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 혈맥론(達磨血脈論)
달마 <혈맥론(血脈論)>은 달마(達磨 : ?-528) 대사의 어록이다.
달마 대사는 남인도 향지국(香至國/Pallavas 제국)
셋째 왕자로 태어나 출가해서 붓다를 이은
제27대 직계 조사인 반야다라(般若多羅, ?~457) 존자에게 가르침을 받고
제28대 조사가 됐다.
당시 인도에서 불교는 밀교 일색이었으나
그마저도 힌두교화 해서 더 이상 불교의 설자리가 없어지고 있었다.
다행히 달마의 스승 반야다라 존자에게는 혜안이 있었다.
그리하여 달마로 하여금 동쪽으로 가서 법을 전하라고 했다.
그리하여 달마는 AD 6세기 초 남천축국(남인도)에서 해로로
중국 남북조시대의 남조 양(梁)나로 건너와서 양 무제(武帝)를 만났다.
그러나 두 사람은 사상적으로 너무 달랐다.
그리고 당시 중국은 교학이 성한 터에다가
불교를 개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기복의 수단으로
여기는 경향이 심해 달마가 가지고 온 선법(禪法)은 아직 발붙일 곳이 없었다.
이에 달마는 ‘아직 때가 아니구나, 시절인연이 아니구나!’ 해서,
북위(北魏)로 몰래 숨어들어, 낙양(洛陽) 동쪽 숭산(嵩山)
소림사(小林寺)에서 9년간 면벽수행을 시작했다.
이러한 대사도 수행하다 졸리면 눈썹을 뽑아 던졌고
눈썹이 던져진 자리에는 차나무가 자라났단다.
추후 중국 선종의 상징이 되는 차(茶)와 선(禪)이 인연을 맺는 사연이다.
달마상의 특징은 부리부리한 눈을 크게 뜨고 있는 모습인데,
소림굴 면벽 9년 수행을 하면서 쏟아지는 잠을 이겨내기 위해
결국 눈꺼풀을 잘라냈다고 한다.
그래서 달마는 눈꺼풀이 없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표현된다고 한다.
그런데 달마가 면벽(面壁)수행을 했다고 하는데,
그것이 벽을 보고 수행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실질적인 벽은 정신적인 벽을 말한다.
모든 번뇌 망상, 잡념을 여의고 선에 몰입함을 일컫는다.
그리고 6세기부터 7세기에 걸친 당시 중국은 급격한
사회변혁 시대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새 불교의 이상을 달마에게 구하고자 했다.
달마의 벽관(壁觀)으로 일컬어지는 독자적인 선법과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의
4구절에 그의 교의가 집약돼 있었다.
9년간 면벽좌선을 하고 나서,
사람의 마음은 본래 청정하다는 이(理)를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 선법을 안심법문을 통해 중국 선종 제2조가 되는
제자 혜가(慧可)에게 전수함으로써 중국 선종이 시작됐다.
이 같이 해서 중국에 선불교를 전함으로써 달마는 중국 선종 초조가 됐다.
이후 불교는 그 발생지인 인도에서보다 중국을 중심으로
선(禪)불교로 찬란하게 번성하게 됐고, 밀교는 티베트를 중심으로 발전하게 됐다.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에 전해오는 선(禪)불교는
중국화 된 선불교전통을 따르고 있다.
그의 저서 <달마어록>은 달마 대사의 법문을 기록한 선어록이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중국의 돈황(燉煌) 지방의 석굴에서
새롭게 발굴된 자료 중의 하나이다.
소위 돈황의 선 문헌 가운데 하나로, 달마의 말씀을 전해주는
최고(最古)의 문헌이다.
이 돈황에서 출토된 <달마어록>에 달마의 근본사상인
<관심론(觀心論)>, <혈맥론(血脈論)>, <이입사행론(二入四行論)> 등이 들어있다.
그리고 달마는 <능가경>을 중시하고,
당시 교학 중심의 가람불교나 강설불교와는 정반대인 좌선을 통해
그 사상을 실천하는 새로운 불교, 조사선을 강조했다.
달마 대사의 마음을 관하는 이치와 방법을 설한 <관심론>과
참선공부 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지침을 설한 <혈맥론>,
이치와 행으로 도에 들어가는 요점을 설한 <이입사행론>은
불조(佛祖)의 심지(心地)에 즉입하는 골수법문으로
동아시아 대승불교의 중심사상이라 일컬어진다.
<혈맥론>의 중심사상은 문자에 의하지 않고
바로 마음을 직관해 깨달음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음을
문답형식으로 전개하고 있다.
다시 말해, 교리나 문자에 의하지 않고 바로 사람의 마음을 직관해
깨달음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음을 설파한 것이다.
그리하여 <혈맥론>에서 일관되게 논하는 것은 견성(見性)이다.
‘견성(見性)’은 인간의 본성을 본다는 말이다.
