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경기가 좋아지면 윗목(부자들)부터 따뜻해지고 아랫목(서민들)은 한참 지난 뒤에야 따뜻해진다지만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은 혹독한 겨울만큼 춥기만 하다. 이런 이유로 요즘 최대한 아껴쓰고 저축하는 이른바 ‘짠돌이·짠순이들의 절약 노하우’가 인터넷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짠돌이·짠순이·근검절약 등의 인터넷 카페에는 2만∼3만명의 회원이 매일 수십개의 글을 올려놓는다. 회원들이 직접 실천해서 얻은 절약 비결이다. 짠돌이 카페의 운영자 ‘대왕소금’은 회원들의 절약 노하우를 담은 책 ‘한국의 e짠돌이’를 출간하면서 “목표가 분명한 절약 운동은 삶의 또 다른 즐거움”이라며 절약정신을 애창했다.
경남 울산시 옥동에서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박향숙(41)씨는 사교육비를 줄여 아파트 한채를 구입한 노하우를 공개, 요즘 다음카페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라도 매달 40만∼50만원씩 들어가는 사교육비는 가계에 적지 않은 부담이다. 그러나 박씨는 초등학교 6학년과 4학년에 다니는 두 아들의 사교육비를 한달에 13만원(큰아이 태권도 회비 7만원+작은아이 수학 학습지 6만원)으로 묶고 나머지는 자체적으로 해결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간 뒤 틈틈이 공부한 박씨는 아이들의 영어·국어·사회·과학·한자 교육을 맡고, 남편 오병규씨는 퇴근 뒤 수학을 가르쳤다.
이밖에도 박씨는 예전 실력으로 피아노를 가르쳤고, 아이들의 일기를 꼼꼼히 봐주면서 맞춤법과 문장력을 보강해주었다. 또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아이들에게 읽히고 독후감을 쓰도록 격려해준 결과 아이들은 종종 글짓기 대회에서 상도 받아왔다. 박씨는 이밖에도 컴퓨터를 가르치기 위해 워드프로세서 2급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했다. 그는 결국 아이들의 만능 가정교사로서 자신도 함께 공부하는 길을 택했던 것이다. 박씨는 이렇게 스스로 가정교사로 나서게 된 것에 대해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공부하는 것을 좋아한다”며 “학원에도 보내봤지만 4시간씩 학원에서 고작 문제집 2∼3쪽을 풀고 오는 것이 너무 아까웠다”고 말했다.
박씨는 이런 노력 덕분에 지난 7년 동안 매월 사교육비 40만원을 절약,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 외에 재건축 아파트를 한채 더 장만했다. 부모와 함께 공부한 아이들은 반에서 수위를 달리고 있으며 큰아이는 중학 2학년용 영어교재를 공부하고 있다. 박씨는 아이들과 함께 매일 아침 뒷산을 올라 아이들의 건강까지 보살피고 있다. 그는 “욕심이 없으면 발전이 없지만 너무 지나치면 화를 불러온다”며 “조금 느리지만 천천히 가다 보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활짝 웃었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거주하는 최장영(35)씨는 절약 사이트에서 전기·도시가스 요금을 줄이는 방법을 배워 월 4만5천원씩 절약하고 있다. 그는 우선 방마다 두개 달려 있는 형광등을 하나씩 뺐다. 그리고 형광등 커버를 벗겨 밝기를 보충했다. 잠잘 때는 전기 코드를 꼭 뽑았고, 수퍼마켓에 갈 때도 불을 껐다. 이런 노력 덕분에 전기료 1만5천원을 줄이는데 성공했다.
가스비는 주로 따뜻한 물을 욕조에 받아놓고 사용하는 방법으로 줄였다. 이렇게 하면 보일러를 한번만 틀어도 목욕과 빨래를 동시에 할 수 있다. 그리고 밤에 잘 때는 두꺼운 이불을 꺼내 덮고, 보일러는 2시간에 한번씩 가동되도록 조절했다. 그 결과 가스비는 매월 3만원을 절약할 수 있었다. 최씨는 “일곱살난 아들과 네살난 딸도 전기 끄는 것만큼은 철저하게 지킨다”며 “사소한 것을 줄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매일 자동차로 출·퇴근하는 이민수(32)씨는 주유소 가격 비교 사이트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특별히 주유소를 가리지 않았다. 그는 운전 중 휘발유가 떨어질 때가 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주유소에서 넣곤 했다. 주유소별로 휘발유 가격이 별 차이가 없을 것이란 선입견 때문이었다. 하지만 친구의 권유로 주유소 가격 비교 사이트에 접속해본 결과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 주유소들도 가격은 천차만별이었다. 제일 싼 곳과 비싼 곳의 가격 차이는 l당 90원까지 났다.
