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
"어째서 .."
"...좋아하는 사람 있어.
학교에서 봐서 알려나 모르겠지만
수원에 노혜성이라고 , 좋아하는 오빠 있어."
"...."
"잊지 못했는데 혼자 이렇게 도망 온거야.
진짜 좋아하는데 어쩔 수 없이 온거야.
그래서 여기서까지 누굴 좋아하고 그런거 못해."
"...."
"미안. 친구로 지내자.
처음부터 우린 친구였잖냐."
거짓을 고했다.
마음 아파할 공차성이 마음에 내심 걸렸지만
그 마음을 받아들일 순 없었다.
그냥 친구로써 지내는게 훨씬 편했다.
..
학교는 시험기간임에도 불구하고
공차성 고백타임에 대한 말이 여기저기 퍼져나갔다.
그 상대가 나라는 것도.
"저기, 지류야."
"응"
"...차성이 싫어?"
"아니, 좋아."
"그런데 왜 .."
"이성으로썬 아니야."
"..."
"적어도 현재는.."
..
시험이 끝나자마자 난 홀로 교실에서 빠져나왔다.
카페 일이 있고 나서 왠지모르게 가까이 하기가 좀 그랬다.
공차성은 더더욱 불편했고....
"여지류?"
집으로 가는 길, 내 이름이 들려오는가 하면
그 녀석이었다.
그 . ..
"정요한?"
"내 이름 기억 해주네."
"픽. 그땐 고마웠어."
"별 말씀을. 여자를 위한 일이라면 -"
"미친새끼. 꼭 깨요, 깨."
"풋. 집에 가냐? 오늘은 왜 혼자냐"
"그냥. 같이 가줄려고?"
"악. 그거 위험한 발언인데 !!!!
난 아직 혈기왕ㅅ-.."
퍽.
결국 한대 때릴 수 밖에 없었다.
"꼭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크응. 아프잖아 !!"
"아프라고 때린거야.
누가 그런 말 하랬냐?
갈 길 가. 뒤에 후밴지 선밴지는 몰라도 기다리는데?"
"됬어. 너랑 가는게 좋아."
"꺼지라고. 또 맞을래?"
"아아. 알았다고! 다음에 보자~"
느끼한 미소와 함께 선밴지 후밴지 모를 녀석들과 사라졌다.
보긴 뭘봐.
느끼한 변태 새끼.
시험은 나름대로 잘 쳤고
이젠 뭘한다,..
"하아."
몸도 나른한게 잠이 올려나 보다.
공차성.
...공차성?
"미안하게 만드는 녀석."
그때 그 눈빛을 잊을 수 없었다.
아팠지만 좋아한다는 그런 알 수 없는 눈빛.
Trrrr...
"...으음...누구.."
- 잤어?
"...누구.."
- 현호
"..아..호구나...왠일이야.."
- 이 자식 너무 아프게 울어서
"..."
공차성을 말하는 걸까.
이자식이란.
..
- 와주면 안되냐
"미안"
- 이 자식 진짜 ..
"호야. 현호야. 너네가 다독여줘.
그 녀석 너네가 꽉 잡고 있으라고."
- ..
"아직은 아니라네, 내 심장이."
달칵.
이른 새벽 , 현호에게 걸려온 전화는
울고 있다는 공차성 자식의 소식이었다.
나 같은 년 때문에 왜 우냐.
괜히 미안해지게...
.
"시험 결과는 모두 알고 있을거라 생각되지만
게시판에 공개 되었으니 궁금한 사람들은 가서 봐도 좋다.
이제 너희들은 마지막 동계 축제가 남아있다.
너희들의 끼를 떨쳐보도록 하거라.
아, 그리고 밴드부는 오늘부터 당장 시작해야 할거야.
다음달 초에 바로 축제가 시작 될테니깐."
"네."
차윤이만 대답했다.
나도 같은 밴드부인데도 불구하고.
시험이 끝났다는 이유하에
3학년들은 오전 수업만 하고 마쳤다.
물론 축제가 시작 될 무렵엔 언제 마칠지 가늠할 수 없지만.
"밴드부실 갈거지?"
"...응."
어색했다.
고작 공차성 마음 받아들이지 않는 일로 인해서
얘들과 나 사이가 이렇게 벌어질 줄은 몰랐다.
한달동안 어떻게 지내야 할까.
...뭐, 혼자인거 익숙하지만.
해바라기.
"다들 와 있었구나 !"
"여 - 왔냐. 오늘은 그냥 놀자고~
내일부터 시작하는거야.
작사는 누가 할테냐 !!"
현호의 밝은 목소리에 내심 안심 되었다.
새벽에 걸려온 현호의 목소리는
결코 밝지 않았기에.
"보컬이 작사해.
곡은 우리가 붙힐테니깐."
공차성의 한 마디.
"그런데 세 곡 지어야대."
유린의 한 마디.
"발라드 둘 , 댄스 하나."
윤성영의 한 마디.
"...오키."
처음인에 큰 일을 짊어지는건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이게 벌이라면 참을 만 했다.
공차성을 아프게 한 벌이라면
까짓거 할 수 있었다.
"그럼 갈게.
난 집에서 조용히 작사 할테니깐."
"..."
무반응.
피식.
..
"우리 언제까지 지류한테 이렇게 굴거야."
"받아줄때 까지."
"도윤결, 그건 너무 심하잖아!!
진심이 아닌 마음을 어떻게 .."
"그럼 저 자식은?!"
"...하. 도윤결 류유린 너네 제안에 동의 했긴 했지만
이건 아니야.
짝사랑은 흔한 일이잖아.
혼자서 좋아하는 일은 흔해.
좋아하지도 않는 마음을 돌린다는 건.
그 마음을 억지로라도 받는 다는 건.
지류에게 너무 미안하잖아.
지류가 너무 .. 불쌍하잖아."
"공차윤. 그럼 여기서 나가던지.
여지류 한테 가던지 !!"
"...그만해라."
"정말, 이해를 못하겠다.
작사하는거 도와주러 갈거다, 난."
"공차윤."
밴드부실을 나가려던 공차윤의 발목을 붙잡는 현호.
"여지류 힘으로 하게 냅둬."
"처음일거야.
작사하는거 서툴지도 몰라.
도와줄거야.난, 여지류 친구니깐."
"몇 년 친구 보다 고작 몇 안된 친구라는 거냐."
"...너희의 행동이 바르지 못해."
분열.
그들 사이에서 사랑 이란 이름 아래 분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딩동.
- 지류야 !!! 나야 !!
집에 돌아와서 씻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작사 하기 위해 자리를 잡았건만
누군가 왔다.
