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한 가을 바람 부는 여의도 서울 마리나에서
한강 물결보다 푸르른 두 청춘을 만났습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캐논,청춘을 항해하다’의 임수민 포토그래퍼,
그리고 대한민국 최초로 무기항·무원조 세계 일주 기록을 세운 모험가 김승진 선장님!
종이가 휙 날아갈 정도로 강한 바람에도
‘아, 이럴 때 배가 참 잘 나가는데’ 하며 긍정적 에너지가 넘쳤던 두 분과의 인터뷰.
치열한 모험 이야기부터 청춘들을 향한 메시지까지,
인터뷰가 아닌 인생 강의를 듣는 기분이었답니다.
캐논 블로그 캐스터가 만난 오늘의 캐논 피플.
김승진 선장님과 임수민 작가님을 소개합니다!
Canon. 안녕하세요! 캐논 유저분들을 위해 인사 부탁드립니다.
김승진 안녕하세요, 저는 요트로 지구를 여행하고 있는 해양 모험가 김승진입니다.
임수민 안녕하세요, 저는 스트릿 포토그래퍼 임수민입니다.
Canon. 두 분을 잘 모르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간단한 자기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김승진 저는 ‘물에 뜨는 것’을 이용해 ‘물 위를 모험하는’ 사람입니다. ‘물에 뜨는 것’이라면 배도 있고, 뭔가 실험적 소재로 만든 것들도 있지요. 그런 것을 타고 강과 바다를 여행하고, 도전하고, 모험하고 있습니다. 요트로 논스톱 세계 일주를 한 기록이 원래 우리 나라에는 없었거든요. 그런 걸 이루어낸다 할지.(웃음) 그리고 그런 저의 모험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함께하며 바다를 소개하는 일도 하고 있어요. 바다의 안내자, 라고 스스로 말씀드리고 싶네요. 하하.
임수민 저는 흑백 필름으로 도시 속에서 잊고 사는 존재, 공간, 그리고 순간을 담는 스트릿 포토그래퍼예요. 특히 우리가 잊고 사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따뜻한 온기를 담는 데 주목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어떤 겨울에, 붕어빵을 먹고 싶은 아이가 백 원이 모자란 거예요. 그런데 붕어빵 아저씨가 에이, 먹어라. 하고 붕어빵을 그냥 건네 준다던지. 길거리에서 누가 넘어졌는데, 모르는 사람이 도와준다던지. 그런 순간을 담는 거죠. 그런 사람과 사람의 관계, 우리가 잊었던 따뜻함을 기록하고 있어요.
Canon. 이렇게 멋진 두 분이 얼마 전, 함께 먼 바다를 항해하고 오셨어요.
대양 항해 프로젝트 ‘신 대항해시대’, 어떤 프로젝트였는지 궁금해요.
김승진 저는 혼자서 많은 요트 여행과 모험을 해왔어요. 그러면서 바다에 얼마나 많은 가능성이 있는지 알게 되었죠. 경제적 가치의 창출일 수도 있고, 문화 컨텐츠의 창출일 수도 있고, 정말 가늠할 수 없는 큰 가능성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 정도라면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죠. 그러려면 많은 사람들이 저처럼 바다를 보고, 느끼고, 또 바다에서 놀아야 하잖아요? 그럼 바다를 놀이터로 만들어 주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항해 프로젝트를 생각하게 되었죠. 그런데 그렇게 기획을 하다 보니, 그냥 늘 가던 놀이터로는 안 되겠는 거예요. 지금 국내 연안에서도 요팅은 많이들 하고 있거든요.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바다를 보여줄 순 없을까? 우리가 꿈꾸던 대양 항해! 이게 사실은 되게 어렵거든요. 비용도 많이 들고. 근데 이제 제가 이런 것들을 대신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하고 생각했어요. 많은 사람들에게 자기만의 바다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 이게 ‘신 대항해시대’의 목표였습니다. 먼 바다에 새로운 놀이터를 열어주는 항해.
임수민 정말 먼 바다를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해 주신 것 같아요. 저 같이 요트나 배와는 인연이 없는 보통 사람들은 그런 바다를 볼 기회가 없잖아요. 갑자기 요트를 탈 수도 없고.
Canon. 요트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요트를 타고 하는 모험의 매력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김승진 정말이지 큰 매력이 있어요. 이를테면, 요트에서 바라보는 외국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비행기를 타고 갔을 때 보는 외국과 그 느낌이 굉장히 달라요.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가면, 사실 외부인이잖아요. 관광객이고, 여행자고. 그런데 요트가 있으면 반은 관광객이고 반은 주민이에요. 우리 집이 있거든요. 그래서 완전히 관광객인 것이 아니라, 그 지역 주민의 마음이 절반은 들어가 있어요. 그것이 완전히 다른 여행, 차별화된 여행인 거죠. 내 집을 가져가는 여행. 훨씬 다른 것들, 다른 개념의 것들을 볼 수 있게 돼요.
