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공화국’이 침묵하는 백혈병 노동자들의 비밀! 우리가 지켜야 할 자유와 인권 틀을 아울러 소개하는 「평화 발자국」 제9권 『사람 냄새』.김 수박 쓰고 그림, 보리 펴냄, 2012년 4월, 132쪽, 1만2000원
지난달, 10년 넘게 써온 카세트를 버림으로써 내게 삼성
제품은 하나도 없게 되었다. 내가 '삼성불매'에 동참하게 된 것은 '황유미' 때문이다. 삼성에서 일하다 20대 꽃다운 나이에
백혈병으로 목숨을 잃은 그녀. 이 책은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의 증언을 통해 '삼성 백혈병'의 진실을 파헤친 르포만화다.
삼성
직업병 피해자 138명. 사망 54명. 산업재해 승인 단 1건. 노동자들이 죽어나가고 있지만 개인질병일 뿐이라며 돈봉투로 입을
막으려는 '초일류기업'. 언론도 국가도 나서지 못한 싸움에 나선 한 아버지의 이야기가 가슴을 때린다. 역시 삼성에서 남편을 잃은
정애정씨의 이야기인 < 먼지 없는 방 > 과 함께 읽으면 더 좋겠다.
이 작품은 삼성에서 딸을 잃은 아버지 황상기 씨의 이야기를 만화로 되살려 우리 사회의 비극을 밝혀내고 있다. 택시 기사 황상기의 딸 유미는 열아홉의 나이로 삼성반도체 공장에 입사하여 2년 만에 백혈병을 얻었다. 황상기는 딸의 병이 반도체 공장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하고 최초로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하지만 황상기는 딸의 병이 산업재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홀로 싸우는 과정 속에서 삼성이라는 큰 벽에 부딪힌다. 더불어 삼성을 둘러싼 사회기관, 언론마저도 이 사실을 덮으려고만 한다.
삼성 반도체 백혈병 문제와 삼성의 비리 및 3세 승계 문제를 함께 배치하여 우리 사회에 녹아있는 삼성의 문제를 날카롭게 꼬집는다.
강원 속초에서 택시기사로 일하는 황상기씨의 딸 유미씨는 고교를 졸업하고 2003년 삼성반도체에 입사해 수원으로 갔다. '클린룸'이라는 작업장에서 반도체 칩을 만드는 재료인 웨이퍼 가공 작업을 하다가 2년 반만에 백혈병을 얻었다. 2년 가까이 투병하던 그는 아빠 택시에 실려 병원 다녀오던 길에 차 안에서 숨을 거뒀다.
투병 중에도, 딸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황씨는 산업재해 인정을 받으려고 애썼지만 삼성도, 근로복지공단도 인정해주지 않았다. 참다 못한 그가 다른 피해자들과 함께 거대기업 삼성을 상대로 싸움에 나섰다. 이때부터 삼성반도체 피해 문제가 널리 알려지게 됐다.
보리출판사가 전쟁과 폭력, 일상의 차별과 자유, 인권 등을 주제로 내고 있는 다큐 만화 시리즈 '평화발자국' 9, 10권으로 삼성반도체 재해 문제를 다룬 <사람 냄새> <먼지 없는 방>이 나란히 출간됐다. 각각 황씨의 사연과 삼성반도체에서 근무하다 만난 남편을 백혈병으로 잃은 정애정씨 이야기를 담았다.
성공회대 하종강 노동대학장은 추천사에서 "'유미가 죽었다'고 딸의 죽음을 알리는 장면에서 24년 전 온도계 공장에서 일하다 수은 중독으로 고통 받은 '문송면이 죽었다'는 연락을 받던 때가 생각나 한동안 숨을 골라야 했다"고 말했다.
이 만화는 많은 이들이 한국 경제의 견인차이자 '청정'하다고 믿는 반도체산업의 노동 현실을, 그리고 그에 대처하는 거대기업 삼성의 행태를 낱낱이, 그리고 가슴 아프게 고발하고 있다.지금까지 반도체 노동자 인권모임인 '반올림'에 제보된 피해 사례는 150여 건, 삼성반도체 등 전자산업 현장에서 일하다 백혈병 등 희귀질환으로 숨진 노동자는 60명이 넘는다.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을 얻었다고 산재 인정 신청을 한 노동자는 20여명. 근로복지공단은 그 동안 산재를 인정하지 않다가 지난 10일 삼성전자 반도체 조립공장 등에서 1990년대 5년 가량 근무한 여성 노동자(37)의 '혈소판 감소증 및 재생불량성 빈혈'을 처음 산재로 인정했다. 근무 중 벤젠이 포함된 유기용제와 포름알데히드 등에 간접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과 퇴사 당시부터 빈혈과 혈소판 감소 소견이 있었던 점 등을 고려한 결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