그건 공차윤.
"왜왔냐."
"난 지류랑 있는게 좋으니깐~"
"...픽."
"작사 할려고 했었어?!"
"응."
"아하! 그럼 난 요리 해야지~헤헤.
지류야, 배고프지 !! 나랑 같이 점심 먹자!
내가 맛있게 해줄게! 히히."
즐거워 보였다.
왜 날 택해서 왔을까.
그래도 자신의 핏줄을 택해야 하지 않았나?
..고작 몇 일 안된 나 보다
몇 년인 그 자식들을 택해야 했는데.
알 수 없는 녀석.
곰곰히 생각하다가 생각이 나는 대로
그 느낌을 살려 혼자 끄적였다.
앞뒤 맞지 않더라도
일단 적어 놓고 보자는 생각하에
적긴 적었지만 나중에 어떻게 수정을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군.
"지류야 !!! 밥먹자."
"어? 어."
부엌으로 들어선 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와. 이거 정말 니가 다했어?"
"그럼 ! 헤헤. 두시간이면 충분하다구!"
"맛은 어때?"
"당연 최고지! 히히. 먹어봐, 먹어봐"
"응."
자리에 앉아 숟가락을 들고
우선 찌개로 손이 먼저 갔다.
후릅.
"...어때?"
"..음.."
"맛 없어? 힝"
"풋. 맛있어. 최고야."
"정말?! 히히."
"응. 밥 먹자. 잘 먹을께."
"웅! 헤헤"
어떻게 하면 너처럼 귀여울 수 있냐.
밝은 분위기 하며.
난 죽어도 그렇게는 안되겠지.
"잘 먹었어. 설거지는 내가 할게."
"응? 아냐아냐 ! 내가 할게 !
작사 하고 있으세요! 히히"
"괜찮은데 ... 가서 쉬고 있어."
"괜찮대두 ! 어서어서. 나 화낸다?!"
"픽. 알았어."
고집이 센 차윤이.
하지만 귀여우니깐 용서.
끄적 끄적.
"작사는 잘 되가?"
"어? 응."
"봐도 되?"
"..아니. 다음에"
"웅히히."
"공차윤"
"응?"
"왜 왔냐?"
"..."
"왜 그녀석들 버리고 나한테 왔냐?"
"..난 지류 편이니깐.
지류 옆엔 아무도 없잖아. 히히"
어색했다.
내 옆엔 항상 아무도 없었는데
오늘 따라 내 옆에 있는 차윤이 왜 이렇게 어색한지.
...
"난 누군가가 내 옆에 있는게 어색해."
"...."
"하지만 좋구나, 이런 느낌."
"응?"
"처음이야.
누가 내 옆에서 이렇게 있어준거."
"....정말?"
"응. 힘들거나 외롭거나 그럴때
부모님도 친구도 알아주지 않았어.
그래서 항상 혼자였거든."
"...지류야."
"누군가가 내 옆에 있다는게 어색하긴 하지만
이런 느낌, 좋아. 처음 느끼는 거지만 너무 좋아."
"내가 ! .. 내가 지류 옆에 있어줄께 !!
다른 얘들이 뭐라구 해두
난 지류 편이 될거야 !!"
"픽. 그러다가 얘들 너 싫어한다?"
"흥, 난 지류만 있으면 되 ! 헤헤"
"귀여워. 이만 가. 어두워 지겠다."
"그치만.."
"괜찮아, 바래다 줘?"
"아니아니 !! 내일 학교에서 봐 !"
바래다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사양하는 차윤이의 모습.
보이지 않을 때 까지 기다렸다가 오피스텔로 들어갈려던 찰나
"금방전에 나왔던 년 공차윤 맞지"
"그런거 같은데?"
"날잡았다. 저년 쫒아가."
"오키 ! 가자. 오늘 공차윤 제대로 잡아야지~"
"오호호."
쟤들 지금.
공차윤 이랬나?
난 재수없는 이 여자 무리들의 뒤를 따라갔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몰려 왔기 때문에.
"꺅. 뭐야?!"
"공차윤, 씨바 날잡았어 !!"
"뭐?! 이거 안놔?! 아악. "
"공차성이 니 빽이냐?
현호 윤성영 도윤결이 니 빽이냐?! 앙?!"
"씨바, 그 새끼들이 무슨 내 빽 - .. 꺅."
뒤에서 지켜보고 있잖니
어두운 골목이여서 좀 처럼 보이질 않았다.
에휴.
"그만, 거기서 그만 둬."
"썅. 거기 누구야?!"
"나 공차윤 친구"
"같이 처 맞을래? 꺼져"
"뭐 믿고 나대냐? 너나 꺼져.
공차윤 쌍둥이가 공차성인거 알면서
이래도 되는건가 몰라?
공차성 알면 찾아서 죽일텐데?"
"푸하하. 저년 뭐래냐.
공차성이 공차윤을 위해서 뭐 하는거 봣냐?"
"키킥. 그냥 살짝만 쓸어.
이상한 미친년 튀어나와서 제대로 못 쓸겠다."
아아. 귀찮게 됬어.
이런 식으로 계속 움직이면 곤란한데.
뭐, 여자들이여서 다행이기도 하지만.
별 것 아닌 것들이.
"뭐,. 뭐야."
"상대가 남자가 아닌 이상.
그 누가 덤벼도 내가 이겨.
그만 꺼지지 그러냐."
"씨바."
"욕 할려면 제대로 하던가. 씨바가 뭐냐, 씨바야.
안꺼져?!"
"킥."
"지류야 !!!!"
빡.
"윽."
옆구리를 제대로 맞았다.
다행이 각목이든 뭐든 무기는 아니어서 한시름 놓았지만
이년 주먹에 제대로 힘줬나 보다.
비틀.
"지, 지류야 !!!"
"쓸어"
차윤에게 다가가는 미친년들을 뿌리치고
차윤을 감쌌다.
그냥, 뭐랄까.
친구여서.....? 풋.
퍽. 퍽.
"흐읍. 지류야, 나와."
"쉿. 조용..해."
"뭐라고 짓걸여?!"
"크윽. 씨발, 너네 다 뒤졌어."
"그 꼴로? 킥.
딴 얘들 없을 때 이러지
함부로 우리가 건들이겠냐?"
"지...지류야."
"너보다 내가 다친게 훨 나아.
그러니깐 쉿. 아무말 하지마."
몇 분을 맞았을까.
이제서야 분이 풀렸는지 가버린 년들.
픽.
물론 명찰 하나 떨어뜨리는 것은 잊지 않고.
뒤졌어.