3만원어치를 주유하면 2l 차이가 나는데 이 정도면 20km는 더 주행할 수 있었다. 이씨는 “여러 사이트를 뒤져봤지만 네티즌 사이에 가장 인기를 얻고 있는 주유소 가격 비교 사이트는 오일프라이스와치(www. oilpricewatch.com)란 곳”이라며 꼼꼼히 따져 보면 저가의 주유소를 찾을 수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가을 둘째 아이를 출산한 정영숙(32)씨는 첫째 아이와 달리 둘째는 보건소에서 각종 예방접종 주사를 맞혀 40만원을 절약했다.
통상 신생아를 둔 어머니는 집 근처 소아과를 찾아 결핵·간염·수두 등 필요한 주사를 맞힌다. 정씨는 “처음엔 소아과와 보건소에서 주는 약의 성분이 다를 것 같아 주저했는데 알아 보니 똑같은 주사약이어서 둘째는 보건소에서 예방접종을 했다”고 말했다. 보건소에서는 생후 18개월 내 접종해야 하는 것 중 홍역을 제외한 모든 예방접종이 무료다. 따라서 주사 한대에 3만∼4만원씩 하는 접종료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 정씨의 말이다.
출산을 앞둔 부모는 출산용품을 무료로 나눠주는 사이트를 통해 절약할 수 있다. 김혜선(33)씨는 지난해 분유 제조업체, 아이 옷 전문업체와 기저귀업체가 운영하는 사이트에 회원으로 가입하면서 상당한 출산용품을 무료로 받았다. 기저귀·양말·배냇저고리·임산부용 체조 CD·분유샘플·아토피 연고·동화책·젖병 등 사기는 아깝고 그렇다고 안 살 수도 없는 물품을 얻었다. 김씨는 “아이를 키우는데 필요한 강좌도 무료로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사이트가 많다. 유용한 정보는 꼭 챙겨야 쓸데없이 돈 쓰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전했다.
깜찍한 절약 비법도 있다. 절약 노하우가 담겨 있는 ‘한국의 e짠돌이’란 책에 사례로 나오는 ID ‘소금딸기’는 자신이 사용하는 모든 물품에 구입 날짜를 적어놓는다. 그리고 제품을 다 사용하면 그 날짜를 기록한다. 그는 이런 식으로 자주 사용하는 물품의 수명을 기록, 다음에 사용할 때 참고한다. 그는 “나는 이것을 생일(구입한 날)과 사망일(다 사용한 날)로 적어놓고 보관한다. 다음에 같은 제품을 사용할 때는 제품의 수명을 조금씩 연장하도록 노력한다”며 “그러다 보면 물건을 아껴쓰게 되고 결국 절약할 수 있다”며 자신의 노하우를 밝혔다. 기록을 경신하는 재미를 물건 절약에 적용한 셈이다.
한주에 1∼2권씩 책을 읽는 회사원 곽봉제(36)씨는 인터넷 헌책방을 자주 이용한다. 그가 자주 들어가 책을 구입하는 곳은 ‘고구마’(www. goguma. co. kr)란 사이트다. 이곳에선 의학·건강·청소년 참고서·경제·예술·역사 등 다양한 분야의 중고 도서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새로 나온 책은 구입할 수 없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구입할 수 있는 책이 목록에 뜬다.
곽씨는 “이밖에도 헌책방 사이트가 여러 곳 있다. 이곳저곳을 접속하다 보면 원하는 책을 정가보다 훨씬 싸게 살 수 있다”고 전했다. 경기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서민들은 지갑을 되도록 덜 열 수 있는 방법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소비가 미덕’이라며 소비하지 않으면 경제가 더 어려워진다고들 하지만 서민들은 한국 경제를 걱정할 만큼 여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