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곡리(阿谷里)
시리봉에서 타고내린 골짜기 물을 따라 형성된 마을로 풍수적으로 와우형국이다.
아영과 동면을 잇는 지방도를 아영 방면 서북방으로 농로를 따라 5km 지점에 위치한 이 마을은 해발 450m의 높은 지대로 기후적으로 고냉지대이다.
통일 신라 초기 중국 당나라 사람들이 일시 거주하였다고 전해오고 있으나 실제 고려 명종조(1170∼1197)에 풍산유씨(豊山柳氏) 등이 정착 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 그후 전주이씨(全州李氏). 경주김씨(慶州金氏) 등 여러 성씨들이 이곳에 이주하였다. 마을 북쪽으로 1.5km 위치에 사기를 굽던 점촌(店村)이 있었는데, 후에 동면 자래리 점촌으로 옮겨가 연실(蓮室) 마을로 개칭되었다.
통일 신라 초기 당나라 사람들이 일시 거주한 사실이 있다는 구전에 따라 인근 사람들이 이곳을 '당실'이라 칭하여 왔다. 후에 한문으로 표기함에 따라 '당골'을 그대로 옮겨 '당동(唐洞)'이 되었는데 지금도 마을 사람들은 '당골'이란 명칭을 사용한다.
오래전 실제 중국 당나라 사람들이 살았음인지 이 마을은 전통적으로 한문을 중시하여 일찍부터 한문서당이 있었다. 그 유풍이 최근까지 남아 주민들이 보수적인 경향을 띠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점촌리, 당동리 일부를 병합하여 아곡리에 편입하여 남원군 아영면에 속하였다.
1972년에 이르러 새마을사업이 본격적으로 이루어 지면서 농로 3km를 개설한 것을 비롯하여 마을회관 20평, 마을 공동창고 30평, 마을 공동구판장 등을 설치하였고, 1975년에는 마을 뒷산 10ha에 사방사업을 실시하였다.
논 농사가 주업이며 1980년대 초까지 고냉지 채소, 고추, 밤, 감 등을 재배하여 농외소득을 올려왔다.
뒷산에서는 양질의 석재가 산출되어 1979년부터 외지 기업인들이 채석을 하고 있다.
현재 총 24가구에 인구수 68명(남 : 31, 여 : 37)이다.
<마을회관> 1985년 건립.
<당산제> 매년 1월 15일에 당산나무에서 지내 왔으나 20년 전 중단하였다.
<기우제> 시리봉에서 지냈다.
<고분> 마을 입구 고려장터. 왜정 때 훼손되었다.
<도요지> 마을 뒤쪽 1.5km 되는 곳에 있었다. 그릇 제조용 흙은 동면 자래리에서 들여왔다.
<회관건립비>
앞산에는 '베틀바위'가 베를 짜는 형상으로 마을을 굽어보고, 그로부터 200m 지점에 '울돗치'는 고려말 이성계 장군이 왜구와 싸울 때 돌들이 팔량치를 향하고 울었다는 전설을 담고 있다.
옛부터 마을 형국이 옥녀직금형(玉女織錦形)으로 마을 남쪽 베틀바위와 관련해서 공을 들이면 득남한다고 전해오고 있다. 또한 현재 지리산 휴계소 자리의 지명이 토골(토동)로 불리어 왔었는데 옛부터 이곳은 흙을 메워 큰 마을이 세워질 자리로 전해 내려왔던 곳이다.
동면∼아영간의 지방도에서 서북 방향으로 농로를 따라 약 4km 지점에 위치한 산간 마을로써 해발 450m의 고냉지대이다.
