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에 관한 시모음 24)
2월의 염원 /鞍山백원기
반갑고 기쁜 소식
들려오게 하소서
암담하고 추운 때
겨울비 쏟아지지 않고
찬바람 일지 않게 하소서
둘러보면 갑갑하오니
보이는 것마다 웃음 짓게 하시고
다가오는 우수에
얼었던 물 녹아내려
손 한 번 담그게 하소서
봄비에 싹이 트고
가는 세월 아쉽지 않게
바람의 열매 맺게 하시고
자나 깨나 감사한 마음
하늘을 우러러 기도할 때
문틈 칼바람 멈추고
자유와 평화 깃들게 하소서
2월은 그렇게 /임영준
언제나 그랬지
안팎으로 어수선하고
기약이 불신이 되고
다짐이 조짐이 되고
새싹이 숙주가 되는 걸
그렇게 지켜보아야 하는
찰나에 지나가는
징검다리가 될 허우룩한
잔설의 긴 충격들
앞 산의 2월 /이원문
섣달 그믐 정월 초면 춥기라도 하는데
쌓인 눈 없는 정월 그믐 쓸쓸하기만 하다
봄 날에 가까운 어중간한 앞 산
절기로는 우수라 겨울 속의 봄인가
트일 움 돋은 싹 이 것도 저 것도 아닌 산
수양버들 그 버드나무의 추운 양지일까
언제 봄바람에 버들강아지 보내 줄 것인가
흐르는 냇물도 앞 산의 나뭇가지도
아직은 아닌데 바람 불어 그 겨울이고
담 밑 울 밑의 양지녘 봄 소식 기다린다
2월 침묵에게 /송정숙
우리
마지막이라 말은 말자
손도 흔들지 말자
작고 크게 가슴 울리던
뻐근함을
기쁘게 기억하며 보내주마
이월의 그림자 /백인덕
창틀이 운다.
헐벗은 겨울나무 두 그루
여윈 그림자마저 닿지 않아
골목은 온통 얼음판이다.
새벽 내,
누군 미끄러져 눈알이 빠지고
누군 또 팔목이 꺾이고
아, 밤의 누군가는 미끄러지기도 전
제 그림자를 풀어버렸다지만,
방문 틈으로 독가스처럼 새어드는
여린 기침소리, 멈추지 않는다.
볼펜 끝을 하염없이 붓질하던
더러운 손으로
창문 안쪽의 심장을 더듬는다.
곱게 빨린 세로 줄무늬 죄수복 아래
뼈아픈 심지를 눌러 본다.
아무래도 잘못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삶을 모르는 겨울나무 두 그루
서로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울고 있다.
삶은 맞서야 하는 칼바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신발 아래 차갑게 끌어야 하는 헐거운
수레가 아닐지도 모른다.
창틀이 운다. 지난 겨울밤과 같이
쇠와 나무 두 잇몸을 엇갈려 흔들리며
덜, 덜, 덜,
울음 끝에 서로를 풀어놓으려 한다.
한밤을 지새워 배울 수 없었던 것은
한 생을 태워 지워버려야만 한다.
늘 새로 태어나는 것만이 아침의 숙명이니까.
2월 /박시하
병든 눈이 내린다
병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편지를 쓰면
검은 꽃이 핀다
다리는 시간을 젓고
팔은 그림자를 짓는다
들판에 핏방울 하나 흘리지 못하고
지은 그림자를 지우며
지운 그림자를 다시 주우며
더 멀리
시간이 빛의 모서리에서 눈을 맞는다
죽음이라는 말이
어두운 먼빛으로 간다
끝나지 않는 들판에서
떠나지 않는 여행을
너의 손을 처음 잡는 것처럼
무슨 선물처럼
열어 보았다
2월 /유희선
그는 모자도 바꿔 쓰지 못하고
2월에 가장 적합한 사람
번제물로 바칠 아들조차 없는 그에게
벼랑 끝까지 밀어붙이는 부드러운 손길, 시험에 든 그의
얼굴에는 초조함이 역력하다.
누군가 무심코 집어 던진 돌덩이들이
호수 빙판에 나뒹군다.
무심코란 어쩌면 빙산의 일각, 그는 불행하게도 스스로를 징벌하고 있다.
오른쪽과 왼쪽 얼굴이 점점 멀어지고 있다.
회색과 초록으로 치켜 뜬 붓질, 붓질은 더욱 빨라지고
간발의 차로 그는 아직 무명이다.
집요하게 빛나는 핏발 선 눈동자
눈썹 밑까지 밀짚모자를 깊숙이 눌러 쓴다.
불룩 솟은 광대뼈가 호수 가장자리로 일그러지고 있다.
끝인 듯 끝나지 않은
정체불명의 이 불길한 매혹은 무엇일까, 그는 오늘 안에 무슨 일이 있어도
물감을 사야 한다.
겨울외투보다 깊은 주머니를 달고
빙판 위를 미끄럼질 쳐 오는 아, 아몬드 꽃향기
로즈 핑크와 피치, 아예 화이트는 몇 깡통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고
아지랑이처럼 중얼거리며 가는 먼 길
그러나 곧 알게 되리 승패를 알 수 없는 저 겨울나무의 메마른 행진처럼
그는 아직 무채색 속에서 안전했다는 것을, 가난은 물밑까지
투명하게 비추며 미친 듯 서둘러 가고 있다.
