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사의 릴리프가 새겨진 돌기둥에 둘러싸여 '1000기둥의 신전'이라고도 불리우는 신전으로서, 멕시코 중앙고원에 위치한 툴라유적과 비슷한 신전으로서 치첸 이차와 톨테카문명과의 교류설이 강하게 나오는 증거가 되고 있다. 현재 관람객의 입장은 통제되어 있지만 위에는 차크 몰(chac-mools;마야의 비의 신)의 누운 석상이 있어, 이 석상의 배위에다 도려낸 살아있는 사람의 심장을 올려놓고 제물의식을 행하였다고 한다. 또한 석상의 시선은 하지 때 일몰지점을 향하고 있다.
전사의 신전
전사의 신전 1000개의 돌 기둥
전사의 신전의 차크 몰 마야 비의 신전사의 신전의 차크 몰 마야 비의 신
치첸이차 엘 카스티요(피라미드) 신전
城 [ El Castillo]
9세기초에 세워졌다는 카스티요(El Castillo 91계단의 피라미드) 신전의 높이는 25m. 중앙의 계단에 나누어진 18개의 테라스는 마야력(歷)의 달을 나타내고, 한면의 계단은 91개로서 4면의 총합은 364개, 여기에다 꼭대기의 제단을 더하면 꼭 태양력의 1년 날수와 같은 365단이 된다고 한다. 게다가 각 기단에는 판넬부분이 한면에 52개가 있는 데 이 것은 마야력의 주기인 52년과 동일하다. 매년 춘분의 일출에는 북쪽면 계단(사진에서 왼쪽면)에 맨밑의 기단에 있는 털난 뱀의 머리조각이 기어내려오는 모양으로 그림자가 비추어 지고 추분에는 반대로 기어올라가는 모양으로 비추어 진다. 여기서 마야인들의 예술적 건축기술과 천문학 지식수준을 짐작해볼 수 있다
치첸이차 엘 카스티요(피라미드) 신전 태양신 테오이티우아칸(불의 뱀) 문양
치첸이차의 금성의 신전
깃털달린 뱀(마야어로 '쿠쿨칸')이 사람의 머리를 물고 있는 모습이다. 금성의 대한 조각도 새겨져 있는데 천문학적인 용도로 사용되었던 제단이다
치첸이차의 금성의 신전
치첸이차의 재규어의 신전
촘판틀리 옆에 위치한 이 신전은 용도 또한 촘판틀리의 그것과 비슷했다. 마야인들에게 있어서 재규어는 경외와 공포의 대상이었다. 사방으로 깃털달린 뱀의 머리가 조각되어있고 벽면에는 재규어와 독수리가 발톱으로 인간의 심장을 물어채는 모습등 상당히 과격한 그림이 새겨져있다. 제단위에 놓인 인간제물의 심장 혹은 인간제물의 사체는 신의 사자라고 여겨졌던 독수리가 와서 먹어치웠다고 한다.
치첸이차 재규어의 신전
치첸이차의 수도원 [Casa de las Monjas]
유적의 가장 남쪽부분에 위치한 이 건물은 말은 수도원이지만 실제로는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었는지 불분명한 곳이다. 높이 20m의 기단위에 세워진 2층구조. 코끼리같이 긴 코를 지닌 비의 신 '차크 몰'이 사방으로 조각되어 있다.
