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리재 |
06 : 00 |
휴양림삼거리 |
09 : 36 |
1090봉 |
06 : 57 |
토산령 |
10 : 18 |
고비덕재 |
07 : 40 |
구랄산(1071.6m) |
11 : 02 |
백병산 갈림길 |
07 : 57 |
점심 |
11 : 30 |
백병산(1259.3m) |
08 : 02 |
면산(두리봉 1245.2m) |
12 : 45 |
육백지맥갈림길 |
08 : 37 |
낙엽송 군락 |
13 : 50 |
송전철탑 |
09 : 00 |
1009.3m봉 |
14 : 28 |
덕거리봉 갈림길 |
09 : 21 |
석개재(910m) |
14 : 35 |
<잃어버린 활>
초나라에 좋은 활을 잃어버린 사람이 있었다.
그가 활을 찾지 않자 어떤 사람이 의아해하며 이유를 물었다.
“자네가 잃어버린 활은 천하의 명품인데 왜 찾지 않는가?”
그러자 활을 잃어버린 사람이 대답했다.
“초나라 사람이 잃어버리고 초나라 사람이 주우면 됐지 무엇 때문에 이를 다시 찾는가?”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공자가 말했다.
“그의 말 중에서 ‘초나라’라는 말만 빼면 훌륭하구나!
즉 잃어버리고 주우면 됐지 무엇 때문에 이를 다시 찾는가?”
후에 공자의 말을 전해들은 노자가 이렇게 말했다.
“공자의 말 중에서 ‘사람’이라는 말만 빼면 훌륭하구나!
즉 잃어버리고 주우면 됐지 무엇 때문에 이를 다시 찾는가?”
때론 잃어버린 것에 대한 집착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 여씨춘추에서 (좋은생각 7월호) -
<통리역>
<통리역 앞에서 단체 사진>
<빗속 어둠을 뚫고 태백으로!>
낙동정맥을 향하는 발길이 무박으로의 초대가 되었다.
오래 전 백두대간을 종주할 때 어둠 속을 달리던 버스 여행이 생각난다.
청원을 지나고 음성을 통과하자 밖은 엄청난 폭우를 동반한 국지성 소나기가 퍼붓는다.
충주와 제천에 이르러서는 차창 앞을 응시하기가 벅찰 정도의 큰비가 내린다.
모두들 잠에 빠져 조용하지만 앞에 앉아 기사를 응시하는 나의 긴장은 영월과 정선에 이르러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날씨에 최고조에 달한다.
서너 번의 휴게소를 들러 태백에 도착한 여로는 말로는 표현이 곤란한 피로도의 쌓임이다.
황지연못이 있는 태백에서 아침 식사를 한 후 우린 통리역으로 방향을 잡는다.
그런데 너무도 희한하다.
동쪽으로 하늘이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통리역을 지나 통리재로 향하는 귀연산꾼들>
<철도는 도계로 향하고>
<철로를 건너 통리재로>
<지나온 1구간과 통리 마을>
1구간 종주를 마치고 만났던 통리역은 조용하지만 철도가 주는 그윽한 매력이 있어 비 그친 새벽에 정감 있게 다가온다.
철로를 건너 당도한 통리재는 고개답지 않은 4차선 대로였다.
아침 기온이 섭씨 17도를 가리키고 있는데 통리재는 저 멀리 동해를 향해 내리막길을 달린다.
<통리재>
<그렇게 퍼 붓던 간밤의 폭우는 아침 기온을 17도로 내렸다>
------- 통리재에서
산마루를 넘어 바다로 가는
고개 길에 가을이 왔습니다.
그리움을 향해 비행하던 철새들
남해로 가는 고단한 귀향길에
간혹 돌이 굴러 떨어지는 이 낙낙한 벼랑길에 서면
돌아감이 그저 따뜻한 풍경만은 아닙니다.
굽이도는 모퉁이마다 안개 속 나목들이 발목을 잡는 듯
오래된 상처를 순순히 받아들이기는
아무래도 벅차고 고독합니다.
갈 길이 먼 철새들 푸른 멍이 든
날개깃을 접으며 잠시 산 아래를 굽어봅니다.
산정에서 내려다보이는
삼척바다는 꿈결 같이 아득합니다.
몇 번 허리를 꺾으며 새벽을 여는 백두대간
재를 넘으며 산다는 것에 대해 오래 생각했습니다.
