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식씨의 센티멘탈
문제의 발달 원인을 뿌리까지 캐내어 보면 그 시발점은 결국 사람에게 있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지 간에, 누군가와 또 다른 어느 누군가 사이에서 문제는 시작된다. 일단 문제가 발생하면 문제의 실상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 급선무이다. 문제에서 벗어나 청명한 시각으로 그 문제를 인식한 후 대소유무(大小有無)와 시비이해(是非利害)를 명심하여 올바른 판단을 내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판단한 대로 실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녀는 이러한 명제를 가슴속 깊이 새겨넣었다. 그리고 태어난 날부터 시작된 자신의 운명과 같은 문제를 언젠가는 반드시 해결하리라 결심했다.
그녀의 문제는 바로 이름이었다. 천하에 번성하라는 거창한 의미의 한자 음에 드문 성씨까지 합해놓으니 그녀의 이름은 그야말로 우울했다. 어두식(魚斗殖). 여자의 이름으로 쓰기에는 얼토당토 않은 이름이다. 게다가 ‘두식’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가 ‘좀 먹다’ 이니 이런 설상가상이 따로 없었다. 덕분에 그녀는 어린시절부터 각종 해괴한 별명이 따라다녔다. 이름 그대로 ‘두식아’라고 불러도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을 판에 주변 사람들은 ‘생선 머리만 먹는 아이’라고 제멋대로 그녀의 이름을 해석했을 뿐 아니라 ‘어두육미’나 ‘어좀식’ 등 여자의 별명으로는 감당하기 벅찬 것들로 지어 불렀다. 그녀는 호적에 자신의 이름이 오른 그 순간부터 치명적인 약점을 갖게 된 것 같았다. 그녀의 심적 고통으로 말할 것 같으면, 선천적인 신체장애를 갖고 태어난 사람과 다를 바 없다고 스스로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녀의 부모는 나이 마흔이 넘어서 갖게 된 외동딸의 이름을 알아주는 작명가에게서 지었다고 흡족해 했다. 그 거만한 작명가는 고개를 위로 치켜들고 눈은 내리 깔며 부귀영화를 누릴 이름이라고 그녀의 부모에게 확신했다. 그녀의 부모는 ‘어두식’이라고 씌어있는 종이를 고이 접어 가슴 안쪽 주머니에 집어넣고는 작명가에게 비싼 값을 치렀다. 그녀는 첫번째로 그녀의 부모가 원망스러웠다. 아무리 다른 부모보다 많은 나이에 그녀를 낳았고 때문에 세련되지 못하다고 해도 ‘소라’나 ‘혜린’ 같은 감각적인 이름은 둘째 치고 ‘지연’ 이나 ‘미숙’ 정도의 평범한 이름도 지어주지 못한 부모가 너무나 성의 없게 보였다. 또한, 그녀가 하루종일 계속된 친구들의 놀림에 눈물을 글썽글썽 달고 집으로 들어가도 뒷짐만 진 채로 아이들 장난이니 이해하라는 둥, 어른이 되면 오히려 그 이름이 흔치 않아서 더 좋을 것이라는 등의 건성 위로를 들을 때면 놀린 친구들보다 몇 배는 더 부모가 미웠다.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 자기 소개를 해야 하는 순간이 그녀에게는 가장 고역인 시간이었다.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말하면 상대방은 보통 다시 한번 되물었고 한층 주눅이 든 표정으로 가까스로 또 한번 말하면 상대방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피식 거리고는 했다. 그녀는 이 문제를 언젠가는 반드시 해결하리라 결심했다.
한편, 그녀가 중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미처 해결하지 못한 이 문제는 곪을 데로 곪아 마침내 터져버렸다. 반 배정을 받고 등교하는 첫날, 그녀는 온갖 설레임에 사로잡혔다. 결혼식 날 아침에 잠을 설친 신부가 들뜬 마음으로 웨딩드레스를 꺼내어 조심조심 입어보듯이 그녀는 옷장에서 미리 맞추어 놓은 교복을 꺼내어 입고 거울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반듯하게 다려진 흰색 블라우스가 그녀의 하얀 피부를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것 같았다. 초등학교 시절에 우러러보였던 중학생 언니가 되는데다 담임 선생님 말고도 각 과목별로 선생님이 다르고 그 선생님들이 자신을 좀 더 어른대접 해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그녀는 새 친구들이 자신의 이름에 한번씩 쿡쿡 웃음을 터뜨려도 어른스러운 모습으로 의연하게 대처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잡고 학교에 들어섰다. 그러나 그녀의 긍정적인 각오에도 불구하고 잔뜩 곪아있던 문제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불쑥 솟아나와 톡 터져버렸다.
