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일요일 모 방송국에서 하는 ‘퀴즈대한민국’이라는 프로그램의 끝 부분을 보게 되었는데 결승에 초등학교 6학년이 올라 있었다.
수천만원이 걸린 결승문제 1번은 조선 4대사화인 무오사화(戊午士禍),갑자사화(甲子士禍),기묘사화(己卯士禍),을사사화(乙巳士禍)였는데 ‘사’의 뜻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사화란 ‘선비(士)가 화를 당했다’는 뜻이다. (오늘 외워보자. 무.갑기.을^^)
두 번째 문제는 중국의 국가발전계획의 지표를 묻는 것이었다. 중국인민이 이 정도수준의 생활을 해야겠다는 목표이다.
유감스럽게도 아직은 어린 나이라 한자나 역사에 약하다보니 다 틀렸으나 똑똑한 녀석이었다. 그 지식에 지혜가 더해져서 이 나라의 동량(棟梁)이 되길 바란다. 두 번째 문제의 정답은 소강사회(小康社會)다. 아래 글은 후진타오가 주석의 자리에 오를 때 내가 2002년말 쓴 글이다.
정확히 5년이 지난 지금 후진타오가 이끄는 중국을 생각해보니 왠지 가슴이 답답하기만 하다. 내 예측이 틀리길 바랬는데..
여유롭게 한번 읽어 보시기바랍니다. ^^
소강사회(小康社會)
2002.11.15 중국 공산당은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에서 제16기 중앙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를 열어 후진타오(胡錦濤 호금도)부주석을 당 총서기로 공식 선출했다
후진타오는 중국의 모택동(毛澤東)-등소평(鄧小平)-강택민(江澤民)을 이은 제4세대 지도자로 부상하고 있는 인물이며, 최근 매스컴에 많이 등장하면서 중국의 민주주의를 언급하는등 중국개방.개혁을 주도하여 장차 최고지도자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데 그는 ‘천시(天時)를 기다리며 굴신(屈身)할 줄 아는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고 하며 가난한 차(茶) 상인 아들로 태어나 부모를 일찍 여의고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고 한다.
그의 최근 발언록을 보면 “소강사회(小康社會)”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소강(小康)이라는 말의 문자적 의미는 “약간 편안한 상태”로 “크게 불편 없는 기본적인 생활”등으로 언론에서 간단히 표현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한번 살펴보자.
우선 소강사회(小康社會)를 설명하기 위해서 반드시 함께 설명해야하는 것이 대동사회(大同社會)이다.
이 두말은 모두 『예기(禮記)』〈예운편 禮運편〉에 나오는 말로서 예기는 본래 주(周)나라 봉건제도에 관한 제도와 의식을 설명한 예경(禮經)이 있었으나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등을 거치면서 없어졌는데 후한(後漢)초에 중국 최초의 문헌학자인 유향(劉向 BC77-BC6)이 전국시대로부터 전한(前漢)말까지 백가(百家)들의 예경에 관한 131편의 글을 모아 예기라는 이름으로 편찬하였다.
그후 이것을 대덕(戴德)이 85편으로(戴德禮記), 대성(戴聖)이 49편으로 정리하였는데(小戴禮記) 오늘날의 예기는 소대예기(小戴禮記)다.
그런데 바로 이 예기에 대동(大同)과 소강(小康)이라는 말이 나온다.
지금부터 대동(大同)과 소강(小康)사회에 대해서 알아보자.
옛날에 공자가 사제(蜡祭:12월에 모든 신을 합해서 지내는 제사)의 손님으로 참석하였는데 일을 마치고 나와 성문의 관(觀:누대)위에서 쉬다가 위연(喟然)히 탄식하였으니, 공자의 탄식은 대개 노(魯)나라의 일을 탄식한 것이다.
언언(言偃: 제자인 자유子游를 말함)이 옆에 있다가 말하기를
“선생님께서는 무엇을 탄식하십니까?”
하니 공자가 말하였다.
“옛날에 큰 도(道)가 행해진 일과 하(夏).은(殷).주(周) 삼대(三代)의 어질고 밝은 인물들이 도(道)를 행한 일을 내가 보지도 못했지만 그 행한 일에 대한 기록이 있다.
