딤전5:1-8, 산자와 죽은 자.
바울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에 대해서 권면한 후에 디모데가 목회하는 과정에서 접하게 되는 다양한 성도들을 어떻게 대하고 돌볼 것인지 구체적으로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목회자로서 사역을 할때, 각양 여러 모양의 성도들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목회자의 자세와 교훈을 전해 주는 말씀입니다. 위로부터 오는 말씀에 큰 은혜가 넘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리스도안에서 공동체는 가족관계입니다.
단어를 먼저 살펴보면 1,2절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듯 하고 늙은 여자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 제일 앞에 '늙은이''프레스뷔페로'가 나오고 있는데 이 단어는 '나이 많은'남성 형용사로서 나이 드신 남자를 의미합니다. 이 단어는 교회에서 직책으로의 '장로'를 뜻하는 단어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런데 1절에 보면 아비에게하듯하라 했으니 교회 안에 모든 어르신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어르신들을 교회 안에서는 꾸짖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 '꾸짖지 말라'는 단어는 어떤 의미일까요? 꾸짖지'에피플렉세스'는 '주먹으로 치다'라는 뜻이 있어 이 단어는 '언어 폭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어 주시는 말이 '권하되''파라칼레이'입니다. 이 단어는 '곁에서 말하다, 위로하다, 충고하다'라는 의미로 원형'파라칼레오'는 현재 명령입니다. 이 단어에서 주는 교훈은 뭘까요? 교회안에 리더는 즉 목회자는 장로는 교회안에 연장자를 대할 때에 잘못한 일을 보았으면 아랫 사람에게 하듯이 엄하게 꾸짖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현대의 표현으로 언어 폭력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르신으로 노여워하지 아니하시도록 아비에게 하듯이, 즉 가족에게 하듯이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마12:49-50절을 보면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또 이어서 젊은이를 형제에게 하듯하라 했습니다. 여기서'젊은이''네오테루스'는 '새로운, 청년'이라는 의미로 교회 들어 온지 얼마 되지 사람, 혹은 자신보다 더 나이가 어린 청년을 '형제''아델푸'는 한어머니의 피를 나눈 형제간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서 한 가족이 된 공동체의 구성원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가 같은 가족의 공동체로서 대하고 높 낮이가 없고 같은 하나님의 사역에 동역자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해서 방종은 아니됨도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분명히 위 아래는 있습니다. 이것을 분별한다면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아름다운 것입니다.
우리 교회안에서 위 장로님은 아래 사람들을 사랑으로 대하고 아랫 사람들은 위 장로님을 존경하고 상호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그리스도안에서 그러한 공동체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2절을 보면 여자들에게 관한 말씀인데 1절에서 남자를 여자와 대비하면 됩니다. 늙은 여자를 자신의 어머니처럼 대하라는 것입니다. 젊은 여자는 자매퍼럼, 그래서 바울은 롬16:13절에 보면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라고 하면서 루포의 어머니를 자신의 어머니처럼 존경을 했다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런데 젊은 자매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대하라는 것입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단지 성적인 의미보다 사상과 행위에 있어 도덕적으로 종교적인 법으로 깨끗함을 의미합니다.
레19:32절에 보면 "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또 롬12:10절을 보면 바울의 권면입니다.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라고 하셨습니다.
다음으로 교회는 과부나 고아, 가난한 이들을 돌보아야 합니다.
3절입니다. "참 과부인 과부를 존대하라" 여기서 말하는 참 과부는 스스로 살아갈 만한 능력이 없는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친척도 없는 혼자 사는 여인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막12:42-43절에 과부의 헌금을 보시면서 말씀하시기를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라고 과부에 대한 관심을 표현해 주셨습니다. 또 눅18장에서는 과부와 재판관의 이야기를 하시면서 밤낮 부르짖는 그 기도를 들어 주신 다는 은혜로우신 하나님의 영적인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특히 '존대'하라는 단어는 경의를 표하다, 존경하다, 의 현재 명령형이며 '가치, 값, 지참금'이란 의미의 '티메'에서 파생되어 바울이 참 과부를 존대하라 는 단어 속에는 정신적인 위로와 실제적인면에서 경제적으로 도우라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도 있어 신10:18절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또 신24"17절"너는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지 말며 과부의 옷을 전당 잡지 말라"고 하셨으며, 또한 시68:5절"그의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하셨습니다. 특히 사1:17절"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고 말씀합니다. 이말씀은 단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섬기는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들의 아버지이신 것을 시사합니다.
