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5.19. 안동 도산면의 퇴계선생 유적지 답사기 중 일부 발췌한 것입니다..
원문은 풍경의 산책이야기 81번 글입니다..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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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 시인은 나의 모교인 대륜의 전신인 옛 교남학교시절 선생님이셨다.
시인이자 독립운동가로 알려져 있는 이육사 선생입니다.. 퇴계묘소에서 당재고개를 넘어서면 낙동강 물줄기가 S자형으로 심하게 굽어 흐르는 지역에 원천리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마치 다섯 개의 손가락 형상으로 산줄기가 낙동강을 향해 길게 뻗어 내린 형국의 이 마을(원천리 이전에는 원촌으로 불림) 손가락 사이 깊은 지점에 해당하는 산골 마을에서 이육사 선생은 태어나셨지요.. 풍수의 형국론으로는 다섯 손가락으로 거문고를 튕긴다는 뜻의 오지탄금형五指彈琴型으로 불리는 명당마을입니다.. 다섯 줄기의 산이 五指이고 마을 앞의 낙동수가 거문고 줄인 셈이지요..
이육사 시인은 眞城李人으로 퇴계선생의 14대손입니다.. 본명은 이원록,아호는 李陸史인데 다들 아시다시피 이는 대구형무소 수감시절 수감번호 二六四에서 취음한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무려 17번이나 옥살이를 하며 민족의 슬픔과 조국광복의 염원을 노래한 항일 민족시인 이육사.. 바로 이육사 시인을 기리는 이육사 문학관이 그의 고향인 이 곳 원천리 불미골에 세워져 있죠..
개인적으로 저의 모교인 대륜중,고 졸업생들은 이육사 선생께서 대륜의 전신인 교남학교 시절 교편을 잡으셨다는 내용을 잘 알고 있죠.. 현 대구 대봉교 대백프라자 대각선 건너편의 수성벌에서 십 수년 전 현재의 만촌동으로 옮긴 대륜의 새 교정에도 이육사 시비가 자랑스럽게 세워져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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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 승천하는 飛龍을 만나다
풍수학인들은 산과 물을 대면하면 직관적으로 자신이 서 있는 지점을 중심으로 하여 임,자,계,축,간,인,갑,묘,을,진,손,사,병,오,정,미,곤,신,경,유,신,술,건,해라는 24방위를 머리 속에 띄워놓고 시야에 들어온 山水를 일차원의 점, 이차원의 직선, 삼차원의 공간으로 왔다갔다하며 순간적으로 인수분해와 이차방정식을 돌려 버리는 고약한 버릇을 지녔답니다.. 물론 내공이 튼실한 고수라면 사차원의 고차방정식까지 돌려보겠지만..
이육사 문학관에 다다를 쯤..
우측 차창 밖으로 보여지는 기묘한 산세에 놀라 눈을 뗄 수가 없었답니다.. 토계,상계,하계 등 낙동강을 끼고 도산면 일부 지역을 다녀본 금일 답사 중 가장 강렬한 기운이 감지되는 순간이였죠..
‘허걱~~’
강 건너 보이는 산의 한 용맥이 산정상에서 산아래 내살미 마을 들판까지 상하,좌우로 몸을 비틀면서 힘차게 내려오는 그 흐름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굵고 무겁게 뻗어 내리던 용맥이 마지막으로 안간힘을 다해 힘차게 용트림을 하며 만들어 놓은 제법 높은 마지막 산봉우리에 시선이 꽂혔습니다.. 인수분해,,방정식 가동….
‘아.. 이런 곳에서 비룡飛龍를 만나다니.. 산에서 내려오던 용이 때를 만나 여의주를 입에 물고 飛龍昇天하는 순간이다… 아.. 저 산엔 무슨 비밀이 숨어 있는 걸까?? 왕일까??… 아니 장수겠지….. 도대체 저 산… 뭐야!!!!’
그 비밀은 이내 쉽게 풀어 집니다…
이육사 문학관 2층 영상실에서 영상물을 보고 난 뒤 스크린이 올라가면서 동시에 장막이 걷힙니다.. 장막이 사라진 공간에는 대형 통유리가 설치되어 있었고 유리를 통해 멀리 아까 그 산이 내 눈 앞에 다시 나타납니다..
유리를 통한 사진이어서 산세의 윤곽이 뚜렷하지 않아 많이 아쉽군요..
이동수 선생님의 설명이 이러 했습니다..
“1361년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곳 안동일대로 피난을 왔을 때 공민왕의 어머니와 왕비인 노국공주가 피신한 산이라 하여 王母山이라 불리고 산 정상부에는 지금도 당시의 왕모산성이 일부 남아 있으며 공민왕은 이 곳에 70 여 일간 임시수도를 설치 했죠..,, 산 아래 마지막 봉우리에는 왕모를 모신 왕모당이란 성황당이 있습니다..
그리고 왕모산의 낙동강 쪽 절벽 5부 능선에 있는 뾰족한 암봉을 칼선대라 부르는데 이육사의 시 ‘절정’을 낳은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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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은 계속 이어집니다..
“또한 우측으로 보이는 쌍봉 윷판대는 육사의 시 ‘광야’의 시상을 떠올리게 한 곳이죠. 그리고 마을 하류지역에 안동댐이 들어서기 전에는 강변에 시무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었고 그 시무나무에는 유난히 다래덩굴이 많았답니다.. 아마도 이육사 시인의 청포도 시상을 만들어 낸 것도 이 다래덩굴인 것으로 추측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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