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모두 죽음의 공포 속에 살고 있으며 몇 집 건너 한 집은 가족이 좌익부역자라며
곤욕을 치렀으며 생떼 같은 젊은 청년들이 총을 맞고 쓰러져야 했으니 상처 난
주민들에게선 낙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형기 자네가 순천지리를 어떻게 잘 알고 있는가?”
“중고등학교 6년을 기차를 타고 통학을 했다니까.”
“그러면 자네가 매산 중고등학교에 다녔단 말인가?”
“아니 그만 순천 중고등학교를 댕겠네.”
“자네가 집이 남원이라고 했잖은가?”
“금지면이니 행정구역만 남원이었다니까. 기차를 금지역에서 타고 다녔으니까,
집이 곡성이라고 허믄 맞을 거시.”
이경안 체포 작전에 동참한 친구가 순천 중고등학교 출신이라고 했다.
순천지리를 잘 알뿐더러 자신의 아버지가 가담한 사건이며, 그때 이경안과 장영팔이
고문을 가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건 얘기를 듣고는 결의에 찬 이형기를
끌어들인 일이 천우신조처럼 잘되었다고 쾌재를 불렀다.
“자네가 이경안의 거주지까지 미리 알아 놓고 준비를 많이 했고 마이, 경찰서 안으로
잡으러 가는 거는 아니겠지?”
“그래그래, 경찰서 안으로 들어가서 체포하려는 것은 화약을 짊어지고 아궁이로
뛰어드는 격이니 바보들이 하는 짓이네.”
“일단은 그 작자 집이나 알아 놓자니깐, 글고는 길목에서 우리가 매복하고 있다가
즈그 집으로 퇴근하는 것을 덮치자고.”
맘속에 체포 작전을 그리고 있는 것이 명채와 형기가 같았다.
“그러자고, 내가 짜 놓은 작전도 그렇다네.”
“자네 수첩에 매곡동 163에 23번지라고 했능가? 내가 순천은 골목골목 질을 알고 있다니까,
일단은 그놈의 집부터 알아 놓자고, 여그서 쪼끔만 가믄 경찰서라니까,
글고는 좀 올라가다가 로터리 오른쪽으로 들어가세 도립병원 담에 가 중앙교회고,
매산중학교도 바로 거기 있네. 쪼매만 올라가면 거기가 이경안이 집이 맞는 상 싶네.”
질을 알고, 담에 가, 쪼매, 이런 전라도 사투리단어들이 명채는 헷갈렸다.
그렇지만 곧바로 형기가 말 한대로 길이 이어졌다. 순천경찰서를 지나 오른쪽 커브에
도립병원과 역사 깊은 한국교회 상징인 중앙교회와 매산중학교가 붙어 있었다.
그러고는 언덕바지에 있는 이경안의 집도 웅장하게 서 있었다.
“집이 으리으리 하네이! 제기랄 나는 언제 이런 집에서 살아보는가?”
이형기가 넋두리하는 사이에 대문 안에서 개가 요란스럽게 짖어댔다.
“어이 빨리 가세! 요 위로는 찻길이 없고 사람 다니는 질도 없이 막힌 곳이니, 차를 돌려 나가세.
아까 막 교회를 보지 않았능가? 교회 문 앞쪽에 차를 대 놓고 지키고 있으믄 교회 일이 있어서
온 차로 사람들이 알 것이네. 이경안이 그 작자가 올 때까지 우리가 죽치고 있어도 괜찮담 말이시.”
두 사람은 차를 돌려 내려와 중앙교회 앞에 세웠다.
명채가 수첩 안에 들어있는 반명함판 사진을 꺼내 형기에게 건넸다.
집과 경찰서가 가까워 출퇴근할 때는 자가용을 이용하지 않고 걸어 다니고 있는 것을
동네 사람들에게 확인했다. 퇴근하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체포하기로 했다.
“틀이 그럴듯하게 생겨 뿌렸네. 사진을 봉게 악하게는 안 보이는데…….”
“맞아, 내 눈에도 자네처럼 미남형에다 순해 보이더란 말일세.”
사진으로 보는 이경안은 양복 정장 차림을 했고 앞머리 쪽은 머리가 빠져
국민학교에 인자한 교장 선생님처럼 비쳤다.
“어이 명채! 이 사람이 유도를 했다고 했능가?”
“유도를 잘했다는 것은 진작 알았네. 지금, 황전 지서에 근무하는 장영팔과는 친구 사이며
학창시절에는 조일 체육대회 유도 전남도 대표로 나가 일본 선수를 꺾기로 한판승을 했다고 들었네.
장영팔도 이경안과 버금가는 누르기 유도 꾼이라고 들었어!
할아버지가 이경안의 관절 꺾기와 장영팔이 그놈이 아무 곳이나 눌러대는 바람에
욕을 보셨고 결국 돌아가셨다고 들었네.”
이경안과 장영팔은 다루기가 호락호락 하지 않다는 뜻으로 명채가 말했다.
