 번데기, 반질반질 윤이 나는 샛노란 은행은,
1주일 전부터 비진도 가면 꼭 사리라 계획했던 횟거리부터 먼저 사고, 나오면서 사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횟감 고르고 장만하고 하는데 정신이 쏠려 문어도 은행도 번데기도 다 까먹고 그냥 왔다.
(도다리)
시장 안으로 들어오니 상인들이 한 줄로 쫙 앉아 있고, 싱싱한 활어들이 펄떡펄떡 뛴다.
나름대로 물고기 이름도 찾아보고, 크기도 재보고, 색깔도 맞춰보고, 가격도 알아보고 왔다.
그러나 직접 현물과 맞닥뜨리니 이름도 생각나지 않고, 어떤 넘이 싱싱하고 좋은지 모르겠더라.
(새우)
통영 활어시장에는 바다에서 나는 건 다 있다. 우렁쉥이도 있고, 낙지도 있고, 전복도 있고,
시장을 다니면서 물건을 보면 자기와 연관이 있고 언젠가 먹어보았던 물건에 눈이 간다.
우렁쉥이는 어릴 때 아버지께서 장에만 가면 한 강구 사가지고 와서 집에서 먹었던 기억이 있고,
낙지는 막내동생이 내가 사준 낙지볶음을 먹고 맛있다고 부산만 오면 낙지볶음 생각난다 하고,
청산도 가서 전복장사 하는 종씨를 만나 청산도만 가면 전복을 사와서 원없이 먹었던 기억,
막내동생 보신으로 전복죽 끓여 줄거라고 부전시장 전복사러 갔다가 없어서 대합죽을 끓였던 기억,
마디를 똑 꺾어서 껍질을 벗겨 먹는 새우, 바늘로 콕 찍어 뱅 돌려서 살을 쏙 꺼내 먹는 소라 고동 등.
(개불)
요건 개불이다. 요 개불은 지난주에 친구가 비진도 갔다오면서 먹었다는 그 개불이다.
매우 맛있었다고 자랑을 했는데 글쎄, 얼마나 맛이 있었으며 어떤 맛이었는지 궁금하다.
그맛을 알기 위해 나도 한번 먹어볼까 하고 쳐다보다가 생긴 모양이 징그러워서 지나쳤다.
(생선포 뜨고 매운탕거리 다듬는 로또수산 사장님)
드디어 찾았다. 내가 사고자 했던 횟거리 광어, 우럭, 도미!
크고 단단하고 힘이 세어 보이는 광어, 우럭, 도미가 한 소쿠리에 30,000원.
야 횡재 만났다. 눈이 번쩍 뜨였다. 부산 자갈치시장에 비하면 완전 공짜다 싶었다.
값이 너무 저렴하여, 다 죽어가는 넘, 겨우 명줄만 붙은 넘을 눈속임으로 내놓았나 하고 살짝
건드려보았더니 "악" 이넘이 "철퍽" 하고 하늘로 펄쩍 뛰어올라 떨어지는데 깜짝 놀랐다.
짠물이 얼굴을 때리고, 온 옷에 튀고, 그넘 닦아낸다고 잠시 비명을 지르며 호들갑을 떨었다.
횟거리 점 찍어 놓고, 도다리쑥국 끓일 도다리 1마리 골라 달라했더니 1마리 15,000원 달란다.
뭐, 팔뚝만한 광어 우럭 도미도 10,000원씩인데 얇은 도다리는 왜 15,000원이냐고 따지고 있는데
어떤 젊은 여인이 살랑살랑 오더니 "도다리 이거 얼마에요" "15,000원 입니다" "2마리 주세요"
장만하여 봉다리에 담고 우럭을 보더니 "우럭은 얼마에요" "15,000원 입니다" "우럭 2마리 주세요"
흥정하고 있는 물건이 좋아보였던가, 주인아저씨가 선해 보였던가, 아니면 내가 똑똑해 보였나?
아무튼 내가 물건을 흥정하는 새에 끼어들어 말도 없이, 그야말로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도다리는 도다리쑥국 끓여 먹고 우럭은 구워먹을 거라면서 한참에 60,000원어치를 사가지고 갔다.
가고 나서 주인아저씨 왈 "이모만 아니었으면 2만원 받는 건데, 원래 이게 2만원짜리 물건이거든"
그러면서 나를 보고 "이 도다리 진짜 좋소, 살이 단단하고 맛있는 거요, 그러니 고마 가져가소"
생물은 빨리 팔아야 되고, 장사도 남는 게 있어야 먹고 살지 않겠는가 싶어서 "좋소, 1마리 주소"
그리하여 횟감용 광어+우럭+도미=30,000원, 쑥국용 도다리 15,000원, 총 45,000원어치를 퍽 질렀다.
