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중황마을에서 보내는 흥미진진 겨울방학, 지리산 산골체험
지리산 자락의 겨울은 길고 춥다. 해가 늦게 뜨고 빨리 지는 산골, 그나마 올 겨울엔 눈이 많이 내리지 않아 길이 끊기진 않았다. 산골 높은 곳에 자리한 아담한 흙집에 겨우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넘친다. 도시 아이들이 방학을 맞아 산골체험을 온 것이다. 손수 청국장을 만들고, 산에 가서 나무를 해다가 아궁이에 불을 피우고, 그 불에 고구마를 구워 먹으며 하루를 보낸다. 밤엔 쏟아질 듯 가득한 별들을 올려다보며 친구들과 두런두런 얘기를 나눈다. 며칠 동안이지만 아이들은 산골생활에 금세 적응한다. 그렇게 지리산의 건강한 기운을 듬뿍 받고 아이들은 다시 도시로 간다. 다음 방학을 기약하며, 그 짧은 체험을 오래오래 추억하며….
지리산 자락에 포근히 안긴 중황마을
지리산 둘레길 3코스가 지나가는 남원시 산내면 중황마을.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을 지나 산길을 오르다 보면 둘레길이 나오고, 더 높이 올라가면 산 속에 포근하게 안긴 흙집 몇 채가 나온다. 산골체험을 할 수 있는 ‘지리산순이네흙집’이다. 대구에서 귀촌한 젊은 부부가 손수 황토로 지은 집이다. 주인 내외와 아이 셋이 거주하는 집을 지나면 아담한 흙집 네 채가 계단식으로 층층이 자리하고 있다. 펜션이자 산골체험의 숙소로 쓰이는 공간이다. 중황마을도 지대가 꽤나 높은 편인데 마을에서 뚝 떨어져 산 위에 자리하다 보니 지리산 작은 봉우리가 눈높이에 있을 정도다. 이 흙집이 자리한 곳은 해발 550m쯤 된다고.
산골체험을 시작한 것은 안주인의 생각이자 도시에 남은 지인들의 요구사항이기도 했다. 아이들의 반응이 좋아 규모가 조금씩 커지게 됐다. 요즘엔 1~2주에 한 팀 꼴로 산골체험을 온다. 사회단체나 공부방, 유치원 등에서 오는 대여섯 살 유아에서부터 초등학생, 중․고등학생 등 아이들의 연령대도 다양하다.
청국장 띄우고 고구마도 굽고
산골체험이라고 해서 대단한 건 없다. 있는 그대로의 산골을 날것으로 체험할 뿐이니까. 시기가 맞으면 장도 담그고, 김장도 하고, 농사도 짓고, 수확도 하는 식이다. 시골에서는 자연의 흐름에 따라 해야 할 일들이 있고, 놀기에 좋은 것들이 있게 마련. 산골체험도 자연이 베푸는 범위 안에서 누리게 된다.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맨 먼저 시작한 것은 청국장 만들기. 지난주에 초등학생 단체가 와서 콩을 삶아 청국장을 띄워놓았다고 한다. 그것을 빻아 청국장을 만드는 것이 오늘의 체험거리다. 이번 체험객은 서울 창신동에서 온 공부방 아이들이다. 중학교 졸업여행 삼아 산골체험을 온 참이다. 우선 깨끗이 씻은 돌절구에 며칠 잘 띄운 청국장을 넣는다. 아이들이 앞 다퉈 절굿공이를 잡는다. 처음 해보는 절구질이라 보기에도 엉성하고 힘도 실리지 않는다. 그래도 재미있는지 돌아가며 찧어본다. 청국장은 너무 부드럽게 찧기보다 콩알이 듬성듬성 보이는 게 좋다. 적당히 찧은 청국장은 집 안으로 옮겨 포장을 한다. 유기농 콩을 재배한 곳에 청국장을 보내고, 체험 온 아이들도 두세 덩이씩 나눠 갖는다.
나무하기, 불 때기가 최고 인기
청국장 포장을 끝낸 아이들은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간다. 그렇게 해온 나무로 숙소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무척 단순한 체험인데 아이들한테는 인기 최고라고. 스스로 땔감을 구하고 불을 피우는 것이 왠지 야생의 느낌이 난다. 나무가 바싹 말라 있어 종이를 서너 장 구겨 넣고 작은 나뭇가지를 몇 개 올리면 금세 불이 붙는다. 불이 어느 정도 사그라지면 잔불에 고구마를 구워 먹는다. 평소 고구마라면 쳐다보지도 않던 아이들이 노랗게 익은 군고구마를 뜨거운 줄 모르고 호호 불어가며 잘도 먹는다.
앞마당에는 개 두 마리가 종일 꼬리를 살랑대며 뛰어다니고, 닭들도 해가 뜨면 온 마당을 헤집고 다닌다. 닭들을 닭장에서 내보내고 난 다음엔 새로 낳은 달걀을 꺼낼 차례. 겨울이라 알을 띄엄띄엄 낳는데 그 중 몇 개는 암탉이 품고 있다. 달랑 하나를 집어 나오는 아이, 그래도 마냥 신기한 표정이다.
