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데뷔에서 현재까지, 음반과 간략한 이력
1978년 발표된 첫 음반 [시인의 마을] 이후, 1985년의 [북한강에서]까지 정 태춘은 2장의 편집음반을 제외하고, 5장의 정규음반을 발표했다. 1987년 한 해 동안 두 장의 편집음반이 발표가 되었으나, 가수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소속 음반사의 기획에 의해 발매가 되었으니 논외로 하도록 하겠다.
7년 간 발표된 5장의 음반을 통해 드러나는 그의 음악세계는 대략 전통과 현대의 조화, 양악과 국악의 결합, 서경과 서정의 공존으로 요약이 된다. 쓰리 핑거 주법을 앞세운 그의 기타 연주는 서양 악기를 서양식 주법으로 연주하지만, 국악 장단과 잘 어우러졌고, 국악 음계에 다양한 현악기를 도입한 점도 형식상 두드러지는 그만의 악기 배치다. 작곡에 있어서도, 포크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클래식 대위법에서 타령 조까지 다양성이 바탕에 깔린 작품들을 내 놓았다. 한 마디로 요약해 범상치 않았다는 거다.
78년에 발표된 그의 1집 [시인의 마을]에서는 머리 곡인 <시인의 마을>과 <사랑하고 싶소>, <촛불>, <서해에서>, <목포의 노래(여드레 팔십 리)> 등이 인기를 얻었고, 2년 뒤인 80년에 내 놓은 [사랑과 인생과 영원의 시]에서는 <산사의 아침(탁발승의 새벽노래)>, <사망부가 (思亡父歌)>가 새로이 인기를 얻었다. 뒤이어 발표된 관조와 읊조림이 돋보이는 3집 [우네]는 특별한 히트 곡은 없었으나, <새벽길>, <우네> 등의 곡이 소폭의 인기를 누렸고, 1집의 <여드레 팔십 리>와 2집의 <탁발승의 새벽노래>가 다시 수록되기도 했다.
84년의 4집에서는 <떠나가는 배(이어도)>가 드디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고, <우리는>, <사랑하는 이에게>를 통해 아내 박 은옥과의 멋진 앙상블을 들려 주었다. 이미 솔로 가수로서 인기를 얻고 있었던 박 은옥이지만 남편과의 하모니를 통해 새로운 모습을 부각시켰고, 이후 정 태춘 · 박 은옥이란 이름은 두 가수의 이름을 연결한 것이 아니라, 그들 이름과는 별개의 고유 명사로 인식되게 된다. 1년이 지나고 발표된 [북한강에서]는 정 태춘에게 있어 음악적 휴지기를 예고하는 음반이었었고, 8년간의 행보를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는 음반이었다. 타이틀 곡인 <북한강에서>는 경기도 태생 - 경기도 평택시 - 이면서, 서울과는 연을 맺지 못한 영원한 이방인 정 태춘의 삶을 안개 낀 북한강에 투영해 보는 듯한 작품이고, 박 은옥의 결 고운 목소리로 불려지는 <봉숭아>는 지난 음반들을 꿰어 온 한국적 정서의 재현을 보여준다.
3년이라는 휴식의 시간이 흐른 후, 정 태춘은 달라진 성향의 음반 [무진 새 노래]로 팬들 앞에 다시 돌아 온다. 서울과 그리 멀지 않은 경기도 평택에 고향을 두고 있는 정 태춘이 이 음반을 통해 시종일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곁에 두고도 기억 속에서 지워버린 따뜻하고 흙 냄새 풍기는 고향의 이야기다. 더불어, 사람의 마음이 잠든 도시 서울의 그늘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자신의 아이 새난슬이에게 맨발로 삼천리 강산 흙 밭을 겅중겅중 뛰어다니라는 소원의 목소리이다. 그리고, 불현듯 10년 전에 만들어 놓았던 노래 한 곡을 들려 준다. 유년기, 청소년기, 청년기를 거치며 보아온 땅의 이야기와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낙관, 올림픽이라는 어수선한 분위기 때문에 대중의 마음에서 사라져 버린 자주적 역사와 통일에 관한 이야기들을 <얘기 2>에 서사시처럼 풀어서 들려주는 것이다. 공·윤의 사전검열에 대한 거부감과 반발심이 이 음반에서 이미 표시가 되는데, <얘기 2>의 3절 가사 중 '영웅이 부르는 압제의 노래' 부분에서 압제라는 단어가 문제가 되어 공·윤이 순화를 지시하자, 녹음 중 아예 가사를 빼 버리고 녹음을 한 것이다. 그래서, 음반 상으로 이 부분은 '영웅이 부르는 000 노래'로 들려진다.