큰 도가 행해진 세상에서는 천하가 온 세상사람들의 것으로 되어 있어, 어진이와 능력이 있는 자를 가려서 제왕(帝王)의 지위를 전하고 신의와 화목을 두텁게 하였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홀로 자기의 어버이만을 자기의 어버이로 여기지 않았고 홀로 자기의 자식만을 자식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리하여 노인으로 하여금 그 생을 편안하게 마치게 하였으며, 젊은이의 능력을 충분히 활용하였으며, 어린이는 잘 자라날 수 있게 하게 하였으며, 홀아비와 과부와 고아와 자식 없는 늙은이와 병들어 몸이 못쓰게 된 사람들을 가엾게 여겨 모두 그 살길을 마련해 주었으며, 성년남자에게 직분을 주고 여자에게는 돌아가 의지할 남편을 갖게 하였다.
재물을 헛되이 낭비되는 것을 미워하였지만 반드시 자기를 위해 감추어 두지 않았으며, 힘은 사람의 몸에서 나오지 않는 것을 미워하지만 반드시 자기 자신의 이로움만을 위해 쓰지 않았다.
이런 까닭에 간사한 꾀에 막혀서 일어나지 않았고 도둑들이 세상을 어지럽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바깥 문을 열어 둔 채 닫지 않았으니 이것을 일러 대동(大同)의 세상이라고 하는 것이다.“
공자는 계속 말을 잇는다.
“지금시대엔 대도(大道)는 없어지고 사람들은 천하를 각자의 집안으로 나누었다. 그래서 각기 그 어버이만을 어버이로 여기고, 각기 그 자식만을 자식으로 여기며, 재물과 힘을 자기를 위하여 감추고 사용한다.
천자와 제후같은 대인(大人)은 세습(世襲)하는 것을 예로 하며, 성곽을 짓고 성곽주위의 도랑을 파 스스로를 굳게 지킨다.
예의를 기강(紀綱)으로 삼아 군주와 신하의 분수를 바로 잡으며, 아버지와 아들의 사이를 돈독하게 하며, 형제간을 화목하게 하며, 남편과 아내의 사이를 화합하게 하며, 제도(制度)를 만들며, 농경지와 주택을 세우며, 용맹함과 지혜로움을 존중하며, 자기를 위하여 공을 세운다.
그러므로 간사한 꾀가 여기서 생겨나 쓰이고 전쟁도 이것으로 말미암아 일어나게 된다. 우왕(禹王).탕왕(湯王).문왕(文王).무왕(武王). 성왕(成王).주공(周公)은 이 예도(禮道)를 써서 뛰어난 업적을 이루었다.
이 6명의 왕은 예를 삼가지 않은 이가 없었다. 예의로써 의(義)를 드러냈으며, 신(信)을 이루어 백성을 모았으며, 허물을 밝혔으며(知), 인애(仁愛)와 겸양(謙讓)의 도를 강설(講說)라여 백성들에게 떳떳함이 있는 것을 보여 주었다.
만약 이 법에 따르지 않는 자가 있으면 권세 있는 사람이라도 배척 당하여 백성들로부터 재앙으로 여겨져 마침내 멸망하였다.
이런 세상을 소강(小康)이라 부른다.“
위와 같이 공자의 이상사회(理想社會)는 대동사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동이라는 일반적인 뜻은 대동소이(大同小異), 대동단결(大同團結),태평성세(太平盛世)라는 의미로서 이상사회를 말하며 그 세상은 바로 평등(平等).평화(平和)사회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 사상을 잘 정리하여 논리적으로 화장을 하게 되면 공산주의 사상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 대동사회를 최초로 주장한 사람은 묵자(墨子)라고 하는 일부학자들이 있는데 묵자 집단의 특성을 볼 때 상당히 일리가 있는 듯하다.
영국의 토마스 모어가 상상한 이상적 사회의 유토피아라는 말은 희랍어 U(없다)와 topia(장소)의 합성어라 한다. 그런 곳은 없다는 말인지?
우리나라에서는 16세기말 조선조 정여립(鄭汝立, 1546~1589)이 천하위공(天下爲公)이라는 혁명구호를 들고 나왔는데 그것은 바로 이 대동사회의 본질인 ‘천하는 어느 가문의 사물(私物)이 아니고 만민의 공물(公物)’이라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대동이란 천지만물이 일심동체(一心同體)라는 뜻이며, 천하는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천하 만인의 것이라는 말이다.
정여립은 임금의 미움을 받아 벼슬에서 물러나 대동계(大同契)를 조직하고 신분에 제한없이 가입시켰으며, 임진왜란 때는 왜구를 물리치기도 했는데 역모를 꾀했다고 역적으로 몰려 섬으로 도망가서 자살하였다. 나라가 망하기를 원했다면 뭐 하러 목숨걸고 왜구와 전투는 했는지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은데 나라가 만들어 놓은 기록만으로는 그를 단죄할 수 없다.
