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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을 찾습니다!
창 18:22-33
오늘 아침 읽은 말씀은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입니다. 고대에 그리도 유명했던 향락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가 불심판을 받아 멸망한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유황불로 심판하겠다고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조급한 요청을 하였습니다. “하나님,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 50명만 있어도 멸망시키겠습니까?” 이렇게 시작된 아브라함의 요청은 의인 45명, 40명, 30명, 20명으로 줄어들어가 마지막으로 애원하였습니다. 창세기 18장 32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였다. “하나님, 한 번만 더 말씀 드리겠습니다. 거기에 의인 열 명만 찾아도 멸망시키겠습니까?”하고 애원하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내가 의인 열 명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겠노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그곳은 보다 큰 번영을 만끽하는 근대화의 요람이었습니다. 그곳으로 돈이 모여들었고, 사람이 모여들었는데 눈뜨고는 차마 볼 수 없는 인간 타락의 죄악상이 날개 치고 있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는 명예와 돈, 그리고 권력이 많은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의인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없었습니다. 에누리를 해가며 찾아보아도 있어야 할 의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까닭이 바로 거기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리도 에누리하면서 호소했던 의인 열 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물결이 넘치던 소돔과 고모라 거리에 사람이 없었다는 말은 역설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수도 서울은 어떠합니까? 현재 서울의 상주인구는 천만 명 가까이 살고 있습니다. 엄청난 인파가 서울 거리를 누비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많고 많은 사람들 가운데 의인이 몇 명이나 있습니까? 이 물음에 긍정적인 대답을 하기에는 서글픈 현실입니다. 천만 명이 모여 살고 200만 명 이상이 예수를 믿고 있는 한국 최대의 도시 서울에 의인이 몇 명이나 있을까요? 서울은 이제 의인을 찾아보기 어려운 ‘스올’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의인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를 향하여 “거기 누구 없느냐? 열 명만 손들고 나와 봐라. 열 명만 있으면 돼!” 이렇게 말씀하셨지만 손을 드는 사람도 나서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바로 거기에 소돔과 고모라의 비극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시대의 고민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없어서 사람이 적어서가 아니라 의인이 없기에 의인을 찾을 수가 없어서 나라가 망하는 것입니다.
의인이 누구입니까? 나라를 흥하게도 망하게도 하는 의인은 과연 어떤 사람입니까?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의인입니다. 의인은 100% 완전한 결격사유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코람데오)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켜 행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의인입니다. 환난이 와도 핍박이 와도 시련이 와도 신앙 양심 저버리지 않고 하나님 말씀 따라 사는 사람이 의인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의인입니다. 비틀거리는 겨레 위해 이대로 가면 망할 수밖에 없는 나라를 위해 가슴 치며 기도하는 사람이 의인입니다.
그러므로 의인이 기둥입니다. 의인이 버팀목입니다. 의인이 기둥이 되어서 멸망시킬 건물 버티고 있는 것입니다. 나라가 그 집이 다 무너지게 되었는데 의인 열 명만 있으면 그 나라 그 집이 무너지지 않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시편 11편 3절에 보면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고 하였습니다. 의가 굳건한 터입니다. 이 세상이 죄악으로 멸망당하게 되어 있으나 기둥들, 곧 의인들이 받치고 있어서, 그 기둥들이 버티고 있기 때문에 멸망을 당하지 않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나라는 죄악이 관영하여 그 죗값으로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으나 의인들이 나타나서 기둥 역할을 잘해 나가면 소망이 있습니다. 그 의인들 때문에 하나님이 긍휼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무기 아래 있는 나라는 망하고 말 것이나 무릎 위에 놓여 있는 나라는 결코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둥들이 중요합니다. 기둥이 있으면 자기만 사는 게 아니고 그 나라 전체를 살립니다. 그 도시 전체를 멸망시키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둥의 사명이 아주 중요합니다. 의인 열 명을 찾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성에서 의인 열 명을 찾지 못하셨기에 그 성을 멸망시켰습니다. 예루살렘 도성에 의인 몇 명만 있으면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하셨을까요? 의인 한 명입니다. 예레미야 5장 1절에 보면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하였습니다. 예레미야 시대에는 예루살렘 거리에서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의인 한 명만 있어도 예루살렘을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대로 된 한 사람, 도시의 장래를 책임지려는 의인 한 사람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모집 광고이십니다. 하나님은 성이 무너져 내리는 곳에 버티고 서 있는 의인 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에스겔 22장 30-31절에 보면 “30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31내가 내 분노를 그들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들 행위대로 그들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성벽을 쌓고 그 성을 멸망시키지 못하도록 성이 무너진 곳에 버티고 서 있는 의로운 사람을 찾았으나 그런 사람을 찾을 수 없어서 분노를 그 성 위에 쏟으셨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기울어 넘어져 가는 나라와 겨레의 도성을 품에 끌어안고 몸부림치는 의인 한 사람을 애타게 찾으시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한국 도성에, 한국 교회에, 서울 도성에 의인이 나타나야 합니다. 모세와 같은 의인이 나타나야 합니다. 바위를 깨뜨려 물을 뿜어내고 바다 한복판에 물 벽을 만들어 아스팔트를 걷듯 인도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눈물겹도록 체험한 이스라엘 백성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10번이나 하나님을 거역하고 또 원망했습니다. 드디어 진노의 하나님이 칼을 드시자 모세는 넙죽 엎드려서 하나님 앞에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안 됩니다. 이 백성의 패역함을 용서하소서. 진노를 거두어가지 않으시려면 차라리 내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 주소서. 그들과 같이 죽겠습니다!”(출 32:30-32). 이런 모세의 애절한 기도에 하나님께서는 뜻을 돌이키셨습니다. 이런 모세와 같이 기도하는 종들이 오늘 우리나라 곳곳에도 수문장처럼 서 있어야 합니다.