<혈맥론>이 중국적인 불교라 할 선불교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혈맥론>이 중국의 오랜 사상적 화두인 인간의 본성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혈맥론>은 견성(見性)이 불교의 본질이자 정통임을 주장하고 있다.
<혈맥론>이 주는 또 하나의 중요 법문은, 인간의 본성을 스스로 자증자득하다는 점에 있다.
즉, 성품을 스스로 깨닫는 점에 있다.
그리하여 <혈맥론>에서는 견성(見性)을 강조한다.
인간의 본성을 스스로 본다는 뜻의 견성은 주체적 체험을
인식방법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 점이 중국사상계에 던진 선불교의 빛이라고 할 수 있다.
달마 대사는, 견성을 경전에 대한 지식적 이해나
염불, 고행 등의 수행을 뛰어넘는 담박 깨닫는 돈교(頓敎)이며,
출가와 재가의 한계마저도 뛰어넘는 보편적인 길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에 불교가 들어온 것이 대략 후한 명제(明帝) 때인 AD 67년,
그리고 달마 대사가 중국에 온 것이 기원후 500년 전후이니,
따라서 중국에 불교가 들어온 지 450여년이 지나서 드디어
중국 불교가 제 목소리를 내게 된 것이다.
이렇게 당당하게 자기 소리를 내는 선불교의 깨달음은
참으로 경이로운 인류의 보고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인도 정신문화의 정수인 불교가 중국에 들어가
공맹(孔孟) 노장(老莊) 등 제자백가의 사상을 흡수해
마침내 위대한 결실을 맺은 것이다.
<혈맥론> 본문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삼계에 나타나는 모든 것들은 결국 마음으로 돌아온다.
그러므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들은 말에 얽매이지 않고,
문자도 세우지 않으며, 마음에서 마음으로 진리를 전했다.
이 마음을 떠나서는 그대는 어떤 부처도 찾을 수 없다.
•묻는다.
“만약 문자를 세우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마음을 삼습니까?”
•답한다.
“그대가 나에게 묻는 것이 곧 그대의 마음이고,
내가 그대에게 답하는 것이 곧 나의 마음이다.
나에게 만약 마음이 없다면 어찌 그대에게 대답할 수 있으며,
그대가 마음이 없다면 어찌 나에게 물을 수 있겠느냐.
나에게 묻는 그 자체가 바로 너의 마음이다.
끝없는 옛날부터 활동하고 살아온 모든 시간과 장소들이
모두 그대의 근본 마음이며, 본래 부처이다.
마음이 곧 부처라 함은 바로 그와 같은 것이다.
마음을 떠나서 부처를 찾을 수 없으니,
마음을 떠나 밖에서 보리와 열반을 구한다면 옳지 못하다.
누구나 지니고 있는 자기의 성품[自性]은 진실한 것이어서
인(因)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과(果)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자성(自性)이란 법이 곧 마음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자기의 마음이 곧 보리이고, 자기의 마음이 곧 열반이다.
그러므로 만약 마음 밖에서 따로 부처와 보리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부처와 보리가 모두 어느 곳에 있는가. 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가령 어떤 사람이 맨손으로 허공을 붙잡으려 하면
허공을 붙잡을 수 있겠는가.
허공이란 단지 허공이라는 이름만 있을 뿐이다.
또한 허공이라는 모양도 없어 취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허공을 붙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마음을 제쳐두고
밖에서 부처를 찾는다면 종내 찾을 수 없을 것이다.
(三界興起同歸一心 前佛後佛以心傳心 不立文字)
(問曰 若不立文字 以何爲心)
(答曰 汝問吾 卽是汝心 吾答汝 卽是吾心 吾若無心
因何解答汝 汝若無心 因何解問吾 問吾卽是汝心
從無始曠大劫以來 乃至施爲運動 一切時中一切處所
皆是汝本心 皆是汝本佛 卽心是佛亦復如是 除此心外
終無別佛可得 離此心外 覓菩提涅槃 無有是處 自性眞實
非因非果 法卽是心義 自心是菩提 自心是涅槃
若言心外有佛及菩提可得 無有是處 佛及菩提皆在何處
譬如 有人以手捉虛空 得否 虛空但有名 亦無相貌
取不得捨不得 是捉空不得 除此心外覓佛 終不得也)”
“부처라는 것은 자기 마음에서 만들어내는 것인데,
어찌 이 마음을 떠나 밖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따라서 앞 부처와 뒷 부처가 모두 단지 이 마음에 대해서만 말했을 뿐이다.
말하자면, 마음이 곧 부처이고(心卽是佛),
부처가 곧 마음이라서(佛卽是心) 마음 밖에 따로 부처가 없고
부처 밖에 따로 마음이 없다.
그런데도 만약 마음 밖에 따로 부처가 있다고 말한다면
그 부처는 어느 곳에 있단 말인가?
마음 밖에 따로 이미 부처가 없거늘 어찌 부처라는 견해를 일으키는가.