1교시의 담임 선생님과의 만남은 무난하게 넘어갔다. 그녀의 이름에 짓꿎은 남학생들은 일부러 크게 웃어댔지만 아량 넓은 인자한 담임 선생님은 이름을 갖고 사람을 놀리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라며 인자하게 타일러 그 난관을 자연스럽게 넘겨주셨다. 그녀는 처음 만난 담임 선생님에게 그 즉시 무한한 사랑을 느끼며 오히려 비웃는 아이들을 향해 보다 어른스러운 비웃음을 보내주었다. 2교시가 되자 사랑스러운 담임 선생님은 나가고 남자 영어 선생님이 들어왔다. 은테 안경에 거무스름한 턱이 능글맞아 보였다. 헬로우 에브리원. 영어 선생님은 교탁 앞에 서서 반 학생들을 둘러보며 예의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활기찬 인사를 했다. 자신의 이름을 브라이언이라고 소개하며 영어 시간에는 영어로 말하는 것이 당연지사이니 결코 어색해 하거나 쑥스러워 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몸을 돌려 칠판에 다음과 같은 문장을 쓰고 1번을 불렀다. 렛 미 인트로듀스 마이 셀프. 영어로 자기 이름을 이야기해봅시다. 1번은 쭈뼛쭈뼛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눈만 껌벅였다. 그러나 사교육으로 유명한 나라답게 다그치는 듯한 영어 선생님의 얼굴을 바라보던 1번은 이내 더듬거리며 말하기 시작했다.
-나이스 투 미트 유. 마이 네임 이즈 김경희.
영어 선생님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반 아이들의 박수를 유도했다. 드디어 어두식, 그녀의 차례가 되었다.
-글래드 투 미트 유. 아이 엠 어두식.
고작 이름을 소개하는 쉬운 발표에도 수줍은 그녀는 내내 가슴을 졸이고 있었다. 다행이도 자신의 차례를 무난하게 끝내고 나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반 아이들의 박수소리를 기다렸다. 그런데 뜻밖에도 영어 선생님은 물 만난 고기 마냥 강의를 시작했다.
-여러분이 이 부분에서 틀릴 줄 알았어요. 이름은 고유명사이기 때문에 부정관사 ‘a’나 ‘an’을 붙이지 않아요. ‘아이 엠 어 두식’이 아니고 ‘아이 엠 두식이죠.’
그녀는 처음에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 했다. 부모님 등살에 지난 겨울방학 동안 영어 문제집을 풀며 열심히 공부했는데 중학교에 입학한 첫 날부터 틀려 반 아이들 앞에서 선생님의 훈계를 듣고 있는 것이 억울했다. 그러다가 이내 정신이 들고 그것이 선생님의 오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의 얼굴은 잘 익은 홍시처럼 붉게 물들고 곧 터져버릴 것처럼 변했다. 반 아이들은 모두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배꼽을 잡았다.
-선생님, 저 애 이름이 어두식이예요. 깔깔깔
‘아이 엠 어두식’이라는 문장은 메아리처럼 웃음소리와 함께 그녀의 귀를 괴롭혔다. 그 웃음소리는 그녀의 귓가를 한바퀴 둘러 쌌고 윙윙 거리며 끊임없이 울려댔다. 그 일로 말미암아 그녀는 전교생이 모두 아는 톱스타가 되었고 설령 그녀를 모르는 학생이 있더라도 그 이름에 얽힌 일화는 익히 알게 되었다.
무릇 문제라는 것은 발생을 하면 그것이 또 다른 문제를 낳고 더욱 복잡한 문제를 야기하기 마련이다. 2교시 영어 시간이 끝나고 다음 수업이 계속 되어도, 점심시간이 이어지고 오후 수업이 끝나 하교를 할 때까지도 그녀는 하루종일 머릿속을 돌아다니고 귓가에 울리는 그 사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처음에는 당황하여 멍해지다가 다음에는 영어 선생님에게 원망이 옮겨갔다. 이름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영어 선생님에게는 그것이 단순한 실수이겠지만 그녀에게는 다름아닌 상처였다. 영어 선생님에 대한 원망을 거쳐 결국은 늘 그렇듯이 문제 발생의 근원이 된 부모를 떠올렸다. 그녀의 부모가 잘 씻겨주지 않아서 생겨버린 뾰루지가 완전히 곪아 터져 누런 고름이 흘러 나올 때 아픈 것은, 그녀의 부모가 아니라 바로 그녀였다. 억울한 마음에 코끝이 싸해지더니 금세 눈에 눈물이 고였다. 같은 반 아이들에게 그 일로 눈물을 보이는 것이 부끄럽고 자존심이 상해서 눈을 깜박거리며 눈물을 말리다가, 그런 자신의 모습이 처량해 그녀는 더 커다란 눈물 방울을 떨구고 말았다.
