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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참회원 사랑채 스크랩 신라정신, 풍류(風流)와 그 현대적 가치 -풍류도(風流道)와 화랑도(花郞徒)
썬시드 추천 0 조회 94 11.02.20 00:15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신라정신, 풍류(風流)와 그 현대적 가치 -풍류도(風流道)와 화랑도(花郞徒)->

목차

1.신라는 다양한 인적구성을 가진나라다.

2.풍류(風流)와 巫

3. 巫와 경천(敬天)사상과 선(仙)사상의 간섭현상과 접합

4.풍류와 仙

5.풍류의 개념과 상징유산

6.풍류(風流)와 외래종교(佛敎)

7. 풍류(風流)와 화랑(花郞)  

8.신라정신=풍류(風流)

 

 

1.신라는 다양한 인적구성을 가진나라다.


삼국사기에는 고조선 유민(遺民), 삼국지 위지동이전에 나오는 진(秦)나라 피난민,

문무왕비문과 적석목곽분으로  알수 있는 신라김씨 계열의 흉노인들, 삼한의 원주민인 삼한인들.

이러한 다양한 인적구성이 공존하고 융화되어 세워진 국가가 신라이다.  


그리고 신라말 동아시아 석학중의 한명인 최치원은 신라의 고유정신 내지 고유사상을 난랑비서(鸞郞碑序)에서 "國有玄妙之道 曰風流" 즉 풍류(風流)라고 이름 하였다.

나아가 "說敎之源 備詳仙史 實乃包含三敎" 라고 하여 풍류에는 이미 유불선의 개념이 내포 및 내재되어 있다고 하면서도 유교, 불교, 도교와도 분명히 구별되는 우리의 독자적인 고유한 도(道)임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부터 고유의 신라정신과 신라사상을 찾는 일은 시작되어야 한다.

 

하지만 최치원은 풍류의 구체적인 내용은 말하지 않고, 교(敎)를 설치한 근원이 仙史에 상세히 실려 있다고 만 하였기에, 신라 고유종교인 풍류(풍월도)를  알기 위해서는,

풍류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우리 고유의 원시종교와 고대 사상에서 출발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즉 고대 원시신앙인 무(巫), 고대 신화에서 볼수 있는 경천사상, 그리고 산악신앙(山岳信仰)과 고유의 선(仙)사상을 통하여 풍류의 내용과 성격을 알아 보는 것이 필요하다.


 


2.풍류(風流)와 巫


 


삼국사기 난랑비서에서 최치원은 신라의 고유한 도(道)가  선사에 기록되어 있다고 할정도로 仙과 관련이 깊은데 선이라 하지 않고 풍류라 하고, 삼국유사에서는  '진흥왕이 나라를 흥하게 하려면 먼저 풍월도가 필요하다고 하여 良家의 남자 중에 덕행이 있는 자를 뽑아 화랑이라 하고 설원랑을 國仙으로 삼으니 이것이  화랑국선의 시작이다'고 하여 仙과의 밀접한 관계를 알 수 있으나  선이 아닌 풍월도라 한 것은, 모두 신라의 고유한 종교 내지 도(道)가 선(仙)의 색채가 강하나 본질은 선이 아닌 그 무엇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무엇을 찾다보면 신의 매개자인 무당(샤먼)을 통하여 天神, 山神, 河神 등과 소통하고 복을 비는, 우리의 고유의 고대종교인 巫敎가 풍류=풍월도의 원형이라는 추론을 해볼 수 있다.

 


巫는 고대 동아시아 특히 시베리아와 한반도에서 주로 나타나고,

신의 매개자인 샤먼(무당)을 통하여 신과 인간이 소통하고 신에게 복을 기원하고 병을 고치고 재앙을 물리치는 원시종교로서, 모든 우주삼라만상에 정령이 있다고 믿는 애니미즘에 기초하고 있다. 무교의 신앙대상으로는 최고 상위신인 천신(天神)이 있고, 하위신으로는 산신(山神), 하신(河神), 조상신(祖上神, 始祖神), 용신(龍神) 등 다양하다. 최고신(最高神)이라 하더라도 일반신(一般神)들의 고유영역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고유영역은 그 영역을 관할하는 일반신들의 것이다.

즉 무교는 기본적으로 범신론에 속한다고 할수 있으며, 신과의 소통자인 무당(샤먼)의 존재가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馬韓條에는 삼한인들의 祭儀 풍습이 나오는데

 

"오월에 파종을 끝내면 鬼神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歌舞飮酒하기를 밤낮 쉬지 않고  .….. 시월에 농사가 끝나고도 이렇게 한다. …..귀신을 믿는데 국읍마다 각기 한 사람을 뽑아 天神에 제사하는 것을 주관케 하고, 그 이름을 天君이라 한다. 또 諸國에는 저마다 別邑이 있는데 蘇塗라고 부르며 큰 나무를 세워 방울과 북을 달아 鬼神을 받든다."  주1)

 


이것으로 볼 때 삼한의 원주민인 삼한인들의 의식을 지배하는 신앙이 巫敎임을 알수 있다.

 


이러한 巫敎의 영향은 신라 금관에서도 볼 수가 있다.