조금씩 나도 모르게 밀리는 세월 앞에
뒤통수를 보이며 절대 침묵으로 멀어지는 산, 산들
새벽마다 상습적으로 안개가 끼고
화사한 단풍이 수시로 갈 길을 막습니다.
가을입니다.
- 윤 종 영 -
<통리재에서 종주 시작>
<비온 후 개인 숲의 모습>
선선함이 함께하는 아침 종주는 상쾌함과 속도감을 준다.
모두들 부리나케 날망(머루금)을 향하여 빠른 발걸음을 재촉한다.
속도전에는 자신이 없어 진지 오래 되었지만 어느새 능선 갈림길에 당도한다.
그렇게 쏟아지던 비는 산정을 향해 오르는 산꾼 앞에서 자취를 감췄다.
산들 바람에 나뭇잎과 풀숲에 얹힌 물방울도 사그라졌다.
골바람과 산정바람을 맞으며 내달리는 산꾼들은 그렇게 폭풍우를 뚫고 낙동정맥을 걷는다.
<고비덕재>
구절리는 동에서 서로 흐르는 골지천과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송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해 있는데 협곡과 높은 산을 끼고 있는 군사적인 지형적 특성 때문에 오랜 세월동안 다툼의 현장이 되었던 곳이라고 한다.
구절리에는 동서남북으로 고비덕, 말두덕, 장두덕, 안반덕 등 네 개의 덕이 있는데 동쪽에 해당되는 곳이 고비덕이고, 아래쪽에는 장군 바위와 마장터, 쇠굽는 나들이가 있다.
지명의 유래를 찾아보면 구절리가 예부터 군대가 주둔한 군사적인 요충지였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울창한 백병산 숲>
<세 번의 오르막과 깊은 숲으로 큰 정맥의 진수를!>
이번 구간의 산줄기 흐름은 숲과 오르막의 연속이다.
또한 전혀 주변을 볼 수 없을 정도의 깊은 숲속을 몇 시간 걸어야 한다.
통리재를 출발하여 1090봉에 오르는 능선은 약 고도차가 300미터 정도이다.
산행을 시작하여 곧장 된비알을 오르는 것은 엄청난 피로도를 가져온다.
버스에 시달린 간밤의 육신은 무차별적인 땀방울의 생산이 러시를 이룬다.
아침나절의 선선함이 아니라면 아마도 무릎과 허리에 미치는 여파도 대단하리라.
첫 번째 봉우리에서 고비덕재를 지나 백병산에 이르는 긴 숲속 파노라마도 종주의 흐름에서 대단한 노정이다.
중간에 만나는 산죽지대와 잡목 그리고 우거진 숲은 전혀 시야를 확보할 수 없다.
비 개인 산 녘에는 습기가 많지만 가끔씩 불어주는 고마운 산들바람 덕분에 피로가 덜하다.
백병산 바로 밑에는 수백 평 크기의 너른 고비덕재가 있는데 고비가 많이 자라는 언덕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고비덕은 양치식물 고비가 많이 자라는 언덕이란 뜻인데 봄철이면 각종 산나물과 보호식물들이 자생한다. 옛날 태백 황지주민들이 동해로 소금을 구하기 위해 오고 다니던 소금 길로 전해지고 있다. 숲길이 우거져 자칫 등산로를 찾지 못하면 낭패를 당할 수 있다.
고비덕에서 백병산에 오르는 길도 숲길인데 하얀 로프로 길 안내를 하고 있다. 깊은 숲은 이처럼 사람의 자취를 입제 해 주는 위험지대이기도 하다.
<백병산과 면산 방향 갈림길>
<백병산 부근 이정표>
백병산(白屛山)은 강원도 태백시 통동과 백산동에 위치하며 해발 1,259m의 높은 고도를 갖고 있다.
백산이라고도 부르는데 매봉산에서 시작하는 낙동정맥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정상 서쪽의 병풍바위 등의 암봉이 병풍을 두른 듯하고, 갈수기 때 하얀 암봉으로 보여 백병산이라고 부른다. 병풍바위에 올라서면 청옥산에서 두타산, 매봉산, 함백산, 태백산에 이르는 백두대간이 한눈에 보인다는데 운무와 울창한 숲으로 조망이 전혀 없다.
백병산을 지나 조금 가면 육백지맥이 갈라지는 지점이 나오고 산죽 밭이 연속으로 이어진다.