치첸이차의 Beardedman Temple
멕시코 치첸 이차의 마야 유적지
치첸 이차의 유적 , 메리다의 남동쪽에 위치한 치첸 이차는 쿠쿨칸의 신전들이 모여있다
마야 문명과 톨텍 문명이 남긴 멕시코의 신전들이다. 이 신전들은 신대륙 발견 이전의 유적지로 차크몰 석상과 붉은색을 칠한 재규어 형샹의 왕관이 있는 30m높이의 쿠쿨칸 피라미드, 91 X 36m크기로 멕시코에서 가장 큰 구기장, 수염 난 남자의 신전, 재규어 신전, 독수리와 재규어 제단, 성스러운 샘인 30m깊이의 세노테, 1000개의 기둥이 있는 신전, 제사장의 분묘, 화려한 집과 벽, 판넬레 신전이 있다
우슈마르 마야 피라미드 신전
멕시코 우슈마르 마야 피라미드
우슈마르는 3세기에 이미 도시의 기틀을 잡고 7∼10세기에 절정기를 누린 당시 유카탄 반도의 정치·교통·문화 중심지다. 현재 남아 있는 우슈마르의 '총독 저택'은 마야문명 최고의 건축술을 보여준다. 또 높이 38m의 '마법사 피라미드'는 독특한 양식으로 관심을 모으는데, 70m×50m의 저변이 정방형이 아닌 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이런 형태의 피라미드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경사도 60도에 계단이 121개로, 정면에는 마야의 '비(雨)의 신(神)'인 차크의 얼굴이 수없이 새겨져 있다. 비가 내리기를 고대했던 마야인들의 간절한 소망을 엿볼 수 있는 부분. 이 피라미드는 알에서 부화돼 1년 만에 어른으로 자란 난쟁이가 하룻밤에 건설한 것이라는 전설이 남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300년에 걸쳐 세운 것으로 보인다. 최상층부의 신전이 11세기의 것으로 판정됐고, 내부에 자리잡은 4개 신전의 건축 양식으로 미루어 완성까지 300년이 걸렸음을 추리해 낼 수 있다. 우슈마르는 이 피라미드를 통해 전성기의 마야문명을 보여주고 있다.
멕시코 테오티우아칸 전경 , 오른쪽에 태양의신전, 끝쪽에 달의 신전이다
멕시코 테오티우아칸 유적
메소아메리카에서 일찍부터 발달된 올메크문명은 문명의 발달사에서 주목받지 못하였으나 동에서 서로, 저지대에서 고지대로의 무역로를 통해 올메크문명은 전파되었으며 중앙아메리카 지역에 많은 문화유산을 남겼다. 올메크문명의 유산으로서 가장 위대한 것 중 하나가 테오티우아칸(Teotihuacan)이라는 도시의 출현이다. 테오티우아칸은 멕시코시티의 북동쪽 48km 지점, 멕시코강과 푸에블라강 사이의 계곡 중 가장 좁은 지역에 위치해 있다.
테오티우아칸 계곡의 저지대는 비옥한 충적평야 지대였으며 샘이 항상 솟아 고산지대에서 나타나는 불규칙한 강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또한 이 지역은 흑요석의 주요한 매장지로서 흑요석 원료나 흑요석으로 만든 도구들을 이용하여 무역이 이루어진 곳으로 경제적으로도 아주 중요하였다. 테오티우아칸은 가장 오래된 고고학적 장소의 하나로 알려져 있으며 1864년 처음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후 1886년부터는 본격적인 발굴이 시작되었다. 태양의 미라미드와같은 특정한 기념물은 1905∼1910에 복원되었다.
1962년부터 태양의 미라미드 아래에 위치해 있는 쿠에트잘마리포사 동굴의 발굴을 포함한 고고학적 연구는 종교의식지역의 환경에서 정체성을 찾기 위해 더욱 발굴 작업에 집중하였다. 그 결과 세계도시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이며 종교적 중요성에 의해 건설되고 발달하였던 테오티우아칸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인정되어 1987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테오티우아칸은 중남미의 문명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테오티우아칸인들은 이곳에 거대한 피라미드를 쌓고, 태양신을 숭배했는데 이는 아즈텍, 마야, 잉카 등 후대의 문명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특히 태양신에게 바치기 위해 산 제물의 심장을 꺼내는 잔인한 의식은 후대의 문명들이 그대로 따르는 종교의식이 되었다. 기원전 2세기경에 만들어진 테오티우아칸은 A.D 350∼650년 사이에 절정기를 맞는데 이 때 이 도시엔 20만명 정도가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시의 이 인구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유럽에서도 콘스탄티노플을 제외하곤 이런 규모의 도시는 없었다. 하지만 7세기경 이 거대한 피라미드 도시를 만들었던 테오티우아칸인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는 아직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태양의 피라미드
세계에서도 3번째로 큰 피라미드로 높이가 65m, 밑변이 225m에 달한다.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왕의 무덤인 반면 테오티우아칸의 피라미드는 종교의식용이란 점이 다르다.