신라 금관의 주인공들은 신라 김씨 계열의 흉노인들인데, 이들이 살던 지역은 주로 몽골 초원으로 북으로는 시베리아 삼림지대까지,  서쪽으로는 알타이 산맥까지이다.


이것은 신라금관의 기원에 관한 여러 설득력 있는 견해들을 나오게 한다.

 

  <서양인들이 스케치한 시베리아 샤먼의 모습(위)과 샤먼 일반 상상도(아래 가운데).

    신라 금관과 녹각 무늬가 두드러지는 측면 모습. 출처 : 김동욱 기자의 역사책 읽기>


 


신라 금관의 기원에 관한 여러 학자들의 견해를 보면


『 벨기에 헨쩨 교수는 ‘신라 금관이 샤먼이 쓰던 제의용관으로 금관의 나무모양은 시베리아 여러 원주민의 세계수(천상과 지상을 연결하는 나무)에 대응하며, 금관의 녹각장식 모양은 예니세이강 유역의 무당이 쓰는 관에도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김원룡 박사는 ‘신라 금관은 시베리아 샤먼관의 계통이면서 그 형식이 신라에서 정리 개발된 독특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김열규 교수는 ‘금관의 나무는 환웅이 내렸다는 신단수와 같은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존재라는 것, 곧 신성수(神聖樹)이고 ‘샤먼트리’, ‘세계수’가 된다는 것, 따라서 하늘을 오르는 새와 나무가 결합된 금관총 왕관의 이미지는 새의 날개와 하늘나무로 하늘의 관을 의미하는 천관(天冠)이 된다고 하며, 이 같은 세계수 이미지에 사슴은 세계수 위의 독수리 처럼 천상과 지상을 연결시켜주는 의미를 지닌 ‘우주사슴’의 의미를 지닌다’고 주장한다.』  주2)

 


이러한 ‘신라금관 샤먼관설’은 현재 다수설로서 주류적 견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삼국사기에 보면 신라 임금을 나타내는 차차웅이라는 말이 무당을 뜻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南解次次雄立 (次次雄 或云慈充 金大問云 方言謂巫也 世人以 巫事鬼神 尙祭祀故畏敬之 遂稱尊長者 爲慈充) 赫居世嫡子也 身長大 性沈厚 多智略 母閼英夫人 妃雲帝夫人(一云阿婁夫人) 繼父卽位 "


즉 ‘차차웅은 김대문이 말하기를 방언으로서 巫를 이르는 것’이라고 하고 있다.

이는 신라의 왕이 샤먼(신과의 소통자이자 매개자)이라는 것으로, 신라시대 초기만하더라도 무교(巫敎) 제의(祭儀)가 토속신앙으로 남아 있는 지금과는 달리 국가의 대표적인 행사였음을 알려 준다.

지금의 토속신앙화된 巫로써 신라 초기의 격이 있는 巫를 바라 본다면 개념인식의 오류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리고 삼국사기 신라본기 소지마립간條에는

九年 春二月 置神宮於奈乙奈乙始祖初生之處也

'소지립간 9년 봄 2월에 나을(奈乙)에 신궁(神宮)을 세웠다. 나을은 시조(始祖)가 처음 탄생한 곳이다'라는

기록이 있어, 신라왕들이 신궁에서 시조신(국조신)에게 제사를 지낸 것으로 볼 수 있다.(이 나을신궁지가 박혁거세 탄강지인 나정(蘿井)으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대립된다.)

시조신(조상신) 숭배는 일견 무(巫)와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조상의 영(靈)과의 소통으로 후손에 대한 안녕과

복을 구하는 것이므로 그 근원을 찾아 가보면 무(巫)에서 파생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무(巫)는 주로 시베리아와 동아시아 등지에서 주로 나타나며, 샤먼(사제)이 신과의 소통을 매개 또는 주재하여

현세의 안녕과 복을 기원하고 병을 고치는 원시종교이다. 巫는 넓게보면 모든 만물에 靈이 있다는 애니미즘의 일종으로 볼수 있고, 샤먼을 통하여 신(神)과 소통하는 것이 특징이다.)

 

 

 

신라 시조 신화를 보면, 시조인 박혁거세와 김알지가 번개빛과 자주빛 구름으로 하늘의 권위를 부여받아 내려온 것으로 나오므로, 결과적으로 시조신 숭배는 '하늘(天神=天靈) 숭배'(敬天思想)로 이어진다.

또한 신화에서는 하늘에서 내려온 번개빛과 황금궤가 걸려 있는 신성수(神聖樹)가 등장하는 바, 이는

신(=靈)과의 소통의 매개체 역할을 하므로, 근원적으로 시조신 숭배는 무(巫)관념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상을 살펴보건데, 풍류는 무(巫)를 원형으로 하고 경천(敬天)과 선(仙)을 내용으로 하는 것이다.

곧 풍류(風流)는 하늘을 숭배하는 선(仙)적인 무(巫)라고 할 수 있다.