송전철탑을 지나면 토산령이 나오는데 약간의 시계로 구랄산이 높게 보인다.
토산령은 신리재로 불리기도 하며, 전에는 풍곡리 주민들이 태백시 철암으로 넘나들던 주요 산길이었다고 한다. 당시 이곳에 유난히 토끼들이 많았다고 해서 토산령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송골에는 옛날 4~5가구의 화전민이 거주했었고 농산물이나 약초 등을 철암장으로 가지고 나가 팔기 위해 주민들이 토산령을 넘나들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울진, 삼척 공비침투사건 이후에 송골 화전민들이 풍곡리로 소개되면서 토산령 길은 잡초 속에 묻혀 버렸다고 한다. 토산령에서 오른쪽으로 길을 잡아 태백고원자연휴양림으로 갈 수 있다.
<일출 전망대에서 본 백병산 모습>
<낙동정맥을 지나간 산악회 리본들>
<육백지맥 분기점>
<산죽밭>
<송전철탑>
<덕거리봉 갈림길-휴양림 가는 길>
<휴양림 삼거리>
<토산령>
<조릿대 산죽밭 길은 끝이 없다>
혼자 걷고 있습니다.
앞 팀에서 처져 떨어지고
후미를 기다려도 인기척이 전혀 없습니다.
고립무원인 백병산 숲속에 덩그렁 홀로 되었습니다.
부스럭!
찍찍~~ 찌이직!
동물과 새들이 부산하게 아는 체를 합니다.
어쩌면 자기들 영역을 침범했다고 소리 지르고 외치는지도 모릅니다.
적막해야 할 숲에서 조릿대와 활엽수가 지나는 바람에 휙 공명음을 내며 다가옵니다.
가슴이 확 트입니다.
머리가 상쾌합니다.
조였던 어깨가 스르르 열리며 걷기가 편해집니다.
온갖 생명체가 공생하는 숲에서 나라는 자아의 존재가 미물 중 하나임에 놀랍니다.
우린 숲에서 두 가지를 봅니다.
누군 숲만 보고 나무를 보지 못하며,
어떤 이는 나무는 보는데 숲은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숱한 세월을 살아오면서 난 나무도 보고, 숲도 보았는지 자문해 봅니다.
여행과 산행 그리고 가르침의 세월에서 자칫 두 가지를 다 보지 못하고 어느 한쪽만을 편향되게 치우쳤는지 되돌아봅니다.
숲을 걸으며 제멋대로 자라난 모든 생명체에 의미를 부여해 봅니다.
모두 다 주어진 삶이 있으려니 생각하니 저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백병산에서 덕거리봉 삼거리 그리고 토산령과 구랄산에 오르는 큰 오르막도 대단합니다.
역시 백두대간급 정맥인 낙동은 확연히 높이가 다릅니다.
오르막이 끝나면 평지가 한참은 가는 게 보통인데 이번 코스는 어림도 없습니다.
오히려 긴 내리막 후에 이어지는 된비알은 잠시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습니다.
일행 중 한 그룹은 휴양림 쪽으로 방향을 잡고 높은 된비알을 피하여 여유 있는 종주가 되도록 했습니다.
다행이었습니다.
모두 종주하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들었을 텐데 융통성 있게 대처하여 전체적인 진행이 좋았습니다.
<간신히 드러난 조망터에서 지나온 산줄기를 본다>
<구랄산에 오르며 본 산줄기>
<종주는 동행이 있어야 안전하다>
시야가 트인 곳에서 모처럼 산줄기의 유려한 흐름을 봅니다.
운무에 가린 깊은 산중은 너무도 고요하고 장중합니다.
토산령에서 구랄산에 오르는 된비알도 숨이 넘어 갑니다.
점심이라지만 그냥 우겨 넣는 요식행위에 불과합니다.
음식 맛도 무뎌지고 그저 시원한 찬물에 말아서 마시듯 끼니를 때웁니다.
후미를 겨우 만났는데 속절없이 그들은 떠납니다.
사계절과 무본이 합류하고 남실장과 산용님이 점심을 지켜줍니다.
산중에 허허로히 인적이 뜸합니다.
만나는 인기척도 전혀 없습니다.
동행이 되어준 남실장과 산용님도 선두권으로 따라 붙어 우린 또 일행에서 뒤쳐집니다.
