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꼬리만큼 짧아지고 있는 가을 해가 서산으로 꼬리를 감춘다. 그 뒤를 이어 밤하늘엔 수많은 전설들을 가득 담은 별들이 하나 둘 이야기꽃을 풀어놓는다.
산중 텐트에서 새어나온 불빛과 함께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끊이질 않고 어른들의 도란도란 이야기꽃은 추억이 된다. 풀벌레와 이름 모를 산새들의 지저귐도 정겹다.
여기에 제 몸을 터뜨리며 불꽃을 환히 피우는 장작불이라도 피어오른다면 더할 나위 없다. 이따금 폐부 깊숙이 온몸을 감싸 도는 싸한 찬 공기의 상쾌함에 정신은 맑아진다.
단풍이 물들어가는 산중에 텐트를 세워놓고 느긋하게 의자에 몸을 기대고 맞는 가을밤.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고 낭만이 물씬 느껴진다.
여름 휴가철도 한참 지난 지금 캠핑 이야기에 많은 이들이 ‘무슨 뚱단지 같은 소리냐’고 할 게 뻔하다. 하지만 캠퍼(캠핑을 즐기는 사람)들은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짐을 꾸리기 시작한다. 최고의 캠핑시즌인 가을이 왔기 때문이다.
여름 땡볕 더위에 지쳐 헉헉거리지 않아도 되고, 많은 피서객들로 인한 북적임도 없다. 또 불빛을 찾아 몰려드는 날벌레들의 성화도 없다. 이맘때가 한적하면서도 여유로운 캠핑을 즐기기에 가장 좋을 때다. 숲속의 풍경도 아름답고 대기는 청명하다 못해 눈이 부실 정도로 환상적인 가을을 만날 수 있다.
지난 주말, 가을 캠핑체험에 나섰다. 장소는 서울서 가깝고 편의시설이 갖춰진 경기도 화성 궁평리에 자리한 해솔마을.
서울에서 차로 출발한 지 2시간 만에 궁평리에 도착했다. 시간은 오후 6시30분을 조금 지났지만 시골의 해는 짧기만 하다. 사방엔 벌써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렸다.
궁평해수욕장을 지나 나지막한 산길을 넘자 텐트에서 쏟아져 나오는 불빛들이 어둠을 밝혀준다. 해솔마을이다.
지정된 캠핑장에 짐을 풀고 텐트를 쳤다. 캠핑카를 이용한다면 차를 세우면 그만이지만 대부분 오토캠퍼들은 다양한 종류의 텐트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든다.
어둠속에서 텐트 치기에 고군분투하는 모습에 주변 캠퍼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온라인 캠핑 동호회(캠핑퍼스트) 회원인 최영호(43, 닉네임 최피디) 씨의 능숙한 손놀림에 어느새 그럴싸한 집(텐트)이 완성됐다.
집짓기를 도운 최 씨가 “지금 저녁 준비 할 것 없이 우리 집에서 식사를 하라”며 손을 이끈다.
봄부터 초가을까지 작은 텐트와 타프(그늘막)로 보냈다는 그의 텐트는 최근 거실형으로 바뀌었다.
많은 캠퍼들은 선선한 바람이 불고 가을이 깊어지면 온 가족이 서서 생활할 수 있는 커다란 거실형 텐트로 집을 짓는다. 텐트 안에는 음식을 만드는 주방 시스템과 식사를 할 수 있는 테이블, 의자 등이 들어선다. 말 그대로 온 가족이 불편함이 없이 생활할 수 있는 하나의 집이 완성되는 것이다.
최 씨가 건넨 밥 한 공기는 그 어떤 진수성찬과도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꿀맛이었다.
식사를 마친 캠퍼들이 하나 둘 모닥불 주변으로 모여든다. 캠핑의 매력인 모닥불 토크가 시작되는 것이다. 장작불 속으로 고구마나 감자, 밤 등을 올려놓고 일상에서 힘들었던 일, 즐거웠던 일 등 각자의 이야기보따리를 풀다 보면 자정을 훌쩍 넘긴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밤하늘 별빛을 동무 삼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생판 모르는 이들과도 금세 친구가 된다.