 


 


3. 巫와 경천(敬天)사상과 선(仙)사상의 간섭현상과 접합


 


종교와 사상의 발전단계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 고유의 경천사상과 선사상은 무(巫)관념에서 발전된 개념이라고 볼 수 있고,


산악신앙(山岳信仰)은 내용과 형식에서 볼때, 일종의 '무교(巫敎)의 실현(實現)'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세가지(巫,敬天,仙)가 완전히 분리된 뒤에도 필요에 따라서 서로간에 간섭현상과 교섭과 접합이 일어 나고, 이것이 풍류라는 우리의 고유한 종교 내지 도(道)로 발전해 갔다는 관점은 가능하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단군신화를 보면

 

‘환인은 아들 환웅이 항상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탐내는 것을 알고 천부인 세개를 주어 가서 다스리게 하였고, 이에 환웅은 무리 3천명을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神壇樹) 아래 내려와 그곳을 신시(神市)라고 하고, ….환웅의 아들 단군은 나중에 山神이 되었다’는 기록에서 경천사상과 무(巫)관념과 고유의 仙의 기원을 볼 수 있다.

 


단군은 하늘의 자손이라는 천손의식에서 경천사상을 읽을 수 있고,

신단수는 신라금관에 보이는 신성수, ’샤먼트리’ 곧 세계수인 것이고, 이는 

무(巫)관념의 표현이며, 단군이 나중에 산신이 되었다는 것에서 삼국사기에 단군을 선인(仙人)이라 한것과(삼국사기에 나오는 선인왕검(仙仁王儉)은 단군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더불어  우리 고유의 선(仙)의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단군이 산신이 되었다는 것에서 신들에는 최고신(最高神)과 일반신(一般神)으로 나눌 수 있고, 최고 상위신이 천신(환인)이고, 일반신으로는 산신, 하신, 용신 등이 있음을 추론할 수 있다.


또한 산신과 선인(신선)의 혼용으로 동일 개념화 한 것은 무교(巫敎)와 선(仙)사상의 간섭현상 내지 교섭현상으로 볼 수 있다.

 

 


삼국유사 혁거세신화를 보면

 

‘양산 밑 나정 곁에 이상한 기운이 번개 빛과 같이 땅에 비치어서 찾아 가보니, ….붉은 알이 있었고 이 알에서 나온이가 혁거세왕’이 되는 바,

여기서 번개빛은 천상과 지상을 연결하는 매개체로서 신단수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또한 하늘로부터 권위를 부여받았다는 경천사상을 볼  수가 있다.

 


삼국유사 김알지신화에서는

 

‘호공(瓠公)이 밤에 월성 서쪽을 가다가 시림(始林)에서 큰 빛이 나는 것을 보았다. 자줏빛 구름이 하늘로부터 땅에까지 뻗쳐 있었고, 구름 가운데 황금궤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다. 빛이 궤에서 나오고 흰 닭이 나무 밑에서 울고 있었다. ….. 이 황금궤에서 나온이가 김알지’가 된다.

빛이 나고 구름이 하늘에서 땅까지 뻗어 있는 것은 천손의식을 나타내며, 황금궤가 걸려 있는 나무는 신라금관의 나무장식인 신성수, ‘샤먼트리’, 곧 세계수를 의미하는 무(巫)관념을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고대 신화 속에서 보이는 신라의 고유 종교이자 사상인 풍류는,


천손의식을 바탕으로 하는 선(仙)적인 무(巫)인 것이다.

 

 


 


4.풍류와 仙


 


삼국사기에 나오는 선인왕검(仙人王儉)은 단군으로 볼 수 있으므로  고유의 선(仙)사상은 우리역사의 처음부터 있어 온것으로 보인다.


또한 仙의 연원(淵源)이 우리 동이족에 있음은 중국측 문헌에도 찾을 수 있다.  즉 "《포박자》 등에 의하면 “옛날에 황제가 있었는데 청구(한국)에 이르러서 풍산(백두산)을 지나다가 자부선생을 만나 삼황내문을 받았는데 이로써 여러 신선들을 불러들이게 되었다”(《포박자》〈지진〉, 권18)."  주3)


 


최치원은 난랑비서에서 신라 고유의 도(道)이자 종교인 풍류를 설치한 근원이 仙史에 기록되어 있다고 하여 풍류와 선의 밀접한 관계를 알려주는데,

이는 삼국유사에서 진흥왕이 나라를 흥하게 하는 道로서 風月道(풍류)가 필요하다고 하여 花郞徒를 만들고 花郞國仙을 세운 것으로 봐서도 알 수 있다.


 


그러면서도 최치원은 풍류에 유불선삼교는 이미 내재 포함되어 있다고 하여 仙과도 분명히 구별하고 있다. 신라말 중국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당시 동아시아 최고의 문장가이자 석학이된 그는 유교, 불교, 도교 모두에 정통하였을 것이다. 그러한 그가 신라 고유 종교이자 도를 仙이라 하지 않고 풍류라고 이름한 것은 풍류가 仙의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지만 선(仙)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도교는 신선(神仙)사상과 도가사상이 핵심 내용이므로 일반적으로 도교는 선(仙)과 같이 혼용되어 쓰인다. 즉 '유불선 삼교', '유불도 삼교'라고도 한다. 하지만 선후(先後)를 살펴보면 신선사상이 먼저이고 도교는 나중에 나타난다. 물론 선(仙)사상의 기원이 우리나라에서 시작된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선(仙)과 도교는 구분해야 된다는 논리도 있다. 그러나 최치원 당시에는 도교가 우리나라와 중국에 널리 퍼져있었다고 보아야 하므로 도교와 선(仙)은 같은 용어로 혼용되어 쓰였다고 본다.)