남북국시대 연안이씨 일가가 이곳에 처음 터를 잡아 정착하면서부터 이 마을이 형성되었다. 그후 타 지방으로 이주하고 재녕이씨, 함양오씨, 달성서씨 등이 차례로 이주 정착하였다. 마을 앞 평지에 농경지를 개간하고 농사에 진력하여 마을이 날로 발전하고, 이어 평강채씨 등 여러 성씨들이 입주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아영면에서 제일 먼저 형성된 마을이라 전해지고 있으며, 마을의 위치가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 '아막성'의 성역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아곡'이라 칭하였다고 한다. 속칭 이것을 '아실'이라 불렀으니 아실을 한문으로 옮기면 아곡(阿谷)이 되는 것이다. 공양왕 3년(1391) 운봉에 파견된 감무가'아용곡부곡(阿容谷部曲)'의 권농병마사(勸農兵馬使)를 겸임했다고(남원지, 1992) 기록되어 있는데 아용곡부곡의 이름에서 아(阿)자와 곡(谷)로 축약해서 '아곡(阿谷)'이라 부른 이름으로 추정해 볼 수도 있다.
본래 운봉군 북상면의 지역으로서 아용(요)곡부곡{阿容(要)谷部曲}이 있었으므로 아실 또는 아요곡, 아곡이라 하였으며 북상면과 북하면이 병합하여 아영면이 되기 이전에 북상면 청사가 자리하던 마을이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점촌리, 당동리 일부를 병합하여 아곡리라 통칭해서 남원군 아영면에 편입하였다.
옛부터 참판, 감찰, 진사등 조정의 관직들이 많이 배출되어 이른바 양반촌으로 유교를 존중하고 예의를 숭상하던 보수적인 마을이었다. 1977년에 자립마을로 승격하면서 마을회관 30평, 공동창고 40평을 비롯하여, 마을 환경개선 사업을 꾸준히 지속하여 주민의 의식구조는 물론 시대에 걸맞는 문화 시설을 갖추었다.
옛부터 체를 제작하고 전국을 다니며 행상을 하였던 체 생산의 본 고장이다. 그러나 체 생산은 어디까지나 부업일 뿐 주업은 논농사로 다른 마을과 공통적이다. 한 때는 고냉지 채소·엽연초 경작등 밭농사에서도 소득을 올려 왔다.
이 마을 인물로는 조선조에 이 참판·박 감찰·이 진사 등 많은 명인들이 배출되었다. 서남쪽 500m 지점에 방고대가 있는데, 이곳은 과거에 합격한 사람의 방을 붙여 발표하는 곳으로 '방을 기다리는 곳'의 뜻이다.
현재 총 54가구에 인구수 167명(남 : 77, 여 : 90)이다.
<88고속도로 휴게소> 아곡리 83번지에 위치. 33m의 탑이 서 있다. 동일농협에서 운영한다.
<내고장 으뜸농산물 판매장> 88고속도로 휴게소에 위치한다. 아영농협에서 운영한다.
<순령재(順寧齋)> 1919년 건립한 재령이씨 제각.
<양진제(養眞齋)> 1947년 건립한 함양오씨 사암공파 제각.
<추모재> 연안이씨 정령공파 제각.
<영모재> 서산정씨 판관공파 제각.
<기암사> 1958년 산 137번지에 설립한 태고종 사찰.
<아곡교회> 1990년에 설립한 대한 예수교 장로회 교회.
<탑거리> 마을 앞에는 옛날 아담하고 섬세하게 다듬어진 4층 석탑이 1934년까지 서 있었는데 일본인들이 수탈해 갔다. 지금도 이곳을 '탑거리'라 부르고 있다.
<수양전진계비> 마을 입구에는 '아곡수양전진계(阿谷修養前進契)'라 쓴 비가 서 있다. 독립운동가 이두석은 1929년 18세의 젊은 나이로 큰형 이두현과 같이 '수양전진계'를 조직하고 야학을 개설하는 등 항일 독립사상을 고취시키고 농촌계몽에 앞장섰는데 공적을 기리기 위한 비. 수양전진계에서 운영하던 야학터는 현재 양진제 제각터에 위치하던 운곡제 서당이었다. 그후 운곡제는 마을 회관 서편으로 이전하였다가 소멸되고 현재는 그 편액이 마을회관 정문에 부착되어 있다.