"괜찮아? 응?"
"응. 것봐. 데려다 준다고 했을 때 말 들었어야지. 퉷."
"그래두 .. 흑. 많이 아프지. 일어날 수 있겠어?"
"괜찮으니깐 걱정말고.
교복에 피 묻어서 어쩌냐.
집에서 혼나?"
"왜 날 걱정해 ! 바보바보!!"
"픽. 늦었다. 택시 타고 바로가.
또 다치면 어쩌려고."
"치, 알았어. 내일 아침에 올게 !
학교 같이 갈거지?!"
"물론."
눈 앞에서 택시 타고 가는 모습을 확인 한 후
바닥에 떨어져 있는 명찰을 주웠다.
"..한우림이라.."
어렵지 않아.
어디서 뭘 하며 사는지.
Trrrr..
- 네.
"저에요."
-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다름이 아니라 한우림에 대해서 조사해줘요.
아, 깊게 들어갈 건 없고 그냥 학년반 정도?"
- 10분 안에 연락 드리겠습니다.
피가 왤케 안 멈추냐. 큭.
일성 대신 막판에 싸우고 다쳤을 때는
잘만 멈춰주더니.
아아, 힘들다 정말.
Trrrr..
"알아내셨어요?"
- 아가씨랑 같은 학교 학생입니다.
2학년 11반 이네요.
"감사합니다. 그럼 -"
- 저, 아가씨.
"네?"
- ...언제..돌아오실 겁니까.
"..패스. 죄송해요. 답 못해드려서.
건강하게 지내세요 ! 다음에 한 번 연락 드리겠습니다~"
달칵.
죄송.
아저씨 정말 죄송.
무례한 절 이해해주세요! 하하.
벽에 기대어 어두운 하늘을 바라봤다.
이 시간,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읏샤. 으읏.
샹년들. 세게도 밟았다, 씨발."
...
쓰라린 상처로 인해 기분이 드러웠지만
회복 되는 즉지 혼내 주기로 다짐하고
집에 들어와 샤워한 후
간단하게 치료하고 자버렸다.
..
"바보."
"뭐야?"
"문도 안 잠그고 자면 어떻해!"
"괜찮아. 아무도 안 와."
"지류는 정말 바보!"
"콱, 맞을래?"
"이잉. 잘못했져"
"귀여운척 사양."
"치. 그나저나 괜찮아?!
얼굴에도 상처 났네!"
"괜찮으니깐 신경 쓰지 마세요.
옆구리가 관건이긴 한데
안 건들이면 괜찮으니깐
뭐, 상관없어."
"...미안."
"괜찮다니깐 그런다.
아아. 오랫만에 학교 오는 것 같은 이 느낌."
"지류는 항상 오던 말던 하니깐!
아니면 휑 ~ 하니 가버리니깐."
이런 저런 행동을 취하며 날 웃게 해보이려는 차윤의 모습.
웃어줄 수 밖에 없었다.
"지류야 ! 작사는 했어?"
"응, 하나."
"에에. 나머지는!"
"오늘이나 내일 중으로 끝내야 .."
"오늘내로 끝내."
해바라기실로 가려던 길에
나머지 얘들을 만났다.
오늘 내로 작사를 마치라는 공차성.
씨익.
"그건 무리잖아!"
"오키."
"지류야!"
"나한테 무리라는 건 없어."
"그치만 아프 -"
"아아. 연습이나 하자 !"
급히 밴드부실로 들어왔고
자리 잡고 앉아서 펜을 들었다.
하얀 종이와 함께.
두 번째 가사는 -..
끄적끄적.
끄적끄적.
한창 시끄러운 분위기 속에서
나는 잘도 적어 나갔다.
드르륵.
다른 얘들은 연습하느라 느끼지 못했고
그나마 입구와 가까운 곳에 있었던 나는
문이 열리는 소리에 그 쪽으로 자연스레 시선이 갔다.
"누구"
"아, 저.."
"여기 관계자 외 출입 금진데."
"..차성이 보러 .. 왔는데요?"
"공차성? 야. 공차성 ! 니 손님이다."
악기를 연주하다 말고 여기로 시선 집중.
공차성은 눈이 커지며 이 쪽으로 다가왔다.
"오빠 !"
"왔냐? 오늘부터야?"
"응 ! 헤헤. 나 여기 있어두 되지?"
"그럼. 저기 앉아서 구경해!
빨리 연습 끝내고 놀아줄테니깐."
"웅!"
뭐야.
관계자 외 출입 금지잖아.
쟨 특별한가? 픽.
그 얘는 소파로 와서 살며시 앉았고
내 손에 들려있는 종이를 힐끔 쳐다봤다.
휙.
"보지마."
"네?"
"내가 작사한거 아무도 본 사람 없으니깐.
너도 안 된다는 소리야."
"...아..네. 죄송해요."
"괜찮아."
여지류.
너 여기 오고 나서 괜찮다는 말 존나 많이 한다.
뭐가 그렇게 괜찮냐.
니가 뭐 그렇게 대단해서.
끄적끄적.
"지류야, 쉬어가면서해."
"어? 어."
"언니, 안녕하세요."
"왔냐."
"..네."
"그럼 놀다 가던지."
처음 보는 차가운 모습이었다.
차윤이는 이 얘에게 왜 이렇게 차갑게 대하는 걸까.
"차윤아, 넌 여기서 무슨 담당이야?"
"음, 그냥 의상? 호호"
"아하. 코디네이터 그런거네."
"응 !"
"어울려."
"정말?!"
"어."
Trrr...
요즘 왜 이렇게 전화가..
응? 왠 지역 번호.
여긴...
"네."
- 이순애 할머님 보호자 되시나요?
"네? 보호자는 아니고 손녀 입니다만."
- 아. 연락 닿는 곳이 여기 밖에 없네요.
** 병원인데 오실 수 있으세요?
"...병..원이라뇨."
- 자세한건 병원에서 하도록 하죠.
하.
뭐야.
할머니가 왜 . ..
"지류야, 왜 그래?"
"..나.. 잠깐 갔다 올게."
"응? 어딜?"
"..멀리. 쫌 멀리."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거칠게 열었다.
"작사 오늘 까지야. 더이상 안되."
...너 , 끝까지.
"한 번만 말해도 알아들으니깐
보채지마, 짜증나."
"연습 소홀히 하고 가는 니 잘못 아닌가"
"...이딴 연습 보다 더 중요한 거야."
심했나?
심했나 보다.
얘들 표정이 장난 아닌데?
터벅 터벅.
찰싹.
세진 않았다.
하지만 어제 다친 내 몸 상태로써는
좀 충격이랄까.
