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표정, 미안한 미소
솔향 남상선/수필가
한자성어에‘자기 갑옷 벗어 남 입힌다.’는 해구의지(解裘衣之)라는 단어가 있다.
남에게 은혜를 베푼다는 말이니 아름다운 단어임에 틀림없다. 우리가 사는 항간에도 이런 분이 있으니 가상한 일이라 하겠다. 널리 알려지지 않은 실화이지만 각박한 현대사회에 타산지석(他山之石)의 미담이 아닐 수 없다. ‘인간성 부활’ 차원에서 같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며느리가 큰 맘 먹고 시어마니께 털신 한 켤레를 사 드렸다. 시어마니는 털신을 신고 외출했다가 구걸하는 할머니를 만났다. 시어머니는 할머니의 남루한 신발을 보고 연민의 정이 발동했다. 그리하여 신발을 바꿔 신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한테 임기응변으로 착한 거짓말을 했다.
집에 들어서는 시어머니를 보고 며느리는 깜짝 놀랐다. 아침에 신고 나가신 따뜻한 털신은 온 데 간 데 없고 다 해진 여름신발을 신고 들어오셨으니 말이다.
"어머니, 신발이 왜 이래요?"
" 어유, 미안하다. 잃어버렸어."
"쪼들리는 살림살이에 큰 맘 먹고 사드렸는데 얼마 되지 않아 그걸 잃어버리시다니
어디서 잃어버리셨어요? 다 낡아 빠진 신발은 뭐고요?"
역정이 실린 며느리의 질문에 시어머니는 우물쭈물 대답하셨다.
"응 그게 식당에서 신발이 바뀐 것 같아.”
“그 식당 어딘데요? 변상해 달라고 해야죠.”
시어머니는 또 우물쭈물하며 대답을 피하셨다.
"여기저기 다니시려면 발이 시려서 안 돼요. 이 신으로 어서 바꿔 신어요.”
"나는 전철에서 내리면 집이 금방이에요. 얼른 이걸로 갈아 신어요.”
시어머니는, 미안해하며 주저하는 할머니한테 털신을 억지로 신겨주고,
할머니가 신고 있던 낡은 여름 신발로 바꿔 신었다.
그렇게 신발을 바꿔 신고 행복한 표정을 하는 시어머니!,
이에 미안한 웃음을 짓는 구걸 할머니!
며느리는 가슴이 아팠다.
'남의 빨래 밟아주다 내 발뒤꿈치 깨끗해진다.'는 속담이 있다.
남을 위한다고 한 일이 나에게도 이롭게 된다는 말이니 어쩌면
출이반이(出爾反爾)가 아닐 수 없다.
‘너한테서 나온 것은 너한테 되돌아간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뜻의 출이반이(出爾反爾) 앞에서
우리는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부메랑의 위력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베풂으로써 자신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세답족백(洗踏足白:남의 빨래 밟아주다 내 발뒤꿈치 깨끗해진다.)
앞에서 마음을 가다듬어 본다.
‘행복한 표정, 미안한 미소!’
자기 갑옷 벗어 남 입힌다 하더니
시어머니 신는 따뜻한 털신이
구걸하여 사는 할머니의
발에 가 있구나.
이게 바로 베푸는 천사의 행복한 표정이요
구걸 할멈의 미안해하는 미소로다
천연기념물이 따로 없으리니
이게 금메달감이어라.
첫댓글 덕분에 세답족백이라는 좋은 말을 새로 알게 되었습니다. 남의 빨래를 밟아주면서 행복을 찾아 볼 수 있도록 열심히 마음을 닦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