<아영고지비(阿英古址碑)> 마을 입구 탑거리에는 옛날부터 '아영고지'라 새긴 비가 세워져 있었다.
<당산제> 마을 앞 삼거리의 날당산과 마을 뒤 본당산에서 음력 1월 3일 지냈다.
<기우제> 봉화산과 황산에서 주로 지냈다.
<봉암대(蜂巖臺)> 마을 앞쪽에 위치하며 바위가 벌떼같다 해서 붙인 이름이며 이수봉, 오형철 등 105명이 계(契)를 조직하고 즐겼던 곳. .
<계거오공유허비(溪居吳公遺墟碑> 계거 오상귀(吳相龜)의 비(碑).
<지소유거비(止巢幽居碑)> 지소 오상봉(吳相鳳)의 비(碑).
<기암> 일명 베틀바위. 과거 팔월 한가위철이면 4개읍면의 부녀자가 이곳 기암대에 모여 하루를 즐겼다.기암대는 옥녀직금 또는 검도암이라고도 한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 석굴에서 선녀들이 베짜기를 하였다고 전하며, 아들 못낳는 여자가 바위 위에서 머리를 빗고 내려오면 아들을 낳는다 하였다.
가래터 : 당동 남쪽에 있는 들.
갈나골 : 새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기암(機岩) : 베틀바우.
당동(唐洞) : 땅골.
도장골 : 당동 북서쪽에 있는 골짜기.
뒷골 : 아곡 북서쪽에 있는 마을.
땅골 : 당동. 아실 북서쪽에 있는 마을.
명석치(鳴石峙) : 웃도치고개.
명씨바우 : 뒷골 복판에 있는 바위.
모래재 : 사치. 아실에서 장수군 반암면 유정리로 가는 고개.
방고개 : 방현. 아실에서 운봉면 가산리로 가는 고개.
방현(榜峴) : 방고개.
벌바우 : 어심이 남쪽에 있는 바위.
베틀바우 : 기암. 천황봉에 있는 바위. 큰 바위 수십개가 베틀같이 쌓여 있으며, 음력 8월 16일에 부녀들이 모여 놀이를 하였다.
병목안 : 아실 서쪽에 있는 골짜기 입구가 병목 처럼 좁아진다.
사치(沙峙) : 아실에서 장수군 반암면 유정리로 가는 고개.
새골 : 아실 북쪽에 있는 골짜기.
새목이 : 뒷골 북서쪽에 있는 골짜기.
새목이재 : 새목이에서 장수군 반암면 논곡리 배바우로 가는 고개.
설고개 : 솔고개. 송현치(松峴峙). 당동에서 봉대리 봉대로 가는 고개.
송현치(松峴峙) : 설고개.
아곡(阿谷) : 아곡리.
아랫고개 : 아실 서쪽에 있는 고개.
아랫고개절 : 아랫고개에 있는 절.
아실 : 아곡리.
아영고지(阿英古址) : 아곡에 있는 터. 아영고지라 쓴 비(碑)가 있었다.
아요곡(阿要谷) : 아곡리.
어심이 : 아실 남쪽에 있는 골짜기.
웃도치고개 : 명석치. 어심이에서 봉대리 개남들로 가는 고개.
장삼이 : 도장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잿들 : 가래터 북쪽에 있는 들.
쟁갈뜸 : 아실 동쪽이 되는 마을.
점촌(店村) : 아실 북쪽에 있는 들. 그릇 굽는 점이 있었다.
집앞들 : 아실 남동쪽에 있는 들.
천황봉(天皇峰) : 아실 남쪽, 베틀바위가 있는 산.
칼바우 : 베틀바우 북쪽에 있는 바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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