골리앗을 쓰러뜨려 이스라엘의 위기를 극복한 소년 다윗과 같은 종이 우리나라에 나타나야 합니다. 유대민족 구원을 위해서는 죽으면 죽으리라던 에스더와 같은 종이 나타나야 합니다. 빗나가는 사울 왕을 위해 밤새워 울며 기도한 사무엘과 같은 선지자가 나타나야 합니다. 소돔성의 멸망을 막아보려고 6번이나 허리 굽혀 애걸한 아브라함과 같은 종이 나타나야 합니다. 겨레와 민족의 구원을 위해서 커다란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을 품고 삼았던 바울과 같은 종이 나타나야 합니다. 아람나라의 무서운 공격을 수없이 차단시켜 이스라엘의 국방과 마병이 된 엘리사와 같은 종이 나타나야 합니다. 누가 우리나라를 지킬 것입니까? 누가 우리나라에 쏟아지는 재앙을 막을 것입니까? 누가 이 세계를 뒤덮은 더러운 악령들과 감히 싸울 것입니까? 누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땅을 마구 파괴시키는 포악한 영을 결박시킬 것입니까? 이 땅에 의인이 나타나야 합니다. 한국교회에 의인이 나타나야 합니다.
일가 김용기 장로님은 평생 한 손에는 성경, 한 손에는 괭이를 들고 평생 농사꾼으로 살며 신앙의 생활화를 이루신 분입니다. 그는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확신을 가지고 농촌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늘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 먼저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고 1988년 80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조국이여 안심하라! 기도하는 나 있으니!”를 외치며 우리 조국과 민족을 위해 새벽에 두 시간, 저녁에 두 시간 하루 4시간씩 기도하며 살았습니다. 이 땅에 이런 의인이 나타나야 합니다.
어느 추운 겨울 밤, 시무언 이용도 목사님은 인왕산으로 기도하러 갔습니다. 밤 사이에 큰 눈이 쏟아졌습니다. 그의 친구 피도수 선교사가 아침에 창문을 열고 밖을 보니 천지가 눈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피도수 선교사는 급히 따뜻한 옷을 챙겨가지고 이용도 목사님이 늘 기도하던 뒷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걱정이 된 피도수 선교사는 “이 목사님! 이 목사님!” 목청을 높여 소리 지르며 온 산을 뒤졌습니다. 간절한 목소리가 허공을 두드렸지만 눈 덮인 산은 이 목사님을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계속 “이 목사님!”하면서 소리를 지르니 부스스하는 소리와 함께 눈 속에서 하얗게 된 무언가가 일어서는 것이 아닙니까? 눈으로 뒤덮인 이용도 목사님이었습니다. 어젯밤 눈이 내리기 전에 기도를 시작했는데 나중에 눈이 내리는 것도 모르고 밤을 새워가며 겨레와 민족 그리고 조선의 교회들을 위해 기도했던 것입니다. 이 땅에 이런 의인이 나타나야 합니다.
맨발의 성자 이현필 선생님은 버림 받은 사람같이 외로이 맨발로 독사와 멧돼지 득실거리는 지리산 갈밭 헤치고 들어가 한 번 엎드리면 영 일어날 줄 모르고 기도하였습니다. 이 땅의 배고픈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헐벗고 의지할 수 없는 사람들이 떠올라서 잠을 잘 수가 없어 엎드린 것입니다. 밤새 잔등엔 서리가 내리고 까마귀는 송장인 양 울고 이윽고 새벽이면 수염에 고드름이 달린 채 주님의 보혈에 가슴이 물결치며 “갈보리 산에서 십자가를 지시고... 아 십자가! 아 십자가! 갈보리 십자가는 저를 위함이요!” 통곡하며 부르던 맨발의 거지 성자 이현필 선생과 같은 의인이 이 땅에 일어나야 합니다.
