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들렀던 서점에서 윌리엄 폴 영의 신작 소설 갈림길이란 책을 만났다. 피하고 싶은 무엇과 만난 듯 표지만 슬쩍 보고 들춰보지 않았다. 몇 해 전이었던가 윌리엄 폴 영의 오두막을 읽으며 번뇌로 가득찼던 마음 버거운 물음으로 어지러웠던 머릿속 책에 지나치게 빠져 허우적 거리다 왈칵 겁이 나기까지 했었다. 주인공이 잔인한 범죄로 자식을 잃고 그 과정에서 운명처럼 하나님을 만나 결국 치유가 된다는 스토리로 기억한다. 책을 읽는내내 살아오며 나도 신에게 묻고 싶었던 물음과 그 속에 자리한 원망이 복받쳐 오르고 주인공이 하나님께 원망을 쏟아낼 때는 나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대가없는 위로와 안식이 필요할 때 스스로를 용서하고 구원받고 싶을 때 우리는 기도로 신을 찾지만, 때론 아무런 잘못없이 삶이 절망에 빠지거나 억울하게 사랑하는 무엇을 잃게 되었을 때 원망과 분노로 신을 찾기도 한다. 오두막의 주인공도 천사같은 딸을 악마같은 살인자에게 잃고 왜라는 물음으로 원망하지만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통해 증오는 허망한 것이고 용서만이 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며 나도 깨달았다. 모든 사람은 묻는다. 왜냐고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주는 거냐고... 이 세상에 아픔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불공평한 사람도 불공평한 삶도 없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해 살인자가 된 아이와 부모의 사랑을 받았지만 살해당한 아이 두 아이 중 누가 가해자고 피해자라 저울질 할 수 있겠는가.
작가의 의도나 숨겨진 깊은 뜻은 모르겠으나 오두막이란 책은 나를 나의 상처와 마주하게 하고 고통스러운 깨달음으로 나를 성장시켰다고 영원히 기억될 것 같다.
첫댓글좋은 서평이네요. 당장 해야 할 밀린 일들~ 계획서, 보고서, 돈 계산 등등의 서류작성이 없는데도 여전히 잠을 못이루며 수많은 잡념과 악몽같은 강박증에 뒤척이다 이 새벽에 마주한 이 글이 무척이나 위로가 되네요. 애초에 모든 삶은 불공평하고 힘을 가진 자의 횡포와 약한자의 비명이 가득한 삶의 진실들 앞에서 저는 방금 전까지도 억세게 재수가 좋은 사람과 드럽게 재수 없는 -물론 세속의 잣대지만-사람의 운명에 대해 의구심을 품었습니다. 때론 아픔과 시련이 적은 사람에게 벅찬 사람의 그것을 나눠서 상쇄시키는 신의 능력이 세상에 필요하지 않나 그런 터무니 없는 생각도 드네요.
최소한의 사랑은 커녕 학대와 폭력, 궁핍등으로 인성의 모든 것이 얼룩진 아이들이 자라나서 개인의 상처를 위로받고 치유되기전까지 많은 아이들의 건전한 일생에 무자비하고 부정적 영향과 피해를 끼치는 모습을 중재하고 견디며 참아야할때 사랑과 용서가 답이 될까요.... 오두막 shack 을 보니 shackle (삶의 굴레, 구속?) 이란 단어가 연상되네요. 이 책은 읽기 전부터 맘이 미리 아파옵니다.
첫댓글 좋은 서평이네요. 당장 해야 할 밀린 일들~ 계획서, 보고서, 돈 계산 등등의 서류작성이 없는데도 여전히 잠을 못이루며 수많은 잡념과 악몽같은 강박증에 뒤척이다 이 새벽에 마주한 이 글이 무척이나 위로가 되네요. 애초에 모든 삶은 불공평하고 힘을 가진 자의 횡포와 약한자의 비명이 가득한 삶의 진실들 앞에서 저는 방금 전까지도 억세게 재수가 좋은 사람과 드럽게 재수 없는 -물론 세속의 잣대지만-사람의 운명에 대해 의구심을 품었습니다. 때론 아픔과 시련이 적은 사람에게 벅찬 사람의 그것을 나눠서 상쇄시키는 신의 능력이 세상에 필요하지 않나 그런 터무니 없는 생각도 드네요.
최소한의 사랑은 커녕 학대와 폭력, 궁핍등으로 인성의 모든 것이 얼룩진 아이들이 자라나서 개인의 상처를 위로받고 치유되기전까지 많은 아이들의 건전한 일생에 무자비하고 부정적 영향과 피해를 끼치는 모습을 중재하고 견디며 참아야할때 사랑과 용서가 답이 될까요.... 오두막 shack 을 보니 shackle (삶의 굴레, 구속?) 이란 단어가 연상되네요. 이 책은 읽기 전부터 맘이 미리 아파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