이 음반이 발매가 될 즈음 정 태춘은 공중파 방송이 아닌 특별한 순회공연에 매달리고 있었다. 자신의 히트 곡들을 망라한 콘서트가 아니라 창작 노래 극 [송아지, 송아지 누렁 송아지]를 들고서, 한복에 고무신 신고 북채를 든 채 전국의 대학가와 노동판에 노래 운동가 정 태춘의 모습으로 새로이 선 것이다. 얼룩백이 젖소에게 자리를 빼앗기고도, 묵묵히 시골의 논과 밭을 일구어 온 황소를 다시 주인의 자리에 앉게 하고, 그저 외형상의 우리 문화 살리기가 아닌 풋내와 흙 냄새, 땀냄새로 뒤범벅이 된 민족의 정서를 되살리고자 전국을 고무신 바닥이 닳도록 누비고 다니며, 손이 부르트도록 북을 치고 목이 터져라 노래를 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나도록 전국의 어떤 레코드 가게에도 정 태춘의 새로운 음반은 전시가 되지 않았다. 90년에 [아! 대한민국]이, 이어서 93년에는 [92년, 장마 종로에서]가 발표 되었지만 통칭 불법음반이라는 이름으로 대학가에서나 유통이 이루어졌을 뿐 일반 레코드 가게에서는 전시조차 되지 않았다. 90년에 발표한 [아! 대한민국]이 단 두 곡만 검열에서 통과가 되고 나머지 곡들이 심의반려라는 장벽에 부딪치자 정 태춘은 이 음반을 정식 유통과정이 아닌 사회과학 서적을 다루는 대학가의 서점과 노동현장을 통해 불법 판매에 돌입한 것이다. 그도 모자라, 93년에는 공·윤에 심의조차 신청하지 않은 채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전작과 같은 경로로 배포를 하게 되고 이로 인해 정 태춘은 관계 당국에 고소를 당하는 처지가 된다. 이에 정 태춘은 맞고소라는 강경책으로 검열과의 전면전에 돌입을 하게 되고, 드디어 96년 대법원 판결에 의해 당당히 승리를 쟁취하게 된다.
결코 손에 쥘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겨졌던 두 음반이 동시에 CD로 발매가 되었고, 이 사건을 계기로 국가의 승인 없이는 어떠한 창작물도 대중에게 공개할 수 없었던 문화독재국가 대한민국에서 드디어 사전검열이라는 부조리 악법이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공·윤과의 오랜 법정공방의 후유증을 털어 낸 정 태춘은 98년에 [정동진/건너간다]를 2002년에는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를 발표했다. 고단한 싸움의 시작이었던 그의 음악적 변모가 예전의 모습과 다시 만나며 참여적 색채가 바랬다고 보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그의 음악의 출발이었던 일상에 대한 통찰과 정서의 공유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정 태춘의 행보는 당연한 것으로 판단된다. 시들지 않은 그의 창작욕구와 다시 첫차를 기다리듯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세상을 이야기하는 그의 순수에 기꺼이 찬사를 보낸다. II. 1990년 음반 [아, 대한민국...]