"안유원."
"이게 이딴 거야?"
"적어도 지금은."
"뭐가 그렇게 바쁜지는 몰라도
작사에만 열중 해야 하는거 아니야?"
"픽. 너네 지금 웃긴거 알아?
사람 하나 차였다고 해서
여럿이 달려들 필요 있니?
그거 충분히 웃기는 -"
팟.
"읏."
"지류야 !! 도윤결 !!!!"
잠깐 쉬는 타임이었나 보다.
작은 생수병의 물을 벌컥 마시다가
그 생수병을 나에게 던져 버린 도윤결.
하필 맞아도 .. 어째서 옆구리를..
"하아. 어떻게 치료한 거야.
피 세잖어 !!!"
"읏. 괜찮아. 나 급하니깐 가봐야해.
이깟거 .
..작사한거 보관 좀 해줘."
"응. 조심해서 다녀와.
지금 묻진 않을게."
"역시 넌."
히죽 웃는 차윤을 뒤로하고
날 무관심 하게, 차갑게 보는 얘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로
그 곳을 빠져나왔다.
"으읏. 샹.
하필 옆구리냐."
..
"저거 뭐야."
"..."
"공차윤, 저 피 뭐냐고."
"공차성, 궁금해졌니?
지류의 피가 궁금해졌어?"
"공차윤."
"너네들도 그러는거 아니야.
공차성이 뭔데 이래?
한 번 차였다고 해서 친구를 냉정하게 대해?
한 번 차인게 대수야? 응?
실망이야, 정말."
"공차윤. 말 돌리지 마.
저거 왜그래 !!!"
"뭐 !!! 왜 !! 말하면 니가 어쩔 건데.
니가 말하면 저 상처 돌릴 수 있어?!"
"......"
"너네가 이런 행동만 하지 않았으면
적어도 지류가 다칠 일은 없었을 거 아냐.
나 때문에 지류가 다칠 일 .. 따윈.. 흑."
..
학교에서 나오긴 했는데
버스타고 어떡해가.
4시간이나 걸리는데, 젠장.
끼익.
"땡땡이?"
"아. 그래! 야. 이것 좀 빌려줘!!!"
"뭐,뭐?! 이거 놔! 태워 줄 수는 있어.
"샹. 그럼 존나 세게 달려"
"오케이. 목적지는?"
"경북. 일단 대구 방향으로 고고"
"에? 거기까지?!"
"싫음 나와, 내가 -"
"아, 아니."
뭐니 뭐니 해도 속도는 바이크가 최고지.
학교를 나와 어떻게 가야 빠를지 생각하고 있던 중
정요한이 내 앞에 섰다.
물론 바이크와 함께.
왕복으로 다녀오기 힘들텐데.
다음에 밥 한끼 사주지뭐 !
차가운 바람이 내 몸을 스쳐지나갔다.
몸이 덜덜 떨리긴 했지만
그건 생각지도 않았다.
할머니.
..어째서 할머니가 병원에 계시는지 그 걱정부터 앞섰다.
끼익.
"여기 대구긴 한데. 이젠 어디로?"
"내려. 뒤에 타."
"엑. 뭐?! 남자가 가오가 있지!!
"너 여기 길 아냐? 헤맨다고 시간 끌어.
그냥 내 뒤에 타. 그게 더 빨라."
"에씨."
결국 자리를 바꿨고 난 달렸다.
최대한 낼 수 있는 속도로.
..
끼익.
"기다려"
도착하자마자 난 병원으로 뛰쳐 들어갔다.
그리고 안내데스크에서 할머니 이름을 말했더니
4층 수술실로 가라고 하신다.
..수술실..이라니.
"어디가.. 아파서 오셨는데요?"
"교통사고세요.
밭에서 일하시다가 오시는 길에
작은 승용차에게 치이셨다고 근처 밭에서 일하시던
주민 분이 .."
"...그 승용차 주인은요."
"아쉽게도 뺑소니.."
씨발.
뭐 이런 개 같은.
그딴 시골에서 뺑소니가 말이되?
...어이없어.
"..많이..다치셨나요."
"우선 수술 결과를 봐야만."
"꼭 살려주셔야 해요.
돈은 드릴테니깐."
도착하고 두 시간을 기다렸다.
왜 이래.
아직은 아니야.
할머니.
징 -
수술실 문이 열리고 의사선생님이 나왔다.
"선생님, 저희 할머니는요?!"
"다행이 출혈이 멈춰 한 시름 놓았습니다.
하지만 연세도 꽤 있으시니깐 최대한 안정을 -"
"네, 네. 살려만 주세요.
아직은 아니에요."
"학생, 걱정 하지 마세요.
오늘은 푹 주무시고 내일쯤 깨실겁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할머니는 수술실에서 나와 일반 병실로 옮겨지셨다.
머리엔 붕대를.
팔엔 깁스를.
...정말 가지가지한다. 응?
조심 좀 하지 그랬어.
일 하지 마라고 그렇게 말렸는데.
..내가 못 살아.
"여지류, 안가냐?"
"어? 어. 그냥 올라가.
나중에 혼자 서울 갈테니깐.
그만 가봐. 고마웠다?"
"고마우면 다음에 밥사"
"엉. 그만 가봐라."
"오냐."
병원 밖에서 시끄러운 바이크가 출발 하는 소리가 들렸고
순간 인상이 찌푸려 졌다가 풀렸다.
미워 할 수 없는 녀석이라니깐.
삐 - 삐 - 삐 -.
가만히 누워있는 할머니의 두 손을 꼬옥 잡았다.
"왜 이렇게 말랐어.
뭐 좀 먹으라니깐.
제대로 챙겨 먹지도 않았지?
바보.
..일도 하지 말랬는데 하구.
정말 바보야, 할머니는."
...
의사 선생님 말대로 그 다음날 할머니는 깨어났고
다행이 날 알아봤다.
하, 다행이야 정말.
으. 어지러워.
"한 두달간 정도는 입원하셔야 합니다."
"네, 할머니. 내가 있어줄게."
"학교는"
"괜찮어. 할머니가 아픈데 학교가 왜."
"으이구. 우리 손녀, 많이 컸네.
할미도 챙길 줄 알고"
"그럼 ! 나 이렇게 키워준거 할머닌데."
"착한 것. 근디 교복 옆에 뻘건건 뭐시냐?"
"어? 아. 아무것도 아니야 ! 미술 하다가 뛰쳐나오는 바람에
빨간 물감 물 묻은 것 뿐이야!"
"그려? 집에 살짝 다녀와.
그래도 니 옷 몇 벌은 있으니께"
"응.."