 

중국에서 도교의 핵심내용으로 표현되는 仙은 우리나라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함에도 신라 고유의 종교를 선(仙)이 아닌 풍류(풍월도)로 부르는 것은  선(仙)이 신라 고유신앙의 내용을 전부 포괄할 수 없고 부분적인 면만 드러낸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선(仙)만 드러낸다면 풍류의 원형인 무(巫)가 빠진것이고 '뿌리없는 나무'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고유의 도(道)인 풍류는 내용인 선(仙)과 원형인 무(巫)를 포함하는 더 큰 의미로 보아야 한다. 풍류라는 전체집합에서 선(仙)은 부분집합이다. 선(仙)은 풍류개념의 외연이고 무(巫)는 내포인 것이다.


 

 

 

한편 고려시대 팔관회는 天靈, 五嶽, 名山, 大川, 龍神을 섬기는 것을 분명히 하고 신라시대의 선풍을 이어 받은 것이 팔관회임이 고려사에 나온다. 또한 팔관회의 무동(舞童)을 仙郞이라 부르는데, 선랑은 ‘신라 말기에 花郞을 달리 이르던 말’로서 고려시대에는 선랑으로 불리게 된다.

 

또한  고려 인종때의  사람인 곽동순(郭東珣)의 팔관회선랑하표(八關會仙郞賀表)에는 “풍류(風流)가 역대에 전해 왔고, 제작(制作)이 본조(本朝)에 와서 경신(更新)되었으니, ...... ,5백년 간에 화랑(花郞)들이 배출되니 원랑(原郞)ㆍ난랑(鸞郞)같은 적선(謫仙)들이 명승지를 두루 찾아 소요(逍遙)하여 노닐었고”하는 기록이 나오고, 화랑이 신라의 고유종교인 풍류를 실천하는 대표적인 청소년 수련단체임을 생각할 때, 고려시대 팔관회의 모습과 내용은 무교와 선과 불교의 습합으로, 본질은 풍류=풍월도의 재현이라고 볼 수 있다.

 

 


'짐이 원하는 바는 연등과 팔관에 있다. 연등은 부처님을 섬기는 까닭이요, 팔관은 천령·오악·명산·대천·용신을 섬기는 까닭이다. 후세에 간신들이 가감할 것을 건의하면 마땅히 이를 금지할 것이다. 나 또한 당초 마음에 맹세하여 금일 국기(國忌)를 범하지 않고 임금과 신하가 함께 즐거워했으니 마땅히 공경하여 행할지어다.『고려사』世家 권 2. 

 

 

'선풍을숭상할 것이다. 옛날 신라에선 선풍이 크게 행해져 용과 하늘이 즐거워했고 백성과 만물이 안녕하였다. 그래서 태조 이래로 그 선풍을 숭상한지 오래되었지만 근래의 양 서울 팔관회에선 날로 옛 격식이 감소되고 유풍이 점점 쇠퇴하니, 지금부터 팔관회는 미리 양반으로 가산이 풍족한 자를 뽑아 선가(仙家)를 정하고 옛 풍속에 따라 행하게 하여 사람과 하늘이 모두 기뻐하도록 만들 것이다' 『고려사』世家 권 18. 

 

 

풍류와 화랑과 관련하여 사용된 용어들에 仙史, 玄妙, 接化群生, 仙風, 謫仙, 神仙, 逍遙遊 등 중국 도가와 도교의 용어들이 많이 차용되어 쓰인다. 또한 삼국유사에는 '진흥왕이 신선(神仙)을 숭상하여 원화(原花)를 선발하였고, 이것은 그들에게 효제(孝悌)와 충신(忠信)을 가르치려 함이었으며 나라의 대요(大要)이다'는 기록이 있다.

이에 풍류를 중국 노장사상과 도교와 연관짓는 주장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중국의 도가와 도교가 우리의 풍류와 개념상 유사한 일면이 있어서 용어를 차용한 것이라고 보는것이 타당하다.(앞서도 말했듯이 기록으로 본다면 우리 고유의 선(仙)사상이 중국으로 전파되고 이것이 다시 도교를 통하여 우리나라로 넘어왔다고 볼수 있다.)

 유(儒)·불(佛)·도(道)에 정통했을 최치원이 신라에는 현묘한 도가 있어 풍류라 하고 包含三敎라 하여 그안에는 이미 유교, 불교, 도교의  내용과 개념이 모두 내재되어 있다고 한 것에서 노장사상과 도교를 풍류와 분명히 구별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삼국사기에서 신라의 화랑들이 서로 도의를 연마하고 가락을 즐기며 산수를 유오하며 멀어서 이르지 않은 곳이 없다(相磨道義, 相悅歌樂, 遊娛山水 無遠不至)고 하고, 이어서 화랑 난랑을 추모하는 '난랑비서'에서 나오는, 신라 고유의 종교인 풍류를 언급한 것으로 볼때, 풍류는 명산대천을 찾아 다니며 '신과 인간과 자연'의 소통과 교감을 내용으로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한편 단군이 山神(仙人)이 되었다는 기록, 최치원이 지리산 산신 또는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 등에서 우리의 뿌리깊은 '무(巫)관념의 실현인 산악신앙(山岳信仰)'과 선(仙)사상을 볼 수 있는데, 현재의 무속신앙과 관련하여 참고가 될만한 글이 있다.