갈 곳은 없고 허기진 배 움켜잡고 울다가 지쳐 밀리고 밀려 떠내려온 하루가 다르게 문들어지는 몸뚱아리 쥐어 뜯으며 죽음의 길을 도망쳐 나온 버림받은 나환자들의 더러운 피고름 입술로 빨아주던 애양원의 어지신 아버지 산돌 손양원 목사님과 같은 의인이 이 땅에 나타나야 합니다.
거지를 자기 집에 데려다 키우면서 병들어 죽어가는 그 거지의 코에 입을 대고 빨아주며 거지가 병들어 죽자 “내가 내 딸처럼 사랑하지 못해 그 아이가 죽었습니다.”하며 눈물 흘리며 회개했던 성모 마리아의 얼굴 같았던 참 예수의 사람 임순임 권사님과 같은 의인이 이 땅에 나타나야 합니다.
길 가다가 헐벗은 사람 보면 자기 저고리 바꿔 입혀주고, 추운 겨울날 떨고 있는 거리 아이들 보면 업어다가 자기 방에 데려다 키운 전주 기전여학교 교사 거리의 성녀 방애인 선생과 같은 의인이 이 땅에 나타나야 합니다.
저수지 둑방에 내버려진 폐병으로 피 토하며 죽어가는 머슴을 업어다 자기 집 아랫목에 누이고 냉수로 찜질해주고 대소변 받아내고 자기 형제처럼 고이 장례식까지 치러주었던 강순명 목사님과 같은 의인이 이 땅에 나타나야 합니다.
무명옷 한복만 입고 예수를 민족 속에 화육시켰던 오산학교 교장 선생님 한국의 간디 조만식 장로님과 같은 의인이 이 땅에 나타나야 합니다.
1919년 2월 28일 밤, 파고다 공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숭동교회 지하실에서 젊은 청년들이 독립 선언서를 인쇄하느라고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일본 제국주의의 검은 통치, 절망과 고통의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내고 빛나는 자유를 찾기 위한 고귀한 손길은 아침 태양처럼 불타올랐습니다. 당시 연희전문에 다니던 강원벽 등 기독학생들은 밤을 새우며 독립 선언서 수만 장을 인쇄하고 미리 준비한 태극기를 손에 들고 3월 1일 파고다 공원에서 대한 독립 만세 운동을 벌였습니다. 서울의 만세 운동은 교회를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번져 나갔습니다. 3월 6일 전북 군산 구암교회 성도를 중심으로 일어난 서래 장터 만세운동, 3월 8일 대구제일교회와 남산교회가 중심이 된 대구 만세운동, 3월 18일 강화읍 장날 만 명-2만 명이 모여 만세 운동을 벌인 강화 만세 운동, 3월 21일부터 24일까지 나흘 동안 400명이 모여 벌인 강화 교동 만세운동, 4월 1일 정동제일감리교회 교인이었던 유관순의 아우내장터 만세운동, 경기도 발안 만세운동, 평양 정주 의주 등 북한 서북지역 교회를 중심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발안 만세운동은 4월 15일 일제가 23명의 제암리 주민을 제암리감리교회에 몰아넣고 총으로 쏜 뒤 불을 지르는 만행으로 이어졌습니다.
3·1운동은 한국교회가 주도한 민족 독립운동이었습니다. 3·1운동의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16명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천도교 15명, 불교 2명이었고 천주교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기독교인 민족대표 16명 가운데 10명이 감리교인이었고, 6명은 장로교인이었으며, 감리교신학대학은 7명의 민족대표를 배출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3·1운동 당시 기독교는 35년 밖에 되지 않았고, 그 당시 기독교인은 20만 명 정도였습니다. 한국 전체 인구 2천만 가운데 1%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민족의 정신적 지주요 희망의 등불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교회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전체인구의 25%인 1200만 교인이 있고 5만 교회 7만 교역자들이 있지만 한국교회는 민족과 사회를 영도하지 못하고 있고, 추락하고 있는 현실이 아닙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를 가장 많이 닮았던 시무언 이용도 목사님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서울 거리에 성자가 나타나야겠나이다. 서울 거리에 사자후를 외치는 세례요한이 나타나야겠나이다.” 시대가 악하고 죄악이 관영할수록 의인이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나라는 그 어느 때보다도 의인이 필요합니다. 의인이 없는 나라와 민족은 희망이 없습니다. 정치가가 없어 나라가 망하는 것이 아니고 대기업이 없어서 나라가 망하는 것도 아니며 학교교육이 없어 나라가 망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의인 없는 나라와 민족이 망했다는 것이 역사의 산 증언입니다. 하나님은 의인을 찾고 계십니다. 의인이 희망이요 버팀목이요 기둥이요 터입니다. 우리 모두 한 사람의 의인이 됩시다.
“악이 비록 성하여도 진리 더욱 강하다”
진리 따라 살아갈 때 어려움도 당하리
우리 가는 그 앞길에 어둔 장막 덮쳐도
하나님이 함께 계셔 항상 지켜주시리.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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