달의 피라미드
태양의 피라미드보다는 약간 작은 규모지만 그 앞의 광장 크기로 보아 훨씬 중요했던 종교의례 장소로 여겨진다. 조금 힘들더라도 이곳은 반드시 정상까지 올라가 보아야 한다. 테오티우아칸의 전망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자(死者)의 길
테오티우아칸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약 2㎞의 대로다. 산 제물이 걸어갔던 길로 추정된다.
케찰코아틀 신전
케찰코아틀은 「깃털 달린 뱀」이라는 뜻이다. 치첸이사 유적과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생명과 풍요의 상징인 뱀을 숭배했던 것으로 보인다.
테오티우아칸 태양신전 피라미드
테오티우아칸 태양신전 피라미드
테오티우아칸문화의 산물인 태양의 피라미드는 248개의 계단과 220m 이고 높이는 약 65m로 1만 명이 완성하는 데 20년이 걸린다고 할 만큼 웅장하다
태양의 신전과 제단 피라미드들
테오티우아칸 달의 신전 피라미드
멕시코시티에서 북동쪽으로 52km 떨어진 테오티우아칸 유적지에 있는 '달의 피라미드', 멕시코 고고학자들은 최근 이곳의 무덤에서 발견된 다량의 유해가 참수된 것으로 미뤄 피라미드가 사람을 희생물로 바치는, 선혈이 낭자한 곳이었다고 밝혔다.
죽음의 길
뱀의 피라미드
뱀 피라미드의 날개달린 뱀 부조
케찰코아틀 신전
케찰코아틀 신전의 태양신 부조
피라미드 앞의 케찰코아틀 석상들
멕시코 태양신 벽화
케찰코아틀신과 테스카트리포카신 모습을 그린 벽화이다. 이 두신의 항쟁에 의해 세계는 4번 창조와 멸망을 반복했다.
마야 신전(과테말라 티칼) | 잉카,마야신전
티칼 사원
과테말라 티칼 마야 유적지
과테말라의 대표적인 신전으로 과테말라 공원있다.티칼의 사원 피라미드 중 에서 가장 높은 20층은 아메리카 발견 이전에 가장 높은 곳으로 남아있다.이 석회석 고층 건축물의 꼭대기에는 신왕과 그의 제왕 들이 그들의 조상을 통해 신과 접촉한 곳이다. 정교한 달력 체계의 사용으로 그들은 백 만년 이상의 날들을 측정했다, 최근에 티칼과 다른 마야의 장 소에서 판독 되어진 상형문자는 수학자와 천문학자로 왜곡하게 한다. 기원전 7세기에 정착했던 티칼은 250년에서 900년까지 고대 마야 문명과 함께 번성했다. 도시의 정점은 사방 50마일로 가로질러 퍼져 있고 4천명이상의 거주민이 있었을 수도 있다. 티칼은 사원의 피라미드와 넓은 인도와 장터가 있는 궁전을 자랑한다. 고고학자들은 약 500개의 구조물을 발굴하고 금속도구 없이 축조된 약 3 천개의 지도를 만들었다. 9백 년에는 도시인구가 모두 사라졌다.
티칼 1호 신전
세계 최대 마야문명 유적지인 과테말라 티칼의 대표격인 제1호 신전, 9층으로 된 1호 신전은 682년에 즉위해서 적어도 711년까지는 왕좌를 접했던 것이 확실한 A왕의 묘가 지하에 있다. 상부의 신전은 3개의 방으로 되어있고, 지붕장식에는 왕좌에 앉은 왕의 상 이 그려져 있다. 티칼 국립공원 안에는 5개의 대신전을 비롯해 크고 작은 피라미드, 궁전, 돌비석 등이 발굴 및 복원되어 있다. 이 신전은 "재규어의 신전"이라 하며 높이가 51m 이다.