 


"오늘날 한국에서 500건 이상의 전통 집단의식이 행해지고 있는데, 그 중 114건은 산신을 대상으로, 109건은 마을의 수호신을, 68건은 기타 수호신을, 23건은 산과 강의 신을, 23건은 조상신을, 11건은 나무의 신을 대상으로 하며, 164건은 기타 군소 신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집단의식 중에서 산신을 모시는 행사가 단연 으뜸으로 조사됐다. 그러면 누가 산신이 됐을까? 단군과 같이 보편적 인물이 여러 산에서 산신으로 모셔진 경우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특정 산과 관련된 인물이 그 산의 산신이 된 경우가 많다." 주4)


 


이상으로 살펴 보면


우리 고유의 선(仙)은 천령, 오악, 명산, 대천, 용신 등을 섬기면서  나아가 수행을 통해, 휼륭한 인품과 업적을 통해 신격(神格)을 가지는, 신적인 존재인 신선이 되는 무(巫)적인 仙이고,

신라의 풍류(風流)는 바람이 흐르듯 '신과 인간과 자연'이 소통하고 하나가 되는, 仙적인 巫임을 알 수 있다.

 

 

 

 

5.풍류의 개념과 상징유산


 


풍류의 개념은 문헌상으로, 시대에 따라서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풍류는 중국측 문헌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데,


신라의 경우 난랑비서에 신라의 고유한 도가 유불선이 아닌 풍류임을 밝힘으로써 종교성을 띤 개념으로 고유성과 독자성을 가진 의미로 등장한다.


즉 풍류는 신라의 고유의 종교요, 정신이요, 사상인 것이다.

 


신라의 풍류는 문화,예술성을 넘어 신과 인간과 자연이 조우하는 종교성을 띠는, 절대경지를 추구하는 도이다. 이것이 중국과 일본의 풍류 개념과 다르다.


 


신과 인간과 자연의 소통과 하나됨을 추구하는 신라의 풍류는 대표적으로 첨성대와 포석정에 잘 표현되어 있다. 첨성대는 천문관측기구이지만 그 모양은 우물을 형상화 한 것으로서

생명수가 있는 우물이 지상으로 올라와 하늘과 소통하고자 하는 소망을 표현한 것으로서 풍류의 내용을 단적으로 표현해주는 조형물이다.  그 디자인의 독창성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것이다.


 


포석정은 최근에 포석이라는 명문기와가 발견됨으로써 필사본 화랑세기에 기록된 포석사라는 사당이 실제로 있었음을 증명한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따라서 포석정은 그간 잘못알려진, 왕들의 놀이터가 아니었으며, 그 주위로 신라 시조묘와 나정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신성한 장소였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포석정은 하늘의 별자리 모양으로, 곧 하늘 정원인 ‘천원’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주5)

결국 포석정은 하늘의 별자리가 지상으로  내려온, 신들의 정원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출처 : 울산 mbc 제작.  첨성대 별기 1,2부 >

 

 


삼국유사에서 헌강왕때


"왕이 또 포석정(鮑石亭)에 갔을 때 남산(南山)의 신(神)이 왕 앞에 나타나 춤을 추었는데 좌우의 사람에겐 그 신이 보이지 않고 왕만이 혼자서 보았다. 사람이 나타나 앞에서 춤을 추니 왕 자신도 춤을 추면서 형상을 보였다. 신의 이름을 혹 상심(詳審)이라고도 했으므로 지금까지 나라 사람들은 이 춤을 전해서 어무상심(御舞詳審), 또는 어무산신(御舞山神)이라 한다."


라는 기록과 더불어, 그것은 신라의 풍류가 종교성을 띤 선(仙)적인 무(巫)임을 알려 준다.

 


결론적으로 포석정은 '신과 인간과 자연'의 소통으로 국가의 안녕과 발전을 기원하는 장소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신라의 풍류는 ‘바람이 흐르다’는 자구(字句)의 의미대로 자유로이 그리고 바람이 되고 달이 되어(風月), '신과 인간과 자연'의 진정하고 참된 소통과 하나됨을 핵심 내용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6.풍류(風流)와 외래종교(佛敎)

 

 

외래종교인 불교가 처음 신라에 들어왔을때 많은 저항이 있었다.

그 저항은 고유신앙인 풍류와 외래종교인 불교의 갈등인 것이다.

법흥왕때 이차돈의 순교로  비로소 불교가 공인되는 것은 그것을 말해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다른면으로 보면 불교는 왕권강화를 위한 필요에 의해서 수용된 면이 있다.

귀족들은 자신들의 권력분점이 약화될 것을 우려해서 반대하였다고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고유신앙과 외래종교의 충돌인 것이다.