그 까닭은 서로가 속이고 미혹하여
자기의 본래 마음을 알지 못하고 다른 형상으로 만들어진
불상(佛像-無情物)에 꺼들려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또한 이러한 도리를 믿지 못한다면
스스로를 속이는 것으로서 아무런 이익도 얻지 못할 것이다.
부처는 본래부터 허물이 없다.
단지 전도된 중생이 자기 마음이 곧 부처인 줄을 깨치지 못하고
알지 못한 탓이다.
그러나 만약 자기 마음이 곧 부처인 줄을 알게 되면
마땅히 마음이 밖을 향해 부처를 찾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부처가 부처를 제도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마음을 가지고 부처를 찾으면서도 부처를 알지 못하는 것은
단지 밖에서만 부처를 찾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모두 자기의 마음이 부처인 줄을 알지 못한다.
또한 부처를 가지고 있으면서 부처에게 예배하지 말고,
마음을 가지고 부처를 염(念)하지 말라.
부처는 경전을 독송하지도 않고, 부처는 계를 지니지도 않으며,
부처는 계를 어기지도 않는다.
부처는 계를 지니거나 어기지 않고, 또한 선업과 악업을 짓지도 않는다.…
또 이런 구절도 있다.
『• 묻는다.
“가정을 가진 사람은 음욕을 버릴 수 없는데 어떻게 성불할 수 있겠습니까?”
“이 법은 오직 견성을 말할 뿐 음욕을 말하지 않는다.
범부는 오직 견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음욕이 문제가 되지만,
견성만 하면 음심과 욕심이 본래 공적(空寂)하여
끊어 없앨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즐겨 집착하지도 않으니,
비록 버릇이 남았더라도 해로울 것이 없다.
왜냐하면 성품은 본래 청정하여 비록 색신 가운데 있더라도
물들거나 더러워질 수 없기 때문이다.
법신(法身)은 본래 받는 것이 없고 주리고 목마름도 없으며
춥고 더운 것도 없다.
본래 한 물건도 얻어 볼 것이 없으나, 다만 색신(色身)으로 인해
주리고 목마르며 춥고 더운 것이 있으니,
속지 않으려거든 곧 정신 차려 정진해야 한다.
생사에 자재(自在)를 얻어 일체법(一切法)을 굴려 걸림이 없게 되면
어느 곳이고 편안하지 않은 곳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터럭 끝만큼이라도 의심이 있으면
결코 일체 경계(境界)에 자재하지 못해 윤회를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견성만 하면 전다라(旃陀羅/candala; 백정)일지라도
성불할 수 있다.”
<혈맥론>은 예로부터 달마의 어록으로 간주되면서도
단편적으로만 전해오다가 돈황본(燉煌本)의 발견으로 말미암아
그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게 됐다.
달마는 <혈맥론>에서 자기 마음을 깨치는 견성(見性)을 강조하고 있다.
견성을 통하지 않고는 복덕을 쌓을 수는 있어도 부처는 찾을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자성(自性)을 볼 것을 말하면서,
“부처란 자기 마음으로 지은 것이거늘, 어찌 이 마음을 여의고
밖으로 찾을 것인가. 삼계에서 일어나는 것은 모두 일심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전불(前佛)과 후불(後佛)은 서로 이심전심하여
문자를 활용하지 않았다[不立文字]”고 했다.
즉, 앞 부처님과 뒷 부처님이 다만 마음 하나만을 말씀하셨으니,
마음이 곧 부처요 부처가 곧 이 마음이라,
마음 밖에 부처가 없고(心外無佛性) 부처 밖에는 마음이 없다고 했다.
그러므로 “{만약 자기를 분명하게 알지 못했다면
우선 모름지기 선지식을 찾아 배워서 생사의 근본을 깨쳐야 한다.
만일 자기의 성품을 깨치지 못했다면[不見性] 선지식이라 할 수 없다.
그래서 만약 자기의 성품을 깨치지 못하면
비록 팔만대장경을 다 외운다 할지라도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고
삼계를 윤회하면서 고통을 받아 그 고통에서 벗어날 기약이 없다.”고 했다.
“가령 옛날 선성(善星)이라는 비구는 팔만대장경을 다 외웠지만
자신이 삼계의 윤회를 벗어나진 못했다.
그 까닭은 자기의 성품을 깨치지 못한 탓이다.
선성 비구도 이미 그러했거늘 하물며 오늘날 사람들이
겨우 몇 권의 경론을 읽고서 그것으로 불법을 알았다고 하니,
이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그러니 만약 참으로 부처를 찾고자 하면 모름지기 자기의 성품을 깨쳐야 한다[見性].
왜냐하면 자기의 성품이 곧 부처이기 때문이다.
만약 자기의 성품을 깨치지 못하고서 염불한다거나
경전을 독송한다거나 재계(齋戒)를 지킨다거나 계율을 지닌다 해도
그것은 아무런 이익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출처] Amisan |작성자 아미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