임수민 관계도 더 많이, 복잡하게 맺게 되는 것 같아요. 언제는 우리가 기름 하나를 구하는데, 수십 명이 도와주셨어요. 저희가 구하는 기름의 양이 처음 구해보는 양인 거예요. 막 한꺼번에 사 가니까. 이걸 담을 게 없는 거죠. 그런데 주민들끼리 논의를 하고, 집에서 뭘 하나씩 다 가져 오셨어요. 그리고 직접 차에 실어서 가져다 주시고. 이런 특별한 경험을 정말 많이 했어요. 마을과 하나가 됐던 것 같아요.
김승진 정말 마을 사람들처럼 돼요. 절반은! 100%는 아니고요.
Canon. 김승진 선장님은 원래 해양 모험가로 유명하시잖아요. 그런데 임수민 작가님은 스트릿 포토그래퍼, 그러니까 바다와는 큰 인연이 없는 길을 걸어오신 것 같아요. 그런 작가님이 이렇게 큰 항해에 도전하게 되고, ‘캐논, 청춘을 항해하다’라는 프로젝트를 하게 되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궁금해요.
임수민 맞아요. 원래의 저는 바다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어요. 산이나 바다 같은 자연은 도시에서 살아가던 저에게 큰 관심거리가 아니었죠. 뭔가 거기서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술을 마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어느 순간 도시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사람들 관계에 너무 치여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지친 도시를 떠나, 좀 다른 공포심을 한 번 느껴보자, 내 자신이 느껴보지 못한 상황에 처하는 걸 해 보자고 생각했죠. 그리고 ‘신 대항해시대’ 프로젝트를 알게 되었어요. 보자마자 이게 내 청춘의 마지막 도전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죽고 오겠다는 말이 아니라, 이만큼의 큰 도전은 내가 또 해보기 힘들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그렇게 익숙한 모든 것들을 떠나 망망대해 위로 오르게 된 거죠.(웃음)
이렇게 큰 모험을 결심하자, 제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새 다들 모험을 즐겨 하지만, 이 정도의 모험은 정말 어렵잖아요. 제 혼자 힘으로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가 어려워 함께 해 줄 후원사를 찾고 있었어요. 사실 이 도전과 청춘의 키워드가 맞는 브랜드가 어디 있나, 했을 때 바로 캐논을 떠올리고 있었어요. 제 첫 카메라가 캐논이었거든요. 그리고 아마 페이스북과 블로그에서 프로젝트를 보셨던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계속해서 등장하는 필름 카메라 역시 캐논의 FTQL이라는 오래 된 제품이고요. 그렇게 캐논과 함께 저의 프로젝트, ‘캐논, 청춘을 항해하다’를 시작하게 되었답니다. 캐논의 다양한 서포트와 기획 덕에 다행히 제 이야기가 더 널리 퍼질 수 있었어요.
Canon. 멋진 모험을 함께할 수 있어 저희도 너무나 행복했답니다. 그러고 보니, 두 분 모두 캐논 카메라 유저이시라고 들었어요.
두 분과 캐논 카메라의 인연이 생각보다 깊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하하. 캐논과의 특별한 인연,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김승진 7년 전 EOS 5D Mark II를 만나게 되며 캐논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고나 할까요? 아니다, 필름 카메라 시절부터 캐논의 EOS 모델을 사용했어요. 필름 카메라 시절에는 휴대가 간편하고, 그립감이 굉장히 좋아서 캐논 카메라를 사용했지요. 이후 DSLR에서 캐논을 선택한 이유는 AF예요. 제가 방송국에서 일했잖아요. 무언가를 보도할 때, 빠르다는 건 굉장한 강점이거든요. 그래서인지 제가 일본에 있었을 때, 방송국에 있었을 때 말이죠. 점점 주변 카메라들이 캐논으로 바뀌더라고요. 빠른 AF! 그래서 저도 얼른 그 시류에 동참했습니다. 하하. 게다가 저는 영상 작업을 하던 사람이기 때문에 EOS 5D Mark II는 영상 작업에도 참 좋았어요. 지금은 EOS 5D Mark III와 함께 항해를 하고 있는데, 역시나 정말 좋은 카메라예요. 저의 모든 항해를 기록해주기에 정말 충분하죠. 제 페이스북에 꾸준히 올라오는 사진들도 모두 EOS 5D Mark III로 촬영한 사진입니다.