01. 아 대한민국... 02. 떠나는 자들의 서울 03. 우리들의 죽음 04. 일어나라, 열사여 05. 황토 강으로 06. 한여름 밤 07. 인사동 08. 버섯 구름의 노래 09. 형제에게 10. 그대, 행복한가 11. 우리들 세상
1988년 창작 노래 극 [송아지, 송아지 누렁 송아지]의 장기공연을 통해 민중가수 또는, 노래 운동가로 거듭난 정 태춘은 90년 새로운 음반을 발표한다. 앞서도 기술한 바와 같이 공윤의 무자비한 심의에 걸려 난도질 당한 음반 [아! 대한민국]을 공윤의 심의결과를 무시한 채, 단 한 글자의 수정도 없이 불법음반이란 형태로 발매를 감행한 것이다. 음반은 대학가의 사회과학 서적 전문서점을 통해 급속도로 확산이 되었고, 산지기도 어렵지 않게 해당음반을 구할 수가 있었다.
이 음반을 통해 달라진 내면적 성향은 관조가 아닌 분석으로의 시각의 변화와 초월적 언어 구사에서 현실적이고 직설적인 언어로의 문체의 변화 등을 들 수가 있다. 형식적인 면에서는 국악과 양악의 결합도 두드러진다. 서양음악의 사이사이에 양념처럼 국악기를 끼워 넣는 식이 아니라 서양악기의 연주에 국악기 연주형식을 도입한다든지, 적극적인 풍물 타악기의 사용으로 서양 화성과 국악기와의 거리감을 상당히 좁혀 놓았다.
노래하는 대상들은 좀 더 구체화되어 있으며,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한국사회의 전반에 걸쳐 냉철한 시선을 던지는 머리 곡 <아! 대한민국>에서부터, 도시에서 쫓겨나 정처 없이 떠나는 빈민들의 모습, 단칸 셋방의 화재로 꽃다운 목숨을 잃은 두 아이, 의문사 한 대학생, 옥살이 하는 양심수 까지 법치주의 국가 민주주의 공화국 대한민국의 어두운 뒷모습을 낱낱이 고발하고 있다.
만일 이 나라 대한민국이 지난 80년대 중반 양 방송사의 모든 가요 순위 프로그램을 석권했던 어떤 노래의 가사처럼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질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나라였다면, 정 태춘은 구태여 그 노래의 제목을 차용하면서 까지 이 노래를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누구인들 세상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싶어 하지, 그 사회의 추악한 단면들을 들추어 내고 싶겠나.
반항 또는, 저항이라는 단어는 시대가 혼탁할수록, 지배 이데올로기가 부패할수록 힘을 얻고, 대중이 체감하는 임팩트는 강렬해 진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극렬한 저항이 이루어졌던 시기인 60년대의 사회는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저 두 가지 요소를 극명하게 드러냈었다. 한국의 60년대도 여느 국가와 다를 바 없었지만, 총칼을 앞세운 막강한 군부 권력의 폭압으로 인해 지식인 중심의 저항 세력이 들풀처럼 짓밟혀야 했고, 계속해서 이어진 군부의 정권 장악으로 민주주의의 암흑기는 대한민국 헌정사의 전 시기에 걸쳐 이어져야 했다. 이 노래는 정 태춘의 의식 속에 각인된 한국 사회에 대한 총체적 분석이다. 성장일변도를 지향한 경제정책의 후유증으로 도덕성마저 상실한 세상, 분배의 불균형으로 인해 대다수의 빈민 위에 일부의 특권 계층이 군림하는 세상, 치안 부재와 공권력 남용이 뒤엉킨 세상, 국가의 수장이라는 자가 정치적 명예를 위해 신념마저 팔아치운 정치 부도덕의 난장판 세상, 무릎 꿇은 바보들의 머리 위에 가면 쓴 권력만이 자유로운 그네들의 공화국. 가사의 말미, 저들의 공화국이라는 부분은 이 작품 또는, 이 음반 전체를 꿰뚫는 모순의 정체를 정의하는 구절이다. <우리들의 죽음>에서도 다시 언급이 되겠지만, 공화국 설립 이후 단 한번도 국민이 주인인 적이 없었던 허울뿐인 민주주의 때문에 이 음반에서 그려질 모든 비극들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 노래는 또한, 정 태춘이 시적 감수성을 앞세운 서정 가수로 활동을 했던 80년대 가요계에 대한 은근한 비아 냥이기도 하다. 