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해야 할 한국교회 위인들 [11]
호머 베절릴 헐버트(Homer Bezaleel Hulbert, 1863-1949)⑥
헐버트는 미국에 거주하는 동안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함께 노력했는데, 여러 지역을 순회하면서 강연도 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신문 기고를 통해서 우리나라의 독립을 주장하고 우리나라에 대한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의 정책을 비판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광복 후 1949년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우리나라 국빈으로 초청을 받아 8월 15일 광복절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배를 타고 긴 여행을 한 끝에 서울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고령이었던 헐버트는 입국 1주일만인 8월 5일에 병으로 사망하고 말았고, 우리나라는 외국인 대상으로는 최초로 사회장을 치루고 8월 11일 서울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원에 안장했습니다. 그가 남긴 유언 중에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에 묻히고 싶다.”는 말이 있었는데, 유언대로 그의 아들이 한 살 때 죽어 묻혀있는 양화진에 묻히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50년에 외국인으로는 최초로 건국공로훈장 태극장을 추서했고, 2014년에는 한글학자이자 역사연구가로서 공로가 컸기에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게 되었습니다. 헐버트는 선교사와 교사로 활동할 당시 교파를 초월해서 조선에 기독교가 전파되도록 하는데 힘썼고, 1893년에는 감리교 선교사로 임명되어 배재학당 삼문출판사(Trilingual Press) 책임자가 되었으며, 동대문교회(Baldwin Chapel) 담임목사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1906년에는 현 노량진교회 창립예배를 인도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한국에 YMCA를 세우기 위해 YMCA 창립준비위원장으로 활동하다가 1903년 10월 YMCA 창립총회 의장으로서 이 땅에 YMCA 탄생을 선포한 인물로 YMCA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선교, 교육, 계몽에 앞장섰습니다.
<참고: 헐버트박사 기념사업회 홈페이지,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 홈페이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