임수민 선장님 사진 정말 좋아요.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정말 요트와 바다에 대한 사랑이 느껴진달까요. 너무나 애정을 듬뿍 담아 찍으시기 때문에, 요트 사진은 저도 정말 따라갈 수가 없어요!
김승진 너무 띄워주는데요, 하하. 아마도 제가 바다에 있었던 시간이 길고, 요트 구조를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싶어요. (웃음)
임수민 음, 캐논과의 인연. 저는 어렸을 적 기억에, 그러니까 초등학교 2학년 때 쯤일 거예요. 그때 가족들과 함께 호주에 살고 있었는데, 집 근처 사진관에서 특별 이벤트를 하고 있었어요. 인화를 맡긴 사진 중 베스트 컷 한 장을 더 뽑아주는 그런 이벤트였죠. 그때 제가 부모님 카메라로 사진을 딱 한 장 찍었거든요. 그런데 그게 베스트 컷으로 뽑힌 거예요. 그 사진을 찍은 카메라가 캐논 카메라였어요. 그래서 저는 캐논 카메라를 생각하면 뭐랄까, 마치 선물을 받는 느낌이 들어요. 그런 기억 덕분인지 학창시절 똑딱이 카메라도 자연스럽게 캐논을 선택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저희 반에서 사진을 담당했거든요. 졸업앨범 만들 때에도 제 사진이 참 많이 쓰이고 그랬어요.(웃음)
제가 정식으로 사진을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카메라는 FTQL이라는 캐논의 오래된 필름 카메라예요. 저는 인물 사진을 주로 찍는 사람이잖아요. 제가 생각했을 때 인물 사진은 캐논이 최고인 것 같아요. 그 사람 고유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잘 드러내준다고 생각해요. 특히 아웃포커싱이 마음에 들어요. 빛망울도 정말 예쁘게 나오고. FTQL은 캐논 카메라의 장점을 모두 갖췄고, 거기다 아날로그 감성을 듬뿍 담은 카메라예요. 오래된 느낌이 나는 특유의 입자 표현도 마음에 들어요. 이번 전시에서 보여드릴 사진들도 모두 캐논 FTQL로 촬영했어요. 많이 많이 기대해주세요!(웃음)
Canon. 두 분 모두 이번 항해를 캐논과 함께 해 주셨네요! 정말 기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 그런데 이번 항해는 두 분 모두에게 새롭고 거대한 도전이었다고 들었어요. 무엇이 평소와 달랐고, 달라졌나요? 김승진 선장님은 이번 항해 후 어떤 것들이 달라지셨나요?
김승진 네, 엄청나게 많이 달라졌지요. 저로서는 굉장히 큰 변화라고 생각을 해요. 일단, 국내 항해까지 합하니까 이번 프로젝트에 전부 40명이 참여를 했더라고요. 40명이 항해를 했는데, 이 40명 전원이 바다에서 자기의 세계를 발견했어요. 각자 다 자기만의 바다를 발견한 거죠. 제가 보여주고 싶었던 모든 것들, 그리고 저는 알지 못했던 그 어떤 것들까지도. 반신반의하고 왔던 사람들이 확신을 갖게 되는 과정을 보게 되었어요. 그리고 신나는 건, 저는 제 머리카락 40개를 뽑아서 훅~ 하고 분신을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사람들이 모두 저처럼 바다의 전령사가 되었거든요. 전원이. 이건 정말 엄청난 변화 아닐까요? 한 사람이 이야기하던 것을 40명이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바다를 알게 되고 있어요. 처음에 목표로 삼았던 것보다 훨씬 큰 것을 얻었어요. 지금도 임수민씨가 바다 이야기 하고 있잖아요. 이게 어마어마한 거예요. 이런 한 사람 한 사람들이. 정말 큰 성과였습니다.
임수민 정말, 그러고 보니 요즘 바다 이야기만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진짜 신기해요. 제 자신이 이러고 있어요, 친구들만 보면. ‘야 그래서 있잖아, 내가 바다에서’, 막 이렇게 되는 거예요.
김승진 먼 발치에서 보고 있으면 자기 항해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늘. 자기가 느꼈던 것들을. 신기하게도 저하고 다른 것들을 이야기하더라고요. 참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임수민 자기만의 바다! 그래서 제 이번 전시 키워드가 그거예요. 너만의 파도소리를 만들어 봐(Make your own waves)! 전시장에 자그마한 오두막을 만들고, 그 안에 자신만의 파도 소리를 낼 수 있도록 장치를 해 놨어요. 집 안을 버블로 채워서, 그 안을 걸으면 파도소리가 나요. 하하하 괜찮죠!
Canon. 특히 임수민 작가님은 첫 요트 항해셨어요. 항해 후 어떤 것이 가장 달라졌다고 느끼시나요?