대중 음악이 클래식과 확연히 구분 지어지는 요소 중 형식과 내용의 양면에 걸쳐 영향을 발휘하는 핵심요소는 대중 음악 자체에 잠재된 현실 반영이라는 부분이다. 귀족과 지주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특권 계층의 음악으로 양육되어온 클래식 음악과 달리, 대중 음악은 피지배 무산 계급의 정서 속에서 끈덕지게 자생해 온 민요와 속요의 현대적 표현이다. 그러므로, 대중 음악의 정신은 철저히 민중 정서를 대변해야 하고, 그들의 저항성도 함께 담아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대중 음악계는 그러지 못했다. 정권이 너무 무자비했고, 그 압제의 기간이 너무 길었던 까닭이다.
반공 이데올로기 하나만으로 전 국민의 사상을 통제할 수 있었던 정권이 국민정서를 부추길 수 있는 대중 가요를 지배하는 방식은 가사검열을 통한 합법적인 사전 통제였다. 요즘도 간혹 오래 전에 구입한 해외 음악인들의 음반을 보면 표지의 수록 곡 목록에 화이트 자국이 보인다. 소위 말하는 청취 금지 곡인 것이다.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외국 가수들의 음반에 까지 화이트 질을 해대는 정권이니 자국 가수들에 대한 통제는 어떠했겠는가.
그러나, 정 태춘이 80년대 중반에 발표되어 꾸준히 - 그것이 청자의 의도든, 정권의 의도든 - 애청 되고 있는 관제성 가요의 제목까지 차용해 가며 이 노래를 부르는 의도는 정권의 무자비함에 대한 고발이나 그 노래의 가사가 거짓이었음을 밝히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포함한 대중 음악인들이 독재정권의 압제에 너무 쉽게 예봉을 꺾고, 너무 온순하게 복종해 왔음에 대한 분노의 표현에 가깝다.
이 음반이 나오기 이전 88년에 발표된 [무진 새 노래] 음반의 사전 검열에서 일부 작품의 가사가 문제시 되어 개사를 해야 했던 그이기에 사전검열의 무자비함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송아지, 송아지 누렁 송아지]의 장기 공연과 문화 운동권과의 교류를 통해 대중과의 새로운 소통 방식을 체험한 정 태춘에게는 더 이상 사전검열이 문제시 되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도 그 관제의 통제 아래서 손 쉬운 방식으로만 음악 생활을 이어가려는 대다수 대중 음악인들의 자세는 비굴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아! 대한민국>이라는 제목을 통해 과거 가요계의 비굴함을 질타하고, 이제는 그들도 바뀌어야 함을 힘주어 강조하는 것이다.
정 태춘의 고민은 아마도 도시 빈민들의 삶에서 시작이 된 것 같다. 김 남주, 박 노해, 김 지하 등의 시인들이 척박한 노동현장과 분단현실, 이데올로기의 모순에서부터 반역의 붓을 들었다면, 정 태춘은 그들이 현장에서 돌아와 고단한 몸을 누이는 초라한 움막집에서 진정한 박탈과 불평등을 발견한 것이다.
환락과 자본의 오물이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수도 서울특별시. 그 도시의 뱃속을 조금만 벗어나도, 빈곤의 땟국 물이 흐르는 도시 빈민들의 삶이 있다. 시가 몇 억 짜리 고급 아파트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곳에 무허가 판자촌이 밀집해 있고, 자본은 그 옹색한 보금자리에마저 호시탐탐 군침을 흘린다. 그래서 서울은 화려하면서도 추악한 도시, 독점 재벌과 완벽한 무소유의 알거지들이 동거하는 야누스의 도시다.