디칼2호
티칼 유적지의 중심이 되는 곳으로 동서에 두 개의 큰 신전이 있고 북쪽으로는 북 아크로폴리스, 남쪽으로는 중앙 아크로폴리스가 있다. 아크로폴리스는 큰 신전과는 별도로 궁전이나 신전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과테말라 호쵸부 신전
멕시코 국립 인류학 박물관의 마야실의 정원에 만들어진 고전기 마야 유적으로 호쵸부의
신전을 복원한 것이다
과테말라 코드수포프 신전
멕시코 아즈텍 신전 | 잉카,마야신전
아즈텍 테나유카 피라미드 신전
아스텍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은 인구 15만에서 20만 정도의 대도시였는데, 16세기 초 에스파냐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어 그 건조물의 대부분은 사라지고 말았다. 거의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 신전은 테나유카·산타세실리아·칼리슈틀라와카 등 테노치티틀란 주변의 작은 규모의 유적들뿐이다.
아즈텍 테나유카 피라미드 신전 뱀 신상
멕시코 아즈텍 신전
아스테크 문명
아즈텍문화는 톨테카문화를 이어 13∼15세기경 멕시코 중앙 고원에서 인디오에 의해 꽃피워졌던 마지막 고대문명이었다. 북멕시코의 수렵민족이었던 아즈텍이 남하해 와 선진 중미문화에 동화되어 마야, 잉카와 맥을 같이 하는 수준 높은 문화를 이룩한 것이다. 멕시카라고도 불리는 아즈텍인들이 오랜 방황 끝에 태양신 휘칠로포츠틀리의 신탁으로 텍스코코 호반에 처음 정착한 것은 1352년이었다. 그들은 앞선 고대문화를 수용하여 독특한 아즈텍문화를 일구어 내었다. 아즈텍문화의 우수성은 1970년에 '아즈텍 캘린더'라 불리는 태양의 원형석판이 발굴되면서 다시 한번 증명되었다.
이 캘린더는 단순한 억 년의 표시를 위한 것이 아니라 아즈텍인들의 우주관과 철학, 절기에 따른 농경과 제사, 1년을 280일(종교력)과 360일(태양력)로 하는 연도의 이중계산법이 모두 포괄되어 있다. 특히 '아즈텍 캘린더'에 나타난 그들의 우주관은 톨테카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우주를 네 부분으로 구분하고 그들의 세상을 다섯 번째 태양의 시대로 상정하였다. 그리고 수평의 우주는 다시 수직면으로 9층의 천상세계와 지하세계를 두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의 위에는 최고신이 있어 자식들인 대지, 공기, 물 불 등 네 신으로 하여금 지나간 시대의 네 우주를 생성. 소멸케 하였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제5의 태양시대'에 살고 있는 그들은 그 태양이 사멸하고 우주가 멸망하는 것을 막기 위해 대규모의 인신공희(人身供犧)를 행했다. 즉 사멸을 뜻하는 허무와 암흑과 싸우는 태양에게 인간의 뜨거운 피와 살아 있는 심장을 바쳤고, 그 대가로 태양신은 영원히 아즈텍의 번영을 약속해 주었던 것이다. 매일처럼 떠오르는 태양에게 지속적인 활력을 주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산 제물이 공급되어야 했다. 이를 위해 범죄자나 정치적인 반대세력들이 우선적인 대상이 되었고, 산 제물의 확보를 위해 무자비한 정복전쟁을 치러야 했다. 그러나 아즈텍인들은 1520년 갑자기 나타난 에스파냐의 페르난도 코르테스가 거느린 수백 명의 군대의 침입으로 수개월에 걸친 외교교섭과 격렬한 전투 끝에 멸망하였다
첫댓글 즐감하다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