집에 돌아온 그녀는 마침 집에서 TV를 보고 있던 어머니를 발견하자마자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그녀의 어머니는 깜짝 놀라 소파에 눕듯이 기대어 있던 상체를 들어올리며 무슨 일이냐고 그녀를 다그쳤다.
-당장 이름 바꿔줘!!
그녀의 어머니는 애지중지 아끼던 고양이가 갑자기 뾰족한 발톱을 내밀어 으르렁 거리며 뛰어 들 때에도 이것만큼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용조용 말 잘 듣고 다소곳 하던 그녀의 날뛰는 모습에 별수없이 회초리를 들었다. 그녀는 그날 어머니에게 흠씬 두둘겨 맞고 더 큰 상처를 받았다. 어머니가 차려주신 저녁식사를 거부하고 방 안으로 들어가 몸을 한껏 웅크리고 울먹이며 이불 속에 들어가 밤새 작은 일기장 안에 예쁜 이름들을 한가득 써넣으며 조금만 더 크면 꼭 이름을 바꾸리라 다짐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녀는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는데, 그것은 여자들의 본능적인 특성과 관계가 있었다. 여자는 같은 여자를 만났을 때 날카로운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상대방의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를 확인하고 자신보다 어떤 점이 우월한지, 또는 부족한지를 빠르게 파악한다. 그리고 자신보다 우월한 점이 부족한 점보다 많이 있다고 판단하면 내면에서 미간을 찌푸리며 경계를 늦추지 않고 그 반대일 경우에는 안심하며 상대방에게 동정심과 무관하지 않은 친절을 베푼다. 이것은 남자친구 앞에 자신보다 예쁜 친구는 절대 데려가지 않는다는 통설과도 연관되는 이야기이다. 그녀의 친구들 또한 여자의 본성대로 움직였다. 이름에서 우월함을 판단한 그녀의 친구들은 그녀를 무시하는 듯한 말투로 놀려대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녀는 자신들에게 꼭 필요한 좋은 친구라는 것을 강조하고 아껴주었다. 또한 해괴한 별명을 지어 그녀를 놀려도 그닥 서운해하지 않고 장난으로 넘기는 그녀의 마음씨가 곱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녀도 그런 친구들의 마음을 고맙게 받아들여 우정을 키워나갔고 친구들의 인기를 유지했다.
물건을 사면 돈을 내야하는 명확한 관계가 아닐지라도 세상사에는 무엇이든지 그 반대급부로서 작용하는 것들이 있다. 시간을 열심히 소진했을 때 만들어지는 많은 추억과 기억들과 같은 맥락이다. 그녀의 이름 역시 배은망덕하게도 주인의 심사를 여러모로 괴롭혔지만 어떠한 면에서는 오히려 정신적 성장에 일조를 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줄곧 친구들의 놀림을 받은 그녀는 어느 순간 그것이 조금씩 익숙해지고 나중에는 화를 내야 할 상황에서도 무감각해져서 감정에 아무런 자극 없이 넘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이름에 대해 놀리는 것에만 국한 되는 것은 아니었는데, 간혹 그녀의 실수나 잘못으로 인해 남에게 질타를 받았을 때, 놀림에 의연하게 구는 것처럼 넓은 이해심을 갖고 긍정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다. 이름을 가지고 놀리는 것이 거의 그녀가 태어난 시점부터 시작되어 타고난 성격이 원래 둥글둥글한지, 또는 진정 놀림에 익숙해져서 점차로 무던한 성격으로 성장해갔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녀는 또래의 같은 여자아이들에 비해 심할 정도로 어리숙하고 둔해보였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 아닌 것에 대한 놀림은 사실 어찌할 도리가 없고 그녀로서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사춘기를 한창 겪을 무렵, 그녀는 이름 같은 사소한 문제로 골머리를 ??는 것이 아까웠고 때문에 초연한 자세를 지켜나갔다.