이제 그 빈곤의 변두리마저 버리고, 반겨줄 이 없는 곳으로 떠나야 하는 사람들. 무자비한 철거의 몽둥이에 만신창이가 되어 쫓겨난 사람들. 1톤짜리 트럭 한 대도 채우지 못하는 헐 빈한 세간의 귀퉁이에 짐짝처럼 아이들을 태우고 쫓겨가는 도시 빈민의 뒷모습에서 정 태춘은 분노와 경멸, 눈물을 읽어낸다.
신문의 기사를 인용한 정 태춘의 나레이션으로 시작되는 이 곡은 도시빈민의 참담한 삶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비정하다 싶을 정도로 낮고 차분한 선율을 한 꺼풀만 벗겨 내면 바로 그 아래 격앙된 지식인의 분노가 있고, 살 떨리는 도시의 뒷모습이 서슬 퍼런 칼날을 치켜든다.
선진 농업 기술이 도입되지 못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네 식구가 논 900평에 생계를 내맡기고 살았다는 건 입에 풀칠도 못하고 살았다는 말이다. 우루과이 라운드가 이 땅을 침범한 이후 추곡수매가는 점진적으로 하향 조정되어 왔고, 대체 농산물과 고수익 농작물의 도입을 위해 엄청난 국고를 쏟아 부었지만, 정작 결과는 없다. 늘어난 것은 오로지 농가 부채뿐이다.
부쳐먹을 땅덩이라고 해봐야 다섯 마지기가 채 되지 않는 지긋지긋한 가난을 견디다 못해 잘 산다는 도시 서울을 찾았건만, 서울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풍요가 반겨주는 기회의 땅이 아니었고 오히려 마지막 희망마저 강탈하는 유린의 도시였다. 이제 짐 보퉁이 한 켠에 함께 실어갈 아이마저 빼앗겨 버린 이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후반부 아이의 나레이션은 연출이면서도, 가슴을 아리게 한다.
중견 영화 감독 박 광수의 작품 [그 섬에 가고 싶다]는 남해 외딴섬을 배경으로 6.25 동란을 전후해 그 섬마을을 뒤덮었던 과거의 사건으로 인해 결박 당한 섬주민들의 현재를 그린 영화였다. 영화 속 주 무대인 남해의 한 외딴 섬은 전쟁의 포화가 직접적으로 미치지 않았던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막바지에 찾아 든 반공 이데올로기 때문에 섬주민의 절반 이상이 목숨을 잃게 되고, 그 학살의 빌미를 제공한 한 사내는 죽어서도 고향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하는 신세가 된다. 민족에 우선하는 주의, 공동체 의식보다 중요한 이데올로기.