어지러웠던 이유가 있었네.
할머니 걱정으로 내 상처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래도 다행히 교복때문에 출혈이 멈췄나 보다.
읏.
Trrr...
"응"
- 지류야, 괜찮아?
"응."
- 언제..와?
"퇴원할때까지."
- 누구 입원하셨어?
"할머니"
-..아, 오래 안걸리지?
"두달정도"
- 그럼 축제는..
"미안하게 됬다. 그래도 축제 날은 참석 할게.
오늘 작사해서 보내줄테니깐 곡 붙히고
연습하고 있어"
- 밥 챙겨 먹구
"픽. 알았어."
진심으로 날 걱정해주고 챙겨줬다.
이런 대접 받는거 처음인데.
차윤이는 다른가 보다.
...풋.
"읏."
"어머. 학생, 괜찮아요?!
꺅 ,이 피 좀봐! 여태 뭐 하셨어요"
"괜찮아요. 이 까짓거"
"따라와요, 치료해줄테니깐"
응급실로 따라가 대충 손을 쓰고
피 묻은 교복을 입고 할머니집으로 가서
예전에 입었던 옷으로 갈아입고 집 청소 좀 한 후
그렇게 다시 병원으로 왔다.
주무시고 있는 할머니 모습.
"작사나 해서 보내줘야 겠군"
할머니 옆에 보조침대 꺼내서 누운 후
펜과 빈 종이를 찾아 꺼냈다.
..끄적끄적.
"샹. 신나는거 뭘로 하라는 건지"
내 취향이 발라드 쪽이다 보니
신나는건 잘 써지질 않았지만 나름 최선을 다했다.
생각이 나는 대로.
느낌이 나는 대로 쭉 써놓고
수정할 곳은 수정하고.
그리고 보내줬다. 팩스로.
Trrrrr...
- 정말 니가 쓴거야?
"응, 이상해?"
- 아니아니. 정말 잘 썼어!!!히히
지류 너무 귀여워! 댄스곡 안무도 짜야겠는걸?
"..아? 하지마, 그런건."
- 으히히. 기대이상이야!히히
내일 당장 보여줘야겠당!
할머님 간호 잘 해드리구!!!
빨리 돌아와!!나 왕따되ㅠㅠ흑.
"응. 잘지내! 연락 할게."
팩스를 받았는지 바로 차윤이한테 연락이 왔다.
잘 썼다며 오도방정 이란 방정은 다 떨고
안무까지 짜야겠다나 뭐라나.
완전 반대다!!!...휴.
걱정이군. 가자마자 춤 배워야 하는거 아냐? ..픽.
..
"히히"
"뭘 쪼개"
"어? 왜 들어와"
"얘기 좀 하자"
"할 얘기 없어"
"난 있어. 그럼 듣기라도 해"
"..."
차윤이는지류로 부터 받은 팩스를 들고
자신 방으로와서 계속 읇어 보았다.
가사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웃고 있었는데
노크도 없이 들어온 공차성.
달갑지 않았다.
아무리 남매라고는 하지만.
털썩.
"딴건 묻지 않아. 그 피만 말해"
"상관없잖아."
"공차윤"
"지류한테 관심 꺼준거 아니었어?"
"야"
"왜? 피 보니깐 미치겠어?"
"공차윤"
"니가 상관할 필요 없어."
"공차윤"
침묵.
차윤의 표정은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
"...니가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알아.
항상 고백만 받아왔고 매달리는 것들 귀찮아 하는게 너였으니깐.
처음 고백해서 처음 차이고 나니깐 자존심 상하기라도 했어?
그래서 지류한테 그런식으로 외면한거야?
너를 의식해서 행동하는 다른 얘들 또한?!"
"목소리 낮춰. 부모님 올라 오신다."
"정말 어떻게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말 돌리지마.
여지류 옆구리 피 어떻게 된거냐고 물었어."
"지류 다친거에 대해서 묻는 이유가 뭔데?"
"그야... !"
"왜? 좋아해? 사랑하니?
널 처음 찬 여자야.
그래도 좋아? 사랑해?!"
"공차윤 !!!"
"하. 너네들 때문에."
"뭐?"
"..따지고 보면 다 늬들 때문에 다친거라고."
...차윤을 멍하니 바라보는 차성.
한대 얻어 맞은 듯한 그런 표정이었다.
"그런 표정 지어봤자 -"
"누군데"
"몰라"
"누구냐고"
"왠 참견이야 !! 끝났어. 알어?!
지금 알게 됬다고 해서 지류 상처가 나아지니?!"
"...씨발."
"..어두워서 얼굴 못 봤어.
목소리도 기억 안나"
"..많이...다쳤냐."
"몰라. 봤을 땐 그 년이 주먹으로 옆구리 가격 하는 정도였는데
주먹만 아니었나봐. 셔츠가 찢어지고 살이 찢어지고 피가 날 정도면."
"...."
"나, 지류 잘 알아.
만난지 얼마 안됬어도 잘 알 것 같아.
지류한텐 상처 주면 안되.
지금 많이 아파하고 있어."
"...난."
"뭐?"
"상처 받아 아픈 난 안 보이냐, 공차윤?"
"잘났어 정말.
처음인거 가지고 왜 그러냐?
너 보다..."
"..."
"더 아파, 지류는.
뭐 때문에 수원에서 여기까지 왔는지.
뭐 때문에 친구들에게 떠나와야만 했는지.
자세한건 모르지만,
많이 아픈 얘야.
눈동자만 봐도 알 수 있어.
..상처 주면 안되.
무슨 오해로 부터 일이 생기더라도
난, 너희들 편이 아닌 지류 편에 설거야.
너흰 많지만 지류는 혼자가 될테니깐."
"..열녀 났네."
"치. 어서 자러 가시지?
내 방에서 뭐하냐"
"얘기 잘 들었다. 자라, 곰탱아"
"뭐?!"
하여튼, 저 자식은 꼭 기분 드럽게해.
곰탱이가 뭐냐?
아아. 지류는 몸 챙기고 있을려나.
.. 벌써 보고 싶다, 친구야.
....
"나 잠깐 다녀올게"
"..어딜..가는 게냐"
"그냥, 전화하러"
"혹 애비나 애미한텐 하지 말거라"
"어떻게 그래. 그래도 알아야지."
"...일 하는데 신경 쓰이구로.
그냥 냅두라."
"그게 말이되?
하. 알았어. 그럼 친구한테 연락만 하고 올게.
그때 학교에서 그냥 나와가지구"
"그래라"
할머니가 깨어나고 서로 말을 주고 받은지
벌써 2주가 지나가고 있다.