그래도 세 사람의 인적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면산에 오릅니다.
힘들었지만 동행의 힘이 대단함을 느낍니다.
<야생화 원추리의 환한 미소>
<금강송>
면산은 근처의 삼방산으로 가는 갈림길인데 높이가 1245.2m로 백병산에 견줄 만큼 우뚝하다.
면산은 경북 봉화와 경계를 이루는 태백의 끝자락이며 국립지리원의 지도에는 면산(綿山)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마을주민들은 화전을 일궈 난을 면했다 하여 면산(免山)이라고 부른다. 정상 부분이 마루처럼 평평해 두리봉으로 불리기도 하며, 낙동강 상류의 작은 지류가 발원한다는 면산은 옛날 난리 때 사람들이 이 산으로 피해 와서 화전을 일궈 농사를 지으며 난을 면(免)했다고 하여 免山이 되었는데 그 뒤 면산(綿山)으로 변해 불리어 졌다고 한다.
<면산>
<1009.3봉>
면산에서 1009봉에 이르는 노정은 숲과 산죽의 어우러짐이 계속된다.
산죽 즉 조릿대 숲은 큰 곳은 사람의 키를 넘고 작은 곳은 어깨를 부딪친다.
산죽이 꽃이 피어 잎이 없고, 흡사 갈대를 연상하는 모습이다.
어딘가 엉성하고 허전한 모습에 산죽의 폭발적 자생의 힘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삼방산 삼거리인 면산에서 석개재까지는 4.2km라는 이정표가 있다.
대략 거리로 따지면 석개재까지 1.5시간 정도면 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하다.
그런데 실제 평지와 오르막의 연속인 이 구간이 2시간 정도 걸렸으므로 무척 험로임을 말해준다.
지도에 표시된 낙엽송 군락지에서 석개재까지의 종주도 무던한 인내심을 요구한다.
무본의 다리에도 쥐가 나고 통증이 오는지 걷기 불편함을 애써 참는다.
다 왔으려니 희망을 줬는데 실제 목적지는 너무 멀다.
조금씩 이어지는 연속적 오르막은 마지막 남은 육체의 에너지를 모두 소진시킨다.
그래도 푹신한 종주 길은 다리의 피로를 덜하게 하므로 걷기에는 무리가 없다.
종주!
맞다. 종주는 너무 오래 할 것이 못된다.
쉬운 길을 트레킹 하는 여유로운 노정이 필요하다.
낙동의 긴 흐름을 타고 넘으려니 지나야하는 산줄기가 어려울 뿐이다.
경북과 강원도의 경계를 이루는 산길을 따라 걷는 노정이 낙동정맥이다.
이젠 강원도를 벗어나 경상북도로 마루금이 연결된다.
1009봉에 당도하니 석개재를 지나는 차들의 굉음이 들린다.
목적지가 가까워져 옴이다.
긴 노정 험한 오르막 그리고 무던히도 평화로웠던 숲.
8시간여를 걷는 대장정은 그렇게 서 너 번의 된비알과의 싸움으로 끝을 맺는다.
<석개재>
석개재는 가곡면 풍곡리와 경북 봉화군 석포면의 경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석개재는 석포면과의 경계를 이룬다는 의미로 봉화군 석포면 쪽으로 석계천이 흐르고 있어 생긴 이름인 듯하다.
석개재(石開)는 "돌문이 열린다!"는 뜻으로 석포(石浦)의 옛 이름으로, 돌이 많은 산으로 사방이 막혀 있는데 이 돌문이 열리면 이곳에 1만 가구 이상 살게 될 것이라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고개의 북쪽으로 정자가 만들어져 있는데 종주꾼들의 휴식처로 너무 훌륭하다.
적당한 취기와 허기 줄임으로 산중 뒤풀이가 흥에 겹다.
고랭지 채소밭과 감자밭 그리고 가끔씩 스치는 인삼 재배 모습이 차창에 아름답다.
울진을 거쳐 영주와 예천, 문경, 상주를 지나는 귀가 노정은 여유와 단잠의 꿀맛으로 행복하다.
<사색의 숲에서>
숲으로의 긴 여로!
된비알로 점철된 마루금을 오를 때 흘리는 육신의 땀방울!
그건 낙동정맥의 원천이며, 부산까지 이어지는 강력한 에너지의 산물이다.