산골체험에서 식사는 특별히 주문하지 않는 한 체험객이 직접 해먹는다. 집에서 반찬 투정하던 아이들도 여기선 김치에 나물 반찬만으로도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운다. 주인 내외가 직접 담아 토굴에 저장해둔 김장김치와 지리산 자락에서 채취한 나물 반찬을 아낌없이 푸짐하게 내준다. 겨울을 제외한 다른 계절에는 펜션 각 동 앞마당에 있는 텃밭에서 채소도 마음껏 뜯어 먹을 수 있다고.
얼음판에 미끄러져도 마냥 신나
안주인이 한 솥 가득 끓여낸 떡국으로 점심을 먹은 뒤 트럭을 타고 마을로 내려간다. 짐칸에는 체험 온 중학생들이 탔다. 썰매가 모자라 몇 개는 옆집에서 빌리고 덜컹덜컹 산길을 달려 내려간다. 짐칸의 아이들이 엉덩이 깨진다며 소리를 질러댄다. 그러면서도 뭐가 좋은지 연신 깔깔댄다. 트럭 짐칸에 타기도 인기 있는 체험 중 하나.
얼음판은 산내면 소재지에 있다. 주인장이 동네 어르신에게 부탁해 논에 물을 대서 얼음판을 만들었다고. 얼음썰매를 처음 타보는 아이들은 무릎을 꿇어야 할지 양반다리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선생님이 어렸을 때 솜씨를 뽐내며 선을 보이자 따라 해본다. 생각처럼 움직여주지 않는 썰매. 쌩쌩 달리고 싶지만 마음만 앞선다. 그렇게 한참 썰매를 타다가 팀을 나누어 얼음축구를 시작한다. 큰 아이 작은 아이가 두루 섞여 팀을 이룬다. 얼음이 미끄러운 탓에 마음대로 뛸 수도, 얼음공을 원하는 곳으로 패스하기도 마뜩찮다. 그래도 아랑곳없이 얼음판을 신나게 누빈다. 한 시간 넘게 얼음 위를 뛰어다닌 덕분에 땀이 날 지경이다.
이날의 마지막 체험은 말밥 주기. 다시 덜컹덜컹 트럭을 타고 말 키우는 집으로 간다. 제주에서 살다 온 이웃이 말 여섯 마리를 키우는 목장인데, 지리산의 겨울이 너무 추워 다섯 마리는 제주로 보냈다고. 봄이 될 때까지는 한 마리만 외롭게 지낸다. 말밥도 주고 갈기도 한 번씩 만져본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승마체험도 해볼 수 있다.
하루 동안 다양한 산골체험을 해보았다. 특별할 것도 없는데 평소에 비해 몇 배나 더 웃었다. 무엇보다 몸을 많이 움직이고, 건강한 먹을거리를 맛보았다. 겨울이 매서운 지리산이지만 중황마을 흙집에서 보낸 하루는 마냥 푸근하다.
<체험안내>
‘지리산 순이네 흙집’에서는 방학이나 연휴를 이용한 산골체험이 가능하다. 일정이나 프로그램은 원하는 대로 짜준다. 겨울에는 눈썰매, 얼음썰매, 청국장 만들기, 나무하기, 불 때기, 감자․고구마 구워 먹기, 연 만들기&연날리기, 장작 패기, 둘레길 걷기 등이 기본이다. 이밖에 마을에 거주하는 강사를 초빙해서 풍물 배우기, 어린이 노래교실, 별자리 탐험, 목공예 체험, 문화해설, 숲해설 등을 청할 수도 있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계곡 물놀이, 대나무 물총 만들기&놀기, 마을길 걷기, 둘레길 걷기, 농사체험, 다슬기 잡기, 호박잎 따서 밥해먹기, 승마 등이 가능하다.
별도의 재료나 강사가 필요하지 않은 경우 체험비 없이 숙박료만 받는다. 강사를 초빙할 경우 5만~10만 원이 추가되며, 청국장을 만들 경우 콩 값 정도를 더 받는다. 승마는 시간에 따라 1인당 5,000~1만 원.
숙박료
머슴달래(7평) : 주중 7만 원, 주말 8만 원(성수기 주중․주말 9만 원)
박졸갈래(15평) : 주중 17만 원, 주말 18만 원(성수기 주중․주말 19만 원)
콩덕벅지(15평) : 주중 17만 원, 주말 19만 원(성수기 주중․주말 20만 원)
도토라지(20평) : 주중 20만 원, 주말 22만 원(성수기 주중․주말 23만 원)
*각 방마다 냉장고, 다기 세트, 조리도구, 침구, 화장실, 샤워 시설, 바비큐 시설 완비. 단, 머슴달래 방은 주방시설 없음.
지리산 순이네 흙집 : 전북 남원시 산내면 중황리 271-35번지, 010-9032-5902, www.soonyee.kr
<교통안내>
대중교통: 동서울터미널에서 지리산 백무동행 고속버스를 타고 실상사 앞에서 하차. 3시간40분 소요. 이후 도보로 30분(예약하면 트럭 픽업). 남원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할 경우 인월행 시내버스 이용, 인월에서 산내 방면 버스로 갈아타고 실상사 앞에서 하차.
자가용 : 88올림픽고속도로 지리산IC로 나가서 인월읍내를 지나 실상사 방향으로 간다. 산내면 소재지를 지나 실상사 직전에 있는 실상사휴게소 윗길로 가면 중황마을이 나온다. 마을회관 옆길을 돌아 산길을 따라 오르면 ‘지리산 순이네 흙집’에 이른다.
<글․사진> 김숙현(여행작가)
자료: 한국관광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