추위 속에 병실은 히터로 빵빵했고
할머니의 상처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아물어 가는 것 같았다.
회복은 느렸지만.....
상처가 아물어도 입원은 더 해있어야 한다나 뭐라나.
..병실에서 나와 비상구 계단 쪽으로 갔다.
차가운 기운이 팍 느꼈지만
화장실이나 로비에서 전화 했다가는
내가 어떤식으로 나올지 예상 할 수가 없어서
비상구 계단으로 나와버렸다.
Trrrr..
-여보세요?
"바빠?"
-누구...지류니?!
"..바쁘냐고"
-하...지류야. 너 지금 어디야!!!
"바쁘냐고 물었어"
-엄마가 안 바쁜 날도 있었니? 지금 어디야 !
"..바쁜데 용케도 전화 받았네."
-걸려오는 전화 거절 하진 않아.
지류야, 도대체 어디야.
너 때문에 이런 식으로 언론에게 집중 받아야겠니?!
"...졌다, 졌어. 내가 엄마한테 두손 두발 다 들었다."
-무슨 소리야.
"..이 매정한 엄마야.
걸려오는 전화는 거절 안해?
그럼 왜 2주전에 전화 안 받았어."
-2주전 전화를 어떻게 기억하니
"...자격없다, 정말. 끈을게"
-자, 잠깐. 지류야 !! 어디냐니깐?!
"알 필요 없잖아. 왜? 신경쓰여?
언론에서 어떻게 짓걸일지?"
-당장 집으로 들어와
그냥 끈어버렸다.
엄마에겐 예의고 뭐고 없었다.
정말 매정한 엄마 같으니라고.
딸 맞아?!
Trrrr...
Trrrr...
-네.
"....그간 바쁘셨어요?"
-지류니? 어디냐. 도대체 왜 나간게냐
"...그간 바쁘셨나요."
-좀 바빴지.
"전화 한 통 받지 못할 만큼요?"
-.....그게 무슨
"다 똑같애.
엄마랑 아빠, 여전해.
일에만 집중하지, 다른곳엔 관심도 없어."
-지류야
"내가 어떻게 해야지 관심을 줄거에요?
내가 어떻게 해야지 !!! .. 신경 써줄거냐고요"
-어디냐. 기사 보내주마. 잠시 회사로 오거라.
"괜히 신경써주는 척 하지마.
일이나 하세요"
-지류야.
"아참. 그리고.
..엄마한테 전해주세요.
엄만 딸 될 자격 없다고.
지류 엄마 될 자격 또한 없다고.
...그리고 아빠도
사위 될 자격 없어."
달칵.
하아.
.. 일이 그렇게 중요해?
사람이 어떻게 되든 말든 ?!
꼭 연락 해야만 안부 묻고.
안하면 먼저 할려는 생각 따윈 없고.
도대체 뭘 원하는거야.
당신들 딸한테서 뭘 원하는거냐고.
나 가진 거라곤 멍청한 친구들이랑 할머니 뿐인데.
...픽.
"왔나"
"응. 친구들이 나 보고싶다고 징징 거리네"
"올라가바라"
"아니, 됬어! 할머니랑 있을래!"
"가시나 안하던 짓 하노.
할머니는 괜찮으니까 올라가보그라"
"....그러다..잘못되면.."
"머카노"
"난 할머니 뿐인데!!!!..
나 없을 때 잘못되면 어쩌자고!!"
"지류야"
"..난 할머니 뿐이란 말이야.
자꾸 가라고만 하지마.
할머니도 나 뿐이잖아. 응?"
"어이구, 우리새끼.
또 울라 그러제.
울지마라잉."
"..치. 어서자. 밤이 깊었어"
"니도 일찍 자라"
"응."
이불을 덮어주고 옆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많이 여윈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있잖니
괜스레 눈물이 나오는 이유는 뭘까.
달칵.
조용히 병실에서 나와
병원 옥상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냥 밤 공기를 마시고 싶어서 -.
물론, 생각할 것도 있고.
치잇.
"후."
오랜만에 펴보는 담배의 맛이 입안을 맴돌았고
난간에 기대어 하늘을 바라봤다.
너무 쌔까만 하늘.
무수히 많이 떠 있는 별들.
서울에선 좀 처럼 볼 수 없는 별들의 수.
"하. 왜 이렇게 힘드냐."
..
"사는게 너무 힘들다, 정말."
Trrrr...
안유원
의외의 전화로 받을까 말까 생각하다가
통화 버튼을 눌러버렸다.
"..."
-...지류..야?
"응"
-잠시..와줄 수 있어?
"무슨 일인데."
-...차윤이가..다쳤어.
"뭐?"
놀랄만도 했다.
멀쩡한 차윤이가 어째서.
"어디냐"
...
할머니가 일어나면 볼 수 있는 곳에
몇 자 적은 종이를 놔두고
급히 서울로 왔다.
택시타고 4시간을 달렸다.
그땐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바이크도 없고 버스고 없는 마당에
눈에 보인 건 택시 뿐.
24만원이라는 거액이 나왔지만 개의치 않고 25만원 던져주고
택시에서 내렸다.
병원으로 뛰어 들어갔다.
"하아. 하아. 307호.. 307..아!
여긴가?"
공차윤.
달칵.
조용히 문을 열고 병실로 들어왔다.
자고있었네.
하긴, 시간이 몇 신데.
하. 어째서 이렇게 다친거야.
곤히 잠들어 있는 차윤의 손을 붙잡고
얼굴을 몇 차례 쳐다보다 나도 그렇게 잠이 든 것 같다.
부스럭.
..부스럭.
"....음.."
"아. 깼어?"
"괜찮아? 어떻게 된거야."
"헤헤. 별거 아니야!
지류가 올 줄은 몰랐어!
누가 전화한거야?"
"유원이가."
"아...헤헤. 어떻게 왔어!"
"택시 타고 달려왔지."
"꺄. 돈 엄청 깨졌겠다!"
"그게 문제냐? 어쩌다 이렇게 다쳤어"
"교통사고야. 뺑소니라고 해야하나? 히히"
"병신. 조심 하지 그랬냐"
"히히"
바보처럼 웃기만 하는 차윤을 보니
속이 터질 것 같다.
저런 바보 누가 데리고 갈지 참 궁금하기도 했고.
"다른 얘들은 병문안 안오냐?"
"...오지 말라고 했어!.."
"그럼 혼자잖냐."
"그래두 괜찮아! 아직은 좀 서먹서먹 하거든.히히"
"내가 있어주고 싶지만 -.."