(한려수도해상공원)
며칠 전에 자갈치시장 가서 회칼을 하나 샀다. 비진도 가면 횟거리 사와서 회쳐 먹으려고.
그래서 산채로 담아 달라고 했더니 통영에서 부산까지 가면 물고기가 죽어버린다네,
그럼 회는 치지 말고 시메(숨만 끊는 것)만 해달라고 했더니 꼭 포까지 떠서 주겠다고 한다.
그참 아상하네, 시메만 해주면 일도 줄고 편하고 좋을텐데 왜 기어이 포까지 떠서 주겠다고 할까?
우리집에 회 잘치는 도사가 있어서 일부러 통째로 사가지고 가서 느긋하게 먹으려고 하는 건데...
도사에게 전화하여 꼭 포를 떠서 주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 하고 물어보려고 하다가,
나는, 물건을 사거나 이야기 도중에, 집에 있는 남편 또는 새끼에게 전화하는 사람을 제일 싫어한다.
어쩌면 남이 없는 남편이 다 있고 남이 없는 새끼가 다 있어서 그렇게 요란을 떨고 그러는가 싶다.
그래서 그냥 "그럼 포만 떠서 주소" 하고, 횟거리는 포까지 뜨고, 도다리는 내장만 빼고 가져왔다.
집에 오자마자 배낭 집어 던져놓고 바로 회부터 쳤다. 철벅, 팔딱, 팍, 찌익, 삭삭삭. 삭삭삭.
"음 맛있다!" 완전 꿀맛이다. 부드러우면서도 쫄깃쫄깃한 것이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주인아저씨께서 혼자 먹을거라면서 뭘 이렇게 많이 사느냐고 하더니 진짜 회가 완전 만푸장이다.
와사비에 찍어 먹고, 초고추장에 찍어 먹고, 먹고 먹고 또 먹고, 엄청 많이 먹었다.
양이 얼마나 많던지 다음 날 아침 눈 뜨자마자 또 먹고, 아침 먹고 또 먹고, 저녁까지 먹었다.
그렇게 이틀을 달아서 먹어도 질리지도 않고 얼마나 맛있는지 몰라, 정말 배터지게 많이 먹었다.
그리고 또 도다리는 도다리대로 쑥국을 끓였는데 야, 진짜 시원하고 맛있더라.
주인아저씨 말씀대로 도다리가 싱싱하고 살이 단단하여 풀어지지도 않고 비린내도 나지 않고,
향긋한 쑥향이 솔솔 나면서 선선하고 시원한 봄바다냄새가 나는데 너무 맛있어서 끔뻑 넘어갔다.
그런데 꼭 보여주어야 할 횟거리와 회 사진이 없어서 섭섭하다.
횟거리 사고 포를 뜨니 안 뜨니 신간하는 바람에 사진 찍는 걸 잊어버렸다.
도사의 회솜씨와 도다리쑥국도 보여주어야 하는데 그것도 먹기 바빠서 까먹어버렸다. 몰랐다.
(충무김밥 1인분 4,500원)
집에가서 직접 회를 쳐서 먹을 거라고 횟거리를 샀지, 회를 산 건 아니잖아,
횟거리에 신경쓴다고 배고픈 줄도 몰랐는데 시장을 나오니 배가 고프다.
퍼뜩 충무김밥 하나 먹었다.
그런데 충무김밥이 왜 그렇게 비싸, 내 손가락보다 더 작은 거 8개 4,500원, 놀래자빠지겠다.
아무리 물가가 비싸다고 하지만 먹는 밥인데 그래도 깔딱요기는 되어야 되는 거 아닌가?
밥이지만 간식으로 먹어야지 끼니로는 안 되겠다 싶은 충무김밥, 그래도 맛있게 잘 먹었다.
사람들은 뭘 사가지고 왔으며, 또 뭘 먹고 왔을까?
차를 타고 오면서 물어보니까 충무깁밥 먹었다는 사람도 있고, 회덮밥 먹었다는 사람도 있고,
멸치, 미역 등 장만 본 사람도 있고, 회 50,000원어치 8명이 다 못 먹고 남겨놓고 왔다는 팀도 있고,
혼자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다음에는 집에서 미리 쐬주 1병 하고, 상추, 와사비, 초고추장 챙겨가서 우럭 1마리 회쳐서 먹고,
아까 그 여인처럼 구워 먹을 우럭 2마리 사고, 도다리 2마리 사고, 멍게 한 봉다리 사가지고 와야지.
겨우내 웅크리고 있다가 보배의 섬 비진도에서 에메랄드빛 푸른바다를 보고 속을 푸는 하루였다.
끝.
2015 .3. 8. 일. 맑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