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225(주여) ◈ 행 21: 27-36 주님의 주권안에서 고난을 받아들입니다.
◈ 시작기도: 주님, 오늘 하루도 분초마다 붙잡아 주십시오. 하나님의 생명의 크고 놀라운 사랑과 영원을 사는 삶으로 인도하여 주십시오. 부정한 저의 마음과 왜곡된 가치관, 본질상 진노의 자녀된 마음을 주의 보혈로 씻어 정결하게 하시고, 어린양의 피로 새마음과 새영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들의 피를 힘입어 아버지께 나아갑니다. 은혜가 왕노릇하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옵소서. 사모합니다. 그 생명을 알고, 누리고 맛보며, 그 생명안에 살며, 그 생명이 흘러가 사망을 삼키며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길 원합니다. 그러나 주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며,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죄만 더할 뿐입니다. 불쌍히 여기시고, 이 질그릇에 보배되신 주님, 부활생명으로 담기시고 사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하나님의 현존인 말씀앞에 서게 하시며, 아들안으로 이끄시는 성령님의 조명
* 바울일행은 예루살렘에서 야고보와 장로들에게 이방에서 있었던 사역을 보고하고 듣는 이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 그러나 예루살렘교회의 율법에 열심인자들이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모세를 배반하고 할례하지 말라고 하는 소문을 듣고 오해하고 있어, 야고보는 서원을 행한자들을 데리고 결례를 하라고 한다.
- 바울은 헛된 소문을 믿는 연약한 자들에게 화내거나 설명하겠다고 하지 않고, 연약한 자들을 용납하여 야고보의 제안을 받아들여 자기 돈을 드려 성전에 결례를 행하러 갔다.
1. 7일간의 기간이 차서 결례를 다 마칠 즈음에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본다.
- 이들은 아시아에서 바울을 핍박했던 사람들일 것이다.
- 그런데, 마침 바울을 성전에서 본 것이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모든 무리를 충동하였다.
2. 바울을 잡고는 성전에서 외쳤다.
1) 이 사람은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 곳 성전을 비방하던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렵혔다는 것이다.
2) 그런데 이것은 오해였다. 그들이 전에 헬라인인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시내에 있음을 보았는데, 바울이 그를 성전에 데리고 간 줄로 생각한 것이다.
3) 그러나 사람들은 사실 확인을 하지 않고, 온 성이 소동하여 백성이 달려와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어내고 문들이 곧 닫혔다.
4) 그리고는 바울을 죽이려고 하였다. 성전모독은 그들에겐 충분히 분노할 만한 일이었다.
3. 그러나 사실 확인을 하지 않고, 정식으로 재판하지 않고 죽이려함은 불법이며, 사단에 속해있음이다.
1) 바울은 오해를 풀기위해 결례를 행하였는데, 이것이 오해가 되어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2) 연약한 자를 용납하기 위한 넉넉한 마음으로 결례를 행했는데, 이것이 오히려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 나는 이렇게 되면, 처음부터 나를 힘들게 한 연약한 자들을 비방하게 되고 탓하나 바울은 잠잠하다
3) 바울의 위험은 헛소문을 받아들인 연약한 성도들과, 착각으로 말하는 것을 믿은 사람들의 오해로 인함이다. 교회안과 교회밖의 오해로 인하여 바울은 잡히고, 매를 맞는다.
4) 화합하고 화목하기 위한 바울의 섬김은 오히려 분노와 살기를 만난다.
4. 바울을 치고 있던 사람들은 천부장과 군인들을 보고 바울 치기를 그친다.
1) 천부장은 쇠사슬에 결박하여 바울을 영내로 데려가고, 백성은 바울을 없이하자고 외치며 따라갔다.
5. 바울은 근거없는 비난, 연약함을 수용하려고 했는데 더욱 오해받는 상황, 단순한 비난을 넘어 치고 죽이려 하는 무자비한 죄성을 만난다.
1)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탁월했던 바울에게는 힘든 일일 것이다.
2) 그러나 바울은 그 누구도 탓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다.
3) 성령이 예루살렘에서 결박되고 이방인에게 넘기운다고 한 말씀은 이렇게 성취된다.
4) 가장 억울하고, 가장 위험한 상황이지만 하나님의 주권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하나님은 다 아셨다.
- 하나님의 주권이라면, 하나님이 하신 것인가? 아니다. 이것은 죄인들과 어리석은 자들의 악행이다.
5)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악을 허용하심으로 바울이 그리스도의 길을 가게 한다.
- 예수님도 근거없는 비난, 그것도 가장 억울한 누명과 재판으로 채찍질 당하고 십자가에 달리셨다.
6) 예수님의 십자가는 부활이 되어 우리의 구원이 되었고, 바울의 고난은 로마에 복음을 전하는 길이 된다.