임수민 말씀드렸던 것처럼, 떠나기 전 저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이 사람 관계였거든요. 그런데 오히려 항해를 하면서 사람 때문에 더 힘든 적도 있어요. 항해를 마치고 달라진 건, 예전에 떠나기 전에 저를 막 고민하게 했던 사람과의 관계가 이젠 하나도 고민이 안 된다는 거예요. 이 정도야 뭐, 귀엽네~ 이렇게? 하하하. 농담이고요, 제가 사람 관계 때문에 힘들었던 이유를 항해를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힘들었던 이유는, 우리가 생각보다 서로를 믿고 못했기 때문이더라고요. 항해를 할 때에는 서로에 대해서 ‘이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아요. 일단 믿고, 그리고서 아닌 부분이 있을 땐 분명히 이야기해요. 그 앞에서. 이걸 했어야 했는데 안 했다. 나는 널 믿고 있었고, 너의 책임이었는데 안 한 거다. 그럼 답은 간단해요. ‘죄송합니다’! 그게 너무 편하더라고요.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법을 배웠어요. 옛날에는 좀 피해서, 돌려서 말했다고 해야 하나? 물론 예의를 갖춰서 얘기를 해야 하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잖아요. 그럴 때는 확실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오히려 예의고, 관계를 오래 지속되게 하는 방법이란 걸 알았죠.
김승진 순진한 것이 가장 힘있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순박하고 순진한 것, 단순하고 간단한 것이 제일 힘들고 어려워요. 그런 사람들은 누가 깨기 어렵죠.
임수민 맞아요, 바보를 화나게 하는 게 더 어렵잖아요. 하하. 그게 너무 좋았어요. 우리의 관계는 굉장히 단순했거든요. 난 네가 이렇게 하는 거 싫어. 아, 죄송합니다. 이거예요. 돌려서 말하는 게 없으니까 딱! 바로 해결이 돼요. 바로 스스로 반성이 되고, 더 나아지고.
김승진 처음에는 사람들이 살짝 의아하게 생각해요. 왜냐면 바로 싫어요, 이러니까. 어, 어떻게 저렇게 대답할 수가 있지? 생각하더라고요.
임수민 그런데 괜찮지 않아요? 생각해볼게요, 하고 나중에 서서히 멀어지는 그런 관계보다는 이렇게 단순하고 간편한 게.
김승진 바보들의 논법!
임수민 맞아요, 바보들의 솔직 논법! 사람들이 배 타는 사람들은 거칠다고 하잖아요. 그 이유는 알 것 같아요. 하지만 배를 타 본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오히려 도시의 사람들이 더 복잡하고 무례한 거 같아요. 예의를 갖춘다고 하는 모든 불필요한 과정들이 서로를 더 멀어지게 하죠. 사람 관계에 있어서 가장 강해져서 돌아왔어요. 저에겐 늘 어려운 일이었거든요. (웃음)
Canon. 두 분 모두 목표하셨던 바를 이루고 돌아오셨네요! 정말 축하드려요. 하지만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겠지요. 항해를 하시며 가장 좋았던 일, 그리고 가장 힘들었던 일이 궁금해요.
김승진 가장 즐거웠던 일은 수많은 사람과 같이 항해했다는 거예요. 그리고 가장 힘들었던 일은, 수많은 사람들과 같이 항해했다는 겁니다. 하하하. 저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둘 보다는 셋이 낫고, 셋 보다는 혼자가 낫다. 요트 항해에서는 말이죠. 그랬는데 이번엔 셋이 아니라 한 번에 열 몇 명씩!(웃음) 저는 그 사람들을 하나하나 다 관찰하고, 배를 배정하고, 그런 것들을 해야 하잖아요. 항해를 안전하게 끌어가는 것 외에도 사람들의 성향까지 다 고려해야 하는 것이 어려웠죠. 나는 저 사람하고 같이 타고 싶지 않아요, 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어요. 배는 두 척 밖에 없고. 정말 많은 고민을 해야 했죠.
그런데도 오히려 힘든 일보다는 즐거움이 많았어요. 갑자기 튀어나오는 사람의 에너지, 끼, 이런 것들이 큰 힘이 되고 즐거움이 되었죠.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많은 사람들이 결국엔 잘 어울리는 거예요. 좀 힘들게 어울리는 사람이 있다가도, 또 그런대로 잘 어울리게 되었어요. 그리고 좀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도와주고. 처음엔 막 싫어하고 배척하다가도 어느 순간엔 도와주더라고요. 그런 걸 보고 야, 여러 사람과 항해하는 것도 참 재미있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가장 멋진 건, 대한민국 최초의 시도였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무사히 돌아왔다는 거죠. 정말.
