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충, 요충, 십이지장충 ...!
회충약을 먹고 난 다음 날이면 아이들 똥에선 젓가락 굵기의 허연 회충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하얀 봉투 속에 비닐봉지 한 장....! 봉투 겉장에는 푸른 글씨로 학교와 학년, 반, 이름 따위가 적혀 있었다. 봉투를 받아든 아이들이 지레 코를 막고 너스레를 떤다. 빈 봉투, 빈 비닐속인데도 코를 막는 것은 이미 번거럽고 골치 아픈 숙제를 받은 것에 대한 표현이었을 것이다. 봉투 제일 위에 '채변봉투'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솔직히 학교에서 내 준 숙제 중에 이 만큼 성가시고 지저분한 숙제는 없었다. 우선 화장실- 그냥 똥뚝간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실감나겠지만-한 쪽에 쭈구리고 앉아 널다란 호박잎이나 신문지를 깔고 똥을 누는 것이 어색했다. 더군다나 그것을 꼬챙이로 찍어 비닐봉지에 담는 것은 참 더럽게 여겨지던 일이었다. 성냥불을 켜서 똥이 담긴 비닐을 녹여서 밀봉하는 것도 곤욕이었다. 불조절을 잘못하여 비닐 봉지 한 쪽이 오그라지기라도 하면 그보다 더 낭패스러운 경우가 없었다.
학교에서 채변 봉투를 걷는 것도 큰 곤욕이었을 것이다. 채변 봉투를 걷는 날은 온 교실에 구린내가 진동했다. 똥을 담아오는 아이들의 모습도 가지각색이었다. 어떤 아이들은 봉투가 두툼할 정도로 똥을 많이 담아오는 아이도 있었고 어떤 아이들은 아주 표시만 날 정도로 적게 담아오기도 했다. 집에서 채변을 하지 못해 화장실에서 아무 똥이나 찍어 담느라고 기를 쓰는 친구도 있었다. 개똥을 넣어왔다는 친구도 있었다. 이런 식으로 반 아이들 모두에게서 채변봉투를 다 걷는 데는 사나흘이 족히 걸렸다. 교실 안은 어쩔 수 없이 며칠 동안 구린내에 시달려야 했다.
채변봉투 다 걷어내고 두어 주가 지나면 검사결과가 나왔다. 그럼 이번에는 선생님이 거의 반 아이들 전원에게 콩알 만한 납작하고 광택이 뺀질뺀질한 빨간색 또는 녹색 알약을 몇 개씩 나누어 주셨다. 그리고는 반드시 잠자기 전에 먹고 자라고 신신당부하시는 것을 잊지 않았다. 채변 검사결과에 따라 반 아이들 중 몇 명은 따로 무슨 통신문 같은 것을 받아갔다. 이런 경우는 배속에 험악한 기생충이 득시글거린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이들이 빨간 알약을 털어먹고 난 다음 날은 똥뚝간에 얼핏 보기에도 젓가락 굵기만한 허연 기생충들이 한 무더기씩 엉켜서 떨어져 있게 마련이었다. 위생관념이 철저하지 못한 시절이었다. 손을 자주 씻는 것도 아니고 무엇이든 날로 먹기를 즐겼다. 온 들과 밭에는 인분이 뿌려지던 시대였다. 기생충이 논밭에 쫙쫙 깔렸을 것은 뻔한 이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없으니 아무도 개의치 않았다. 대충 씻어먹는 채소나 냇가에서 잡은 고기를 날로 먹기도 일쑤였다. 몸속에서 기생충을 키우고 있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아이들이 자주 배가 아프다고 호소하면 어른들은 공연히 '횟배'라고 둘러댔다. 횟배는 회충이 배에 들어서 아프다는 이야기인데 이런 큰일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되던 시절이었던 것이다.
텔레비젼 광고에는 구충제 광고가 심심치 않게 나왔다. 회충, 요충, 십이지장충을 한꺼번에 다 잡는다는 애니메시션 광고는 매우 재미있는 광고중의 하나였다. 미끼를 구충제로 표시하고 작은 물고기가 먼저 물고 그 물고기를 더 큰 물고기가 물고 다음으로 가장 큰 물고기가 모두를 삼켜버리는 광고였다. 학교 복도와 시내 병원에는 기생충의 유입경로를 알리는 포스터들이 반드시 붙어있었다. 포스터에는 손과 항문에 허옇고 긴 기생충을 잔뜩 붙어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보기만 해도 온 몸에 기생충이 스물거리는 듯 끔찍했다. 그 포스터를 보고 있노라면 자다가도 일어나서 손을 씻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선생님들은 늘 자주 손을 씻을 것과 날 것을 함부로 먹어서는 안된다고 가르쳤다.
첫댓글 그때 우리반 아 하나는 똥 안싸가 와가 10원짜리 쪼꼬렛 앂어가 봉다리에 담아 냈는데 회충 있다캐가 바보 됐지 글마는 입안에도 회충 있었던 모양이라 ...
채변봉투하면 항상 생각나는 사람 : 똥차(변재엽이)
밥시키놓고 있는데 이글 읽었뿐네 에~씨 옛날에 채변봉투생각하이 밥은 다묵다...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