우리가 비극이라 말하는 현대사의 대부분은 반공 이데올로기와 분단현실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한반도의 분단현실이라는 것이 집단간의 이해관계에 의한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주변 열강의 힘겨루기와 세력분할에 의해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동족을 적성국으로 삼는 오욕의 역사를 걸어야 했다. 정권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의와 명분이 필요하다. 군부가 권력을 장악했던 한국의 정치사는 분단과 이데올로기 대립이라는 하나의 축과 재벌 중심의 경제 성장이라는 또 하나의 축을 명분으로 삼아 권력을 유지해왔고, 그 대의명분의 허구를 미화하고 선전하는 것은 언제나 언론의 몫이었다. 1989년 가을에 벌어졌던 조선대 교지 편집장 이 철규 군의 의문사 사건은 정권의 현 주소와 기성 언론의 현실에 대한 가늠자가 되는 사건이었다. 만일, 이 땅의 언론이 권력의 시녀노릇을 하지 않고, 본연의 의무에 충실해 왔다면 이 철규 군의 죽음은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언론은 권력이라는 무장집단의 위용에 전의를 상실하고, 침묵 내지는 충성을 바치며 생명을 유지해 온 경제 집단일 뿐이었다. 정권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그런 기성 언론의 고분고분함에 반하여 전투적이고, 선동적인 대학 언론은 눈에 가시일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89년 한적한 시골의 개울에서 익사 체로 발견된 이 철규 군의 시신은 온몸에 뚜렷하게 나타난 고문의 흔적과 주변인들의 증언을 통해 정보기관의 고문치사라는 여론을 형성했고, 전국적으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는가 하면 대학마다 이 철규 군의 영결식이 치러지는 일대 사건으로 확산이 되었었다. 정 태춘은 이 사건을 소재로 추도가를 만들었고, 곡의 구성에서도 3부 작의 대곡 형식을 취해 비장미를 더 했다. 형식적인 면에서 또 한가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유효 적절한 풍물의 도입인데, 1부와 2부에 걸쳐 비장미를 조성하던 북의 울림이 후반부에 등장하는 꽹과리와 징과 어우러지며 극적 전환을 이루어낸다. 이런 감각적인 전통악기의 도입으로 이 곡은 추도가의 한계를 벗어나 선동과 구호의 힘을 얻어내고, 일시에 분위기를 환기시켜준다.
가사를 통해 구체적인 사건이나 정치적인 구호가 언급되지 않을 뿐이지, 이 노래의 선동성은 음반의 모든 곡을 능가한다. 이 곡은 이 음반의 백미다. 형식면에 있어서는 <일어나라, 열사여>와 자웅을 겨룰 만 하고, 가사 속의 민중 정서는 어떤 작품보다 우수하다. 음반의 후반에 수록된 <우리들 세상>이나, <그대, 행복한가> 등이 좀더 직설적이고, 과격한 어조로 선동을 하기는 하지만, 정제된 가사와 훌륭한 악곡 구성에서는 이 곡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소절마다 출렁거리며 넘쳐 흐르는 변혁과 연대의 의지는 그 질감과 꿈틀거림의 반경에 있어 용 틀임의 위용을 느끼게 한다. 황토 물로 형상화된 민중정서의 힘을 정 태춘은 안다. 해방 후 5년 동안 승전국의 계략으로 철저하게 거세 당한 한국적 민주주의의 힘 또한 잘 안다. 마르크스 혁명 노선이 제 아무리 완벽한 이론이라 한들, 한국적 민중정서와 백 퍼센트 융합할 수 없는 이유는 그 태생과 토양이 다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현대사에 있어 독재정권이 반공 이데올로기를 내세워 전 국민의 사상을 통제하려 했다면, 그에 맞서는 운동권 세력 또한 어리석게도 공산주의를 내세워 정권에 대항했다. 정권이 운동권 세력을 빨갱이라고 매도할 때 대부분의 국민이 그 매도성 발언에 동조한 것은 그들이 주장하는 이론의 근거가 토착성이 없었던 까닭이며, 더불어 실패한 주의인 마르크스 주의의 작위적 해석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 태춘은 그 주의의 공방전이 또 다른 빨갱이 사냥으로 치닫고 있는 90년에 그 주의의 올가미에 발이 묶이지 않은 한국적 민주주의와 가공할 위력의 민중 정서를 변혁의 무기로 들고 나왔다. 봇물처럼 터져 강물을 뒤덮는 민중 정서의 힘과 신명 나는 국악가요의 만남은 이 음반의 곳곳에서 드러나는 최고의 가치이자 미덕이다. 그 가치와 미덕의 정점에 이 곡이 놓여 있다 해도 부족함이 없는 훌륭한 작품이 바로 이 노래 <황토강으로>다.
음반을 통해 정 태춘의 서정성을 맛볼 수 있는 유일한 곡이다. 가족의 일상을 담담히 그려내는 유유자적도 정감이 가고, 날이 선 노래 말들 사이 쉬어갈 수 있는 나무그늘 같은 곡이다.