 

불교에 심취하여 황룡사를 창건하고 자신의 아들 이름을 금륜(金輪), 동륜(銅輪)으로 불교식으로 지었던

진흥왕은 나라를 흥하게 하기 위해서는 풍월도(風月道)가 필요하다고 하여 이전에 폐지되었던 원화제도를

대신하여 화랑제도를 만들어 화랑을 뽑고 화랑국선을 선출한 것은, 뿌리깊은 고유신앙인 풍류(그 원형은 巫)를

활성화시켜 일반백성과 귀족들의 지지를 얻고자 했다고 보여진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와는 달리 진위논쟁이 있는 화랑세기와 조선시대 편찬된 동국통감, 삼국사절요에는 진흥왕 원년 즉 지소태후 섭정시기에 화랑도가 제도화 된 것으로 나오는데 법흥왕과 진흥왕 어느 시기에 화랑제도가 만들어 졌다 하더라도 여기서의 기본 해석틀은  그대로 유효하고 같이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

당시에는 왕족과 지배층 중심의 종교였던 불교만으로는 일반백성과 귀족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기는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토확장과 정복전쟁을 지속하였던 진흥왕이 귀족과 백성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뿌리깊은 고유종교의 부활과 지지가 반드시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여성중심의 원화제도가 폐지된 후, 남성중심의 화랑제도로의 변화는 영토확장과 정복전쟁을 위한

필요에 의해서 였을 것이다.

 

풍류는 화랑제도가 구체적 실체가 되는데, 화랑제도 이전에 여성중심의 원화제도가 있었고,

화랑도 삼국사기에 의하면 장식(粧飾)-화장을 하고 얼굴을 꾸밈-을 했다는 것으로 보아,

풍류의 원형은 무(巫)임을 보여주는 하나의 근거가 될 수 있다.

 

진흥왕의 이러한 균형잡힌 종교정책은 신라의 국력 결집과 신장으로 이어진다.

불교에 심취한 진흥왕이었지만,

고유종교인 풍류(風月道)를 화랑도(花郞徒)로 제도화하여 일반백성과 귀족의 지지를 이끌어 냄으로써

신라는 강한 나라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화랑중에 불교를 믿거나 관련된 인물이 있음을 들어 화랑과 불교의 관련성을 강조하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왕실종교인 불교의 발전과 확장에 따른 고유종교의 상대적 쇠퇴라는 관점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화랑제도 이전에 있었던 여성중심의 원화제도가 신라의 고유신앙인 풍류의 제도화된 실재이자 실체이기 때문이다.

불교의 성장과 고유종교인 풍류의 상대적 쇠퇴는 신라가 풍류국가에서 불교국가로 변해가는 과정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곧 신라 상대(上代)는 풍류국가, 중대(中代)는 풍류와 불교가 균형인 시대, 하대(下代)는 불교국가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이다.

 

 

 


7. 풍류(風流)와 화랑(花郞)


 


삼국사기 <진흥왕>條 기사를 보면


화랑 난랑을 추모하기 위한 글인 난랑비서를 소개하면서 신라 고유의 종교이자 도를 풍류라 하였고,


삼국유사에도 진흥왕이 나라를 흥하게 하려면 먼저 風月道(風流道)가 필요하다고 하여 양가의 남자 중에 덕행이 있는 자를 뽑아 화랑이라 하였다는 것을 보아, 풍류와 화랑의 긴밀한 관계를 알려 준다. 


화랑들은 산수를 유오하면서 도의를 연마하고 가락을 즐기며 이르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하였는 바(相磨道義, 相悅歌樂, 遊娛山水 無遠不至), 이것은 화랑도(花郞徒)가 고유 종교인 풍류를 실천하는 종교적 수련방법을 말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또한 앞에서도 말했듯이 고려시대 팔관회는  천령, 오악, 명산, 대천, 용신 등에게 제사지내는 신라시대의 선풍을 이어받은 것임이 고려사에 나오고 풍류의 재현으로 볼 때


그리고 화랑도(花郞徒)의 고유 종교적 성격을 전제하면 '遊娛山水  無遠不至'는 명산대천을 찾아다니며 천신, 산신, 하신 등에 제사를 지내는 종교적 순례행위였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여기서  유오(遊娛)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삼국유사에서 헌강왕이 포석정에 가서 남산신을 만나 같이 춤을 추었다는 기록처럼 여러 신들과 만나고 소통하는  방법으로서 종교적인 것이다.

 

곧 화랑도(花郞徒)는 신라의 고유 종교인 風流道(風月道)를 실천하는 청소년 심신수련단체이자 종교적 수련단체임을 알 수 있다.

 

또한  화랑들이 "서로 도의를 연마하고 혹은 서로 가락을 즐기면서 산수를 찾아다니며 즐겼는데 멀어서 못간 곳이 없다. 이로 인하여 그 사람의 옳고 그름을 알게 되고 그 중에서 좋은 사람을 가려 뽑아 이를 조정에 추천하였다"는 것으로 보아, 화랑도(花郞徒)가 인재등용을 위한 교육기관으로서의 성격도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신라의 고유종교를 기반으로 바탕으로 하는 청소년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도 하는 것이다. 이것은 진흥왕이 나라를 흥하게 하기 위해서는 풍월도(風月道)가 필요하다고 하여 화랑들을 뽑은 것으로도 알 수가 있다.

