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통합입니다
2020.11.20
미국의 초대형 모기지론 대부업체들이 파산하면서 시작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subprime mortgage crisis) 때, 미국의 한 작은 단골 가게에서 봉변을 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가격표가 없는 상품을 집어 들고 “얼마냐?”라고 새로 온 점원에게 물었는데, “잘 모르겠다.”는 대답을 하는 겁니다. '뭐 이런 점원이 다 있지?' 하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다시, “얼마인지 알아봐줄 수 없냐?”고 물었더니, 갑자기 “나가라!”고 소리를 치는 거였습니다. “가격을 물어봤을 뿐인데, 손님에게 나가라니요?”라고 이야기하자 경찰을 부르겠다며 윽박을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저와 제 아내는 매우 기분이 나빴지만 정상이 아니어 보이는 점원과 실랑이를 해 봤자 좋을 게 없다는 판단에 바로 가게를 나왔습니다.
얼마 후, 가게의 주인을 만나서 문제의 점원에 대한 사연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직장을 잃고 살던 집까지 은행에 넘어갔다는 딱한 사정을 듣고 점원으로 채용했는데 손님들에게 히스테리를 부려서 해고했다는 겁니다. 우리에게 행패를 부린 그 백인 여성은 추측하건대, 자신은 실직하고 집도 은행에 넘어갔는데, 동양인 부부가 자신이 일하는 가게에서 돈을 쓰는 모습이 불편했던 모양입니다. 그 여성이 경찰을 부르겠다는 이유는 경찰은 잘잘못을 떠나 백인인 자신의 편을 들어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을 겁니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예상을 뒤엎고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이른바 “shy trumpers”라고 불리는 많은 백인들이 자신의 내적인 정체성을 따라 투표를 한 결과입니다. 프레임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이성적 판단보다 자신의 정체성에 근거해서 투표를 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렇게 못난 짓을 해도 계속 자신의 고향 후보를 찍는 우리 정치판을 봐도 프레임 이론은 쉽게 증명되는 것 같습니다. 오바마는 최근 회고록 <약속의 땅>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흑인 대통령 탄생에 겁먹은 미국인들을 자극해서 당선된 것이라고 2016년 대선을 평가했습니다. 트럼프가 당시 선거에서 들고나온 슬로건인 “Make America Great Again”은 4년이 지난 후에 굳이 평가를 하자면, 백인들이 주축이 되어 미국을 다스리던 시대로의 회귀를 의미했습니다.
코로나19에 미흡하게 대처한 실정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이번 2020년 미국 대선에서 역대 미국 대통령 선거 사상 가장 많은 득표를 한 2위로 기록됐습니다. 무시하지 못할 숫자가 여전히 트럼프를 지지하고 있어서 공화당의 유력 정치인들도 트럼프의 대선 불복을 지지하는 형국입니다. 그들은 다음 선거까지 이 지지세력을 끌고 갈 출구 전략 마련에 고심하고 있을 겁니다. 민주당의 바이든 당선인이 '통합'을 강조하고 있지만, 갈 길이 수월해 보이지는 않은 이유는 대선에 불복하고 있는 트럼프가 문제라기보다는 트럼프를 지지했던 절반 가까운 유권자들의 마음을 돌려놔야 하기 때문입니다.
트럼프의 가장 큰 실정은 미국이 숨겨왔던 인종 갈등을 비롯한 다양한 갈등들을 겉으로 표출시켜 버린 겁니다. 미국 인구에서 백인 비율은 줄어들고는 있지만 여전히 60%나 되는 절대 다수를 차지합니다. 반면에 흑인은 14%에 불과합니다. 선거에서 이기는 방법은 과반만 득표하면 됩니다. 아무리 극렬히 반대하는 사람이 많아도 확실한 내 편이 절반만 있으면 선거에선 이깁니다. 그 확실한 절반을 트럼프는 갈등을 부추겨서 얻어냈습니다. 트럼프에게 숭고한 정치적 이상이라는 것은 애초에 없어 보였습니다. 그는 이기는 방법만 충실하게 쫓았고 그게 꽤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가 이 광경을 지켜봤습니다. 필자가 우려하는 건 이렇게 한 번 열린 판도라의 상자를 과연 다시 닫을 수 있을까? 하는 점입니다.
4년 전에 트럼프가 당선된 이후, 묘하게도 우리나라도 둘로 갈라져 극렬히 대치하고 있습니다. 국민이 둘로 갈라지면 정치하는 사람은 편해집니다. 진영의 논리로 진실을 호도하기도 매우 쉬워집니다.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시키는 것도 가능해집니다. 크게 가진 정치 세력은 크게 가진 대로, 작게 가진 세력은 작은 대로 기득권에 의지하면서 서로에게 으르렁댑니다. 이런 가운데 누구 하나 나서서 옳고 바른길로 이끌려고 하지 않습니다. 특정 사안에 대해선 저쪽이 옳다고 판단해도 쉽게 말을 못합니다. 그렇게 하는 순간 내가 몸담고 있는 세력의 거센 질책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끔 '우리의 갈등은 언제 어떻게 누구에 의해서 표출되기 시작한 걸까?' 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갈등을 이용해서 결과적으로 이득을 본 사람들은 누구일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트럼프의 시대가 막이 내리고 바이든은 통합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백전 노장 정치인이 바라본 새로운 시대적 사명이 바로 통합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겁니다. 바이든의 통합이 부디 성공해서 전 세계적으로 이 ‘통합'이 유행하기를 바랍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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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상도
SBS 선임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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