2월의 그녀 /김희선
두 해를 넘긴 만남
우애가 미움으로 변해서도
인정이 메말라서도 아니다
무심한 세월에
피폐해진 세상이 아프다
주름살도 예뻐 보이는 그녀
가냘프고 여린 체구지만
곧은 심지와 도도한 열정이
차가운 계절 속에 봄을 품은
2월의 홍매화 같다
주머니 속 아린 추억을 꺼내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시린 계절을 온기로 채우고
일렁이는 은빛 파도 너머로
묵은 허물을 벗어 던진다
2월은 짧다 /서금순
등을 떠미는 쌀쌀한 바람과
먼 산 골짜기마다 허옇게 쌓여 있는 눈
계곡은 동장군의 위엄에
두 손 두 발 꽁꽁 묶인 채
따스한 햇살에도
마음을 내어주지 않고
동면에 든 곰처럼
두툼한 이불 속에서
꼼짝 않고 누워 있고 싶은 마음
문득 올려다 본 달력은
누군가에게 잘린 듯한 꽁지
느적느적 늑장부리다
아쉬운 끝자락을 보니
정신이 번쩍 든다
나의 게으름에도
빼꼼히 고개를 내밀
작고 앙증맞은 새싹의 꿈틀거림
봄을 기다리며
한 해를 계획하는
희망의 달
2월은 짧다
이월 /김수정
목련꽃 봉오리처럼 조잘거리며
당신에게 갔다 부쩍 홀쭉해진
볼 때문에 더욱 깊어진 그늘을
못 본 척, 가볍게 들어 올린 내 목소리에
당신은 약 봉투를 슬그머니 감췄다
꽃 피면 같이 보러 가자
점점 빛을 잃어가는 당신의
가늘어진 목소리에
이월 나뭇가지에 걸린 바람처럼
집으로 오는 내내 절뚝거렸다 얼음 풀린 강가
물낯은 한 겹 얇아져, 들여다보면
무심히 던졌던 돌멩이도 보일 것 같은데
산 너머 폭설 소식에 다시 발이 얼었다
꽃 피면 같이 보러 가…
못다 피운 꽃나무의 일, 내생으로 이월하듯
슬며시 흐리던 말씀에
나는 언 땅의 꽃씨처럼 울었다
봄을 삼킨 2월 /안영준
오는 듯하던 봄은
저만치서 멈칫거리고
쪽빛 하늘에
눈발만 휘날린다
물오른 가지는
백설을 등에 업고
오돌오돌 떨고 있다
초록 잎새는
세상 좀 구경하려다가
화들짝 놀라
눈살을 찡그린다
화려한 봄 무대에서
신접살이하면
좋으련만
어지러운 세상
아직도 많이 시리다
2월에는 /이향아
마른 풀섶에 귀를 대고
소식을 듣고 싶다.
빈 들판 질러서
마중을 가고 싶다.
해는 쉬엄쉬엄
은빛 비늘을 털고
강물소리는 아직 칼끝처럼 사라진다.
맘 붙일 곳은 없고
이별만 잦아
이마에 입춘대길
써 붙이고서
놋쇠 징 두드리며
떠돌고 싶다
봄이여, 아직 어려 걷지 못하나
백리 밖에 휘장치고
엿보고 있나.
양지바른 미나리꽝
낮은 하늘에 가오리연 띄워서
기다리고 싶다.
2월의 방 /권대웅
비틀거리며 내려오는
한줌 햇빛이 박하사탕 같다
환해서 시린 기억들
목젖에 낮달처럼 걸려
봄바람마저 삼켜지지 않을 때가 있다
고요속에 있던 그늘의 깊은 우물로
돌멩이 하나가 떨어지는 소리
나뭇가지에 쌓인 눈의 무게를 못 이겨
쩡! 하고 부러지는 소나무의 이명이
온 산을 메아리로 돌다가
내 몸을 지나갈 때 나는 들었다
생이 버티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낮에 뜬 반달이 겨울 들판에 있는
작은 오두막집 같다
구름이 살고 있는 집
정처 없이 가난했던 사랑은
따뜻한 날이 와도 늘 시리고 춥다
세상에 봄은 얼마나 왔다 갔을까
바람 속에서
엿장수 가위질 같은 소리가 들린다
째깍째깍 오전 열한 시의 적막한 머리카락이
혼자 겨울을 난 방에 꿈틀거린다
겨울의 끝자락 2월 /백송 정연석
2월은 열두 달 중에서
날자가 가장 작은 달
추운 겨울은 마감하고
따스한 봄의 출발선
2월이 짧은 것은
추운 겨울을 줄이려는 배려
겨울 며칠 줄인다고
봄이 성큼 올 수는 없지만
추운 겨울 지쳐 있을 때
2월의 끝은 희망과 안도감
부지런한 상춘객은
여행 떠날 준비를 하네
2월아 !
서러워 말아라
3월이 빨리 오는 것은
너의 희생 덕분이야
고마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