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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풋했던 70년대 대학 시절
친구들과 함께 당시 인기리에 상영중이던 영화 '대부'를 보러 갔습니다
스릴 넘치는 갱 영화를 기대했었기에 그 부분은 좀 아쉬웠지만
영화는 그런대로 괜찮았습니다
특히 성당에서 진행되는 조카의 세례식에 참석한 마이크의 엄숙한 표정과
마이크의 명령을 받은 부하들이 적들을 하나씩 살해하는 장면을 번갈아 보여줌으로써
양의 탈을 쓴 이리의 모습을 한 마이크의 위선, 이중적인 모습을 아주 잘 표현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영화에서 줄을 잡아 당기는 수세식 화장실을 구식이라고 하던데
그게 당시 한국에선 보급된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신식이어서
그럼 과연 미국의 신식 화장실은 어떻게 생긴거지? 하며 궁금해 했고
또 알 파치노가 시실리로 피신해서 보디 가드 두 명과 걸어가며 이태리어로 얘기하는데
말하는게 마치 기관총 쏘는 것처럼 빨라서
"저 사람들은 저 말을 다 알아 듣나?" "저 사람들 지금 생각하면서 말을 하나?" 등등을 얘기하며
웃고 떠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이후 2부 3부가 나왔으나
직장에 다니고 결혼하면서
총 쏘고 사람 죽이는 갱 영화에 대한 흥미가 줄어
언제 상영했는지도 몰랐는데
캐나다로 오기 전에 우연히 세 편을 다 보고
무척 진한 감동을 받았었습니다
그때 느꼈던 감동은 이 영화가 단순히 총 쏘고 사람 죽이는 갱 영화라기 보다는
한 인간의 고뇌를 다룬 휴먼 드라마이며
그 드라마를 통해 이태리 사람들의 가족에 대한 진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고
가족 (family)과 그 가치에 대한 것을 다시 한번 생각케 했습니다
예전의 감동을 생각하며 오랫만에 삼부작을 다시 보았는데
이번엔 감동이 전처럼 진하진 않았으나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등장 인물들과 그들의 복잡한 관계를 한층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어 또 다른 재미가 있었습니다
대학을 나오고 미군으로 2차대전에 참전하여 훈장까지 탄 주인공 마이클 콜레오네 (알 파치노)는
처음에는 지성인답게 불법적인 일을 하는 자기 가족과는 다른 삶을 살겠다고 마음 먹지만
아버지인 돈 콜레오네 (말론 브란도)가 적에게 총격을 받고 중상을 입어 병원에 입원하자
아버지를 보호하기 위해 아버지를 죽이려던 사람을 사살하고
그로인해 자기 가족이 경영하는 범죄 조직에 발을 들여 놓게 되며
그후 그의 뛰어난 지략으로 상대 세력들을 차례로 꺾으며 암흑 세계의 정상에 오르고
동시에 정치와 종교 단체에 막대한 기부를 해서 사회적인 명성도 쌓아가며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지만
나중에는 가족을 위해 물불을 안가린 자신의 행위로 인해 사랑하는 가족을 잃게 되고
혼자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비극적인 운명을 그린 대하 드라마입니다
(영화의 자세한 스토리는 영화 보실 분들의 재미를 위해 생략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詩學에 나오는 말로 원래는 고대 그리스어의 "과녁을 빗나갔다"는 말에서 유래한 용어인데
문학 작품에서 주인공의 '잘못된 판단 (error of judgement)'으로 비극이 발생하거나
또는 비극 작품에서 비극을 초래하는 주인공의 성격의 어떤 '비극적 결함 (tragic flaw)' 을 나타내는 말로 쓰입니다
예를 들면, 그리스 비극의 오이디푸스 왕, 성경의 삼손,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의 주인공들이
모두 그들의 성격에 이 '하마티아' 즉 '비극적 결함'을 갖고 있습니다
(사족을 달자면, '로미오와 줄리엣'이 많은 젊은이들을 울리는 슬픈 러브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에 들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비극이 주인공의 어떤 성격상의 비극적 결함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처한 상황 - 두 원수 집안 - 에 기인한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면 마이크의 '비극적 결함'은 무엇일까요
집 안의 막내이며 유일하게 대학을 나온 지성인인 마이크는 위에서 말한대로
처음에는 아버지와 형들이 하는 family business가 불법을 일삼는 범죄 조직이기 때문에
자기는 그런 가족들과는 다른 삶을 살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위기에 빠진 것을 계기로 범죄 세계에 발을 들여 놓게 되고
그 후로는 마치 범죄를 위해 태어난 사람인양 자신의 명석한 두뇌를 이용하여 적수들을 제거하며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처럼 암흑 세계에서 막힘없이 질주합니다
햄릿은 자기 아버지를 죽인 삼촌을 죽이려고 하는데
너무 많은 생각을 하고 망설입니다
"there is nothing either good or bad, but thinking makes it so."