작사가로서 정 태춘이 데뷔 초기부터 초지 일관 유지해 온 작사의 틀은 서경과 서정의 조화다. 풍경이든, 작가 개인의 심상이든, 듣는 이로 하여금 골몰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려보면서 느끼게 하는 서정적 서경의 시어들. 정 태춘의 가사들이 추상적이면서도 초현실의 밀폐된 자아 속에 머물지 않고 일반 감상자의 공감대 속에 머물 수 있었던 가장 확실한 이유로 부각되어야 할 이런 서경과 서정의 조화는 외부의 환경과 작가 내면의 감수성이 치우침 없이 어우러진 형태로 형상화 되었을 때 진정한 힘을 발휘한다. 첫 음반 [시인의 마을]의 머리 곡이었던 <시인의 마을>이 일상으로부터의 탈피를 꿈꾸는 작가 개인의 심상의 표현임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영상화가 이루어진다든지, 서양 영화 한 편에서 영감을 얻어 완성한 <서해에서>가 작품의 소재와는 상관없이 대한민국 서해의 풍경으로 쉽게 받아들여지는 것도 작가의 서경에 대한 뚜렷한 이해가 동반했기에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전국의 전통 찻집을 다 모아 놓은 만큼의 전통 찻집이 늘어선 곳이 바로 서울의 인사동이다. 인사동은 전통 찻집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세계 문화의 자잘한 거리들이 운집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세계문화의 다양성이 어우러져 새로운 퓨전의 공간을 형성한다는 것은 분명 긍정적 현상이고, 더욱 발전시켜야 할 훌륭한 거리 문화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정 태춘이 인사동을 주목하는 이유는 인사동의 긍정적 측면보다 부정적 측면이 더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인사동에는 전통 찻집 숫자 만큼이나 많은 수의 고가구점과 골동품상이 난립해있다. 이 고가구점과 골동품상들을 통해 생활 가구나 골동품들이 개인의 수집이나, 공간 장식용으로의 유통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대부분 무신경하게 지나치는 사실이 그 곳이 우리 문화를 생명 없는 전시 물로 박제화 하는 전통 말살의 현장이고, 우리 전통문화재가 해외로 밀반출되는 대표적인 통로라는 사실이다. 정 태춘은 두 가지의 관점에서 이 가사를 만들었다. 한 가지는 인사동이라는 시장을 통한 전통의 박제화와 문화재 밀반출에 대한 비판이며, 또 다른 하나는 그 문화재들이 방치되고, 관리되지 않고 있음에 관한 것이다. 가야금 연주를 연상케 하는 경쾌한 기타 연주에 버들피리에서 착안해 개발했다는 독특한 피리 소리와 풍물 타악기가 어우러져 흥겨운 장단을 만들어 내고, 그에 더해지는 풍자성의 가사는 우리 민요의 전통을 고스란히 재현해 준다.
세계 영화사 걸작 중 하나이며, 핵전쟁에 관한 가장 신랄한 블랙 유머로 불리우는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의 [Dr. Strangelove...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은 무기화 된 핵이 존재한다는 자체가 파멸의 공포임을 극명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핵 폭탄의 무자비한 위력은 이미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의해 생생하게 증명이 된 바 있고, 구 소련의 키에프가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이유도 체르노빌 원전에서 벌어진 방사능 유출 사건 때문이다. 구태여 인류 멸망을 다룬 영화들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거의 모든 말세지론의 시나리오들이 핵 전쟁을 중심으로 쓰여지고 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한 순간에 주변을 초토화 시키는 가공할 만한 파괴력 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할 일인데, 핵 폭탄이 진정으로 끔찍한 이유는 영향권 내의 모든 형질을 기형으로 변형시키고, 긴 시간동안 후유증을 남긴다는 사실이다. 정 태춘은 그 핵의 공포를 우리 일상 속으로 끌어 들이고 있다. 소슬 바람에 춤을 추는 강가의 풀꽃 위, 그 주변 들판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머리 위, 지친 노동자의 허름한 자취방 창문 너머, 망향가 부르는 노인의 눈물 맺힌 주름살 너머, 최루탄 가루 날리는 도회지의 빌딩 숲 너머 어디에나 핵의 공포는 도사리고 있고, 한 순간이면 지금까지 이루어 온 모든 게 폐허가 된다. 그리고, 그 폐허가 복구되는 데는 훨씬 기 시간이 요구된다. 그것이 진정한 핵의 공포다.