"아아. 괜찮아! 할머님은 괜찮으셔?!히히
좀 있으면 차성이 자식 올건데, 보고 갈래?"
"아니. 가봐야 겠다.
할머니 일어났을 거야.
몸조리 잘하고, 연습은 잘 되가고 있어?"
"응!...지류랑만 맞추면 끝이야!히히
얘들 다 열심히 잘하고 있어."
"응. 그럼 다음에 보자."
병실에서 나온 난 담배나 한대 피고 가야겠다는 심정에서
비상계단으로 몸을 틀었다.
문은 이미 조금 열려 있었고
밀고 들어가려던 찰나
익숙한 사람의 옆 모습이 내 눈을 사로 잡았다.
미처 문을 열고 들어가지 못했다.
두 사람의 애정행각에 몸이 마비 되었다고나 할까.
병원에서 미친 짓이군.
그냥 딴 곳에서 펴야 할 것 같아서 몸을 돌리려는데
"차성오빠! 요즘 나한테 너무 잘해준당!"
"여자친구한테 이쯤이야."
차성? 공차성?
그럼 지금 내가 본게 공차성 옆모습?
..하. 뭐야.
동생 병문안 왔다가 키스나 하고.
나오려고 하는 것 같아서 재빨리 몸을 숨겼고
생글생글 웃으면서 차윤이 병실로 들어가는
두 사람의 뒷 모습을 내 눈으로 볼 수 있었다.
"픽. 결국 금방 잊을거면서."
무언가 알 수 없는 씁쓸한 감정에
담배 필 마음도 사라졌다.
애초부터 남자들의 마음을 쉽게 믿지도 않았지만
직접 겪으니 뭐라 말 할 수 없는 그런 개같은 기분.
버스를 타고 시골로 내려왔다.
내려 오는 내내 공차성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서 떠나질 않았고
알 수 없는 기분에 괜히 화만 났다.
후.
"할머니, 나 왔어"
"왔나?"
"응. 종이 봤지?"
"오냐. 친구는 괜찮고?"
"심각한 건 아닌 것 같더라."
"그래도 친구 옆에 있어야 되는거 아니가"
"괜찮아. 나중에 다시 가면 되니깐."
"지류야"
"응?"
"애비랑 애미 왔었다."
"뭐?"
엄마랑 아빠가 왔다 갔다고?
어째서?
그렇게 바쁘신 분이 어째서?
"여서방이 니 전화 받고 왔다카데.
지화도 같이 왔고"
"....온지 얼마 안 됬어?"
"아침에 일찍 왔다가 12시쯤에 갔다"
"아..."
"니 왔냐고 묻길래 왔다 카이
어디 갔냐 카데
그캐서 모른다 캣다"
"응, 잘했어. 할머니"
"요즘 집에 안들어가나?
애비랑 애미가 연락오면 집에 보내달라고 카든데"
"아, 그런일이 좀 있어.
걱정할 만큼은 아니니깐 신경쓰지마!"
"지류 믿는데이.
엉뚱한길로 새면 할머니 맘 상하는거 알제!"
"응, 알어."
싱긋 -
웃으며 할머니랑 얘기를 나누면서
마음 한 구석으로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했다.
바쁘신 분들이 찾아 왔다라.
...픽. 그때 전화하길 잘 한건가.
에휴. 모르겠다, 정말.
....
시간은 무척 잘 흘러가는 것 같다.
벌써 11월달이 된 걸 보면.
지금쯤이면 축제 준비로 한창이겠군.
나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될려나.......후.
"할머니, 나 잠시 서울에 옷가지러 갔다 올께."
"갔다가 오지마라!"
"에? 왜그래."
"이젠 괜찮으니께
그냥 친구한테 있으라고"
"아직 할머니-"
"괜찮다캐도!"
"이그. 알았어.
무슨일 생기면 바로 연락해, 알았지?"
"오냐"
"응, 그럼 가볼께. 건강하고. 밥 좀 챙겨먹고!"
"알았다"
이주일 전에 퇴원한 할머니를
집에 조심조심 모시고 와서 정성껏(?) 보살펴 드렸다.
다 떨어져 가는 기름 보일러를
30만원치 채워드렸고
청소는 물론 반찬도 여럿 해놨다.
간소하더라도 챙겨먹을 수 있도록.
걱정된다, 정말.
버스에 올라탄 후.
서울에 도착하기 20분 전 쯤
차윤이에게 전화를 했다.
-지류야!
"어디냐? 연습하고 있어?"
-응! 어디야?!
"서울 도착하기 20분 점.
연습실로 가면 되는거지?"
-응!히히.얘들 다 있어.
그러니깐 어서 와!
차윤이도 입원하지 3주만에 퇴원.
다행이 큰 후유증은 없나 보다.
알게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터미널에 도착한 버스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청홍고로 갔다.
♪
학교에 도착하고 연습실 쪽으로 가까워지면 가까워질 수록
듣기 좋은 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완벽한 곡.
내가 작사한 가사에 저런 곡을 붙혔단 말이지?
훗.
연습실 문을 열기 전에 문에 기대어 눈을 감고 조용히 감상했다.
듣기 좋은 곡.
저 음에 노래까지 부르면 얼마나 완벽 할까.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찬 일이었다.
"누구야?"
음악을 조용히 감상하고 있던
날 건드리는 날카로운 목소리.
걔 였다.
예전에 병원에서 공차성이랑 키스했던.
"해바라기 보컬."
"뭐? 뭐래는거야. 내가 보컬인데?"
"픽. 미쳤냐?"
"차성오빠가 나한테 보컬 하라고 해줬어.
그래서 이때까지 연습 해왔는데?"
"너 누구냐"
"알 필요 없잖아?
비켜, 연습하러 가야하니깐."
비켜서지도 않았는데 날 밀 치고 문을 열며
시끄럽게 등장했다.
음악은 순간 멈추는 듯 했고
금방 들어간 여자의 등장에 모두 시끄럽게 반기는 녀석들이었다.
픽 -.
작은 실소를 터뜨리며 문고리를 잡았을 때
미세하게 열려있던 문틈 사이로
날카로운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참, 그런데 방금 문 밖에서 이상한 여자 봤어."
"이상한 여자?"
"눈 감고 문에 기대어 있는거야.
그래서 내가 누구냐고 했더니,
웃기게도 정말 지가 해바라기 보컬이래"
"...뭐?"
"웃기지 않어? 이렇게 내가 있는데 말이야.
그치 오빠!"
"그럼, 도대체 누구냐?"
"모르겠어. 그런데 이쁘긴 이쁘더라! 나보단 아니지만. 히히.
