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9주간 수요일 2007/10/24
말씀의 초대
“죄가 여러분의 죽을 몸을 지배하여 여러분이 그 욕망에 순종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바오로 사도의 당부다. 그러려면 은총 속에 살아야 한다. 기도와 선행과 성사 생활에 충실한 삶이어야 한다(제1독서). 충실한 종과 불충한 종의 차이점은 주인이 없을 때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충실한 종은 평소와 똑같이 일하지만, 불충한 종은 그렇지 않다. 일이 술술 풀리고 바라는 대로 될 때에는 누구나 감사한다. 그러나 역경과 시련을 만나면 믿음을 불평하고 원망한다. 불충한 종의 모습이다(복음). 복음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신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39-4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9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40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41 베드로가, “주님, 이 비유를 저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하고 물었다. 42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주인이 자기 집 종들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는 어떻게 하는 사람이겠느냐? 43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44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45 그러나 만일 그 종이 마음속으로 ‘주인이 늦게 오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하인들과 하녀들을 때리고 또 먹고 마시며 술에 취하기 시작하면, 46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그를 처단하여 불충실한 자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할 것이다. 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그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 48 그러나 주인의 뜻을 모르고서 매 맞을 짓을 한 종은 적게 맞을 것이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 오늘의 묵상
◆우리 집 육남매 중에 제일 고생하며 자란 사람은 둘째 오빠다. 둘째 오빠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집안 형편이 어려워 오빠는 남들 다 가는 중학교에 가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날마다 오빠를 데리고 다니면서 담배꽁초를 한 봉지씩 주워다가 그걸로 뭔가를 만드셨다. 오빠는 친구들이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갈 때 담배꽁초를 줍는 것이 몹시 부끄럽고 싫었다고 한다. 오빠는 검정고시로 고등학교에 입학을 했지만 그때도 집안 형편이 나아지지 않아 자퇴를 하고 산으로 들어갔다. 그 후 다시 검정고시로 대학에 입학하여 경제학을 전공했다.
어머니 아버지도 이젠 여든이 훨씬 넘은 노인이시다. 육남매 중에서 둘째 오빠가 부모님을 제일 열심히 챙기고 자상하게 돌봐드린다. 두 분이 드실 사골과 김과 명란젓이 떨어지지 않게 미리 챙겨드린다. 아버지가 편찮으실 때도 둘째 오빠가 제일 먼저 달려간다. 그래서 무슨 일만 생기면 아버지도 둘째 오빠만 찾는다. 자라면서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못했고, 지금 살림도 넉넉하지 않은 편인데 부모님께 잘하는 오빠가 고맙고 또 미안하기도 하다. 평소 말이 없는 오빠는 자신이 힘든 것도 표현하지 않기에 그렇게 힘든 시절을 보냈는지 몰랐다. 이 나이가 되어서야 오빠를 다시 보게 된다. 그런데 명절 때 모이면 돈이 없다고 늘 투덜거리는 형제들이 있다. 욕심을 내면 끝이 없다. 가진 것이 아무리 많아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늘 허전하고 다른 사람을 돕기는커녕 받으려고만 한다.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가 주인의 칭찬을 받듯이 둘째 오빠도 하늘나라를 차지하게 되리라고 믿는다.
노미화(양양 조산초등학교)
어느 날 장례미사를 마치고 마당에 서성이고 있던 할머니들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하이고, 그 할매 참 복도 많데이. 우째 그리 시간을 딱 맞차아서 대세를 받고 바리 그리 천당에 갔실꼬?"
돌아가신 분이 정말 천당에 가셨는지 못 가셨는지는 모르지만, 하느님의 자녀로 거듭 나기 위한 세례를 받고 바로 돌아가셨으니, 적어도 영원한 멸망의 길에서는 벗어난 셈이라 여겨집니다. 하지만 그렇게 사신 분께서 정말 복이 많다는 생각은 들지 않기에 몇 가지 생각을 해 보고자 합니다. 대세란 천주교회의 전통적 용어로 죽음을 앞둔 위급한 상황에 처한 이가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자 하는 뜻을 지녔을 때에 우선적으로 베푸는 세례를 지칭하며 오늘날에는 비상세례라고 합니다. 이야기에 등장한 할머니는 평소에 무신론을 부르짖던 사람이었습니다. 돈도 있고 고등교육을 받았다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있었기에 답답할 것이 없다는 자세였습니다. 살아가면서 자기를 믿어야지 누구를 믿느냐면서 종교를 가진 사람을 비웃기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세로 굳어져갔고, 심지어 가난한 사람은 자기 게으른 탓으로 그리 된 것이니 마음 쓸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내어놓기도 했습니다. 자연히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외톨이가 되어 구두쇠에 고집쟁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도도하기 짝이 없던 할머니도 나이 들어 병들기 시작했습니다. 외롭게 투병하는 할머니를 불쌍하게 여긴 이웃 할머니들이 찾아가서 말벗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차츰 신앙을 권유하여 마음을 바꾸기 시작하였습니다만 하필 그 때에 그만 세상을 하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할머니에 대한 뒷얘기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뒤늦게나마 신앙을 받아들였으니 다행이라는 이야기도 성립되겠지만, 실상으론 살아생전에는 신앙생활의 지침에 거리낄 것 없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자기 멋대로 다 해가면서 살다가 죽기 직전에 세례를 받아 모든 죄의 사함을 받고 천당에 가게 생겼으니 그야말로 요행이요 복이 터진 것 아니냐는 뜻이기도 합니다.
