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일정 시작(23년8월28~9월 28)
5개월에 걸친 계획과 준비과정을 거쳐 드디어 한달이라는 긴 장도에 올랐다,
새벽5시 반에 빈집 현관을 여미며 건강히 다시 돌아 올 것을 기도하며 집을 나섰다.
큰 따님의 픽업 덕분에 공항에 도착했고 첨으로 셀프 체크인과 셀프 백드랍, 출국 수속을 마치고 보딩을 기다린다,
드디어 13시간 먼 하늘을 날고 날아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했다,
현지시각 저녁 6시~
왜 왔냐는 간단한 입국심사를 받고 첫번째 관문을 넘었다.
이제 두번째 관문 프랑크푸르트 암마인 중앙역 앞 플라밍고 호텔을 찾아가는 여정,
전철타기에 도전한다,
철도가 발달한 독일답게 복잡한 노선 중 우리가 탈 노선은 S bahn 8, 1번 홈에서 4정거장역 암마인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 잘 도착~
그러나 여행은 늘 새로운 문제 앞에 직면하는 연속이다.
체크인이 키오스크로 대체될거라는 예상은 하지 못했다.
잠시 당황했지만 침착하고 대범한 단장 나의 히어로는 key 생성까지 일사천리로 처리하고 이틀을 유하며 시차적응할 내집에 들었다.
오늘도 일정표 대로 여행의 첫날을 시작한다.
내가 프랑크 프루트를 알게 된건 사실 축구선수 차범근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예나 지금이나 축구에 관심이 있는건 아니었다,
눈만 뜨면 텔비에서는 프랑크푸르트 차범근 소식을 전하던 언론 덕이었다.
40년이 넘어 나는 오늘 프랑크푸르트를 온전히 마주했다.
그때는 여행을 위해 내가 프랑크프루트를 가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했던가!
프푸는 생각만큼 크지도 볼곳도 그리많은 곳은 아니었다.
유로연합은행, 돈을 마니 벌게 해달라는 청원을 담아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유로마크 앞에서 나도 물론 사진을 남겼다,
오로지 방문기념이지 굳이 부자가 나의 여생의 목표는 아니다.
뢰머광장, 시청사, 대성당을 지나 마인강을 가르질러 놓인 아이젤러 다리를 건너 푸프를 유유자적 즐긴다.
다시 다리를 건너 푸프의 손꼽히는 관광지인 괴테생가에 들르고나니 예보대로 비가오기 시작해 아쉬움없이 내집으로 들어왔다,
돈도 시간도 들인 바 없는데 온전히 내맘대로 사용가능한 들어갈 내집이 있다니~~
평소 전혀 생각치 않았던 자본주의의 장점에 감복한 날~
근디 거리가 너무 더럽고 노숙자들이 득시글 거리는 프푸~
정말이지 내 기대에 스크래치를 남기고 만 독일 첫 도시 프푸의 여행을 마쳤다.
윌리 브란트 광장의 동화분수
유로광장이다. 유로연합을 상징하는 12개의 노란 별은 첨 가입했던 12개의 연합국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닥 넓지않은, 그야말로 한강에 비하면 게임이 안되는 넓이의 마인강을 가로질러 놓여진 다리다.
세계 어디를 가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광이다, 사랑의 맹세를 책임져야하는 숙명을 갖고 태어난 다리.
아이젤너 다리라고 어찌 다르랴!
사랑을 맹세한 뜨거운 자물쇠가 아이젤너 다리 위에서 그들의 사랑을 응원하고 있다.
트램이 다니는 길을 따라 십여분 정도 걸어 당도한 곳.
시청사가 있는 여행의 중심점 역활을 하고있는 뢰머광장이다.
뢰머는 로마인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데 프랑크 푸르트 여행의 중심점이기도 한 광장 이름이다.
프랑크 푸르트는 세계 최초의 박람회가 열렸던 곳으로 로마인들이 거주했던 주택들이 모여있던 곳이라하여 뢰머광장이라 부르지 않나 싶다. 광장 중앙에는 1543년에 세워진 분수대이자 유스티아 여신상이 자리하고 있는데 정의의 여신이라는 그를 수식하는 표현대로 오른손에는 칼이, 왼손에는 저울이 들려있다.