최 씨가 꺼낸 캠핑 입문기는 지금처럼 무수히 쏟아지는 밤하늘의 별과 함께 시작됐다.
최 씨는 “2년 전 가을 덕유산에서 텐트를 쳤다가 밤하늘에 쏟아질 듯 펼쳐진 별무리에 반했다”며 “나뭇잎 흔드는 바람소리, 물소리와 함께 별빛 영롱한 밤 별똥별을 보면서 너무 황홀했다”며 첫 캠핑 때의 경험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이때 캠핑의 매력에 반해 최 씨 가족들은 한 달에 적어도 1~2번은 캠핑장을 찾는 캠퍼가 됐다.
최근 오토캠핑에 필이 꽂혔다는 주윤성(회사원) 씨는 달라지는 아이들의 모습에 놀라움을 나타냈다.
주 씨는 “학교에서 말이 별로 없던 아이가 처음 보는 아이들과 쉽게 친해지는 것을 보니 자연이 아이를 변화시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우선 캠핑은 아이들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특별한 추억을 선물한다. 아빠와 함께 뚝딱뚝딱 텐트를 치고 엄마와 함께 식사준비도 한다. TV도 없고 컴퓨터도 없는 캠핑장이지만 자연을 이용한 다양한 놀잇감을 만들어내며 자연을 벗 삼아 뛰놀며 하나가 된다.
옆에 있던 주 씨의 부인이 한마디 거든다. “집에서는 손에 물 한번 묻히지 않던 남편이 여기 와선 다 자기가 한다니까요” 주변이 한바탕 웃음꽃이 피며 맞장구가 쏟아진다.
‘오토캠핑의 어떤 면이 그렇게 좋으냐’ 고 물었더니 “텐트를 치고 밥을 해 먹는 일 외에 산이 좋은 사람은 산으로, 물 좋아하는 사람은 물에서 자신만의 여유로움을 찾는 것이 좋다”는 주 씨는 “또한 가족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말한다.
이 밖에도 “바쁘게 휙휙 스쳐 지나는 여행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자연에서 느릿느릿 가는 시간’도 느껴볼 수 있다”고 자랑한다.
이처럼 캠핑과 하나 되는 방법은 다르지만 이들이 숲속이나 강변 혹은 바다의 텐트에서 만나는 것은 모두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다.
생활은 조금 불편해도 야외에서 뛰놀고 밥 먹고 잠자며 온 몸으로 자연을 느끼는 맛이야말로 이들이 캠핑을 떠나는 진짜 이유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이어진 이야기꽃에 모닥불 속의 고구마가 달콤한 유혹의 눈길을 보낸다.
화성=글ㆍ사진 아시아경제 조용준 기자 (jun21@asiaeconomy.co.kr)
■단풍과 어울리는 캠핑장 5選
●설악동C지구 야영장
우리나라의 많은 산들 중에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친근한 산이 설악산일 것이다. 외설악 초입에 자리 잡고 있는 이곳은 국립공원 내 오토캠핑장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대형 캠프장답게 편의시설의 규모나 관리상태도 뛰어나다. 주변에 속초, 한화워터피아, 대조영 촬영장 등 볼거리가 풍부하다. 문의 : 033-636-7700
●오대산 소금강 오토캠핑장
금강산의 아름다운 풍경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계곡미가 일품이다. 암반을 타고 흐르는 맑은 계곡물과 계곡 좌우에 수놓아진 기암들이 장관. 대형 캠핑사이트와 취사장, 화장실, 식수대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11월 중순부터 리모델링 공사가 예정되어 있어 출발 전 문의는 필수. 문의 : 033-661-4161
●주왕산 상의 야영장
가을 단풍으로 유명한 주왕산은 예로부터 고대의 신비를 간직한 아름다운 경관으로 이름이 높다. 상의 야영장은 주왕산 초입에 자리 잡고 있어 병풍처럼 주위를 감싸는 주왕산의 산세가 한눈에 들어와 장관이다. 국립공원 내 야영장인 만큼 편의시설들은 불편하지 않게 이용할 수 있다. 문의 : 054-873-0014
●지리산 달궁 오토캠핑장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인 지리산은 남쪽에서 가장 크고 웅대한 산으로 꼽힌다. 지리산 달궁 오토캠핑장은 뱀사골 입구에 자리 잡고 있다. 취사장과 급수대, 화장실 등의 편의시설을 잘 갖추고 있다.