 

한편

신라 화랑의 다섯 가지 계율로 알려진 세속오계(世俗五戒)는 유교적 덕목(事君以忠, 事親以孝, 交友以信), 불교적 요소(殺生有擇), 무사(武士)정신(臨戰無退)을 표현한 것이고, 신라 6부의 하나인 사량부 사람 귀산과 추항이 원광법사에게서 받은, 속세의 사람들이 지켜야할 다섯가지 덕목인 바, 명시적으로 화랑과 세속오계가 관련이 있다는 근거 자료는 없다. 다만 신라 22대 지증왕이 사량부 출신일 정도로 사량부는 권력의 핵심에 있었고  귀산과 추항이 전쟁에 나가 큰 공을 세우고 죽은 것이 기록에 나오는 것으로 봐서 화랑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추론은 가능하다. 역설적으로 속세에서 지켜야할 오계(五戒)에 임전무퇴가 있다는 것은 이당시 얼마나 전쟁이 빈번했는가를 보여 주는 것이다.

 

화랑 정신을 무사정신(武士精神)으로 보는 견해도 있는데, 전쟁이 빈번한 이당시 상황에서, 신라의 고유 종교인 풍류를 실천하는 화랑들에게서 그 시대 상황에서 필요한 무사정신(武士精神)(임전무퇴)의 일면이 보인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의 경우 종교가 호국(護國)적 성격을 띠는 것은 호국불교에서도 나타난다.

임진왜란때 서산대사, 사명대사가 승병(僧兵)을 일으켜 왜적과 싸운것에서 보듯이 화랑들도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곧 이런 점에서 신라의 고유종교인 풍류는 호국종교로서 호국풍류(護國風流)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세속오계는 화랑 뿐만 아니라 '신라의 모든 청년들이 지켜야할 계율'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원광법사가 불계(佛戒)에는 보살계(菩薩戒)로서 십계(十戒)가 있는 것과 대비해서 속세의 사람들이 지켜야할 덕목으로서 세속의 오계(五戒)를 제시 했으므로 화랑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지켜야할 덕목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화랑도(花郞徒)는 진흥왕이 불교 등 외래종교의 전파 속에서 나라를 흥하게 하기 위해서는 귀족과 백성들의 지지(支持)가 필요하였고 그러기 위해서는 신라의 뿌리 깊은 고유 신앙이자 종교에 대한 균형잡힌 정책이 필요하였기 때문에 창설되었으며, 고유한 도(道)인 풍류를 실천하는, 종교성을 띠는 청소년 수련단체이다. 이러하므로 화랑의 도(道)인 화랑도(花郞道)는 종교적인 풍류도(風流道)이고,  화랑정신은 '신과 인간과 자연이 소통하고 교감하고 하나가 되는' 풍류정신이 본질(本質)이고, 무사정신은 끊임없는 전쟁의 연속이었던 그 시대 상황에서 나온 부분적인 현상(現象)인 것이다.


 


“……徒衆雲集 或相磨以道義 或相悅以歌樂遊娛山水 無遠不至 因此 知其人邪正 擇其善者 薦之於朝 故金大問花郞世記曰 賢佐忠臣 從此而秀 良將勇卒 由是而生 崔致遠鸞郞碑序曰 國有玄妙之道 曰風流 設敎之源備詳仙史 實乃包含三敎 接化群生 且如入則孝於家 出則忠於國 魯司寇之旨也 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周柱史之宗也 諸惡莫作 諸善奉行 竺乾太子之化也 “


 “무리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혹은 서로 도의를 연마하고 혹은 서로 가락을 즐기면서 산수를 찾아다니며 즐겼는데 멀어서 못간 곳이 없다. 이로 인하여 그 사람의 옳고 그름을 알게 되고 그 중에서 좋은 사람을 가려 뽑아 이를 조정에 추천하였다. 그러므로 김대문의 화랑세기에 말하기를 ‘어진 재상과 충성된 신하가 여기서 빠져 나오고 뛰어난 장수와 용감한 병사가 이로 인하여 생겨났다’고 하였다. 최치원의 난랑비서문에 말하기를 “우리나라에는 현묘한 도가 있다. 이를 풍류라 하는데 이 교를 설치한 근원은 선사에 상세히 실려 있거니와 실로 이는 삼교를 포함한 것으로 모든 민중과 접촉하여 이를 교화하였다. 또한 그들은 집에 들어와서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아가서는 나라에 충성하니 이는 노나라 司寇의 취지이며 거짓없이 처리하는 일과 말없이 행하는 가르침은 주나라 柱史의 종지이며 모든 악한 일을 하지 않고 모든 선한 일을 봉행함은 竺乾太子의 교화이다.” 『삼국사기』<진흥왕>條  주6)


 


 


 


8.신라정신=풍류(風流)


 


지금까지 살펴본 바로는,


신라정신인 풍류는 巫를 근간으로  경천사상과 선사상을 내용으로 한다. 따라서 풍류의 원형은 巫이고, 내용은 敬天과 仙인 것이다.


그러므로 풍류는 천손의식이라는 자부심을 바탕으로 하는 仙적인 巫이다.


신과 인간과 자연의 소통과 하나됨을 내용으로 하며, 풍류의 상징유산으로는 신라금관, 첨성대, 포석정 등을 들 수 있다.