한 국가의 양심수의 숫자는 그 나라 민주주의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와 같다. 단적으로 말해, 양심수의 숫자가 많다는 것은 그 정권의 성향이 결코 민주적이지 못하고, 그 나라 국민들이 사상의 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과 같다. 대한민국이 바로 그런 나라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기형적 형태다. 민주주의 공화국임을 헌법에 명시하고 있으면서도 사상의 자유는 보장이 되지 않고, 장기 집권을 위해 헌법을 뜯어 고치는 나라. 30년 동안 군인이 대통령이었던 나라. 군이 정권을 장악하는 나라는 결코 민주주의의 원칙을 따를 수 없다. 민주주의의 외형만 따를 뿐이지 실상은 독재 국가임을 공공연히 밝히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군이라는 집단의 성향 자체가 반민주적이고, 수직적 지배구조에 바탕하기 때문이다. 세계 여론이 인정하는 독재 국가 쿠바나 칠레 만큼이나 양심수가 많은 나라 대한민국. 그 근본적 원인은 군인이 정권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운동권 가요라는 테두리 안에서는 가장 대중적인 성향의 곡이다. 잔잔한 피아노 반주와 함께 흐르는 선율도 흡인력이 강할 뿐더러, 그리 길지 않은 가사 속에 많은 주제들을 엮어 내는 필력도 완숙미가 엿보인다. 안 치환이 부른 <저 창살에 햇살이>가 갇힌 자의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라면 이 노래는 오히려 창살 밖에서 바라보는 자의 시선에서 불려지는 노래다. 그 시선은 갇힌 자들에 대한 단순한 연민의 시선이 아니라, 이미 갇힌 자보다 더 절박하게 쫓기는 자의 시선이고, 더불어 같은 목표를 향해 있는 범민족적 형제애의 시선이다. 대중적 호응을 충분히 이끌어 낼 수 있는 아름답고, 슬프면서도 힘있는 노래다. 음반의 마지막에 수록 된 두 곡은 다분히 격앙된 어조의 노래들이다. 소위 이 땅의 특권 계층이라 하는 자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에 대한 신랄한 비판에 초점을 두고 있고, 대를 물려 상속되는 계급에 대한 고발 등 현실 비틀기와 폭로에 중점을 두고 있으나, 너무 높아진 언성 탓인지 전체적인 음반의 완성도를 깨뜨렸다는 안타까움이 앞선다. 아마도, 행동하는 지식인이고자 한 의지가 담긴 듯 하지만 가사의 일관성과 통찰력이 결여된 탓인지 갈팡질팡하는 느낌도 들고, 음반의 성격을 놓고 보았을 때 다분히 목에 가시 같은 이질감은 떨칠 수가 없다. 한가지 장점을 건져 내자면, <우리들 세상>의 마지막 부분에서 드러나는 의식의 각성에 대한 부분이다. 이 곡에서의 선동이 만일 체제 전복이나, 폭동성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면 저런 결말은 내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패배와 순종, 체념과 비굴로 요약된 앞선 세대의 의식은 독재정권의 가학성을 부추긴 피지배자의 마조히즘에 다름 아니다. 그 굴종의 패배주의에서 벗어나라는 강력한 권고로 음반은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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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눈물이 나려고 하네... 음유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