“지금 시간이 날이 어두워 질라믄 아직 멀었네. 지금 네 시 반뿐이 안 되었구먼,
저녁밥 묵을 때가 빠르지만 지금 묵고 와야 허는 것이 낫지 안 컷 능가?”
“형기 자네 말이 맞네. 그자가 아직 퇴근 시간이 되지 않은 것 같으니 저녁 식사를
해결하는 것이 좋은 방법같네.”
“가세, 이 앞으로 쪼금만 가믄 순천 웃 장터가 있네. 거기 가믄 묵을 만 헌것이 많네.”
저녁 식사시간이 빠르지만 이른 식사를 하고 잠복하는 것이 좋겠다며 형기가 말했고
명채도 그게 좋겠다며 동조했다.
마침 형기가 순천지리를 잘 알아 웃장터 쪽으로 차를 타고 내려왔다.
명채가 이형기를 선택하였으므로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음을 알았다.
무엇보다 할아버지와 함께 미나미 저격 사건을 벌였던 분의 아들을 만나게 된 것은
예사 조우가 아니었다.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라면 이를 보고 신께서 주선했다고 봐야 할 만한 일이다.
순천에 지리를 꿰뚫고 있으며 어디에만큼 먹을거리가 어떻다는 것까지 알고 있으니
명채 입장에서는 전장에 나가는 장수가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장터 안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이나 가게에 장사하는 사람들이 여순 난리를 겪느라
한결같이 우울해 보이고 죽지 못해 사는 사람처럼 보였다.
명채가 서울에서 보고 대하던 활기 넘치는 사람들의 표정과는 판이했다.
두 사람이 돼지국밥으로 이른 저녁 식사를 하고 다시 매복에 들어갔다.
해가 뉘엿뉘엿 서산을 넘어가더니 어느덧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긴장하고 정신을 바짝 차렸다.
교회에 종탑 위에 설치한 차임벨이 울려 퍼지고 있다. 수요일 저녁 7시 수요예배를 알리는 소리였다.
‘내주를 가까이하려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차임벨 소리에 맞춰 형기가 따라 부르고 있다.
“교회에 오는 사람들하고 이경안이 섞여 버리면 나무아미타불 돼 뿡게 신경이 쓰이고 만이.”
“그래도 가로등도 있고 교회서 새어 나오는 불빛이 있어 다행 아닌가?”
“그러고 봉게, 우리가 자리를 잘 잡았다니까, 차를 대 놓고 있는 것도 사람들이 보기에는
교회에 일 보러 오는 것처럼 보일 테고 말이시. 소변도 교회 화장실서 해결하면 되고
물 묵고 싶으믄 교회 수돗물을 묵으믄 되니 말이시.”
예배가 끝나고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자 교회 앞 거리에 인적은 끊겼다.
그렇지만 이경안은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 몇 시인데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네.”
오고 가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자 명채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시간은 기껏 10시 조금 지나 있었다.
“명채 자네 말을 들은 개미들이 서운하게 생각하겠구먼, 날이 어두운데 개미들이
미친개처럼 머덜라고 돌아다니는가?”라고 형기가 농담을 했다.
“지금 10시 반이거든 오늘 저녁은 야근하는지 모르겠네.”
“이경안이 그 사람이 수사과장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퇴근 시간이 넘었지만, 이경안은 나타나지 않자 명채가 야근하는가 싶다고 말했고
이형기는 이경안이 수사과장이란 말을 들은 것 같아 명채에게 물어봤다.
“할아버지를 고문할 때는 계장 된 지 얼마 후였고 미 군정 때 진급했었나 봐.”
“야근할 일이 있으믄 밑에 부하들만 시케 놓고 자기는 술을 묵으러 갔다든지, 그러하지 않겠는가?
일단은 그놈이 올 때까지 기다래 보세.”
어느덧 시간은 자정이 다 되었다. 1949년 6월 여름으로 들어섰지만, 순천의 밤 날씨는
밤이 깊어지자 썰렁하게 느낄 정도였다.
“어이 명채! 자네는 먼저 한숨 자소.”
“우리가 오늘 저녁에 허탕을 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일단은 밤이 샐 때까지 기다래 보장게, 자네가 먼저 한숨 부치라니까.”
명채에게 먼저 눈을 붙이라고 형기가 권했다.
“그래, 그러면 내가 먼저 한 숨자고 일어나겠네.”
경찰서가 바로 코앞이라 밤 10시 통행 금지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곤히 잠들어 있는 사람들이
모두 깨지 않을까 싶도록 요란스러웠다.
잠시 후 사이렌 소리가 그치자 명채가 코를 골고 있다.
동네 강아지들도 잠을 자는지 보이지 않는다.
곧바로 사위는 적막 속으로 빠져들었다.
자정이 넘고 밤이 깊어지자. 교회 모퉁이 쪽에 세워진 가로등이 깜박거리고 졸고 있다.
형기는 졸지도 않고 교회 앞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분이 살아계신다. 아버지와 함께 미나미 저격 사건에 같이 하신 분이 살아계신다.
낮에 명채가 중요 뉴스라면서 들려준 얘기가 자꾸만 형기의 뇌리를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