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 교인은 이곳 플로리다 주립대학 학생이거나 교수 혹은 직원이 대부분이다. 팬데믹 전만 해도 유학생이나 교환 교수가 주를 이루었고 교민은 얼마 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최근에 대학교나 대학병원으로 직장을 얻어 오는 사람들이 늘어나 이제는 교민과 학생이 거의 반반의 비율을 보인다. 젊은 사람들이 많다 보니 해마다 태어나는 아가들도 많다.
미국으로 유학 올 수 있는 여건의 사람들이니 출산도 도울 겸 여행도 할 겸 부모님들이 오시는 경우가 많다. 큰 도시에서는 산후 도우미를 전문으로 하시는 한국분들을 고용할 수 있다는데 우리 동네같이 작은 도시에는 꿈같은 이야기다. 큰 도시에는 몇개씩 있는 한국슈퍼마켓도 여기는 없다. 그러니 한국에서 누가 올 수 없는 상황이면 부부가 둘이 감당해야 한다. 같은 구역 식구들이 조금씩 돕기는 했어도 각자 바쁜 삶을 사느라 맡아놓고 나서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번에 한 가정이 출산하는 과정에서 에피듀랄(epidural) 부작용으로 산모가 다시 입원하는 사건이 있었다. 양가 부모님들도 한국에서 오실 수 없어 부부가 고생을 많이 했다. 그 소식을 듣고 음식이라도 정기적으로 해 주려고 뜻이 맞는 친구 몇이 “산후 도우미” 카톡방을 만들었다.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함께하겠다고 하여 열 명의 ‘아줌마’가 산후 도우미 방에 들어왔다. 열 명이나 되니 한 번씩 순서를 맡았는데도 3주간 그 집에 음식을 배달할 수 있었다. 뜻밖의 도움을 받은 그 가정은 고마워 어쩔 줄 몰라 했다. 보스턴으로 학교를 옮기게 되어 떠나가면서도 우리들의 도움을 잊지 못할 거라고 거푸 인사했다.
돌아보니 이번 주에 예정일인 가정이 또 있었고 임신 중인 가정이 서너 가정이 더 있었다. 돕는 즐거움을 맛본 ‘아줌마’들이 “산후 도우미” 사역을 계속하기로 마음을 모았다. 나도 첫애를 낳았을 때 교회 식구들이 돌아가며 미역국을 해 주었던 기억이 났다. 엄마도 없는 이국땅에서 아이를 끌어안고 어쩔줄 몰라 할 때 받았던 도움은 평생 잊지 못할 감격이었다. 이번에 아기를 낳은 집은 별 탈 없이 산모나 아가 모두 건강하다고 한다. 미역국이 겹치거나 모자라지 않게 이삼일 간격으로 당번을 정했다. 내일은 내 순서다. 사골을 하루종일 고아 국물을 내놓고 미역을 물에 담가 두었다. 산모가 맛있게 먹을 생각을 하니 콧노래가 절로 난다.
우리들의 움직임을 보고 교회 안에서 임신부들의 표정이 밝아지고 있다. 미리 찾아와 우리들의 수고에 감사하는 자매도 있다. 그들의 정보를 미리 수집하여 기록해 놓았다. 이제 막 임신한 자매부터 제법 배가 불룩한 자매까지 줄 지어져 있다. 구월까지는 쉬었다 시월부터는 매달 도우미로 뛰어야 할 모양이다. 도우미 방의 아줌마들 표정도 벙글벙글이다. 우리들의 작은 정성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커다란 감사로 받아 들여지는 모습에 우리가 더 큰 은혜를 받고 있다.
첫댓글 참으로 좋은일을 실천 하십니다 타국에서 출산하는 딸같은 산모를 보살피시는 그 깊은사랑에 감사를느낍니다
주님의 축복을 받은
세상의 멋진 어머니들 이십니다
그곳에
늘 남풍이 불기를~~~
감사합니다. 딸애 때 경험이 있어 수월하게 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일입니다. 봉사를 받는 사람보다 봉사할 사람들이 더 행복해 하시니 큰 복을 받을 봉사입니다. 단톡방이란 늘 시끄럽다고만 생각했는데 바로 그런 일을 할 때 필요한 방이네요.
네. 단톡방이 있어 의견 나누고 스케줄 짜는 일이 수월합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손을 보태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