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와 노인 선 순례
춘천으로 가는 길옆 풍경은 오색으로 물든 단풍을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하다. 누렇게 익은 벼 이삭을 마구 쪼아 먹는 참새떼를 쫓으려는 허수아비의 현란한 패션도 장관이다. 밀짚모자에 선글라스. 거기에도 코로나 19가 광활했는지 마스크에 방호복까지 입은 허수아비의 우스꽝스러운 모습도 재미있었다. 상봉역에는 오색 단풍만큼이나 울긋불긋 한 등산복 차림의 노인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이름하여 ‘청춘 열차’란 말이 무색하게 마스크로 무장한 노인들로 앉을 자리도 없이 꽉 태운 채 출발했다. 노인들만 꽉 찼다며 남편들은 젊은 층인 줄 알고 착각하며 서로 보고 웃는다. 어릴 적 수학여행 가는 기분이라며 주고받는 대화는 중학교 학창시절로 까까머리에 교복을 입고. 말타기, 말뚝박기, 가위바위보를 하며 술래가 되는 사람은 이긴 사람의 책가방을 집까지 들어다 주는 게임이 고작이었는데, 요즘 학생들은 게임에 빠지면 헤어나지 못하는 심각한 현실에 살고 있다는 시대의 변천사까지 논하며 떠들썩하게 웃고 즐긴다. 팔십을 넘은 노인들이지만 주고받는 농담은 영락없는 중학생 시절이다. 농담을 주고받는 옆에 혼자 앉아있던 등산복 차림의 젊은 남자(육십대 초반)가 솔깃하게 듣고 있더니 말참견을 하며 다가왔다. 일 년 전에 육군 대령으로 예편을 했다며 묻지도 않는 본인 소개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강 대령이라고 불러 달라며 고향에 놀러 가는 길인데 춘천 안내를 해도 되겠냐고 선뜻 나섰다. 중학교 동창생들끼리 가을 소풍 삼아 놀러 간다는 말에 신바람이 나서 춘천이 고향이고 군 복무를 했던 곳이라며 관광지며 역사가 깊은 춘천은 훤히 잘 안다고 앞장을 선다. 갑자기 선배님과 강 대령으로 호칭이 바뀌고 약속이나 했던 것처럼 앞장을 섰고 우리의 목적지인 김유정 역은 지나치고 춘천역에서 그를 따라 내렸다. 졸졸 따라가는데 여기저기 춘천에 아는 곳을 설명하니 좋은 사람을 만났다며 덩달아 신바람이 났다. 어르신들을 만나 자기 고향인 춘천을 안내하게 돼 영광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점심은 제가 부모님 따라 다니던 유명한 맛집으로 안내하겠다며 ‘춘천 막국수’라고 작은 식당이었다. 잘 안다는 식당 주인은 단골손님을 대하는 태도는 싸늘했고 큰 손님이나 모시고 온 것처럼 위풍당당한 행동은 우리를 어색하게 했다. 일행인 것처럼 행동하며 식사 후에는 딴청을 떨며 자리를 비켰지만 당연한 줄 알고 식사비를 내주었지만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앞장을 선다. 식후에 강 대령이 안내하는 곳은 에티오피아 광장이라며 에티오피아 한국참전 기념관이 있는 곳으로 갔다. 멀리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에서 우리나라 전쟁에 전투병을 파견하여 많은 사상자를 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에티오피아 전쟁 기념관에서는 전쟁의 참혹했던 광경을 영상으로 볼 수도 있었다. 거리의 여러 곳에 볼거리를 설명하며 골목을 돌아 나와 호반 둘레길로 걷다가 멈추더니 벼가 익어 누런 들판을 가리키며 자기 조상들로부터 받은 유산인데 저기 끝까지 개발해야 하는데 경험이 없어 엄두를 못 낸다며 개발 회사를 아는 분 있으면 소개 좀 해달라며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삼대가 육사 출신인데 아버지는 별을 달았고 본인은 대령으로 일 년 전에 예편했고 딸도 육사를 나와 현역육군 중위로 헌병대에 근무한다며 자기 자랑이 끝이 없다. 삼대가 육사 출신으로 국군의 날 KBS 특집다큐멘터리로 방영이 되기도 했는데, 혹시 보신 분 있으시냐고 물어보지만 본 사람은 없었다. 마침 우리 일행 중에는 K.B.S 부사장으로 몇 년 전에 정년 퇴임하신 분도 있었지만. 그 방송을 본 일은 없었다고 했다. 