임수민 무사히 돌아왔으니까 하는 얘기들!
김승진 진짜 대단한 일이에요. 중간에 돌아간 사람도 없이. 물론 이게 쉽지 않은 일이라, 가고 싶단 얘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그러면 제가 ‘가고 싶으면 가’, 그랬어요. 아까 ‘바보가 가장 무섭다’고 했잖아요. 바보의 대화는 심플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어요. ‘가’ 하면 ‘네’, ‘아니오’ 해야 하죠. 근데 그 사람은 안 가고 끝까지 따라오잖아요. 제 진짜 마음은 보내고 싶지 않았는데, 제 속마음을 모두 따라와 주더라고요. 끝까지. 정말 고마웠어요. 저는 그 사람들이 이겨내기를 원했어요. 이걸 이겨내서 끝까지 한국에 간다는 성취감을 얻어가기를 바랐어요. 그거 하나도 못 얻어간다면 미안한 말이지만 불쌍한 거죠. 온 이유도, 고생한 이유도 없어지잖아요.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피니시 라인을 통과했느냐, 그렇지 못했느냐는. 그래서 저는 모든 크루들에게 이 말을 했어요.
‘끝까지 가는 것은, 꽤 중요한 일일 것이다.’
Canon. 정말 멋진 이야기에요. 끝까지 간다는 것은 꽤 중요한 일이다! 끝까지 다녀오신 또 한 사람, 임수민 작가님의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임수민 가장 좋았던 일과 가장 힘들었던 일이요? 저는 가장 좋았던 일은, 불침번 때. 불침번이 좋았던 건 아니고요(웃음), 고요한 가운데의 그 달빛이 가장 좋았어요. 달의 재발견, 이라고 할까요? ‘서울의 달’이란 노래 있잖아요, ‘너도 나처럼 외로운’ 하는. 저는 항상 달을 보면 외롭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런데 그 깜깜한 바다, 자기 손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둡던 그 바다가 보름달 때는, 너무 빛이 나서 잠이 안 올 정도로 환해져요. 달은 크고 가까워 보이죠. 그리고 그 보름달이 바다 위를 비추면 마치 빛으로 된 길이 생기는 것 같은데, 그 길이 꼭 걸어갈 수 있을 것처럼 단단해 보여요. 환하고, 단단하고, 가까운 그 빛을 보며, 저는 달이 엄마처럼 느껴졌어요.
김승진 많이 울었겠다.
임수민 네, 정말 많이 울었어요. 언제는 한 번 어떤 크루와 크게 싸운 일이 있었어요. 그날 불침번을 서면서, 달 보면서 소리 내서 정말 엉엉 울었어요. 근데 지금 생각하면 너무 웃겨요.
김승진 그런 게 있어요. 저도 혼자 여행하면서, 구름 보면 할머니 같고 그래서 눈물 펑펑 흘린 적 있어요. 자연을 보면 얻어지는 그런 감정, 그런 게 있어요. 참 이상하지. 너무 이상하지.
임수민 네, 정말 이상하게도 그런 감정! 바다 위에서 본 달. 참 좋았던 기억이에요. 그리고 힘들었던 거는, 해이해지는 제 모습이었어요. 아직도 후회되는 일들이 많아요. 그때 짜증 한 번만 덜 낼걸. 그때 그런 소리 하지 말걸. 그런 것들이 후회가 되더라고요. 끝까지 피니시 라인을 지키긴 했지만, 좀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했으면 좋았을 텐데 생각해요. 하지만 그래도 괜찮아요. 중간에 그만두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끝까지 왔다’, 하나는 이뤘잖아요. 이제 다음 목표가 생긴 거죠. 다음에는 끝까지 다른 사람들을 위하자, 해이해지지 말자. 그걸 이루면 저를 좀 멋있게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웃음)
김승진 정말 대단한 게, 진짜 완전 초보예요. 타자마자 태평양 횡단입니다. 경이로운 거예요.
임수민 무식한 게 힘이라고, 몰라가지고. 계속 나오는 단어가, 바보, 무식! 이런 거네요. 하하.
Canon. 두 분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정말 대단한 모험을 마치셨다고 생각돼요. 좋은 일도 많았지만 힘든 일도 정말 많으셨던 것 같아요. 고난의 순간, 두 분을 지탱한 한 마디의 말. 그런 것이 있을까요?