<세상이 그나마 견딜만한 것은>
일본의 한 생태학자가 일개미의 생태에 대해 세밀히 연구한 결과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한 가지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개미 하면 근면한 동물의 상징으로 우리 머릿속에 인식되어 있지만, 사실 모든 개미들이 다 근면하지 않다고 합니다. 멀리서 바라보면 수많은 개미들이 다들 난리입니다. 뭔가 저마다 하나씩 뭔가 입에 물고 줄지어 다닙니다. 식량을 저장하기도 하고, 집을 짓기도 하고, 덩치가 큰 곤충과 싸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보다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바라보면 상황은 전혀 뜻밖입니다. 어떤 녀석들은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기는 하는데 개미공동체를 위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일은 하나도 하지 않고 폼만 잡고 있습니다. 뒷짐 지고 유유히 산책하는 녀석들도 있습니다. 어떤 녀석들은 얄밉게도 하루 온종일 단 한 번도 개미집밖으로 나와 보지도 않고 안에서 빈둥거리기도 한답니다. 단 20%정도의 개미만이 죽을힘을 다해 개미공동체 그 많은 식솔들을 위해 전력투구를 한다는군요. 이탈리아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는 인간 사회나 조직, 공동체 생활 안에서도 이런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는데, 이를 일컬어 20:80법칙이라고 합니다. 이런 현상은 억지로, 인위적으로 형성되기보다는 자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쩔 수 없이 수용해야할 삶의 논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공동체 생활을 해나가는데 있어 어느 정도 참조할 필요도 있겠습니다. 사람마다 주어진 몫이 다릅니다. 사람마다 타고난 그릇도 다릅니다. 역량도 다릅니다. 주님께서는 공평하신 분이기도 하지만, 때로 엄청 불공평하십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으시면서 어떤 사람에게는 엄청난 것을 요구하십니다. 이런 맥락에서 주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의문을 가집니다. “나는 이렇게 꼭두새벽부터 밤늦도록 하루 온 종일 뼈 빠지게 일만 하는데, 하루 온종일 빈둥거리는 저 인간은 도대체 뭐냐?” 은근히 심기가 뒤틀립니다. 왠지 나만 손해 보는 것 같습니다. 억울합니다. 가서 따지고 싶습니다. 일 좀 하라고 소리 지르고도 싶습니다. 절대로 그럴 필요 없습니다. 이웃을 너무 뚫어지게 쳐다보지 마십시오. 결국 남는 것은 상처요 실망뿐입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은 그에게 맡기고, 하느님께 맡기고, 그저 내게 주어진 몫만 바라보십시오. 중요한 것은 우리 주님께서 시킬만하니 시키시는 것입니다. 감당할만하니 짐을 지워주시는 것입니다. 때로 어쩔 수 없습니다. 언젠가 병들고 연로해져서 아무것도 못하게 되는 날, 꼼짝없이 천장만 바라보고 누워있게 될 그날, 아무도 우리를 불러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일도 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것을 생각한다면 이웃들의 지나친 요구 앞에서도 ‘이렇게라도 나를 필요로 해서 불러주니 얼마나 고마운 가’하는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 한 인간을 생산능력, 필요성만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위험한 일은 다시 또 없습니다. 이 세상 살아가다보면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으로 인해 삶의 현장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예기치 않은 병고로,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사고로, 어쩔 수 없이 맞이해야 하는 노화로 인해 삶의 일선에서 물러서야 합니다. 그 누군가는 어쩔 수 없이 그들의 몫까지 짊어지고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그나마 견딜만한 것은 아직도 그 누군가의 짐을 묵묵히 지고 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서로를 원망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서로의 짐을 기꺼이 나눠지고 가는 것, 그것이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바라시는 바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어제는 저의 수준을 약간 높이는 시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피아노 연주회에 다녀왔거든요. 물론 저는 클래식에는 완전히 문외한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연주회를 다녀온 것은 본당 청년 중 한 명이 음악대학 졸업 연주회를 한다고 해서 본당의 청년들과 함께 참석한 것입니다.