프랑크 프루트는 15세기 초 이 광장에 있던 위 이미지의 저택 3채를 사들여 시청사로 개조,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대관식도 치른 곳으로 유명하지만 2차 대전때 대부분 파괴되고 전후에 복원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대성당이다. 전체적인 규모는 클지언정 도시가 커지면서 건물 숲에 가려 그 아름다움을 조망하기엔 제약이 따라 아쉽기만 하다.
괴테 생가다, 입장료 12,000원.
내가 괴테 그를 안다는 건 오로지 <젋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안다는 것.
입장해야 할 이유가 너무나 빈약했다.
프랑크 푸르트에서 이틀간의 시차적응을 마쳤다.
캠퍼밴 인수받는 날이다,
호텔 앞에서 만난 젊고 그리고 검은 택시기사~
이름도 첨듣는 아프리카 어느나라에서 돈벌러 독일에 왔다는 그의 도움으로 drm 캠퍼밴에 도착,
우리 또래의 메니저로부터 듣는 설명은 나름 성의있고 친절했지만 중요한 부분 즉 차량의 기술적인 부분은 번역앱의 도움으로 호기롭게 출발했다,
그러나 출발과 동시에 네비는 계속 숲길, 오솔길로 안내를 한다. 믿을 건 구글맵인데 난관에 봉착~
차를 세우고 재 정비에 들어갔고 곧 전날 프랑크푸르트 시내 여행을 하면서 걷기로 돌려놨음이 기억나 다시 한 관문을 넘는다.
먹을거리, 생활용품들을 준비하기위해 한인이 운영하는 y마트에 들렀는데 여기저기서 들리는 우리말소리에 내 피붙이를 만난듯 반가웠다.
이제 한달을 살아갈 일만 남았다.
캠퍼밴을 끌고 시작한 첫 일정이 엘츠성이다. 프랑크푸르트에서 2시간여 바람부는 평원을 달려 숲, 속~
난공불락의 요새라는 수식어를 지니고 있으니 깊고, 또 깊으리라.
다시 살아 나갈 수 있을까 하는 의심마저 드는 숲 속에 운동장 같은 주차장이 넉넉한 품으로 우리를 맞는다.
그러나 현금만 달라는 주차장 관리요원, 어쩌겠나 달라는데 줘야지~
바람이 몹시 불더니 차에서 내리니 빗방울도 후드득~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풍광, 트래킹 길을 따라 엘츠성을 만나러 가다만난 십자가가 모셔진 세상에서 가장 작은 집.
맞다, 난공불락의 요새. 엘츠가문은 어찌 저 곳을 알아내고 그들만의 요새를 세웠을까?
하기야 가진 게 돈 뿐이었을 엘츠가문인데 지금이나 그 중세시대때나 돈으로 안되는게 없음은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니겠는가!
엘츠가문은 1450년 부터 지금까지 이 성의 일부를 점하고 거주하고 있어 비공개 부분도 있다지만 티켓 오피스와 까페 등이 있을 따름인데 요새 중에 또 요새, 또 요새에 숨어 살고 있나 싶다.
세상에 다시 세계대전이 일어나도 살아남을 엘츠가문 가족~
근디 입장료가 너무 비싸다, 14유로, 오로지 독어와 영어만 가이드가 되는데 고작 몇마디 아는 나에겐 본전 생각이 아니날 수 없었다. 한국어로 가이드 받을 날은 오긴 올 것인가!
그런데 한달을 독일 고성을 보고 나니 14유로 본전 생각은 언제 그랬던가 싶다.
엘츠성~ 내 눈에는 아니 우리 부부 눈에는 독일에서도 엘츠성이 가장 아름답다는데 엄지 척을 주저하지 않겠다.
첫댓글 함께 여행한듯 친절한 설명과 사진들이 다음 편을 기대하게 하네요 ^^
느끼고 보았던 것들을 주저리 주저리 푸는게 취미인데 기대하고 재밌게 봐주시는 분들이 있어 힘이 되고 더 성의있게 써야겠다는 책임감이 생기기도 합니다. 또 올리겠습니다.
대단하십니다
생각뿐이지 실행에 옮기기는 어렵던데
용기잇게 가셧군요
엄지척 하면서
박수 보냅니다~~~~
이렇게라도 용기내지 않으면 기회가 오질 않을거라는 초조함이 등을 떼밀더라고요~
70 이 코 앞이다 보니~ㅜ
깊이가 있는 여행을 하셨네요. 밴까지 빌려서..대단하세요~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4.06.25 16: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