임수민 엄마와 했던 마지막 통화요. 첫 출항 10분 전에 엄마랑 마지막으로 전화를 했거든요. 엄마가 ‘선생님 말 잘 들어!’ 하셔서 제가 ‘엄마, 선장님이야. 선생님이 아니구.’했죠.(웃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엄마가 그러셨어요. ‘수민아, 한 달 동안이나 항해를 하다 보면 배가 널 가둬둔다고 느껴질 수도 있어. 그러면 머릿속으로 여행을 해. 너는 어렸을 때부터 머릿속으로 여행을 떠날 줄 알았던 애니까, 배가 너무 지겨우면 머릿속으로 여행을 떠나버려.’ 그래서 정말, 항해를 하다가 힘이 들거나 외로우면 머릿속으로 다른 것들을 상상했어요. 배 위에서 춤추는 걸 추는 걸 상상한다던가, 수영 하는 걸 상상한다던가. 그러면 정말, 마음이 훅 가벼워지더라고요. 내가 지금 처해있는 고통이 그리 크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우리가 힘들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지나고 보면 별일 아닌 게 많잖아요.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닌데 죽고 사는 일처럼 짜증을 내고 화를 내요. 근데 정말 ‘마음으로 여행을 조금 다녀오면’ 훨씬 여유로워지고, 짜증이 아닌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그거 하나로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김승진 어머니가 정말 멋진 분이시네요! 음, 저 같은 경우는 어떤 말을 생각한다기 보다는 사람들을 생각했어요. 저는 사람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아하는 바다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것만 해도 행복이었어요. 가끔은 화가 나고 짜증이 날 때도 있어요. 그런데 그런 것들을 다 덮을 만큼의 가치가 있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바다를 보여줄 수 있다는 행복, 그 사실 하나가 저를 끝까지 잘 올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던 거 같아요.
임수민 그런데 이걸 저도 참 많이 느낀 게, 저는 5개월동안 항해를 했지만 중간 중간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고, 또 나가고 했거든요. 그 사람들이 정말 많을 거 아니에요. 그런데 새로운 사람이 오면, 저한테 해주셨던 그대로를 다시 해 주세요. 마치 선장님한테도 처음인 것처럼. 그게 그렇게 고맙고 감동일 수가 없었어요. 선장님처럼 배를 많이 타면 그 모든 게 얼마나 일상적인 일이겠어요. 근데 물고기 하나를 잡으셔도, 와 이것 봐, 하면서 기뻐해 주시는 거예요. 그러면 너무 신이 나요. ‘그쵸? 이거 새로운 거 맞죠? 이거 정말 감동적인 거 맞죠?’ 하고요. 다른 노련한 분들 같으면, 제가 가서, 오빠 저 달 봐. 너무 아름답다. 이러면, ‘야 나 저거 수도 없이 봤어’ 이랬는데. 하하. 그런데 제가 선장님께 ‘선장님, 달 보세요’ 그러잖아요? 그러면 수백 번, 수 천 번은 보셨던 분이 ‘아, 오늘 진짜 아름답다. 한 잔 해야지?’ 이러세요. 이런 선장님이 계셨던 덕분에 우리 모두 자기만의 바다를 볼 수 있었어요. 그게 없었다면 우린 아마 하루 만에 질렸을 거예요. 집에 가고 싶거나. 매일 매일 똑같을 수 있는 바다를 새롭게 만들어주셔서. 그게 너무 감사해요.
김승진 아니에요, 그렇게 해석을 해 준거고.(웃음) 저는 우리 컨셉이 바보라고 그러잖아요. 바보이기 때문에, 정말 늘 좋았어요.
임수민 그게 너무 멋있는 거라구요!
김승진 하하, 그런데 아름다운 보름달을 볼 수 있는 시간들이 그렇게 많이 오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항해를 해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내 인생이지, 지나갔던 날들은 내 인생이 아니에요. 그건 과거라고 하거든요. 내 삶은 지금밖에 없어요. 지금 내가 이걸 행복해하지 않으면 난 내 인생이 행복하지 않은 거예요. 저는 산수를 굉장히 잘 하거든요. 수학은 못해도. 이건 산수예요. 나는 지금밖에 존재하지 않고, 지금 내가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내 인생에는 행복이 없는 거예요. 보름달이 백 번이 오든 천 번이 오든 즐길 수 있어야 내 인생이 행복한 거예요. 살면서 가장 중요한 건 ‘행복하다는 느낌을 얼마나 받느냐’라고 생각해요. 뭘 이루면 어떻고, 못 이루면 어때요. 어차피 다 죽잖아요. 아무리 많은 재산이 있어도 죽으면 그거 다 남들이 쓰지, 내가 안 써요. 그렇다면 어떻게 존재해야 이 세상을 값어치 있게 살까. 값어치 있을 것도 없어요. 그냥 즐기다 가면 그뿐인 거예요. 행복하게 사는 것이 목표잖아요. 그렇다면 행복을 좀 더 많이 느끼는 것이 ‘윈(win)’이에요. 많이 못 느끼면 지는 거죠. 내 인생이니까, 한 번 밖에 없으니까. 석 달 전에 뜬 보름달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오늘의 보름달이 제일 중요하죠. 아, 저건 이미 본 거야, 지겨워. 그럼 그 사람은 지금 아주 지루한 인생을 보내고 있는 거예요. 이건 너무 간단한 산수예요.