고등학생이 된 그녀는 어느날 친구로부터 뜻밖의 말을 듣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것으로 그녀의 사고(思考)가 옮겨가는 계기를 맞았다. 그녀는 노란색 고운 털실로 벙어리 장갑을 뜬다던가, 손톱에 다홍빛 봉숭아 꽃물을 들여 첫눈이 오기를 기다린다던가, 또는 반짝반짝 빛나는 오묘한 색의 포장지를 자로 대고 반듯하게 잘라 학알을 접는 것 등을 좋아하는 지극히 여성스러운 소녀였는데 그날도 그녀는 표지에 영화 속 한장면이 그려진 자신의 소중한 일기장 한면에 붉게 물든 단풍잎을 조심조심 풀로 붙이고 독서 중에 발견한 아름다운 글귀를 예쁜 글씨체로 정성껏 써넣고 있었다. 쉬는 시간이면 그녀의 등을 쿡쿡 찔러대며 ‘야, 어두육미, 매점 가서 떡볶이 사먹자’ 라고 장난을 쳐대는 그녀의 밉지 않은 친구가 그녀의 머리를 잡아당기며 또 수작을 걸어왔다. 아랑곳 하지 않고 일기장에 이제는 색연필로 단풍잎 주변을 엷게 색칠하고 있는데 장난을 치던 친구는 그녀가 반응이 없자 조금 시무룩해져서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너는 이름하고 전혀 걸맞지 않게 센티멘탈한 구석이 있어.
그녀는 엉뚱하게도 이 말에 큰 감명을 받고 말았다. 전날 밤에 들은 라디오 디제이의 말을 떠올리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것은 자신에게 더 할 나위 없는 칭찬인 듯이 느껴졌다. 라디오의 디제이는 귀여운 외모의 여가수가 부른 헤비메탈 곡을 소개하며 원래 의외의 면이 있다는 것이 매력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귀여운 외모만 보면 그런 거친 목소리는 상상할 수 없는데 생각 지 못한 양면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것은 청순한 여자가 알고 보니 섹시한 몸매를 지니고 있을 때, 그런 여자에게 헤어나지 못하는 남자들과도 관계가 있는 것이고 또한, 격렬한 스포츠를 즐기는 근육남이 피아노를 그럴싸하게 연주할 때 반해버리는 여자들과도 관계가 있는 것이다. 그녀는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는 센티멘탈한 면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녀의 이름이 ‘소라’나 ‘혜린’ 이었다면 좀처럼 부각되지 않았을 것 같았다. 그녀는 이날,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이 만족스러웠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그녀 아버지의 사업은 급속도로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녀는 부모에게 대학의 ‘대’자도 입밖에 꺼내어 보지 못하고 아버지 친구의 소개로 회사에 입사했다. 대학에 가지 못한 것에 그녀는 그다지 아쉬움을 느끼지 않았는데, 그것은 전적으로 그녀의 이해심과 무던함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회사를 다닌 지 일주일이 되던 날, 자신의 이름이 부귀영화를 누릴 이름이라고 확신했던 그 거만한 작명가의 말이 떠오르자 머리카락이 모조리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어린시절 혼자 상상했던 ‘어두식 사장님’이나 ‘어두식 박사님’ 등이 너무나 어울리지 않아 어차피 그 작명가의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이럴 바에야 예쁜 이름을 짓고 마음 편하게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마음에 조금 억울하기까지 했다.
어쨌든, 친구가 그녀의 의외적 면모를 일깨워 준 후로 그녀의 센티멘탈 분위기 잡기는 계속 되었다. 이것은 점점 발전을 하여 때로 그녀가 일부러 센티멘탈한 척을 할 때도 있었다. 하루종일 비가 내리는 날에는 창 밖으로 손을 내밀어 빗방울을 받으며 차가운 감촉에 몸을 움찔움찔 떨어대기도 했고, 회사에서 상사의 꾸지람을 들으면 다른 여직원들처럼 삼삼오오 모여 재잘재잘 상사의 흉을 보거나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하지 않고 혼자 자리에 앉아 달콤한 초콜릿을 꺼내어 먹으며 마음을 다스렸다. 그러던 그녀에게 드디어 연애사건이 생겼다. 그 연애사건은 그야말로 그녀다운, 센티멘탈의 일색이었다.