(원래 선과 악이라는 건 없어, 단지 생각이 그렇게 만들뿐)
그래서 삼촌을 죽이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아닌지를 생각하느라 망설이며 실행에 옮기지 못합니다
이것이 그의 비극적 결함이지요
그러나 마이크는 다릅니다
자기 아버지에게 중상을 입힌 적을 망설임 없이 사살하고
그 이후 아버지의 대를 이어 가족을 이끌면서는
가족의 적이라고 생각되면 누구를 막론하고 가차없이 죽입니다
햄릿이 사색파라면 마이크는 행동파이지요
2부에서 형이 가족을 배신했었다는 것을 알게된 마이크는 형도 죽이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자신의 혈육을 죽여야 한다는 것 때문에 그도 고민을 합니다
마음의 갈등을 겪으며 그는 자신의 롤 모델인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강했던 것처럼 자신도 강해야 한다고 (즉 형을 죽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이 일로 인해 아내와 아이들이 자기를 비난하며 떠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쁜 일을 했을때 어머니는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알고 싶어 어머니를 찾아가 얘기합니다
Mike: Tell me something, Ma.
What did Papa think . . . deep in his heart?
He was being strong . . . strong for his family.
But by being strong for his family . . .
. . . could he . . . lose it?
Mom: You're thinking about your wife . . . about the baby you lost.
But you and your wife can always have another baby.
Mike: No. I meant . . . lose his family.
Mom: You can never lose your family.
Mike: Times are changing.
어머니에게는 차마 형을 죽이겠다는 말을 못합니다
그래서 진심을 감추며 띠엄띠엄 머뭇거리며 얘기하는데
만일 마이크가 위의 대화를 숨김없이, 마음에 있는 것을 솔직히 말했다면 아마 다음과 같지 않았을까요
마이크: 엄마, 말씀 좀 해주세요
아버지는 (사람을 죽일 때)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아버지는 강했어요 (사람들을 죽일 정도로) . . . 가족을 위해 강했죠 (가족을 먹여 살릴려고요)
그렇지만 가족을 위해 강하다는 것 때문에 . . (즉 사람을 죽인 것 때문에)
가족을 . . . 잃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가족이 뿔뿔히 흩어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어머니: 네가 네 아내와 유산된 아기를 생각하는구나
그렇지만 너와 네 아내는 언제든 또 아기를 가질 수 있지 않니
마이크: 아니. 내 말은 아버지의 가족을 잃는 것 말예요 (엄마는 아버지가 살인했다는 걸 알았을때 아버지를 떠날 생각을 안해봤어요?)
어머니: 가족은 결코 잃을 수 있는게 아니다 (부모와 자식으로 이루어진 가족은 영원하지 절대로 깨어지지 않는다)
마이크: 시대는 바뀌고 있어요 (엄마 세대에는 아내가 남편이 밖에서 무슨 짓을 해서 돈을 벌든 상관하지 않았고
그 돈으로 집 안에서 살림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남편을 내조 했지만
지금은 시대가 변해서 그렇지 않아요. 지금 여자들은 남편이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벌어 오는 걸 반기지 않아요
어쩌면 그 때문에 가정이 깨어질 수도 있어요)
마이크는 자기가 가족을 위해 하는 일 때문에
오히려 가족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불안해집니다
그러나 불안을 느끼고 회의가 들수록
그는 강해야 한다고 자신을 다그치며 살인과 범죄 행위를 계속합니다
결국 자기가 그렇게 사랑하고 지키려고 애쓴 가족이 자기를 떠나 외톨이가 되고
자신의 오랜 친구마저 죽자 그의 관 옆에서 혼자 독백을 합니다
"I wanted to do good. What betrayed me? My mind? My heart?"
(난 좋은 일을 하려고 했어. 근데 뭐가 날 배신한거지? 내 정신? 내 마음?)
"Give me a chance to redeem myself . . . and I will sin no more."