Canon. 두 분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너무나 보석같아요. 인터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멘토링 수업을 받는 기분이에요. 그럼 분위기를 좀 바꿔서! 카메라와 사진 이야기를 좀 시작해볼까 해요. 임수민 작가님은 전문 포토그래퍼시고, 김승진 선장님께서도 전직 PD셨고. 두 분 모두 사진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시다고 들었어요. 의지할 곳 없는 망망대해에서 ‘사진’은 어떤 의미였나요?
김승진 사진! 정말 굉장히 중요해요. 왜냐하면 글은, 팩트를 그대로 전달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늘 엇박자로 전달이 되는 느낌이랄까? 제가 전달하지 않은 것들이 전달되는가 하면, 전달하고 싶은 내용은 전달되지 않을 때도 있죠. 그런데 사진이나 영상은 달라요. 명확하게 그 현실을 그대로 옮겨 놓지요. 그래서 사진과 영상에는 ‘팩트’ 를 전달한다는 파워가 있죠. 이건 스스로에게도, 그리고 타인에게 그 정보를 전달할 때에도 큰 의미가 있어요. 우리가 지나간 일을 회상하면 1부터 10까지 중에 1, 3, 7, 이렇게 띄엄띄엄 생각이 나요. 그런데 사진을 보면 2나 4 같은 것들을 떠올릴 수 있죠. 나 혼자의 회상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글로만 전달하면 사람들은 그냥 상상의 나래를 폅니다. 그런데 사진을 보면 그게 현실이 돼요. 자기가 알고 있던 것들로 상상하던 것들이 ‘아, 이거였구나’ 하고 바뀌는 거지요. 사진은 저에게 굉장히 중요한 의미에요. 제 꿈의 이야기를 현실화 시켜주는 하나의 매개체죠. 저는 EOS 5D Mark III를 사용하고 있고, 늘 기록적인 사진들을 남겨요. 그리고 그 사진은 다른 사람들에게 제 바다를 보여주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임수민 이번 항해에서 저에게 사진은 ‘몰랐던 부분을 알려주는 것’이었어요. 저는 필름 카메라를 쓰니까 제가 찍은 사진을 확인할 수 없었거든요. 그런데 암실에서 되게 많이 울었어요. 그때는 다 모르고 지나갔던 부분들이 이제서야 보이는 거예요. 내가, 우리가 이렇게 행복했구나. 이렇게 외로웠구나. 이 섬이 이토록 아름다웠구나. 하하. 사실 저는 제가 찍은 사진은 정확하게 기억하거든요. 그게 어떤 순간이었는지. 근데도 셔터를 누르는 순간에는 몰랐던 거예요. 나중에 사진을 보니까 알게 되는 거죠. 그리고 그게 너무 고마웠어요. 제가 그 사진을 찍었다는 사실이.
Canon. 바다 위에서 찍은 임수민 작가님의 사진이 정말 궁금해져요. 이 대목에서 우리, 아까 살짝 나왔던 전시 이야기를 제대로 해보아야 할 것 같은데요. 캐논 갤러리에서 열릴 임수민 작가님의 사진전! 모두에게 소개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임수민 물론이죠! 전시 타이틀은 ‘21세기 집시의 항해’예요. 영문으로는 ‘salty diary of a girl at sea’. 바다에서 쓴 한 소녀의 짠 일기?(웃음) 내용은 말 그대로, 어떤 소녀, 소녀라고 하기엔 너무 늙었지만! 하하. 아무튼 어떤 소녀가 요트를 타고 태평양을 간 이야기예요.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낭만적인 항해 사진이랑은 매우 달라요. 굉장히 감성적인데다 필름으로 찍어서 또 굉장히 올드하죠. 그리고 사진 속에 나오는 건 죄다 남자! 거의 다 남자잖아요, 우리 크루가.