그녀는 회사를 다니면서 회사 동료의 주선으로 두 번의 소개팅을 했다. 첫번째 남자는 길게 말할 것도 없이 그녀에게 단박에 차여버렸다. 통나무로 된 테이블과 의자가 운치 있던 명동의 한 까페에서 만난 그들은 처음 눈인사를 할 때만 해도 예감이 좋았다. 테이블 가운데에 조용히 타고있는 촛불은 은은하게 그 둘을 밝혀주었다. 그녀는 자리에 앉아 따뜻한 빛을 밝히는 촛불을 얌전히 바라보다가 호기심에 촛농에 손가락을 갖다 대고는 예상치 못한 뜨거운 온도에 놀라 어깨를 움츠리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의 동그란 눈에 비친 촛불은 더욱 반짝였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자 상대방 남자는 전혀 거리낌 없이 크게 웃어버렸다. 테이블 위에서 센티멘탈한 분위기를 자아내던 촛불은 그의 코와 입에서 갑자기 뿜어져 나온 바람에 가뭇없이 휙 꺼지고 말았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에 ‘아이 엠 어두식’ 사건과 맞먹을 만큼 모욕적인 일이 하나 더해진 것에 분노하여 잠시 머뭇거림도 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다음날 회사에 출근한 그녀는 소개팅 주선자에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이렇게 말했다.
-정말이지, 조금의 예의도, 배려도 없는 사람이야.
그녀는 우선 섬세한 내면세계를 갖고 있는 남자를 원했다. 그녀의 감성을 이해해줄 뿐만 아니라 그녀가 발견하지 못한 전혀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는 시각을 갖게 해주는 남자를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얼 그레이 홍차를 유독 좋아했다. 할일 없는 주말이면 푹신한 소파에 몸을 파묻고 뜨거운 얼 그레이를 한잔 만들어 차 안에서 피어오르는 김에 코를 갖다대며 얼 그레이 향을 깊게 들이마시고 오랫동안 눈을 감았다. 그녀의 얼 그레이 사랑은 추운 한 겨울에도 미니스커트만 고집하는 그녀의 옆집 여자와 비슷한 종류의 것이었는데, 폭설이 내린 후 한파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아침에 그 옆집 여자가 윤이 나는 가죽 미니 스커트를 신고 온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종종 걸음으로 그녀를 지나갔을 때 그녀는 나이 든 노인의 웃음과 같은 속 깊은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사실 그 옆집 여자의 미니스커트 사랑과 그녀의 얼 그레이 사랑이 별 다를 것 없는 것은, 홍찻잎은 조금 오래 우러났을 때 쓴 맛을 내는데, 그녀가 차를 반잔 정도 마신 후부터는 얼굴을 찌푸리고 의무감에 마지막 모금까지 차를 홀짝 댔으므로 마치 순수한 얼 그레이 사랑이 아닌 ‘얼 그레이를 사랑해야 해’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녀의 이상형이 섬세한 내면세계를 갖고 있는 남자라고 해도 조금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센티멘탈한 그녀는 그녀와 같이 센티멘탈한 남자를 사랑해야 한다고 스스로 결심한 것처럼 느껴진 것이다. 어쨌거나 친구들과 카페에서 얼 그레이를 마시며 그녀는 두 번째 소개팅에는 꼭 자신이 바라는 남자가 나타나 주기를 바란다고 말하고는 코를 컵 안에 갖다대고 살짝 눈을 감았다.
이윽고 두 번째 소개팅을 하게 된 그녀는 드디어 훨훨 날아 천국에 도착했다. 검지 손가락으로 코 밑을 문지르며 허술한 고시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그 남자의 모습은 그녀로 하여금 감탄사를 연발하게 만들었다. 또한 장미꽃으로 장식된 넓직한 테이블과 창 밖의 야경이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로 저녁식사 하기를 원했던 그녀였지만 맛있는 족발집이 있으니 같이 가자는 그 남자의 무뚝뚝한 말투는 값비싼 스테이크 보다 더욱 맛깔나는 것이었다. 그는 가장 중요한 고비도 잘 넘어갔다. 그녀가 발그스레 얼굴을 붉히며 자신의 이름을 말했을 때, 한쪽 입술을 약간 올리며 그녀의 눈을 똑바로 마주보고 해준 얘기는 그녀의 마음을 감동으로 전율케 했다.
-원래 이름하고 실제는 반대인 것 같아요. 이 족발은 이름과 상관없이 이렇게 맛있고, 또 두식씨도 이렇게 예쁘잖아요.