신14:29절"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하셨고 행20:35절에는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그리고 약1:27절에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부모 공경도 주님이 받으시는 제사와 같습니다.
4절"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4절에서 바울은 자녀나 손자들이 할머니에게 부모에게 효를 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라고 하시고 있습니다. 여기서 보답은 '되돌려주다'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단회적이 아니라 꾸준히 하라는 것인데 이 행위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와 같다는 의미입니다. 제 오계명도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복음안에서의 삶은 바로 예배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복음안에서 부모를 거스리고 대적하는 것, 돌보지 않는 것은 살인자와 같다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마15:3-6)
5-6절"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참 과부의 조건을 세가지로 구분지어 주었는데 첫째는 홀로 된 사람, 이는 가족이 하나도 없는 것을 의미하고 둘째는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있는자이고 셋째는 간구와 기도를 하고 있는자라 했습니다. 이것을 도와주는 말씀이 눅2장에 나오는 안나라는 여선지자가 있는데 그는 과부로서 성전에서 메시야를 기다리며 금식하고 기도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이러한 괍는 교회가 돌보아 주라는 명령입니다.
그런데 6절에서는 과부지만 향락을 좋아하는 자를 대비시켜 말씀하면서 그는 살았으나 죽었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향락의 원문은 사치를 부리고 방탕하게 사는 매춘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살았으나 죽은 자라고 즉 영적으로는 그가 이미 죽은 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것은 간구와 기도로 하나님의 도우심보다 직접으로 육신의 쾌락을 찾아간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적용이 되는 말씀입니다. 6절이 완료형으로 되어 있어 하나님을 떠나 세상쾌락을 따라가는 것은 바로 죽은 자들의 무덤이라고 경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역으로 생각하면 세상 사람이 보기에 죽은 자 같은 자는 살았고 산자 같은 자는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산자인가/ 죽은 자인가.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마8:22)
7절은 무슨 말씀일까요? "네가 또한 이것을 명하여 그들로 책망 받을 것이 없게 하라" 가르치는 목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죽은 자에게 속하지 않도록 잘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과부들에게도 가르치고 성도들에게도 가르치고 자식들에게도 가르쳐 책망받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종한다면 그들이 책망받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디서 교회에서, 세상에서,
8절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8절은 너무나 잘 아는 말씀인데 여기서 살펴볼 단어는 '믿음을 배반한 자요'입니다. 배반의 의미는 '거절하다, 부인하다, 배반하다' 입니다. 이것은 신앙고백이 허위라는 것을 의미하고, 실제로 행위로 거절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딛1:16,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했습니다. 이것을 바울은 불신자보다 더 악하다고 규정을 했습니다. 즉 불신자는 하나님의 사랑도 명령도 모르는 자들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부모나 친척을 돌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마치려 합니다.
믿음이 있고 경건의 삶을 살고자 할때에 가장 가까운 가족부터 돌보라는 권면입니다. 그리고 교회안에 공동체를 돌보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아무나가 아니고 조건을 붙였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있다고 하고 부모를 버리면 그는 믿음을 배반한 자, 불신자라 규정을 했습니다. 여기서 ‘불신자’는 과부들의 보호에 대한 하나님의 규정들에 대해서 결코 들어본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모범에 대해서도 무지하며 사랑이란 열매를 맺는 성령의 능력에 대해서도 결코 체험해 본 적이 없는 구원밖에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신들의 양심법에 의해 부모를 섬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의 법을 성취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불신자들도 공경하는 친족이나 직계 가족 중의 과부를 경홀히 할 수 있는 것인가 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은 직계 가족에 대한 부양은 인간의 원초적인 책무로서 이를 이행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인지하시고 말씀에 순종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의정부 등대지기 하늘산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