 

삼국유사에 헌강왕이 하늘의 별자리이자 신들의 정원인 포석정에 갔을 때 남산신이 나타나 춤을 추고 왕 자신도 같이 춤을 추었다는 것은 신라의 풍류가 종교성을 띠는 현묘한 도로서 신들과 교감하는 바, 문화,예술, 놀이에서 절대경지를 추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첨성대와 신라금관에서도 보여지는 바, 그것은 과학 기술에서의 절대 경지의 추구이고 신들과의 교감인 것이다.  나아가 천상(天上)의 소리, 영혼을 울리는 신(神)의 소리라 불리우는 성덕대왕 신종(聖德大王神鐘, 에밀레종)이 그 전통을 잇고 있다.


모든 부분에서  궁극의 경지를 추구하려는 것이 풍류의 참모습인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분야에서 과학이든 문화이든 예술이든


신과 교감하는 정도의 궁극을 지향하는 것이 현재 우리가 신라정신인 풍류에서 찾아야 하는 중요한 가치인 것이다.

 

 

근대(近代)에 오면,

신라의 풍류정신이 발전·진화한 사상이자 종교가 나온다. 동학(東學)이다.

 

동학의 창시자 수운(水雲) 최제우는 '유도불도 누천년에 운이역시 다했던가'라고 하여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비판하고, 서학(천주교)도 그가 찾던 길이 아니라고 보고 새로운 길을 찾아 구도한 끝에, 우리민족의 무의식 속에 깊이 잠들어 있던 '하늘을 숭배하는 선(仙)적인 무(巫)인 풍류'를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한다. 

 

동경대전에는 수운이 강령체험(降靈體驗)으로 하늘님을 만나 영부와 주문을 받고, 하늘님이 ‘내마음이 곧 네마음이니(吾心卽汝心) ..... 글을 지어 사람을 가르치고 그 법을 바르게 하여 덕을 펴라’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는 우리의 고유 종교인 '풍류(風流)=하늘을 숭배하는 선(仙)적인 무(巫)'의 새로운 창조와 승화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후천개벽의 시대를 여는, 발전과 진화된 종교이자 사상(思想)이 동학인 것이다.

 

시천주(侍天主), 사인여천(事人如天), 인시천(人是天)으로 대표되는 동학의 영적 평등정신은, 조선말 세도정치와 삼정문란으로 인한 가렴주구로 피폐해진 백성들의 마음에 민중의 불꽃이 되어 들불처럼 타올랐다. 동학에서 이어지는 동학혁명과 3·1운동은 우리 민족 정신개벽의 빛이요, 역사적 자아의 각성이요, 정신문화의 출발점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가 진정으로 기억해야할 역사이다.

 

 

최근 동해안을 따라 신라 화랑 순례길이 만들어 진다고 한다.

 

 <정선의 금강산 삼일포 : 신라 사선(四仙)이 경치에 반해 삼일간 머물렀다는 자연호수> 


1500여년 전에 신라의 화랑들이 금강산으로 향하던 동해안 길은, '신과 인간과 자연'이 교감하며 심신수련과 호연지기를 기르기 위한 국토순례길이었고, 곳곳에 신라 사선(四仙)인 영랑(永郞)·술랑(述郞)·남랑(南郞)·안상(安詳)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과도 비견된는 바, 화랑들은 신라의 고유 종교(宗敎)이자 道인,

풍류를 실천하여  '신과 인간과 자연'이 소통하고 하나가 되고자 그 길을 떠났던 것이다.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가 말한 '동방의 등불'을 넘어 세계의 빛이 될 수 있는 나라가 되기 위한 필수조건은 우리 고유의 정신문화를 꽃피우는 것이다. 

신라의 풍류정신는 우리나라가 문화예술 선진국 그리고 과학기술 강국이 되기 위해서 필요하고 되살려야 할 소중한 정신유산인 것이다. 

 


 


 


 


  주1) 한국 무속사상 연구(김인회) p61


  주2) 김동욱 기자의 역사책 읽기에서 인용


         <신라금관은 정말 샤먼(무당)이 쓰던 관이었을까?>


  주3) <풍류도와 선맥 그리고 차축시대>(김상일)에서 인용


  주4) <누가 산신(山神)이 됐을까? (박정원)>


  주5) 울산mbc 제작. 첨성대 별기 1,2부


  주6) 한국 무속사상 연구(김인회)p116


 


 


  참고문헌


  <한국무속사상연구(김인회)>


  <풍류도와 한국의 종교사상(류동식)>


  <풍류-동아시아 미학의 근원(신은경)>


  <무속에 살아있는 우리상고사(조성제)>


  <중국도가(中國道家)와 도교(道敎) 그리고 한국(韓國) 선(仙)의 사상에 관한 비교연구(민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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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1.02.20 00:15

    첫댓글 광명의락의 락에 해당된 풍류의 좋은 글이 있어서 스크랩합니다. 즐거움속에서 건강한 인술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의 일독을 권합니다.

  • 11.02.20 10:05

    ~* 의락" 회장님! 잘 알았습니다. *~

  • 11.02.20 12:27

    신라 ..호연지기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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