그녀는 그와 아직 초면이고 때문에 속내를 일일이 알 수 없어 그의 말이 진심인지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이미 버스를 타고 난 후에 버스를 탈까 말까를 고민하는 것처럼 소용없는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를 만나고 그녀에게는 경험해보지 않은 새로운 기쁨의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녀는 때로 그를 만나기 전의 인생과 그를 만난 후의 인생으로 자신의 삶을 이등분 해놓고 그를 만나기 전의 인생은 너무나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불행한 인생이라고 단정 지었다. 그리고 그를 만난 후에 이런 행복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이제까지 그가 없이 살아온 삶의 슬픔을 보상 받는 것 같았다. 어느 날인가는 그 둘이 전혀 센티멘탈하지 않은 삼겹살에 소주를 다정히 나눠 먹고 가까운 공원에 들렀는데, 그의 손을 꼭 잡은 그녀는 완전히 감상에 젖어버려 혹시나 이 손을 놓아야 할 때가 오면 어떻게 하나 뜬금없는 상상을 하기 시작했고, 그것을 취기에 절제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똑 떨어지고 말았다. 그는 그런 그녀의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매만지다가 자연스럽게 점점 손을 내려 그녀의 어깨에 얹고는 감미로운 유행가를 불러주었다. 그의 노랫소리는 객관적으로 전혀 음정이 맞지 않았으나 그녀의 마음속에서 품고 있는 애정, 환상에 계속해서 결합해 나갔다. 그것은 남들에게서는 인식되지 않는 것, 외부의 무엇하고도 소통되지 않는 그 무엇이었다. 그녀는 이제 천국보다 더 좋은 곳, 그 곳을 날아다녔다. 남자의 노랫소리와 촉촉히 젖어있는 그녀의 눈빛이 유치하고 지나친 감상의 산물이었다고 하더라도, 이 순간 두 사람의 모습은 세상 어느 누구보다 사랑스러워보였다.
한편, 먹음직스러운 호떡 안의 달콤한 꿀이 새어나오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한 입 배어물 때 예상치 못한 틈새에서 꿀이 찍 흘러나와 얼굴을 찌푸리며 꿀이 묻은 끈적한 손가락을 할 수 없이 빨아먹어야 하는 것처럼, 세상만사라는 것이 하나의 문제가 숨을 죽이고 잠자코 있으면 또 다른 문제가 빼꼼이 고개를 내밀고 슬금슬금 기어 나오는 법이다. 그녀의 이름에서 비롯된 그 간의 인생 역경들을 드라마틱한 연애로 하나 둘 잊어가고 행복한 시점에 도달할 때쯤, 호사다마라는 말과 같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그의 말처럼 그는 허술하기는 했지만 고시생인 것은 틀림 없었는데, 고시가 점점 다가오고 그가 한창 예민해져 있을 무렵 그는 그녀에게 문제를 안겨주고 숨어버렸다. 그가 검지 손가락으로 코 밑을 문지르며 시험이 끝날 때까지 잠시 시간을 갖고 떨어져 지내자고 말했을 때, 그녀의 귀로 통과한 것은 앞부분을 몽땅 잘라먹고 ‘떨어져 지내자.’ 뿐이었다. 그녀는 첫번째 소개팅에서 난데없이 촛불이 휙 꺼졌을 때처럼 정신이 멍해졌지만 그의 말을 존중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는 않았다. 게다가 자신의 무던하고 이해심 많은 성격을 보면 그것쯤은 그리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그와 헤어지고 집으로 오는 내내 그녀는 사랑하는 남자에게 방해가 되는 여자는 되지 말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나 주책없이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고 눈을 깜박이며 눈물을 말리다가 결국 커다란 눈물방울을 똑 떨어뜨리고 코를 훌쩍거렸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그 일이 있고 난 후 그녀는 나사가 하나 풀린 사람처럼 매사에 집중하지 못하고 내내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그가 ‘이제 그만 헤어지자’라던가 ‘너를 사랑하지 않아’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한 것도 아니고 앞으로 더 나은 관계를 위해 현명한 말을 한 것인데 그녀는 마치 바닷가에서 바바리 코트를 입고 서성이는 실연당한 여인과 같은 모습이었던 것이다. 어느날 그녀가 친구들을 만나 예의 얼그레이가 담긴 찻잔에 코를 박고 입을 삐죽 내밀고 있자니 친구들은 그녀를 위로해주기도 했고 보듬어 주다가 다그치기도 했지만 그녀는 수명이 다한 형광등 불빛처럼 희미하게 겨우겨우 숨을 쉬고 있는 듯 했다. 그녀 또한 자신의 비논리적인 이러한 행동들을 인식하고 있어서 크게 기지개를 켜고 힘을 내어보다가도 슬픈 멜로디의 노래가 흘러나오면 가사에 귀 기울이고 마치 그 가사 내용을 자기 일인냥 받아들여 이내 기운이 빠지는 것을 스스로 어찌할 수 없었다.