6. 이 모든 것을 성령에 매여 간 여정에서 일어난 것이 우리에게는 당황스럽다.
1) 그러나 신앙의 본질은 자기부인과 십자가를 지는 것 아닌가? 좁은길을 가는 것 아닌가?
2) 습관적으로 넓은길, 형통한 길에 익숙한 나의 마음과 신앙관이 뿌리 깊이 있다.
3) 말로는 십자가를 외치지만, 마음의 신앙관은 복과 형통이다.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4) 자기부인과 십자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함을 신앙, 성령의 인도로 받아들이는 믿음을 주소서.
◈ 나의 묵상: 비참한 자를 십자가로 부르시며, 아들안에서 생명누리게 하시는 아버지의 사랑
바울이 겪는 고난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류의 고난이다.
바울이 전도여행을 하면서 겪는 가난과 위험과 어려움은 싫지만 어느정도는 각오하고, 때론 감당도 했고, 주님의 은혜로 감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해로 인한 고난, 아무 근거없는 비난, 그것도 오히려 오해를 해소하려고 시간과 돈을 들였는데 더욱 오해를 받으면 견디지 못한다. 교회안에서 믿는다 하면서 헛소문을 믿고 오해하는 것도 견디기 힘들고, 성전에 들어와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경외한다는 자들이 사실 확인도 없이 비방하고 때리고 죽이려 하는 것은 더욱 견디지 못한다.
차라리 불신자고, 차라리 성전밖 무도한 해적이나 깡패하면 그럴 수 있다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 의한 오해와 예수님을 모른다해도 적어도 성전에 들어와서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하는 자들이 행하는 불손하고 악한 행태를 어찌 견디는가? 세상에 속한 사람들도 재판을 거치고, 사실 확인을 하는데, 그들보다 더 악하고 어리석지 않은가? 마음도 좁고, 생각도 어리석고 성품도 패역하다.
그러나 이것을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더 아프다. 교회안에 있는 이들의 악함과 먼 곳에서 성전을 찾아온 이들의 마음은 너무 부패하고, 그들의 행동은 악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용납한다. 그리고 인내하며 기다리며, 돌아오는 길을 여신다.
예수님은 그들의 죄를 용성하셨고, 스데반도 그랬다. 그 뿐인가? 손양원 목사님도 문준경 전도사님도...수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그 길을 걸었다. 예수님이 그 안에 사는 자들은 예수님의 길을 갔다. 그들의 성품과 결단이 아니라 그 안에서 예수님이 그렇게 살게 하신 것이다. 예수님만이 갈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작은 오해와 비난에도 잠 못 이루며, 어떻게든 해명을 해야하고, 설득을 해서 상대방의 잘못을 인정받아야 하는 자다. 믿는 자도 얼마든지 악할 수 있는데, 세상 사람보다 더 나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묶여 용납을 못하는 자다. 이것은 공의가 아니라 교만이며 어리석음이다. 공의와 옳음을 가장한 악이 내 안에 가득하다.
나를 드러내고, 나를 주장하려는 나를 주님이 품으신다. 이런 나를 용납하신다. 이 모든 어리석음을 품고 주님이 내가 되고, 죄가 되어 십자가에 달리셨다. 십자가에 못박히셨다. 그 분안에서 나도 십자가에 못박힌다. 억울한 나, 합리화하고 자기 변명하는 나를 십자가에 못박는다. 주님이 주신 십자가를 달게 받아들이고, 함께 장사된다. 이 모든 것을 하게하시는 내 안의 생명께 나를 의탁한다. 부활생명되셔서 사망을 삼키고 기꺼이 십자가의 길을 가게 하시는 주님께 나의 영혼을 부탁한다. 그분이 내 안에서 그 길을 가게 하시고, 내 안에 사셔서 생명의 길을 걷게 하신다.
오 주님, 그런 주님이 내 안에 계시고, 내 생명되시고 주인님이 되심을 감사합니다.
◈ 묵상 기도
주님, 구속사적인 믿음을 갖게 하여 주십시오. 주님의 주권안에서 모든 칭찬과 멸시를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형통할때는 찬양하고, 고난중에는 기도하게 하옵소서. 선을 베풀고 용납과 배려가 상처와 고난으로 다가오는 일을 주님의 눈으로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견디지 못하는 내 자아는 십자가에 못박혔고, 성령님이 내 안에서 일하심을 기도합니다. 주님이 하십시오. 주님과 그 은혜의 말씀에 내 영혼 내 상처, 내 답답함과 분노를 맡깁니다. 주님이 처리하시고, 주님이 새마음과 새영으로 성령충만하게 하시고, 주님이 담긴 질그릇되게 하옵소서. 주님을 담아 사는 시간이 하루중에 계속 늘어나게 하소서. 그리고 항상 주안에 거하며 십자가로 나아가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