성삼재나 노고단, 화엄사 등의 주요 명소와도 가깝다. 그런 만큼 성수기에는 이용객들이 많다. 문의 : 063-625-8912
●덕유산 오토캠핑장
덕유산은 최고봉인 향적봉을 중심으로 경상남도 거창과 전라북도 무주에 걸쳐 있다. 캠핑장에는 캠핑카 69동 정도를 수용할 수 있으며 바로 옆에 1만 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일반 야영장도 따로 있다.
야영장 옆으로 시원한 물이 흐르는 계곡과 덕유산을 오르는 산책로가 있다.문의 : 063-322-3174
◇여행 초보가 가볼 만한 경기권 캠핑장 5選◇
●궁평리 해솔마을 경기도 화성군 서신면 바닷가에 자리한 해솔마을은 화성8경 중 하나인 궁평 낙조가 환상적이다. 서해안 어디에서도 낙조는 볼 수 있지만 이곳의 낙조는 특별하다. 캠핑장 건너편 태안반도와 주변 섬에 걸린 저녁 햇살과 수평선의 불빛이 장관이다.
김상훈 사장이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땅에 캠핑장과 민박시설을 갖추고 있다. 오토캠핑장은 민박 건물 아래 숲속과 운동장에 마련했다. 대형 거실텐트 30여동은 충분히 칠 수 있다. 화장실과 개수대 시설을 보수해 전문 캠핑장으로 탈바꿈을 시도한다. 전기 및 온수 사용이 가능하다. 겨울엔 눈썰매장도 운영한다. 또 민박식당에서 판매하는 칼국수맛은 일품. 주변 지역에서 칼국수를 맛보러 올 정도다.
문의 : 011-413-9341, 011-9182-7110
●가평 합소오토캠핑장 가평군 설악면 가일리에 자리한 합소는 캠퍼들이 꼽는 좋은 캠핑장에서 항상 상위권을 차지한다. 일반인들을 비롯해 동호회 소속 캠퍼들로 사계절 내내 활기가 넘쳐난다. 유명산 자연휴양림 입구에 자리한 이곳은 전기, 온수시설 등이 갖춰져 있다. 주변에 볼거리가 풍부한 것도 특징. 청평유원지나 유명산 계곡과 등산 등이 가능하다.
문의 : 031-584-7584
●파주 반디캠프 파주시 광탄면 기산리에 자리한 반디캠프는 서울에서 가까운 지리적 위치가 장점이다. 캠핑장으로 조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시설이 깔끔하고 계속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수령 20년이 넘은 메타세콰이어숲에 들러싸여 있어 깊은 산 속 캠핑장 못지않게 쾌적하다. 주변에 유일레저라는 레저타운이 있어 승마 등을 즐기며 가을 나들이 떠나기에 그만이다.
문의: 031-941-2121
●가평 자라섬ㆍ연인산 오토캠핑장 2008 세계캠핑대회와 재즈페스티벌이 열린 자라섬캠핑장은 각종 해양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다. 연인산캠핑장은 가평 북면에 위치해 있으며 캐빈하우스, 캐리반 등을 갖추고 있으며 시설이 깨끗하다. 캠핑사이트마다 구획 정리가 잘 되어 있으며 온수샤워는 물론 전기 사용 가능. 주변에 명지산, 연인산 등산로 등이 있어 산행도 가능하다. 문의 : 031-580-2700
●한탄강 관광지 오토캠핑장 연천군 전곡리에 자리한 한탄강 캠핑장은 경기 북부의 명소인 한탄강을 끼고 조성된 캠핑장이다. 깨끗한 편의시설과 주변 볼거리가 많아 최근 각광받고 있다. 전기, 온수 사용이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