너무 말라서 재수 없었어. 나 처럼 적당해야 이쁘지. 그치?"
"당연."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잖니 마음이 아팠다.
도대체 왜 아픈거지.
이유를 자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이 상황이 미치도록 싫었다.
왠지 지금 내가 들어가면
비참 할 것만 같은 기분에 문고리를 잡으려던 손을 내려놓고
문에서 한 발 자국씩 멀어졌다.
그랬구나.
나 대신 다른 보컬을 구했던 거야.
그때 그 병원에 있었던 그 순간 부터.
..그런데 왜 나한테 말해주지 않았던 거지?
어째서.
"지류야 !!"
멈칫.
연습실과 조금씩 멀어지는 내 발걸음을 잡는 차윤이의 목소리.
그대로 멈췄지만 차마 뒤돌아 볼 수 없었다.
차윤이만 연습실에서 나온 것 같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얘들이 나와서 내 뒷모습을 보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쉽게 ... 뒤돌아 볼 수 없었다.
"어째서 들어오지 않는거야."
"왜 말해주지 않았어?"
"응?"
"보컬 구했는 것 같은데, 어째서 말해주지 않았냐고."
"지류야, 그게 -.."
"축제가 코앞인데 보컬 자리 비워둘 순 없잖아?
한시라도 빨리 구해서 연습 해야만 했어."
"아, 그래? 뭐. 어찌됬던 잘해봐.
내가 작사한거 망치지만 말라구."
"지류야, 일단 들어와서 얘기 나누자!"
"아니. 더이상 연습실에 발걸음 할 순 없을 것 같아.
너희들 보기에도 좀 그렇고.
할 얘기 있음 연락 하던지, 아님 집에 오던지.
나 갈께."
차윤이가 계속 날 불렀지만
난 끝내 못 들은 척 그 곳에서 빠져나왔고
혼자 넓은 운동장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아무런 생각없이 멍하니 -.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 봤다.
내 마음은 알 수 없는 느낌으로 화만 나 있는데
하늘은 어쩜 저리 깨끗한지.
..
"지금이라도 왔으니깐 보컬을 -.."
"언니, 저 잘 할 수 있어요 ! 왜 굳이 저 여자얘를.."
"요원이도 잘 하잖아.
그냥 우리 이대로 밀고 나가자"
"작사는 지류가 했잖아, 그러니깐 -"
"작사 누가 했던 무슨 상관이냐.
자리 비우면 다 끝난거 아닌가.
우린 급했고 보컬은 없고.
어쩔 수 없잖아?"
"공차성."
"요원아, 그냥 있으면 되."
"응..."
차윤은 화가 났다.
퇴원하고 어느 날 연습실엘 들렸는데
보컬이 정요원 으로 변경 됬다는 소리에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화는 났지만 반박 할 수 없었고
지류에게 알리고 싶었지만
안보이는 곳에서 울 것 같은 지류를 생각해 통보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아니었다.
정요원이 노래를 잘 부른다고 해도
원래 보컬이 돌아왔는데 이러면 곤란하지.
"공차성, 아직도 화난거야? 그런거냐고"
"무슨 소리야."
"너 , 지류 - !"
"닥치고 있어.
이젠 상관없어.
안보이냐? 정요원 내 옆에 있는거."
"거짓말."
"차윤아."
"유린아, 너도 저게 거짓말로 보이지. 응?
저 자식 눈 흔들리고 있잖아. 그치?"
"닥치라고 했어, 난."
"끝까지 실망하게 만드네."
공차윤 한마디에 연습실은 조용해졌고
다들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차윤이가 입원하고 있을 즘
얘들은 모두 지류에 대한 화가 없어 졌고
빨리 돌아오길 기다렸지만
공차성은 아니었다.
이런저런 지류의 소식을 나한테 물어보는 녀석이
왜 지류가 오니깐 안색이 변하는지.
왜 저렇게 싫어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
"여전히 집은 춥네."
오피스텔로 돌아온 난 바로 난방을 틀었고
침실로 가서 가방을 내려다 놓았다.
시선을 화장대로 돌리니
한개의 액자가 있었는데
그 곳엔 수원에 있었을 때 친구들과 함께 찍은 단체 사진이었다.
수원에서도 밴드부였던 나.
그리고 친구들.
이땐 즐거웠어. 행복했다구. 웃음이 넘쳐날 정도로.
날 존중 해줬어.
날 이런식으로 버린 적도, 버림 받은 적도.
배신 당한 적도 없었는데.
일주일 이주일 -...
아니, 네 달이 되도록 잠수 였던 날 ,
그래도 믿어주고 기다려줬던게 친구들이었는데.
얘들은 아닌가보네.
보고싶다.
Trrrrr..
조미원
역시 받을까 말까 고민했다.
후.
"네, 언니"
-잘지내냐
"..당연하죠"
-잘 지낸단 말이지?
"..그럼요."
-그럼 됬다.
"언니!..."
-....
"..친구들도..다..잘지내고 있죠?"
-..일찍도 물어보는 구나.
"....축제는..무사히 마치셨죠..?"
-어. 그런데 밴드부는 참석 안했다.
"..네?"
-보컬이 없는데 무슨 축제냐.
"...언니.."
-다들 기다리고 있어.
보컬을 기다리고 있다고.
화날만도 하고 잊을만도 하고.
다시 구할만도 한데.
모두 널 기다리고 있어.
밥 꼬박 챙겨 먹던 얘들이 한 두 끼씩 안 챙겨먹는가 하면
술 담배 잘 안 했던 얘들이 매일 한병 두병, 한갑 두갑 늘어가는가 하면.
..이래. 이렇게 지내고 있어, 우리.
"...죄송해요, 언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돌아와.
우린 받아줄 준비, 항상 하고 있으니까
"...죄송해요, 언니"
-지류야
"..저...못가요. 미안해서.
볼 면목이 없어서 못가고.
상처를 너무 많이 준 것 같아서 못가요.
가면 더 상처 줄 것 같아서 .. 그래서 .."
-괜찮으니깐 와주면 안되니?
"..헤. 미안요. 언니 정말 미안요.
친구들한테 안부 전해 주시구요.
저..이만 끈어야 겠어요.
얘들이 부르네요 !...죄송해요."
급히 끈었다.
언니가 무슨 말을 하실지 몰랐기 때문에.
계속 들었다간 정말 모든걸 포기하고
다시 돌아갈 것 같은 느낌에
아무 말도 듣지 못하고 그냥 빨리 끈어버렸다.
"...어쩜..이렇게 틀려.
같은 친군데."
..
확실히 느꼈다.
친구에 대한 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