4년 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보이는 시간, 그러다보니 몸짓만 봐도 온갖 정성을 다 쏟아서 연주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그래서 어떤 내용을 담고 있고 어떤 감정을 표현하는지 음악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정성을 다하는 그 모습에 저 역시도 열심히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제 체력이 안 좋은지 아니면 연주 소리가 너무나 편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모르게 잠들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깜짝 놀라서 잠에서 깨어난 저는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자세를 추슬러 주위를 보았어요. 그런데 저 같은 사람이 꽤 많더군요. 즉,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학생을 제대로 바라보고, 그 연주 소리를 제대로 듣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입니다.
저처럼 졸거나, 또 휴대전화로 계속해서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 게임을 하는 사람, 책을 보는 사람, 글을 쓰고 있는 사람 등등……. 거의 모든 사람이 딴 짓만 하고 있습니다. 자신과 관련된 연주자나 나와야 조금 관심을 갖고 듣습니다. 그래서 한 명의 연주자의 연주가 끝나면 우르르 밖으로 나가는 이상한 현상까지도 볼 수 있었지요.
피아노를 연주하는 연주자는 모든 관객들이 잘 들어주기를 원하겠지요. 하지만 그 중에서 제대로 듣는 사람은 정말로 몇 안 되는 것 같습니다. 바로 그 순간 이러한 생각이 듭니다. 지금 연주자와 관객의 모습이 주님과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당신의 메시지를 계속해서 남기십니다. 그 메시지를 보고서 당신의 뜻대로 살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들은 계속 딴 짓 하기에 바쁩니다. 이 세상의 것들에 대한 지나친 관심만 가지고 있고, 주님께 대한 관심은 겉으로만 조금 보일 뿐 정작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습니다. 이 모습에 주님께서는 충실한 종이라고 하면서 과연 우리를 받아주실까요?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오신다는 주님인데 우리들은 얼마나 잘 준비하고 있었을까요? 무조건 주님의 자비에만 맡기기에는 우리들의 노력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물론 우리 인간의 나약함과 부족함으로 인해서 우리들의 노력은 항상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전혀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아직도 시간이 많다고요?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들을 생각해보세요. 시간이 아주 천천히 지나갔나요? 아마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는데, 그 10년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빨리 지나갑니까? 이렇게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이 아직도 내게 많다고 생각되나요?
가장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말하지요. 지금 당장 주님께서 말씀을 듣고, 주님의 뜻대로 행동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언제 오실지 모를 주님을 준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을 다시 읽고 오늘 하루를 잘 살도록 합시다.
킹콩, 꿈을 펼치다(‘행복한 동행’ 중에서)
세계에서 가장 털이 많은 사람은 누구일까. 중국에 사는 위쩐환은 털이 많은 것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특별한 사람이다. 그는 온몸에 털이 뒤덮인 채로 태어났다. 무려 몸 전체의 96.8%가 털로 덮여 있다. 가수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는 공연 도중 한창 흥이 오르면 윗옷을 벗어 던진다. 놀란 관객들은 그의 몸을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이 없다.
어린 시절부터 그의 삶은 남들과 다른 외모 때문에 순탄치 않았다. 태어나자마자 동네 사람들의 수군거림의 대상이 되었고 국가에서는 그를 데려다가 검사를 하기도 했다. 그의 아버지는 사람들이 자신의 아들을 놀려 대자 낯선 곳으로 이사를 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특별한 외모를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제가 다른 사람과 다르게 생겼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호기심을 갖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아마 저를 두고 평생 웃어 댈 겁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예요.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을 창피하게 느낀다면 평생 고개를 숙이고 살아가야 할 테죠. 하지만 전 사람들이 저를 쳐다보는 것이 기뻐요. 많은 사람들에게 절 알릴 수 있잖아요.”
그는 스스로를 ‘킹콩’이라고 소개하며 사람들 앞에 당당하게 나선다. 얼마 전부터 사귄 여자 친구와 더욱 행복한 날을 보내고 있는 그의 다음 목표는 2008년 북경 올림픽 성화 봉송 주자로 참여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 속에 갇혀 자책만 하고 살았다면 지금의 그는 없었을 것이다. 자기만의 눈으로 세상에 당당하게 나선 용기가 그에게 자유로운 삶을 살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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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당신의 메시지를 계속해서 남기십니다. 그 메시지를 보고서 당신의 뜻대로 살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