(날 구원할 기회를 줘 . . . 그럼 다신 죄를 짓지 않을거야)
그러나 이런 양심적 고뇌도 잠시, 그는 곧 또 다른 살인 지령을 내립니다
시실리에서 성악가로 데뷔하는 아들 덕분에
마이크는 오랫동안 헤어졌던 가족들과 기쁨의 재회를 합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아들의 데뷔를 성공적으로 마친 기쁜 그날 밤
사랑하는 딸이 자신의 눈 앞에서 총에 맞아 죽는 것을 본 마이크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혼절합니다
그리고 그렇게도 사랑하고 지키려고 애썼던 가족도 없이 혼자 쓸쓸히 죽는 것으로
영화는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가족을 위해 온 인생을 다 바친 마이크에게
왜 이런 끔찍한 비극이 일어날까요
이런 비극이 그에게 마땅한 것인가요
마땅하다면 마이크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그가 무슨 잘못을 했을까요
마이크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 잘못 (비극적 결함)은 무엇일까요
자기가 하는 일이 옳은지 그른지를 몰라 망설이는 햄릿과는 달리
자기가 하는 일은 무조건 옳고 남이 하는 일은 무조건 그르다는 마이크의 독선 (獨善)일까요
아니면 가족을 사랑한다면서 가족이 원하지 않는 살인과 범죄를 저지르는
그의 빗나간 사랑일까요
아니면 자기 가족을 위해 적을 죽이는데
그 적에게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는 걸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인 마이크가 모를리 없었을텐데
자기 것만 소중하고 남의 것은 하찮게 여기는 자기중심적 사고 방식일까요
아니면 자신의 잘못을 알고도, 그로 인해 어떤 결과가 올지도 짐작하면서도
그 잘못을 고치지 못하고 계속 되풀이 하는
그래서 결국 그가 원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케 하는
그의 약한 의지일까요
영화를 보면서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대부 1편이 상영되자 전 세계적으로 굉장한 반응을 일으켰고
아카데미 상에서 작품상, 남우주연상등 주요 상들을 수상했으며
갱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위대한 미국 영화'에서 2위로 선정되었습니다 (1위는 '시민 케인')
이 한 편의 영화로 무명의 젊은 감독 프란시스 코폴라와 무명 배우 알 파치노가
일약 세계적인 거장, 세계적인 명 배우로 우뚝 서게 되고
1부의 성공에 힘입어 2, 3부를 제작했는데
이 대부 삼부작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화라고 생각합니다
보너스 판을 보니 이 영화에 얽힌 뒷 얘기들이 많이 있더군요
제작사인 파라마운트 영화사는 이태리 출신 감독에게 이 영화를 맡기려고
여러명의 유명 감독들을 섭외했으나 모두 거절당하여
당시 무명이며 신출나기인 30대의 코폴라에게 시실리 계통이란 이유로 일을 맡깁니다
그런데 이 신출내기 감독이 고집이 워낙 세서
영화사의 반대를 무릅쓰고 영화사와 관계가 좋지 않은 한 물 간 배우 말론 브란도를 아버지 역으로
체구도 작고 별로 잘 생기지도 않은 무명 배우 알 파치노를 마이크 역으로 캐스팅합니다
원래 파라마운트에서는 주인공 마이크 역에 로버트 레드포드나 '러브 스토리'에 나왔던 라이언 오닐을 생각했는데
코폴라 감독이 파란 눈을 가진 금발의 시실리 인은 없다고 하며
체구는 왜소하지만 내면이 강한 연기에 맞는 까만 눈에 까만 머리를 가진 알 파치노를 추천했지만
영화사의 반대로 영화를 찍고 있는 동안에도 로버트 드 니로등 많은 사람들이 카메라 테스트를 받았으나
결국에는 코폴라 감독의 의지대로 알 파치노로 밀고 나갔다고 하는군요
가족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니만큼 코폴라 감독이 자기 가족들을 많이 동원했습니다
1부는 돈 콜레오네의 딸의 결혼식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딸 코니로 나오는 배우 탈리아 샤이어는 코폴라 감독의 여동생이며 (실버스타 스탤론의 영화 '로키'에서는 부인으로 나옴)
1부 후반부에는 코니의 갓난 아기가 성당에서 세례를 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아기가 태어난지 얼마 안된 코폴라 감독의 딸 소피아 코폴라이며
18년 후에 촬영된 3부에서는 성장하여 마이크의 딸 메리로 나옵니다
음악가인 아버지 카민 코폴라는 1, 2부에서는 이태리 작곡가 니노 로타와 함께 음악을 담당했으나
3부에서는 거의 모든 음악을 혼자 담당했고
특히 마이크의 아들이 시실리에서 데뷔할 때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영화에도 출연합니다
마지막으로 마이크의 아내로 이태리 여인이 아닌 푸른 눈의 금발인 다이앤 키튼을 캐스팅한 것은
마이크가 이태리인으로 구성된 자기 가족과는 구분된 삶을 살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코폴라 감독의 아내가 푸른 눈의 금발을 가진
WASP (White, Anglo-Saxon, Protestant)였기 때문이었다는 말도 있더군요
실제로 다이앤 키튼은 코폴라 감독의 아내를 보면서 연기하는데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예전에 이 영화 세 편을 따로따로 보신 분들은
다시 한 번 삼부작을 연속적으로 보신다면
이제는 갱 영화로서가 아닌 휴먼 드라마로서
전에 느끼지 못했던 진한 감동을 느낄 수 있으리라 장담합니다
그리고 가족과 가정에 대한 문제가 많이 논의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그동안 당연시 했던 가족이라는 것에 대해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가 될 것입니다
3부 마지막에 총에 맞아 죽은 딸을 부여잡고 오열하는 마이크
특히 한 30초 동안 아무 소리도 못내고 입만 벌리고 있다가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혼절하는 장면은
자기가 평생동안 쌓아온 공든 탑이 한 순간에 무너져 내렸다는 것을 깨달은 마이크의 비통한 심정을 잘 나타내는
대부 삼부작을 마무리하는 가장 인상에 남는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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