그와 떨어져 지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자신의 하릴없는 일과가 마음에 들지 않아 모처럼 회사 동료와 극장에서 영화를 보기로 했는데 이날, 문제가 또 다시 꾸역꾸역 알을 낳아 새끼를 치고 말았다. 하필이면 영화가 전형적인 멜로 영화인 것부터 문제였다. 영화 초반에 두 남녀의 지극히 아름다운 사랑을 보여주다가 중반쯤 되었을 때 여자 주인공이 시한부 인 것이 밝혀지는데 남자 주인공은 끝까지 정성어린 희생과 사랑을 보여주고 영화는 끝이 났다. 처음 10분을 보면 전체 줄거리가 손에 잡히는 이 상투적인 영화에 그녀는 꺽꺽 소리내며 울었고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다가 뒤집어 코를 풀었다. 그녀는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 속 주인공에 그들을 집어넣고 스스로 연기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가 시한부이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왼쪽 눈에서 눈물이 주욱, 자신은 그를 위해 남자 주인공처럼 희생할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다가 오른쪽 눈에서 눈물이 주욱, 그러나 안타깝게도 결국 사랑하는 그들이 헤어지게 되면 어쩌나 생각하다가 콧물까지 흘러내렸다. 추락하는 그녀의 감정은 멈출 줄을 몰랐다. 그녀의 내부에서 살고 있는 모든 지적 세포들은 작동을 멈추고 이성의 무정부 상태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녀는 눈물을 닦아내다가 잠시 그녀의 감상적인 상상을 깨닫기는 했지만, 훅 불면 사라져 공중에 떠다니다가 금세 다시 쌓이고 마는 먼지처럼 그녀의 상상의 활기는 막을 수가 없었다. 잠시 후 그녀는 영화가 끝나 밖으로 나왔을 때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회사 동료에게 비장한 눈빛으로 인사를 하고 바로 택시를 잡아 탔다.
그의 집 앞에 도착한 그녀는 무슨 까닭인지 약간 머뭇거렸다. 아마도 그의 말 중 ‘떨어져 지내자.’ 앞의 ‘잠시 시간을 갖고’가 떠올랐는지도 모른다. 감상으로 가득 차 버린 마음과 현실적인 이성이 조금씩 삐죽삐죽 솟아오르는 두뇌가 온통 실타래처럼 엉켜 복잡해졌다. 스스로 걷잡을 수 없는 이러한 감정들을 견디다 못한 그녀는 그의 집 앞 계단에 쪼그리고 앉았고 극장에서부터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물들을 연신 닦아내었다. 때마침 공부를 하다가 머리를 식히기 위해 밖으로 나온 그는 계단에 앉아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불행하게도 그는 며칠동안 계속된 스파르타식 학습 때문에 모든 오감과 감정이 막혀있었다. 그는 그녀의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매만지고 그녀의 귓가에 낭만적인 노래를 불러주는 대신에 그녀에게서 휙 고개를 돌려버렸다.
다음날이 되고, 또 다음날이 되고 다행이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다. 거의 한 달 동안 그와 이별한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근무 중에도 걸핏하면 눈물을 쏟아내던 그녀 또한 시간과 비례해서 조금씩 살아났다. 그 동안 그녀는 그에게 전화를 하고 싶은데 용기가 나지 않아 소주를 두 잔쯤 마시고 전화를 걸어 혀 꼬부라진 발음으로 애원하기도 했고, 길거리를 정신없이 걷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인지 아니면 일부러 그랬는지, 그의 집 앞에까지 도착해 그대로 발걸음을 돌리기도 했다. 언젠가는 보다 못한 그녀의 친구가 ‘너는 이별도 참 너답게 하는구나.’라고 말하고 들큰한 침냄새 섞인 한숨을 그녀를 향해 길게 내뿜기도 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녀는 한 순간에 돌연 예전모습을 되찾았다. 공원 한 켠에 모여있던 수십 마리의 비둘기 떼가 갑작스럽게 던져진 돌멩이 하나에 푸드덕 거리며 눈 깜짝할 사이에 모두 날아가 버리는 것처럼 그녀 또한 한 가지 생각이 샘솟자마자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치던 모든 슬픔과 괴로움이 가셔버린 것이다. 그것은 그의 성격, 그의 마음가짐, 그녀에 대한 그의 사랑, 그의 습관, 그의 말투, 그의 외모 등등 온통 그를 생각하던 그녀가 자신에 대한 생각으로 살짝 방향을 틀었던 것 뿐인데 놀랍게도 그녀는 최고의 효과를 얻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벌어진 이 사건이 어쩌면 한층 성숙한 센티멘탈을 위한 하나의 필연적 과정이라고 생각했고 또 다른 로맨틱한 운명적인 사랑을 위해서는 이별을 마땅히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그녀의 심적 치유에 상당한 일조를 하였고, 그녀는 다시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