임꺽정이도 이때 사람으로 나라가 어수선할 때라 민심수습과 정치적 목적으로 역모사건을 기획하였으리라. 그런데 이 역모사건을 조사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한 인물이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관동별곡(關東別曲), 사미인곡(思美人曲)등의 작가 송강(松江) 정철(鄭澈 1536~1593)이다.
세상일이 마음대로 안되어서 그랬는지 늘 술독에 빠져 있었고, 술기운에 글을 많이 써서 문학적 측면에서는 칭송 받을 수 있을지 모르나 정치적으로는 서인(西人)의 거두(巨頭)로서 동인(東人)을 치는데 바로 정여립사건을 이용하였고, 오래 가지는 못했지만 그 공으로 좌의정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그 보다 부러운 것은 이 다혈질이고 고집불통인 주정뱅이 선비에게 율곡(栗谷) 이이(李珥)라는 변함없는 친구가 있었다는 것이다.
본론에서 잠시 벗어나간 것 같은데 소강(小康)으로 다시 돌아가자.
예기(禮記)에서 말하는 순서가 대동사회가 언급되고 그 다음이 소강사회가 언급되고 있는 것은 사회제도의 변천으로 인하여 대동사회가 필연적으로 소강사회로 대체될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설명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인구가 많아지고 사회는 복잡해지며, 전쟁은 끊임없이 계속 되며,인간의 욕구가 각기 다른 것을 전제한다면 모두가 공평한 공동체인 대동사회는 시대적으로 흘러간 것으로서 이는 그냥 이상일 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소강사회 즉 만민이 최소한의 불편이 없는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하게 해주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올바른 것이라 여겼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혼란한 춘추시대 관점에서 공자의 이 소강사회를 정리해보면
①정치적으로 신분세습과 봉건제 사회
②도덕적으로 주례(周禮)를 치법(治法)으로 하는 전제주의 사회
③경제적으로 불완전 고용과 개인주의 경쟁주의 사회
④필요시는 전쟁도 정당화는 부국강병의 사회를 말하고 있다.
또 한편으로 다시 대동사회를 추구하는 것이 인간사회의 이상향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후진타오가 예기에서 소강(小康)이라는 말을 빌려 가지고 온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신문지상에 자주 보여서 한번 살펴봤다.
그의 지금 정책목표가 전 인민이 최소한의 기본적인 생활이 영위되어야 한다 것이 이해가 된다. 그 다음은 대동사회로 가는 목표가 있고 그것은 올바른 순수의 대동사회 즉 공산주의 사회의 건설이 된다는 논리인지 모르겠다.
역사는 흘러가고 후진타오의 장래를 따라가다 보면 그 백년전의 중국과 우리의 역사관계로 회귀(回歸)할까 두려운 마음이 요즘 들기도 한다.
무서운 속도로 달려가는 중국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역전의 위기는 순간이 모여서 하늘처럼 무거운 힘으로 눌러 오는 법이라서 위협이 느껴지는 그때는 이미 늦어 버린다.
우리는 조금만 좋아지면 온 나라 흥분하다가 조금만 사정이 어려워지면 쉽게 또 근심에 빠져 곧 절단이 날것같이 마음을 졸이곤 한다.
강대국사이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아온 우리의 역사로 인하여 아마도 그런 병이 생긴 것 같다.
정신의학 용어로 trauma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마음의 상처나 쇼크와 같은 정신적 외상’을 말한다고 한다. 우리의 이러한 증상이 고쳐 질려면 편작(扁鵲)과 같은 위대한 의사가 다시 나타나야만 하는 것인지....
첫댓글 대장도 대단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메~~~~~~~~~~~가장 머리속이 허전 하지 않았을 때~~카페가 뭔지 몰랐을 때 ...다른 아줌마와 말 하지않았을 때 ??ㅎㅎㅎ
내용 한글2005에 복사해다 글자크기 키우고 정신 바짝 차리고 읽고 또 읽고 하다 보니 개념 정리가 되는군요 ㅎㅎㅎㅎ ..대장 아주 자랑스러워요^^
돗자리 깔면 .. 네가 먼저..첫손님 ,,으로..
사상관련 공부가 ......어렵습니다. 머리를 굴릴 수 없군요.
죄송 이해가 어렵네요,,이따 퇴근하고 다시읽어야지 즐거운하구되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