숲도 보고 나무도 보고
그리고 대자연의 신비도 보는
정맥의 노정이 평화롭고 상쾌하다.
산줄기를 걷노라면 머리가 텅 비어 좋다.
그건 산도 보고
숲도 보고
나무도 보고
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늙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젊다는 것은 청춘이기에 무조건 좋다.
하지만 늙음이 아름다운 것은 원숙함이다.
눈이 어두워지는 것은 더 눈을 크게 뜨라는 의미이다.
머리가 희어지는 것은 너무 설치지 말고 자중하라는 뜻이다.
나이가 먹는다는 것은 위아래를 살피며 조심스레 인생을 마무리하라는 충고다.
늙음이란 무엇인가? 죽어간다는 것일까?
하지만 죽어 감이 늙음의 본질은 아니다.
인류는 늙음보다 전쟁, 기아, 질병, 재해 등으로 더 많이 죽어 갔다.
늙어 보지도 못하고 죽은 이가 더 많다.
실상 늙음이란 죽음보다 삶에 가깝다.
늙음은 결코 죽어 가는 일이 아니다.
삶을 완성해 가는 일이다.
삶의 근원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는 일이다.
<석개재 정자>
<석개재에서 바라본 1009.3봉>
<도전은 아름답다 - 후미의 완주 모습>
자아혁신(自我革新)!
그건 늘 나를 새롭게 하라는 질책으로 함께했다.
젊음은 가만히 있어도 자신이 새로워지게 된다.
변화의 계곡에 빠져드는 것이 젊음이고 청춘이다.
바꾸고 변화되는 것이 좋은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고여 있는 물은 썩게 되고, 흐르는 물은 자정의 원리로 맑음을 창조한다.
나이가 먹는다고 구태의연과 보수를 탐하는 것은 아니다.
혁신과 변화의 갈등은 언제나 존재해야 한다.
다만 그 본론적인 실체는 간직하고 변화와 창의적 미래를 개척해야 한다.
개혁과 수구.
평화와 전쟁.
발전과 토속의 징검다리.
그런 다툼과 경쟁이 상생의 길을 갈 때
대한민국호의 미래는 밝다.
그날의 함성이 다시 울렸다.
꿈은 이루어지는 것이고, 오늘 다시 그 꿈을 이뤘다.
대한의 23인 전사가 오늘 또 하나의 역사를 썼다.
해외 원정 경기에서 우린 월드컵 16강의 위업을 이뤘다.
국내 감독으론 허정무 감독이 최초의 예선을 통과하는 선봉장이 되었다.
우리 모두 하나가 되어 새벽을 밝힌 오늘이 아름답다.
박지성, 박주영, 이청용, 기성용, 이정수, 정성룡, 차두리......
대한의 전사들이여!
자랑스러운 그대들이 있어 우린 행복하다.
다음 노정을 기대하며.......
<건강하게 완주하는 그날까지 홧팅!>
가슴
- 김용진
그리움은
눈빛으로 달래고
설레임은
미소를 나누며
가슴이 열리는 수줍음은
긴 세월의 소망
살포시
옷고름을 풉니다
이제
사랑 하나 위하여
당신의
하얀 문을 열고
따뜻한 가슴에서
삶의 안식으로
나 이렇게
행복하게 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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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아~~대단한 거리와 많은 산을 오르셨네요...통리재에서 출발하여 백병산, 다시 면산, 석개제를 거쳐 구랄산...이렇게 4개의 산을 향해 종주했군요...듬직한 산사나이들 그리고 용기있는 여자분들...동행으로 안전하게 모두 낙오없이 목적지에 도착했군요...와~정말 부럽습니다!!! 수고많으셨구요...계속 멋진 산행과 사진 보여주시기를 기다리겠습니다~~^^
이창근님 항상 즐산 안산 하십시요 그리고 건강한모습 또한 예쁜꽃들 잘보았습니다 저도 원주 치악산을 시작으로 100대명산을 다시한번 해보렵니다 우리 회원분들께서 이렇게 산악인이 많아서 넘 좋네요 화이팅^^^^^^^^^^^^^
앗! 100대 명산을 다시 한번~~정말 멋지겠네요~~생각만해도 가슴이 벅찬 일입니다~~가시는 길마다 사진 올려주셈요~~~
저가 사진빨이 안받아서 사진을 잘안찍는데 산만 찍어서 올려드릴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