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틱낫한 스님의 서울 방문과 달라이 라마의 저서들은 한국의 수행 붐 조성에 일조하였습니다.
그걸 보고 느낀 것이 우리 나라에도 한국불교의 특색을 가진 국제적인 선 센터를 만들어 한 5년동안 프로그램을 짜서 국내인부터 교육시키면 외국인도 저절로 배우러 오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틱낫한 스님의 <화>라는 책은 화를 삭히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지만 부처님께서는 애초부터 화라는 게 없고 오직 연민을 가질 뿐이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어느 동네에서는 환대와 선물을 받고 다른 동네에서는 모욕을 선물로 받았지만 좋은 선물, 나쁜 선물도 받지 않았습니다.
분별심을 여의었으니 부처님께서는 자신을 욕했던 동네 사람과 욕을 듣고 분을 삭이지 못하는 아난에게 모두 연민을 느낀 겁니다.
공을 깨달으면 분노와 미움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자비와 연민으로 반응합니다.
자(慈)는 상대방을 즐겁게 하는 것이며, 비(悲)는 상대방의 괴로움을 덜어주는 것입니다.
남에 대한 자비심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며, 반대로 증오와 미움은 엄청난 자기 학대입니다.
천주교에서 “내 탓이오” 운동을 벌인 적이 있지만, <육조단경>에는 “남의 허물 보지 말고 자기 허물을 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는 “자기 희생”이 아니라 “자기 사랑”을 강조합니다.
자기를 아는 사람이라야 남도 사랑하는 게 가능합니다.
결국 남을 돕는 것은 나를 위하는 일인 겁니다.
본래 부처의 효능이 이와 같은 것입니다.
손가락이 아닌 달을 바로 보기 위해서는 즐겁고 슬프고, 나다 너다, 천하고 귀하다 하는 양변의 사고를 버려야 합니다.
남과 비교하는 마음을 버릴 때 스스로가 짓는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