어느 겨울 밤, 무릎 위에 붉은색 담요를 감싸고 소파에 파묻히듯이 앉아 유명한 사진작가의 화보집을 뒤적이던 그녀는 아주 감미로운 사진을 한 장 발견했다. 사진 속의 새파란 바닷물과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두 색이 매우 비슷해 그 경계마저 흐릿하게 하고 있었다. 취한 듯이 사진을 바라보다가 가위를 들고 사진을 오려 그녀의 일기장 첫 장에 붙이고는 한 마디를 써넣었다. ‘두식이의 꿈’. 그녀는 잠시 사진 속의 풍경에 비해 자신의 이름이 동떨어진 느낌이었으나 다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름과 상관없이 자신은 이렇게 예쁜데 무엇이 문제일까. 그 순간, 조금 열어놓은 창문 틈으로 찬바람이 들어와 시선을 돌리자 우연처럼 새하얀 눈이 내리기 시작했는데 그 눈의 배경은 어느새 사진 속의 바닷가 한 가운데로 바뀌고 허공을 떠도는 그녀의 검은 눈동자가 푸르게 바뀌어 그 안에 흰 눈발이 날렸다. 소파 옆의 테이블 위에서 오래 되어 식고 있는 얼그레이를 무의식적으로 한 모금 마시고 그 씁쓸한 맛에 이맛살을 찌푸렸지만 그녀는 이미 따뜻하고 풍요로운 세계 속에 있었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표현도 재미있고 따뜻한 글인 것 같습니다. 다만 전체적으로 소품인 것 같고 주제가 무엇인지도 궁금해지네요.
복사가 되지 않아서 못 읽겠군요.
복사금지 시켜놓은 글은 아예 읽어보지도 않는데..... 풀러놓으셨네요. ^^
첫 문단에서 작가가 이야기 하려는 바가 너무 단정적으로 드러나 있는 것 같군요. 드러내기와 숨기기가 적당히 조화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첫 문단의 명제는 작가가 풀어 놓은 이야기를 통해 독자가 내려야 할 결론이라 생각됩니다. 첫 문단이 치열할 정도로 심각한데 두식이가 자아를 발견해 나가는 과정은 비약(한순간에 돌연 예전 모습을 되찾았다)과 우연(아주 감미로운 사진 한 장 발견했다)이라는 요소로 희석되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잘 읽었습니다.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힘이 느껴집니다.
사소한거 두가지.... 1. 영어선생이 첫학기 첫수업시간에 아이들을 호명하며 대답을 하게 할 때는 지극히 일반적으로는 출석부를 가지고 대조하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아이엠어두식 이란 말도 정관사 어가 아닌 어씨 성이라고 이미 알고 있는 것이 맞다고 봐요. 아니면 선생이 실수로 출석부를 놓고 왔다는 상황을 만들어주든지... 2. 마찬가지로 첫 소개팅을 나갔을 때도 대부분은 상대방의 이름정도는 알고 나가지 않을까요? 그것이 아니라 해도 주인공이 이름 컴플랙스가 있다는 것을 주선자가 모를리 없으니 남자에게 미리 고지를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고 봐요. 이 역시 이름을 모르고 나갈만한 상황 설정을 미리 해주든지....
저역시 처음에 비해서 뒤로 갈수록 이야기가 느슨해지고 지지부진해진다는 인상입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시작은 이름때문이기는 하지만 주인공의 존재감, 사고방식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가 뒤로 갈수록 연애담으로 치우쳐버리더군요. 연애담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 글의 구성으로 볼 때는 다소 생뚱맞은 감이 없지 않아요. 결말부분도 제가 읽기에는 좀 흐지부지보인다고 할까 주제의식이 너무 불분명하게 보입니다.
하하,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소설의 아웃트라인이 다 잡혀있는 것 같습니다. 간간히 직접적인 작가의 시선이 조금 거슬렸으나 (예; 3p 시간을 열심히 소진했을 때 만들어지는 많은 추억과 기억들과 같은 맥락이다. 등) 그저 저의 시각이구요. 두식씨의 센티맨탈 재밌는데요, 여자들의 감상을 잘 포착하신거 같아요. 동질감을 끌어내내요. 이 점, 높이 사요. 잘 읽었습니다
표현이 재밌어서, 구성의 단조로움을 잠식시키는 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