김승진 아니, 여자도 많았는데, 남자한테밖에 관심이 없었던 거지.(웃음)
임수민 아, 아니에요! 음, 그런가? 근데 사실 제가 이렇게 벗은 남자의 몸을 많이 보는 건 처음이어가지고. 하하. 아빠 몸도 그렇게 많이 못 봤어요 정말. 그래서 남자 몸에 대한 관찰도 되게 많아요. 하하하. 아무튼, 저는 사실 제 모험이 어떻게 보면 전 실패했다고 이야기해요. 사람 관계에서 트러블을 만들고 싶지 않았는데 스스로가 트러블을 만들었고, 스스로를 힘들게 했죠. 그 부분에서는 실패했다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그거 자체로도 저는 괜찮다고 생각해요. 사실 모험이라는 게 저는 꼭 성공할 필요는 없잖아요? 실패해도 아름다웠던 이 모험이 2017년 저의 여름을 온통 메웠어요. 그리고 실패했지만, 저는 태평양에서 저만의 파도를 만들고 돌아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의 실패한 모험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도 그런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전시장을 채웠어요.
전시 오프닝은 28일이에요. 6시부터 9시 반까지 오프닝 행사를 하는데, 맛있는 술도 있고 저도 있고, ‘캐논, 청춘을 항해하다’를 통해 보셨던 반가운 얼굴들도 많이 있을 거예요. 많이 많이 방문하셔서 함께 저의 모험 이야기를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웃음)
Canon. 그럼요! 많은 분들이 작가님의 전시를 통해 용기를 얻고, 자신만의 파도소리를 만들 수 있을 거예요. 이미 멋진 활동을 하고 계시는 두 분!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김승진 요즘은 짧은 항해와 강연 활동을 하며 사람들에게 바다 이야기를 해 주고 있는데요. 당면 최대 과제라고 하면, 하하. 가장 큰 목표는 월드 레이스에 출전하는 겁니다. 논스톱 세계 일주 시합이 있거든요. 세계에서 가장 큰 시합인데요, 이 시합에 출전하기 위해서 스폰서 활동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워낙 어마어마한 경기다 보니 혼자 힘으로는 어렵더라구요. 월드 레이스에 출전한 다음, 대한민국의 요트가 세계의 탑 클래스에 섰다, 그거까지는 제가 이뤄놓고 싶어요. 세계 정상, 이것이 제 꿈입니다.
임수민 또 다른 도전, 그리고 모험이네요! 음, 저는 사실 아직, 제 모험이 끝난 게 아니라서요. 이 모험으로 비롯된 일들이 하나씩 계속 시작되고 있어요. 책도 내고, 곧 오픈할 전시도 중요하고요. 지금의 모험들을 마무리한다고 하면… 지금 우리가 서울 마리나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잖아요. 저는 계속 마음이 울렁거리고 있거든요. 바다가 너무 그리워서요. 그래서 또 좋은 기회가 있다면, 다시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떠나고 싶어요. 몰랐는데, 제가 바다를 너무 좋아했던 거죠.
김승진 그런 바다와 인생이 더 좋은 사진을 만들어낼 거예요. (웃음)
Canon. 두 분의 모험과 도전이 꼭 성공하기를 응원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먼 바다에서 뜨거운 모험을 마치고 돌아오신, 푸르른 청춘 두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어요. 마지막으로, 이 시대 꿈꾸는 청춘들을 위한 한 마디, 부탁드릴게요.
임수민 저는 지금까지 ‘너는 모험적이다, 도전적인 사람이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어요. 하지만 이번만큼 저 스스로 모험이라고 칭할 만한 건 없었거든요. 왜냐하면 이번 모험이 ‘실패할 만한’ 모험이었기 때문이에요. 그동안은 성공이 보장된 것이거나, 혹은 실패하더라도 그냥 기분 나쁘고 끝날, 그런 작은 도전들이었어요. 그런데 이번 모험은 도전하는 것 자체로 커다란 용기가 필요했고, 끝까지 완수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거든요. 끝까지 가는 것, 피니시 라인을 지킨 것만으로도 기쁠 수 있는 큰 목표에 도전해 보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모험의 크기를 계속해서 발전시켜 나가야지, 한 번 작은 모험에 성공했다고 해서 거기에 안주하면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청춘들을 위해서라면 이런 이야기를 해 드리고 싶어요. ‘실패해도 괜찮으니까, 좀 더 큰 걸 바라봤으면 좋겠다’고.
김승진 청춘들을 위한 한마디! 저는 ‘실행모드’가 필요하다는 말을 해 주고 싶어요. 꿈만 꾸거나, 조건만 만드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다가 타이밍을 놓치거나 용기를 잃어버리는 일들을 많이 보거든요. 내가 가지고 있는 것, 꿈꾸고 있는 것이 있다면 실행을 해야죠. 실행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 용기야말로 우리 청춘들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조건이 다 갖춰져도 실행할 수 있는 용기가 없다면 무엇도 할 수 없어요. 너무 많은 조건들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 보다는 실행할 수 있는 용기를 만들어보세요. 이것이 제가 청춘들께 드리고 싶은 말입니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