호수가 훤히 보이는 춘천 문화방송 앞에서 잠시 쉬어가자며 편의점의자에 앉으라며 음료수며 아이스크림을 가져다주고 캔 맥주를 몇 개씩 혼자 마시고는 정작 계산할 때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행동이 의심스러웠지만 대놓고 가라는 말도 차마 못 했는데 그사람 사라져서 잘됐다고 말을 하니 남자들은 오히려 여자들 핀잔을 준다. 우리끼리 걷는 것이 홀가분하다며 깔깔대며 수다를 떠는데 그가 불쑥 나타나더니 천연덕스럽게 앞장을 섰다. 오늘 여러 군데 구경시켜 줘서 고마웠다고 헤어질 인사를 해도 못 들은 척 손짓. 발짓하며 떠들며 앞서간다. 해거름 노을이 호반으로 가라앉을 무렵 저만치 앞서가다가 갑자기 춘천에서 유명한 닭갈비 촌이 있는데 육군 대령일 때 부대원들하고 자주 회식하던 단골집이라며 또 앞장을 선다. 여자들은 함께 가기 싫었지만, 남편들이 앞장서서 따라가니 못마땅해도 할 수 없이 따라갔다. 푸짐하게 주문하고 실컷 먹고는 갑자기 지갑이 없어졌다며 일어났다 앉았다 수선을 떤다. 혼자 야단법석을 떨며 안절부절못하니 식당에 있는 손님들도 힐끗힐끗 쳐다보니 우리는 뻘쭘하니 우리를 의심할까 봐 난처한 지경까지 되었다. 빨리 신고를 하라고 해도 못 들은 척 주머니를 뒤지며 딴청만 떨었다. 우린 계산을 끝내고 차비가 없다니 몇만 원을 주었는데 받아 넣고는 춘천역까지 택시에 합승하고 서울 오는 차표까지 사주었다. 전화하면 금방 달려올 친구들이 많다던 허세는 사라지고 돈을 빌려달라며 남편들 옆에 바짝 붙어 않는다. 서울엔 아는 식당도 많다며 돈 없어도 선배님들 약주 대접할 수 있다며 돈을 빌려달라니 한심했다. 자기 전화번호를 주며 돈도 빌려주지 않았는데 계좌 번호를 달라니 황당한 노릇이었다. 처음부터 오래 다녔다던 식당 주인들은 냉대했고 편의점에서도 그랬고, 저녁에 갔던 식당 주인도 단골은커녕 아는 체도 하지 않았다. 남편들은 육군 대령이었다는 말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고 사회 초년생이니 사업하기가 두려울 수 있다며 개발사업 하는 사람한테 전화번호를 주었다. 다음 날 전화를 걸었더니 없는 번호라고 기계음만 들렸다는 것이었다. 크게 손해 본 일 없으니 그래도 고마운 사람이었다고 껄껄 웃었지만, 대한민국 전역 육군 대령이란 말을 철석같이 믿고 따라 다닌 하루는 완전히 허수아비 노릇을 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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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 수필 '허수아비와 노인'은 <수필과비평> 22년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여행 중에 일어난 에피소드로 재미있는 글 한 편 잘 쓰셨습니다.
선고문님 글을 읽으면 본인은 황당한 일을 겪었을지라도
읽는 사람은 웃으면서 읽게 됩니다.
글 쓰느라고 수고하셨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쓰시길. . .
여행하고 돌아오셔서 바로 글 보내주신 정성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세요^^
고문님,
요즘에도 이런 간 큰 사람이
있군요. 그래도 큰 돈 요구 안 했으니 다행이네요.
재미있게 읽었어요.
유인순 교수님께서 제목을 고쳐보라고 하셨는데 제가 수필과 비평에 미처 보내기 전에 출간되었어요.
부족한 점 이해해주시고 더 재미 있고 발전 하는 글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송화 고문.. 마리안느 고문님. 동인지 편집하시느라 여름 내 고생 하신 노고를 이자 리를 빌어 감사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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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편안하게 느끼는 선고문님의 모습이
글에서도 미소가 절로느껴집니다.염치를
모르는 불편한 사람을 눈감아 주시며
심기를 너그럽게 보아주셨네요. 재미있게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